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200)

                                              -75-

파티가 무르익어 사람들이 하나둘씩 술에 취해가고 있을 무렵 

이었다. 레소니는 시즈가 와인을 조금씩 홀짝거리는 모습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누구를 기다리시 

는 거지? 그러고 보면 생전 가기싫어 하시던 궁전 연회에를 다 

나가겠다는 말을 다 하지를 않나……. 혹시 마음에 드는 귀족 

아가씨라도 생긴 거 아니야? 

「여기 계셨군요, 시즈 님.」 

휙 하고 돌아가는 레소니의 불타는 눈동자. 안타깝게도(?) 그 

눈빛에 찔끔한 것은 화려한 드레스로 치장한 귀족 여인이 아니 

라 리페른, 엘시크의 두 번째 왕자였다. 그와 시즈와의 전후 사 

정을 알리 없는 레소니는 〈아까 주인님을 무시했던 그 왕자잖 

아.〉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사람을 어째서 주인님은, 

「리페른 전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며 맞이하는 걸까? 레소니는 입술을 쏙 내밀고 시즈가 건네준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시종이 술을 마시면 안된다는 걸 알 

고 있는 그녀는 극구 사양했지만 한 잔 정도는 괜찮다면서 시즈 

가 억지로 권한 술잔이었다. 

「이분은?」 

「제 시종인 레소니 라고 합니다.」 

리페른은 왕자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술잔만 홀짝거리는 예의없 

는 시종이 서민 중에서도 아주 미천한 서민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색기가 흐르는 거지?〉 

와인으로 붉으스럼하게 달아오른 레소니의 흰 얼굴은 왈츠가 

끝나고 이어지는 은은한 음악 속에서 더욱 유혹적이었다. 하지 

만 연회장에 시녀가 들어올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뭐하러 굳이 

여자를 남장을 시켜 들어오겠는가. 쓸데없는 잡념이라 판단한 

그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시즈 님 가시죠. 약속대로 정원에서 와인을 함께 마시기로 했 

잖습니까? 로길드가 지금쯤 자리를 마련해두었을 겁니다.」 

「예? 하핫……. 저는 그저 정원을 와인 한 잔과 함께 산책이라 

도 하자는 뜻이었는데 번거롭게 자리를 마련하셨다니. 이거 가 

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술기운 때문일까? 시즈는 평소보다 더 은은하고 부드러운 미소 

를 짓고 있었다. 요전 미젠 왕자의 웃음과 비슷했지만 그의 미 

소는 즐겁게 하기보다는 편안히 가라앉히는 힘을 가지고 있었 

다. 

「레소니, 미안하지만 나는 전하와 함께 정원에 가 있을게요. 아 

버님께 가 계세요.」 

도리질을 치며 매달리고 싶었지만 그녀 역시 보를레스와 마찬 

가지로 시즈의 미소를 거역할 힘이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헤 

트라임크의 뒤에 가서 한숨을 내쉬는 소녀. 목덜미에 갑자기 뜨 

뜻한 기체가 들이박힌 대마법사는 화들짝 놀랐다. 

「읏? 아니, 레소니 아니냐. 시즈는 어디에 가고?」 

레소니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으로 왕자와 함께 정 

원으로 향하는 시즈를 가리켰다.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 

덕이는 헤트라임크. 세월의 연륜을 말해주듯 그는 레소니가 내 

뿜는 한숨의 원인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호오……. 시즈가 널 내버려두고 간 모양이로구나.」 

그러자 이번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소녀. 놀란 헤트라임크가 살 

펴보니 이미 그녀의 입김에 술기운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지 아 

니한가. 그녀는 와인 한잔에 쉽게 취하는 체질이었던 것이다. 

〈시즈, 이녀석. 연회장에서 하인에게 술을 주다니!〉 

평소였으면 벌써 꾸짖으며 집으로 돌려보냈을 테지만 레소니에 

대해서는 시즈를 비롯한 그의 저택 하녀들의 이야기를 엿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울먹이고 있지 않은가. 다그쳐서 엉엉 

울어버리면 그것만큼 망신도 없었다. 할 수 없이 헤트라임크 세 

이서스, 이 시대 엘시크의 대마법사는 처녀에 가까운 아이 달래 

기를 시작했다. 

「후우……. 레소니, 여기 앉으렴. 이걸 먹으면서 기분 좀 풀려 

무나. 요것도 맛있단다. 시즈가 좋아하는 여성상이라도 말해줄 

까?」 

그녀의 눈물이 단숨에 그쳤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