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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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길드, 이리 와서 붕대 좀 감아줘요. 빨리 하고 일어서야 하니까‥."

"아, 예."

로길드, 왕국 엘시크의 1500년 역사의 그림자를 지켜온 페노스톨멘가의 소년 후계자에 눈에 비친 현자 시즈 세이서

스는 눈에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존재처럼 멀었으며 거대했다. 

'포션과 약초를 병행하는 일은 1류 약사들도 잘 하지 않는다. 어떤 상생 효과를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 사람은 마치 당연한 양 포션에 빻은 약초를 섞는다. 게다가 약초에는 약간의 마나까지 포함되어 있다.'

약초에 마나를 넣어 효과를 높이는 방법은 엘프들의 전유물이라고 로길드는 알고 있었다. 인간들 중에서 그 방법을 

실행하는 자는 매우 극소수라고‥.

'이 사람의 지식은 어디까지일까? 혹시 본가의 도서실에 배치된 서적보다 더 방대한 지식을 가졌을까?'

하지만 로길드가 배제하고 있는 게 있었다. 시즈는 자신이 행하는 치료법에 대한  부작용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

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에게 어울리는 말은 방대한 지식의 소유자가 아니라 '무식하면 용감하다'였다.

치료와 함께 짧았던 치료를 끝내고 일어섰다.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굴의 끝자락을 보며 하스폰티안이 말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깊은 굴은 처음 보는군요."

"아마도 피곤한데다가 고생을 심하게 하여 더욱 길게 느껴지는 겁니다."

언제까지나 시간을 치체할 수는 없었다. 석순을 타고 흘러내린 물방울이 약간의 여유를 간격으로 똑똑 시간을 재고 

있었다. 게다가 동굴에서는 식량을 구할 수가 없었다. 비축된 식량이 바닥나기 전에 동굴에서 나가야 했다.

"갈림길이로군. 어느 쪽으로 가지요? 흩어져서 찾아보겠소?"

"어느 쪽이든 전하께서 가지 않으시면 헛고생입니다. 차라리 흩어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오른쪽에서 바람이 느껴진다는 하윌의 말에 따르기로 한 이들은 어느 순간 바닥을 채우고 있는 곤충들에게  기겁을 

했다.

"펜실바니카!"

시즈의 기억 속에 현존하는 곤충 중 가장 원시적인 종류에 속하는 녀석들은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식성과 어떤 상황

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력과 번식력을 지닌 최강의 존재였다. 게다가 시즈의  발 앞에서 기묘한 냄새를 풍겨

대는 녀석들은 집안에서 머리를 짓눌러 뭉개버릴 수 있었던 것들과는 다르게 손바닥만큼이나 컸다. 이 정도의 녀석

들이 동굴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사이로 발만 들여놓으면 순식간에 뼈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뭘 먹고 이 안에 이렇게 살아있었던 거지?"

어딜 봐도 먹이는 있지 않을 동굴. 시즈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주얼거렸다. 뒤에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던 보

를레스가 기가 막히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상황에서도 그런 질문이나 하고 있다니‥. 어떻게 하면 저걸 쫓아낼지 생각해봐."

펜실바니카들이 얌전히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아무래도 횃불 때문인 듯  했다. 만약 익숙해진다면 오랜만에 맡게된 

먹이 냄새를 놓치지 않을 게 분명했다.

"하윌, 바람이 이쪽에서 느껴졌다고 했죠? 지금은 어때요?"

하윌은 좀더 감각을 극대화하려는지 정신을 집중했다. 

"틀림없어. 가까운 곳에 바깥과 통하는 곳이 있다. 어딘가로 공기가 들어오고 있어."

"전하, 들으셨겠지만‥. 아무래도 곤충의 강을 건너야 할 것 같습니다."

"‥‥."

리페른은 아무 대답없이 불빛에 비친 검은 물결을 향해 비위상한 시선을 던졌다. 그 표정은 마치 '꼭 해야 하나?'라

고 묻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시즈는 쓰게 웃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짧은 기간동안 리페른은 확연히 변해있었다. 좀더 남자다워졌다고 할까. 나직한 어조에 시즈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

었다. 리페른의 음성에서 의견을 드러냄의 부담을 삭혀주는 힘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의견을 듣게 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겠지. 시즈는 우글거리는 곤충들을 옆에 두고도 즐거웠다. 그의 은은한 목소리가 동굴을 서서히 퍼졌

다.

"걸어서 건너야지요."

"예엣!?"

찰나 동굴이 쩌렁하게 울렸다. 펜실바니카도 음파에 움찔했는지 순간 들려오던 마찰음이 죽어버렸다. 기사들의 얼굴

은 마치 방금 전에 쏟아놓은 소변을 오렌지 주스로 착각하고 마신 사람들처럼  싯누렇게 변했다. 그런 그들을 대표

하여 하스폰티안 남작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걸어서 건너다니‥. 펜실바니카는 뼈도 남기지 않고 코춧

가루 단위로 해서 우리를 먹어치울 거요. 아마 맷돌에 인간을 갈아서 물에 타 마신다고 해도 저 녀석들에게 먹히는 

것보다는 남는 게 있을 겁니다."

"방법을 말해주십시오. '마땅찮은 시즈'"

리페른는 날카롭게 시즈를 쏘아보았다. 그의 판단에도 시즈의 말은 어처구니없었다. 그가 부른 명칭은 별명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그가 현재 느끼는 감정을 읊은 것인지도 몰랐다. 시즈는 자신을  잡아먹을 듯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아하하핫 하고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간단합니다. 횃불로 필요없는 물건을 태운 후 그 재를 몸에 바르고 걸어서 지나가면 되는 거죠. 쪼오오끔 위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방법이 없어요."

시즈는 말이 끝나고 부담스러웠던 시선들에 살기가 비릿하게 풍겨 나오는 걸 느꼈다. 그의 등을 식은땀이 유혹적으

로 쓰다듬었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로길드가 시즈에게 묻자 사람들은 절망을 느꼈다. 그나마 일행 중에서 시즈와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학식을 가진 

유일한 소년이 아니었던가. 그가 저렇게 물었으니‥.

"물론 뒤로 돌아서 나가면 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리미뇌 홀을 포기할 생각이십니까?"

결국 이들은 식량을 비롯하여 침낭과 옷- 속옷도 - 등 불에 타는  대부분의 탐사장비를 태우고 그 재를 물에 타서 

몸에 발랐다. 시즈의 말이 맞다면 이 재 냄새가 그들을 지켜줄 것이다.

"제가 먼저 가도록 하겠습니다."

하스폰티안이 먼저 앞장서고 그 뒤를 하윌이 따랐다. 뛰어난 기사와 권술가인 두 사람이었지만 조그만 미물들 앞에

서 긴장하고 있는 게 얼굴에 그윽하게 나타났다. 

그들이 발을 내딛는 자리는 물결이 거두어지듯이 싸악하고 바닥이 드러났다. 그러나 먼저 간 놈이 있으면 뒤떨어지

는 놈도 있는 법.

와드득!

밟고 싶지 않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벌레들을 밟지 않을 수는 없었다. 짓뭉개진 시체의 주인이 그것들은 방금 전

까지 함께 몸을 비비던 친구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그러나  시즈의 말대로 그것은 두 사람

의 발이 지나고 난 후였다. 

"빨리 걷지 마세요."

뒤에서 시즈의 얄미운 음성이 들려왔다. 이 상황에서 어찌 느린 걸음이라는 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지 당장 돌아가

서 펜실바니카 속으로 던져주고 싶었다.

'환경의 암흑은 마음의 암흑일지니‥.'

교육환경가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발끝으로 기괴한 소리를 내며 와 닿았다. 

'이제 몇 발자국만 더 가면‥.'

툭!

흠칫!

하스폰티안은 탐사단장의 직위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마 부근에서  무언가가 배를 끌면 기어가는 감

촉이 생생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참고 견뎠다. 그리고 끝을 보았다.

"후우‥. 다왔군."

드래곤의 트림만큼이나 깊고 무거운 숨을 뱉어낸 하스폰티안은 밝게 웃으며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어서 건너오십시오."

하지만 건너올 이들은 괜찮은 것도 그리 탐탁하지 않은지 눈을 질끔  감는 인원이 꽤 됐다. 한 명, 두 명 건너가고 

시즈와 보를레스만이 남았다.

먼저 건너간 사람들은 '이미 재앙은 끝났다'라는 표정으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시즈 님, 보를레스 님, 뭐하십니까?"

"모두들 이걸 생각해보셨나요? 돌아올 때는 재가 모두 흩날리고 또  냄새도 사라졌을 겁니다. 어떻게 건너시겠습니

까?"

"무, 무슨 뜻입니까?"

"펜실바니카를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겠죠. 그럼 원하는 것을 얻으시길‥."

얘기를 끝낸 시즈는 짐 속에서 악기 하나를 꺼냈다. 넬피앙이라고 불리는 서민의 악기는 언제부터인가 그가 아끼는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였다.

"시즈 님. 무, 무슨!?"

"서, 설마‥."

넬피앙의 현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보를레스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은 시즈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고 함께 

동굴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 모습은  마치 어릴 적 들었던 동화같은 전설을  연상시켰지만 전설의 마지막을 

떠올리는 순간 로길드와 리페른은 주먹을 꽉 쥐고 소리쳤다.

"안돼!!"

#

"리페른, 그리고 로길드도 잘 들어요. 옛날‥하고도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랍니다."

롤젠미아누 왕비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기대에 찬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두 아이에게 잠을 안겨줄 듯한 나긋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때는 '로치큐'라는 몬스터가 극성을 부릴  시기였어요. 로치큐는 펜실바니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더  포악한 

성향과 강한 이빨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로치큐가 어찌나 많은지 곳곳에 없는 곳이 없었어요. 곡식창고를 열

어보면 식량 대신 로치큐들이 우글우글 몰려나올 정도였답니다.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로치큐는 그래도 사라

지지 않았어요. 굶어죽는 사람과 동물의 시체가 그들의 먹이가 되어줬으니까요. 썩은 동물의 시체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종족에게 극심한 악종 질병을 가져다주었어요."

롤젠미아누 왕비는 목이 말랐던지 탁자에 준비되어 있던 컵을 들었다. 혀와 입안을  축이고 난 그녀는 다음 이야기

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는 표정의 두 소년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최강의 생물이라는 드래곤보다도 사람들은 로치큐를 두려워했답니다. 작고 두려운 생물들을 퇴치하기 위해 사람들

은 갖은 방법을 다 써보았어요. 그 때 몇 사람이 그들을 퇴치하겠다고 나섰지요. 그들은 당시 가장 이름 있는 음유

시인 4 명이었어요."

- 무서울 게 없는 로치큐이지만 불에는 약합니다. 어떻게든 불로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없앨 수 있습니다.

- 우리도 해보았소. 하지만 놈들은 아무리 푸짐한 먹이를 미끼로 유인한다고 해도 불씨라도 있는 곳에는 절대로 다

가가지 않소.

"그 곳에 모여있던 사람 중 한 사내가 그렇게 절규하자 모두들 절망에 어린 표정을 지었답니다. 그 때 4 명의 음유

시인 중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음유시인, 왕국 제일의 음유술사입니다.

"어마마마, 어마마마! 음유술사가 뭐죠?"

리페른이 묻자 왕비는 잠자코 듣고 있던 소년에게 질문을 돌렸다.

"로길드는 알고 있나요?"

"예, 전하. 고대의 음유시인들 중에는 음악으로 마법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을 통틀어서 음유술사라고 합니다."

"리페른, 로길드의 말 잘 들었지요? 이야기를 계속 할게요. 왕국 제일의 음유시인이자 음유술사인 그는 말을 이었어

요."

- 저 광활한 안티품 평원 가운데에서 노래를 하겠습니다. 우리 주위에 냄새를  가득히 풍기는 민트액으로 훈제시킨 

고기덩이를 놔두세요. 몰려든 로치큐를 우리가 음악으로  묶어놓을 테니 그 사이에 평원의  가장자리에서부터 불을 

지르세요. 로치큐는 채소와 곡식은 먹어도 마른 밀 줄기를 없애지는 않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에 찬성했고 안티품 평원 중앙에는 민트로 훈제된 몰도리카- 소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코끼

리 정도다 -고기로 사방을 가득 메웠답니다. 그리고 4 명의 음유시인들은 노래를 시작했어요. 작고 포악한 손님들을 

초대하는 유혹의 노래는 민트향을 안아든 몰도리카의 냄새와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갔답니다. ‥‥"

- 슬슬 몰려드는 군. 이제 조금 있으면 불도 솟아오를 겁니다. 슬슬 빠져나가도록 합시다. 

- 먼저 가세요. 전 좀더 있다가 가겠습니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바람을 노래하는 이'여‥.

- 제 말을 들으세요. '불꽃의 춤을 추는 이'여‥. 제가 떠나면 움직이던 바람이 사라져버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불

의 행로는 알 수 없어요. 도리어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겁니다. 로치큐보다 더 악몽스러운 재앙이 될지도 몰라요.

- 하지만‥!

- '파도의 악보를 지닌 이'여‥. 부탁합니다.

- 꼭 이래야 할까요? '바람을 노래하는 이'여‥.

- 번식이 강한 벌레들입니다. 하나라도 살려둘 수는 없잖아요? 불길이 조여들고 있습니다. 어서 가세요. '땅의 고동

을 밟는 분'‥. 혹시라도 불꽃이 폭주하거든 막아주십시오. 세상의 마지막 힘인 불이라고 해도 바람이 없는 이상 그

리 힘을 펴진 못할 겁니다.

"마지막 한 명의 음유시인을 놔두고 그들은 슬퍼하며 안티품 평원에서 도망쳤답니다. 사람들은 솟아오른 불꽃에 타 

죽어갈 로치큐를 생각하고 축제를 열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모습은 슬픔에 젖어있던 한 음유술사의 분노를 일으켰

지요."

- 어찌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그대들을 위해 자신을 태우고 있거늘!!

"그의 분노는 새로운 불꽃이 되어 세상을 태우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음유시인이 그에게 말했지요."

- 그 분께서는 결코 현명한 사람들을 위해 죽은 게 아닙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겁니다. 이해하

십시오. 그의 뜻을 저버릴 생각인가요?

- 빌어먹을!

"두 음유시인에게 설득 당하자 그는 주위 시선을 상관하지 않고 펑펑 울기 시작했지요. 아직도 불꽃은 평원을 태우

며 중심을 향해 조금씩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그도 평원 속, 노래를 부르고  있을 한 사람이 있는 곳으로 울부짖었

어요."

- 불꽃이 바람 없이 방향을 정할 수 없듯이 나 역시 그대 없이 방향을 정할 수 없습니다.

"그의 절규와는 관계없이 불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의 절규에 맞추어 더욱 강하게 타올랐지요."

- 바람이‥.

- 멈췄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불이 잦아진 후에 한 음유시인이 노래를  부른 곳에는 로치큐가 타고남은 재만 가득했답니다. 

그 재는 땅에 있어 매우 이로운 영양을 지닌 것이었죠. 그 이후로 밀과 보리만 키우던 안티품 평원은 광대한 쌀 농

장으로 바뀌었답니다."

"어마마마, 혹시 그건‥."

"그래요. 지금으로부터 몇 천년 전, 현재의 엘시크를 지탱해주는  중앙 평원 엘크릴스에 내려오는 전설이에요. 전설

에는 마지막까지 노래를 멈추지 않았던 음유시인이 불렀던 노래가 내려오지요. 정말 아름다운 노래에요."

왕비가 자장가처럼 불러주었던 노랫소리. 하지만 더 가슴을 채워오는 노랫소리.

본능에 몸을 맡긴 그대들.

내, 노래에 몸을 맡기고 부릅니다.

어서 와 축제를 벌이세. 어서 와 축제를 벌이세.

갈색 갑옷 속에 숨겨놓은 얇고 투명한 날개를 펴고.

어서 날아와 축제를 벌이세 하고 부릅니다.

춤을 추며 이성을 믿는 이들에게 말해주세요.

본능의 반역을 두려워하라고

스쳐 지나는 듯한 유혹에 찾아온 이들이여‥

황금빛 들녘이 새빨간 와인처럼 물들 때 우리는 떠나갑시다.

유혹의 빛깔에 물들어‥

좀더 나직한, 하지만 좀더 매혹적인 음성‥ 멍하니 불빛이 동굴 저 편으로  사라지는 걸 보고있던 리페른은 어째서 

그 노래가 지금 들려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왜 펜실바니카가 물결치듯  움직이는지, 

왜 시즈와 보를레스를 쫓아가는지‥.

"설마‥ '바람을 노래하는 이!?'"

믿을 수 없는,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결의에 찬 얼굴로 로길드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신에 찬 눈동자는 검은 

물결이 움직이는 모습에서 감히 시선을 떼지 못했고 멍한 귀는 너무나 은은한 청년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가 바람을 노래하는 이라면 아까의 바람에 대한 의혹도 풀린다. 그러나 더 이상 나타날  수 없는 존재라고, 그런 

존재라고‥.'

갑자기 한 사람이 소리쳐 로길드의 눈동자와 함께 돌아가고 있던 생각을 멈췄다.

"자아‥. 어서 갑시다. 언제까지 멍하니 있을 거요?"

동굴 전체가 움직이는 듯한 펜실바니카의 이동에도 덤덤하게 말을 던진 사람은  바로 엘프, 하윌이었다. 딸, 유레민

트가 그토록 격찬했던 청년이었다. 살아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

어 즐거운 미소가 입가에 새겨졌다.

"하윌 님의 말이 맞군요. 어서 갑시다. 시즈 님은 맡겠다고 했지, 희생하겠다고 하지는 않았어요.  우린 빨리 리미뇌 

홀을 찾아야 합니다."

"바람이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고 있소."

그가 가리키는 곳에서 빛이 보였다. 모두들 기대를 품고 걸음을 그리로 옮겼다. 그러나 왜 희망과는 다르게 눈에서

는 눈물이 솟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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