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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놈은 왜 잡아온 거야?"
해적 루이스타의 일원, 클프는 선장이자 두목인 모리골드 루이스타의 호된 질책을 받아야 했다. 방금 전에 납치해온
녀석이 매물이라기 보다는 고객의 인상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는 일그러진 두목의 눈썹을 살피며 애처로운 표정
을 지어 봤지만 수많은 미소년, 소녀들을 팔아먹으며 단련된 두목의 악마같은 심성은 한 치의 망설임없이 클프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크억! 쿨럭! 저, 저도 일부러 데려온 게 아니라고요. 두목!"
배를 움켜지고 억울하다는 듯 소리친 클프는 신음 소리를 내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모리골드는 코웃음을 치며 부하
를 바로 짓밟았다.
"한 컵의 우유는 충분히 몇 동이의 물을 흐리게 할 수 있는 법. 가자!"
그는 과감하게 매물의 전체적인 평가를 낮추는 오염원을 없애버릴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부를 안겨다줄
아름다운 매물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검문과 그 외의 사태를 대비하여 부두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지하감옥에 숨
겨놓고 있었다. 결코 멀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귀찮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이런 헛걸음마저 하게 만들다니 돌아오면 더욱 늘씬 두들겨 주마.'
투덜거리며 감옥 안으로 들어선 모리골드는 지하를 은근히 메우고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홀려버린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감시원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그가 묻자 감시원들이 악몽에서 깨어난 표정으
로 벌떡 일어섰다.
"헉! 두목님!"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리 신경쓸 게 아닙니다, 두목. 사내 녀석 하나가 우는 여자애들을 달래 주려고 노래를 불러주는 모양입니다."
"호오‥. 노래라‥ 좋지! 누군지 한 번 볼까?"
재주는 상품의 가치를 한 단계 높여주는 부가가치나 다름없었기에 모리골드는 금새 밝은 미소를 지으며 감옥으로
다가갔다. '어느 놈이 돈을 더 가져다줄 짓을 하고 있나?'라는 노예상인적인 심사가 낀 시선이 문 위에 작게 뚫린
철창을 지나 감옥 안으로 향했다.
"음‥!"
침음성과 함께 그는 입맛을 다셨다. 좀더 매물들을 바라보던 그는 등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클프를 달래려면 애 좀 먹겠군. 흠, 돌멩이가 진주였을 줄 누가 알았겠어."
한 편, 보를레스와 레소니는 이미 방을 잡고 있던 여관에 짐을 푹고 치안관서로 달려온 상태였다. 도시의 치안을 담
당하는 관서라면 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아마‥도 말야‥. 해적‥단의 짓일 게 분명해‥. 요즘에 인신매매에‥ 재미를 붙였다 더군."
투실투실 흔들리는 살덩이에 맞춰 치안 서장이라고 불리는 사내의 말도 흔들렸다. 사내의 어조는 그야말로 '아! 방
금 전에 점심을 먹고 왔지.'라고 말하는 듯 하여 마침 안절부절하던 보를레스의 신경을 밑바닥부터 샅샅이 긁어놓
았다.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친 보를레스가 타오르는 눈동자로 서장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치안 서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어찌 쉽게 할 수 있소? 재미를 붙였다니!? 인신매매가 어린애 장난입니까?"
"그렇게 흥분할 거 없소. 나 역시 처음 이 곳에 부임했을 때는 당신처럼 매일같이 화를 내며 흥분했다오. 하지만 그
런다고 해서 해적들의 꼬랑지도 발견할 수 없었지. 그들에 대한 정보만 잡히면 바람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 놈들을
소탕할거요."
"정보가 들어오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소? 쥐가 곡식을 먹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밤에 먹으면 식량이 바닥나도 상관없다는 자세로군요."
"후우‥ 나는 분명히 정보를 수집한다고 말했소. 그런데 마치 놀고 있는 사람 마냥 취급하다니 날 모욕하는 게요?
그대가 기사 출신이라기에 참고 있지만 더 이상 모욕적으로 나온다면 심성이 너그러운 나도 묵과할 수 없소. 당장
감옥에 처넣기 전에 나가보시오!"
쾅! 치안관서를 박차고 나온 보를레스는 넘치는 울분을 멀쩡히 서있는 소츠 나무에 쏟아부었다.
"젠장!"
"보를레스 참아요. 이런다고 주인님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레소니는 겁먹은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이며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를 삭이고 있는 보를레스의 팔을 꼭 잡았다. 몇
번이나 뜨겁게 달아오른 숨을 내쉰 보를레스는 이내 팔의 힘을 풀며 레소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괜찮아. 고맙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지?"
"헤헤‥. 보통은 도둑 길드로 가서 정보를 얻는 게 정석이 아닐까요?"
"으음. 모르는 소리란다. 서민이나 상인이 정보를 얻기에 도둑 길드가 최적의 장소이긴 해도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
고 있지는 못해. 정보를 우습게 보지 않는 게 좋다. 정보를 가진 자는 지배자가 될 수 있어. 현재는 귀족들보다 많
은 정보를 가진 단체는 거의 없다."
"거의 없다는 뜻은 있다는 거 아니에요?"
"그래봤자 종교 집단 정도야. 그들이 일반인에게 정보를 빌려줄 리가 없지."
"음. 하지만 방금 전 치안관서에서는 모른다고 했잖아요?"
"숨기는 거겠지.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요?"
"할 수 없잖냐. 직접 정보를 수집해보는 수밖에‥. 레이모하의 신관들은 속이 좁아서 도움을 기대할 수 없지. 그 덩
치 큰 사제라도 있었으면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텐데‥. 하다 못해 헤트라임크 님이라도‥."
하지만 그들은 모두 엘시크에 있지 않은가. 연락을 취한다고 해도 이 곳에 도착하려면 며칠은 걸릴 게 틀림없었다.
그 때 걱정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레소니가 뭐가 떠올랐는지 얼굴에 활기를 띄고 달리기 시작했다.
"레소니, 왜 그래?"
그녀가 달려간 곳은 짐을 풀어둔 여관방이었다.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보를레스에게 레소니는 손바닥만한 거울
을 꺼내 내밀었다.
"거울이잖아. 이걸 뭘 어쩌라는 거야?"
"헤헤 이건 보통 거울이 아니라고요. 떠나기 전에 헤트라임크 님이 주신 것이에요.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연락하라
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이게 그 화상전송 거울인가?"
레소니의 말대로라면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마녀들의 수정구슬을 대신하여 개발된 것으로 얼마 전 헤트라임크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물건이었다. 둥근 구체의 빛 굴절도과 보석 특유의 마나 집합력을 무시하고 거울에 화상을
전송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기에 이 마법발명품은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레소니에게 주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아니, 누구에게 주더라도- 최대 권력자인 국왕을 제외하고는 - 문제가 될지 몰랐다. 그 이유는‥.
"이건 마법 협회에 아직 등록하시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사이에 등록하신 건가?"
엘시크에서도 발표가 되지 않은 제품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에 신경 쓸 레소니가 아니었다. 철저히 보를레
스의 말을 무시한 그녀는 거울 가장자리에 부착된 검은 띠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화상전송 거울, 정식명칭
'이뷰' 중에서도 레소니의 거울은 매우 특별한 것으로 이미 마나가 포함된 고가(高價)의 물건이었고 마나는 사람의
체온에 반응하여 활동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마법사가 아닌 그녀를 생각해서 제조한 게 틀림없었다. 그토록 수고
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보를레스의 물음은 잠시 후 거울 화면에서 나타난 헤트라임크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두 사람이 가슴을 쓰다듬으며 약간의 부담을 덜고 있을 쯤,
"그들은 갔나? 사우론."
"예! 서장님."
"귀찮은 녀석이었어. 기사 출신이라고 했지? 루이스타에게 전해라. 날파리가
뛰어들었다고. 우리는 끼여들지 않을 테니 알아서 처리하라고 해."
"예!"
철컥! 문 고리가 잠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오는 고요한 방. 서장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루이스타가 헌상한
고급 백포도주를 높이 치켜들었다.
"후훗! 어린애 장난이라‥. 맞아. 장난이지.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간단한 장난에 눈감아주는 정도로 안정된 노후를!
이런 말하기에는 난 아직 젊은가? 그렇다면 혹시 모를 당뇨의 대비를 위해! 건배‥."
흔들린 술잔이 허공과 건배를 한 후 서장의 입으로 다가갔다. 잔에 굴절된 일렁이는 그의 미소는 어딘지 퇴폐적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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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정도의 단정한 인상을 가진 청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짜증스럽게 대꾸하는 모리골드에게도 사우론의 무뚝뚝한 말투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욱 싸늘하게 말을 내뱉고 그는 나가버렸다.
"분명히 서장 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기사 출신의 파리가 끼여들어서 우리는 간섭할 수 없으니 알아서 처리
하라는 전언이다. 그럼 난‥."
"빌어먹을! 그 녀석이겠지? 애물단지로군 그래."
물론 하는 사업이 사업인 만큼 현재와 같은 경우를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와 신비한
미소, 전설에서나 나올 듯한 분위기, 그리고 기사 출신의 호위병. 왠지 잘못 건드린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온몸
을 휘감았다.
"클프. 가서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고 와라."
"두목, 좀 전에도 보고 왔는데요. 보나마나 서로 끌어안고 훌쩍대고 있을 거에요."
"말대꾸하지 말고 당장 다녀와!"
결국 또 얻어터지는 클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