소설리스트

74화 (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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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 사이도 몇몇은 승리의 미소를, 몇몇은 패배의 쓴잔을 마 

신 듯한 찌푸림을 얼굴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도 역시 트헨리 

와 비슷한 분석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를 알아내 

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게 사람의 마음을 아는 일이었다. 그들 

은 안타깝게도 시즈의 마음이 자신들의 생각과는 상당히 상반된 

자리에 놓여있다는 걸 알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시즈가 리페른 

에게 전하는 미소가 비웃음이라고 판단하며 내심 좋아했다. 

리페른은 리페른대로 말실수를 한 게 아닌가 하여 긴장이 뒤섟 

인 침을 목 뒤로 넘겼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 그는 이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리페른의 

눈짓에 그를 지지하는 귀족들은 금새 눈치를 챘다. 한 귀족이 

나섰다. 

「폐하……. 소신 시호트 역시 리페른 전하께서 옳게 판단하여 

말씀드렸다 생각됩니다. 소신도 〈마땅찮은 시즈〉라는 젊은 현 

자를 존경하고 흠모하고 있사오나 그렇다하여 법도를 무너뜨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시호트가 시즈를 존경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시즈에게 첫 번째 크리티컬 데미지를 날린 화려한 녹색 셔 

츠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 

었고 가장 기가 막혀 한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였다. 

〈아까는 존경스러운 이를 만나는 게 너무나 흥분되어 화장실에 

서 나오지를 못하던 사람이 왜저래?〉 

뭘 잘못 먹은 듯한 좌중의 표정에 관계없이 국왕 로타우노의 

머리 속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열망에 젖은 미젠, 굳은 

의지에 빛나는 리페른, 웬지 모를 떨고 있는 시호트와 뭐가 그 

리 좋은지 히죽거리는 첫째, 셋째 왕자들. 모두 한번씩 훑어본 

그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가 번쩍 떴다. 국왕이 결정했다는 걸 

눈치챈 모두는 그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 엘시크의 국왕 로타우노가 생각하기에 리페른 왕자와 시 

호트 자작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시즈 세이서스 후작 공자 

를 국사로 삼는다던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 미젠도 모두의 

말을 들었으니 이해하리라고 믿는다.」 

「예. 아바마마.」 

그러나 못내 아쉬운 얼굴의 아들이 안쓰러운 모양이다. 이제 

는 소년의 티가 나는 아들을 번쩍 안아올린 국왕은 미안한 웃음 

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실망하지 말거라. 그 대신에 내 반지를 주마. 얼마 전 세 

상을 떠난 트볼리온 궁정 수석 마법사가 내게 주었던 것이란다. 

3클래스의 마법을 하루에 5번 사용할 수 있는 반지란다. 네가 

마법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트볼리온은 헤트라임크 이전의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들었던 사 

람이었다. 얼마 전이라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20년도 더 

전이었다. 

오늘로서 겨우 13살이 된 미젠에게 20년 전의 대마법사는 전설 

처럼 여겨졌다. 그제서야 그는 아직은 어린 소년인 걸 나타내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홀 안의 사람들도 그 웃음에 마음이 편해진 

듯 했다. 시즈도 그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물 증정이 끝났습니다. 엘시크를 지탱해 주시는 귀족 여러 

분, 즐거운 연회를 즐기십시다. 악사들은 음악을, 시종들은 음식 

을! 와주신 여러분에게 대접하시오.」 

왈츠가 홀 안에 울려 퍼지고 중앙에서는 남녀가 짝을 맞춰 춤 

을 추었다. 레소니는 샹들레이가 부딪혀 산산히 퍼지는 불빛 아 

래서 춤을 추는 광경에 취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 

다. 그녀는 접시에 수많은 음식을 산처럼 쌓아놓고 걸신처럼 먹 

어대는 시즈에게 뚱한 눈초리를 돌렸다. 아무래도 무리겠지? 

〈난 어차피 춤도 출줄 모르잖아. 게다가〉 

한숨을 내쉰 레소니는 검은 정장을 입은 채 시즈 뒤에 고정된 

자세로 서있는 자신을 인식했다. 귀족은 가문당 한 사람의 시종 

과 호위를 데려올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음식은 지급되지 않았 

다. 마을에서도 그랬었지만 시즈는 귀족들 사이에서도 꽤나 인 

기가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의 신비로운 분위기와는 다른 

걸신같은 분위기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놀라운 방어 

술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 치렁치렁한 옷을 걸치고서도 우락부락한 근육이 느껴지 

는 사람이 시즈에게 다가섰다. 아니 시즈가 아니라 그의 시선은 

보를레스를 향하고 있었다. 망설임을 반복하던 남자의 수염 둘 

러진 입술이 벌어졌다. 

「혹시 자네, 보를레스 로만히데우그 아닌가?」 

「그렇습니다. 클라우 장군님.」 

「하하핫! 기사단을 나와서 뭘 하고 있나했더니……. 세이서스가 

의 호위를 맡고 있었나? 하긴 책을 좋아하던 자네라면 어울리기 

도 하는 군.」 

어깨를 투닥거리는 힘이 엄청난지 엄청난 장신이 보를레스의 

상반신이 앞으로 기우뚱거렸다. 그는 호기심을 담고 바라보는 

시즈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대륙을 흔들리게 한 〈마땅찮은 시즈〉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 

오. 난 클라우 토지벨이라고 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신세를 졌던 분입니다. 궁정 기사단 제 2 단 

장을 맡고 계셨지요. 후작의 위에 계시는 분입니다.」 

귀족들 사이에 있었기에 시즈를 향한 보를레스의 어조는 굉장 

히 조심스러웠다. 세이서스가의 젊은 현자 눈에 이채가 발했다. 

궁정기사단은 16 개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번호는 강함의 순 

위를 말함과 일치했다. 한 마디로 눈 앞의 사내는 이 왕국에서 

2번째로 강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리 키가 큰 것도 아닌데, 대단하군.〉 

「저도 만나뵈어 영광입니다. 보를레스 옛 귀인이신 듯 한데 만 

나 뵙고 오세요.」 

「하지만……」 

「그렇지만…….」 

보를레스는 곧 입을 다물었다. 은은하게 떠오른 시즈의 미소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매혹이라는 단어의 

성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면 눈 앞의 미소라고 그는 말할지도 몰 

랐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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