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200)

                         40 악장 내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시를 쓴 다면‥. (8)

"데린, 피해요!" 

아리에가 소리쳤을 때는 이미 한 발 늦은 상태였다. 이미 화살을 장착한 채 데린의 미간을 겨냥한 석궁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갈 채비만을 남겨두고 있었으니까. 

"핫!" 

그러나 데린의 입장에서는 늦었다고 해도 몸이 재빠른 블리세미트에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쩜 아리에는 데린을 

포기하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바람처럼 블리세미트는 석궁을 쥐고 있는 상대의 팔

을 향해 발차기를 시도했다. 화악!하고 발보다 바람이 먼저 사내의 팔꿈치를 엄습했다.  하지만 가볍게 피하며 뒤로 

물러서는 사내. 복면으로 가린 모습에서 수상함이 마구마구 풍겨 나왔다. 

"뒤를 조심해." 

이번에는 파마리나의 외침이었다. 급히 뒤를 돌아보니 파마리나가 쏘아보낸 마법의 화살에 꿰여 털썩하고 쓰러지는 

복면인이 보였다. 

"도대체 왜 나만 노리는 거야!" 

화가 나서 데린이 오리처럼 꽥하고 소리질렀다. 그 순간, 아리에는 잠시 복면인들이 빙그레 웃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네가 젤 약하잖아.' 

"데린, 네가 젤 약해빠져서 그래." 

파마리나는 데린의 가슴에 침 튀기는 못을 박으며 나무를 축으로 휙 돌았다.  그녀의 남겨진 그림자에 단도들이 후

두둑하고 와서 박혔다. 

'갑자기 공격을 해오다니‥. 이유가 뭐지?' 

블리세미트는 데린을 붙잡고 땅바닥을 굴러 복면인의 검을 피하면서 내심  의문을 던졌다. 자신들이 수상하기는 했

지만 이토록 다짜고짜 공격을 할 이유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옷이 참 더러워 지겠는 걸! 젠티아님을 만난다고 데린님, 꽤나 단장을 하셨더만‥. 헛!' 

보통 방심은 실수를 부른다고 한다. 그 말은 틀린 게  아니지만 방심의 댓가인 실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문제는 

목숨이 될지도 모르는 실수의 댓가였다. 

땅을 구르고 나자 앞뒤에서 복면인들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방심하지 않았다면 모를 리가 없었다. 옷이 

더러워지더라도 한 번 더 구를 걸 하는 후회와 함께 두 개의 검이 내려치고 옆을 갈라왔다. 

"약간 다치더라도 참아주세요, 데린님." 

허락은 별로 듣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발로 데린을 걷어찬 블리세미트는 신성력을 양팔에 집중했다. 안개처럼 흰색

의 기운이 팔뚝에서 피어올랐다. 

방어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보편적인 것 중에는 공격을 하나하나 막으려고 하는 것과 공격을 사전에  공격이 

아니도록 만드는 것이 있다. 제대로 배운 무투가라면 두 방법을 한꺼번에 사용하도록 교육받는다. 그래야  효율성이 

높고 일대 다수와의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블리세미트는 제.대.로. 교육받은 대로 뒤의 공격을 피하면서 앞의 복면인을 향해 다이빙하듯 몸을 날렸다. 

'공격은 타이밍이다! 방어도 타이밍이다!' 

예상을 벗어난 움직임은 타이밍을 지배할 수  있게 만든다. 블리세미트는 두 팔을 교차시켜  그대로 내리치고 있는 

검에 밀어붙였다. 

촥! 

피가 튀었다. 하지만 팔이 잘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타이밍을  제외하고서라도 마지막 '사막의 신부'가 발휘한 

성투결계는 만만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블리세미트가 불만스러워할 정도로‥. 

'성투결계를 잘랐어‥. 이 사람들은 대체 누구지?' 

이제 겨우 두 세명을 쓰러뜨렸을 뿐 아직도 몇 명이나 남아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천천히 일행은 한 곳으로 몰리

고 있었다. 아리에가 위기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 데린은 다른 세 사람의 가운데 껴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였다. 

"흐아아악!" 

"윽!" 

‥‥ 

"으억!" 

짧은 간격을 두고 들려오는 소리. 당하는 상대가 약간의 반항을 하는지 시끄러운 인기척이 잠시 있었다. 하지만 그

것도 찰나. 

"큭! 으‥." 

곧 비명과 신음이 뒤를 이었다. 블리세미트는 갑자기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아군에 더욱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

리 여자고, 자신이 어리기는 하지만 아리에는 단검의 명수고, 자신은  성투결계까지 익힌 성직자, 게다가 희대의 마

법사인 마녀까지 있었다. 그런 자신들을 위기로 몰아넣던 복면인들을 1분 정도의 시간에 10 명 이상 죽여버렸다. 적

인지 아군인지 확실하지 않으니 공포심이 마음을 채우는 게 당연했다. 

"앗!" 

아리에는 뭔가를 발견한 듯 탄성을 질렀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치듯 지나가는 은색의 실타래.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 

"크아아아악!" 

"시즈!?" 

그녀는 달려갔다. 옆에서 단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머리 속에는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은색의 물결만

이 가득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은발 사이로 보이는 투명한 눈동자. 그는 천천히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 

"여자!?" 

함께 달려가던 사람들은 죄다 굳어버렸다. 천상에서 내려온 듯한 모습의 소녀.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에가  기대했던 

시즈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런 그들의 반응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저, 저기‥." 

목소리도 영낙없는 소녀의 목소리. 그것도 뼈까지 녹을 듯한 나긋나긋함이 솔솔 풍겼다. 헤∼하고 벌어지는  블리세

미트의 입. 파마리나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조용히 무리하고 있는 소년의 턱을 닫아주었다. 

"주‥ 죽어라." 

모두가 돌이 되어버린 그 자리. 아직 살아있는 복면인이 침묵을 깼다. 석궁은 어느 새 은발의 소녀를 노려보고 있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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