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악장 내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시를 쓴 다면‥. (5)
"신중해야 돼!"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거에요?"
가만히 앉아서 환자들에 대한 약초를 정리하던 젠티아가 외치는 한 마디에 시즈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걸치고
있던 앞치마는 환자들의 피로 인하여 꽤 더럽혀졌지만 그녀(?)- 이제는 젠티아마저 헥갈리고 있다 -의 신비로운 분
위기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젠티아는 약초를 쓸 수 없는 부분을 골라내느라 칼을 들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하지만 시즈가 다가오자 얼굴을 붉히고 손을 얼른 등 뒤로 감췄는데 하지만 외모하고는 다르게 시
즈의 생체능력은 가히 엘프와 드워프를 함쳐 놓아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 상상할 수 없는 동체 시력으로 포착
한 젠티아의 손가락에는 붕대가 마디마다 가득했다. 배시시‥. 젠티아는 시즈가 살포시 웃는 모습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손을 다친 거에요?"
"아, 아니야!"
"손을 다쳤어? 젠티아가? 뭘 하다가?"
정말 놀랍다는 듯한 음성이 등 뒤에서 들려오자 젠티아는 다시 한 번 흠칫했다. 요즘 들어서 그가 가장 끔직스러워
하는 자의 목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시즈는 반겼다.
"넬피엘!"
"꺄아∼. 시즈, 근데 무슨 일이야? 젠티아를 상처 입힐려면 성투사가 10명 이상은 덤벼들어야 하는데‥."
"그게‥."
시즈는 말을 흐리며 젠티아를 힐끗 바라보았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사내. 저 사내가 과연 세
일피어론아드 중앙 동부를 호령하고 있는 글로디프리아의 성주 '값싼 남작'일지 의심스러웠다. 체면까지 내버리고
그의 애원이 있었지만 시즈는 그리 대단한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리를 하다가 손을 벤 모양이에요."
"뭐!?"
"‥‥."
세 사람이 침묵에 빠지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넬피엘은 검을 사용함에 있어서 대륙 최고라는 자가 요리하
다가 식칼에 손을 베었다는 사실에 어이없음을 느끼고 말이 없었고, 젠티아는 부끄러움에, 시즈는 갑자기 조용해진
두 사람을 긴장스럽게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윽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꺄하하하하하하핫! 요리를 하다가! 요리를 하다가!"
"우, 웃지마! 어‥, 이! 변태야!"
"불가항력이야."
젠티아도 모르게 튀어나온 해제어에 역시 전과 같이 무서운 속도도 굳어버리는 넬피엘의 아름다운 얼굴. 그러나 본
래 성격으로 돌아왔어도 웃음은 참기 힘든지 입가의 근육은 실룩이고 있었다.
"검을 다시 배워야겠군, 젠티아. 이번에는 당신의 성음검 대신에 식칼을 잡고 해야겠지만‥ 후후‥. 왠만하면 네 사
랑스러운 아내에게 배워두라고. 그래야 사랑받지."
"크윽!"
"어쨌든 난 바쁘다. 저 쪽에서 다리 부러진 놈이 아프다고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거든. 아직 6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
는데 왜 저리 난리인지. "
- 내 모습이 무엇인지 나는 기억하지 못하네. 내 성격이 무엇인지도 난 기억하지 못하네‥.
"그래서 가봐야 되요! 얼마나 아플까∼!"
호들갑을 떨며 사라지는 넬피엘. 그 때였다. 젠티아들의 간호를 도와주는 사내가 안색이 변해서 뛰어 들어왔다.
"아가씨,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임시 병원에서는 시즈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알려주지도 않았기 때문이지만 사람들은 시즈를 성녀님,
또는 그냥 아가씨라고 불렀다.
"중앙군이, 로바메트 공작께서 오셨습니다."
"!!!"
막 뼈를 맞추던 넬피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도 긴장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였지만 그 사례의 대상은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기절하는 사태도 몰고왔다.
"크아아아아악!"
"괜찮을까요? 비명이 엄청났는데‥."
"호호홋! 괜찮아요. 멀쩡하답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와 같이 넬피엘, 젠티아, 시즈의 머리 속에는 같은 말 한 마디가 가득
찼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천막 안으로 들어온 시즈 일행을 병사들은 무릎을 꿇리려 했지만 로바메트는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백성들을 보살핀 자들이다. 귀족들이 할 일을 대신 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 곳에서만큼은 귀족으로 대접해야지."
"감사합니다."
심하게 구부러져 듣기 싫은 목소리. 중년 사내의 연기를 할 때의 평소 젠티아의 음성이었다. 사람들은 귀를 막느냐
고 그의 목소리가 약간은 부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넘겨버린다. 중년 사내와 함께 다른 두 여인도 고개를 숙였다.
"으음‥."
로바메트는 미소를 지었다.
"두 여인 모두 아름답군. 게다가 심성까지 아름다우니 내 아들놈한테 소개하고 싶을 정도야."
"과찬이십니다."
수줍은 듯 소녀들(?)은 얼굴을 붉히고 미소지었다.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모습에 사람들은 심장이 떨려왔지만 정체
를 아는 젠티아는 기가 막힐 뿐이다. 게다가 역사의 고리가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그는 얼른
말했다.
"공작 전하께서 불러주셔서 영광이기는 하오나 저희를 기다리는 환자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용건을 빨리 말씀‥."
"전하께 무슨 무례냐!?"
재빠르게 뒤에서 대기하던 병사가 창대로 젠티아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빠악!
"우욱!"
앞으로 털썩 쓰러진 젠티아, 그는 무슨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똑똑하고 피가 새어나왔다.
"아, 아저씨!"
"이게 무슨 짓이에요?"
발끈하고 넬피엘이 붉은 머리카락을 팔랑거리며 외쳤다. 그래봤자 안아주고 싶은 마음만 유발시킬 정도 밖에는 항
의가 되지 않았지만 로바메트는 기분이 상한 듯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자 날카롭게 타오르는 그의 눈빛에 넬
피엘은 도리어 움츠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