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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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서스 후작 각하, 시즈 님께서는?」 

「리페른 전하와 함께 정원으로 나갔다고 하더군.」 

아무리 시즈라지만, 걱정이 되는 보를레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회장 밖으로 걸음

을 옮겼다. 뒤에서 헤트라임크가 그 어떤 절규를 부르짖는다고 해도 그는 시즈를 찾는 

일이 바빴다. 

「이보게! 레소니를 더 보살펴야 한단 말인가!?」 

정원은 조용했다. 다가오는 인기척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대는 누구지?」 

보를레스는 다가오는 두 소년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세이서스가의 수행원으로 참가한 보를레스라고 합니다, 리페른 전하.」 

「역시 세이서스가는 다르군. 수행원조차 이렇게 뛰어나다니……. 안 그래, 로길드?」 

「예. 전하의 말씀 그대로이십니다.」 

「후훗! 〈마땅찮은 이〉께서는 이 길을 따라서 쭉 가다보면 계실 겁니다. 그럼 이

만…….」 

얘기는 잘된 모양이로군. 역시 시즈라는 생각과 함께 그는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

리고 왕자가 알려준 곳으로 달렸다. 

「역시 왕궁의 정원은 쓸데없이 커.」 

훈련을 받을 후에 헤맨 후로 그의 머리 속에는 이 정원에 대한 감상이 별로 좋지 않게 남

아있었다. 오랜만의 재회 또한 그다지 기억을 바꿔놓지는 못할 것 같았다. 마치 정처없

이 떠도는 나그네처럼 보를레스는 걸었다. 

「시즈…….」 

찾고자 하는 이를 찾을 수 있었던 곳은 왕자가 말해준 방향에서 상당히 벗어나 위치한 

분수였다. 뭐하고 있냐고 다그치고 싶었지만 발걸음은 뗄 수 없었고 입은 떨어지지 않았

다. 마음 속에서 다가가면 안된다고 올가미처럼 다리를 묶고 있었다. 슬퍼하는 듯, 괴로

워하는 듯 알 수 없는 얼굴에 매달린 입가는 자조적인 웃음을 띤 채 모든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포물선을 내며 얆은 막으로 떨어지는 물줄기의 소리가 눈물의 떨 

굼같았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깍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 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만 하나 남았네. 

두고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 소리 

고개를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 

〈신해철 - 민물장어의 꿈〉 

〈그리워하는 건가, 고향을?〉 

물소리는 반주가 되어 시즈의 노래를 감싸고 작게 퍼져 나갔다. 

시즈는 양자라고 했고, 헤트라임크조차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들은 보를

레스였다. 낮고 고요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음색으로 입술을 오물거리는 시즈의 고향

이 그 또한 보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면 시즈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걸 본 것은 처음이었

다. 이렇게 아무도 몰래 향수를 노래하는 걸까? 

「보를레스, 그만 나오세요.」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나는 당혹감 가득찬 보를레스의 얼굴에 시즈는 피식하

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알고 있었나?」 

「예. 저를 감싸는 바람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으니까요.」 

「저, 저기 말이야. 넌 돌아갈건가?」 

보를레스가 머뭇거리며 내뱉은 물음에 시즈는 이해할 수 없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니까 네가 부른 노래 마지막 부분에서…….」 

「아! 그거요?」 

「그래. 그거!」 

잠시 생각을 하던 시즈는 보를레스의 물음이 꽤나 즐거운 듯 했다. 오해였을까? 왠지 바

래보는 보를레스였다. 약간은 서글픔을 흘리며 시즈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제가 돌아갈 곳은 당신과 레소니가 기다리는 저의 저택 뿐입니다. 단지 

조금 취해서 흥취에 보른 노래일 뿐이에요.」 

슬픔을 느낄 수 없는 게 아니었지만 보를레스는 안도했다. 겨우 찾은, 따라가야 할 이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따라가겠지만……. 불안했다. 그렇기에 미안한 표정으

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내가 오해를 한 모양이군. 레소니가 술에 취한 것같던데, 어서 가보는 게 좋겠

어.」 

「예.」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두 청년……. 그 뒤로는 바람이 남아 시즈가 흘리고 간 노래를 메

아리처럼 되내였다.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없이... 미련없이... 

하지만... 

그대는 심장이 터지도록 울고 웃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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