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200)

                         40 악장 내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시를 쓴 다면‥. (11)

"이상하군. 분명히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는 자리에 뒤늦게 나타난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

는 그에게 뒤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다가온 동료가 말했다. 

"착각이라니까." 

"‥그런가? 그런데 여기 담당은 어디갔지?" 

"볼 일이라도 해결하러 갔겠지. 자네가 너무 신경을 곤두세웠어. 어서 가서 모닥불이나 쬐자고. 요즘 날씨는 낮에는 

더워도 밤에는 으스스하다니까. 이런 곳에서 감기라도 걸렸다가는 전장에서 화살받이로 이용될 게 뻔해." 

"흠‥." 

사내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면서도 화살받이라는 말에 혹시나 걸릴지 모를 감기를 모닥불로 쫓아야겠

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동료의 말을 따랐다. 

그들의 인기척이 멀리 사라지자 옆의 천막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높고 낮은 목소리가 뒤엉키더니 퍽!

하는 타격음과 함께 젠티아가 굴러 나왔다. 

"윽! 무, 무슨 짓이야?" 

"달라붙지마. 징그러워." 

"징그러운 것은 너라고. 그 얼굴에 남자라니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 

꿈틀. 

넬피엘의 뚜렷한 눈썹이 한순간 지렁이처러 꿈틀거렸다. 그에게서 생명위험의 징조를 발견한 젠티아는 얼른 시즈의 

뒤로 붙었다. '불꽃의 춤을 추는 이'가 '바람의 노래를 부르는 이'에게 약한 것은 당연지사. 그의 예상대로 분을 억

지로 삯인 넬피엘은 자신과 시즈에게 경량화 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천천히 등을 돌리는 소년. 소외당한 젠티아가 

황급히 물었다. 

"자, 잠깐! 나는!?" 

"능력껏!" 

쉬익! 

어둠 속에서는 시야에 잡히지도 않을 빠르기로 넬피엘은 움직였다. 시즈도 엘릭사의 생명력을 기본 삼아 처지지 않

고 뒤를 따랐다. 넬피엘이 시전한 경량화 마법은 예전 보를레스와의 대련에서 그가  사용했던 것과 비교해 몸에 부

담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헉! 헉! 같이 가!" 

몸의 능력만으로 마법까지 걸고 있는 두 사람의 뒤에 바짝 붙어있는 젠티아. 왜 그가 대륙 제일의 기사라고 불리는

지 시즈는 실감했다. 

"여기다." 

순식간이었다. 낮에 보았던 로바메트의 막사에 도착한 것은. 

"헥헥! 날 죽여라." 

핏발까지 돋은 젠티아의 눈빛을 가볍게 외면하며 넬피엘은 시즈에게 말했다. 

"너무 쉽군. 녀석들도 없어." 

끄덕. 이제는 옛 친구들을 만남으로 해서 많이 없어졌지만 시즈의 끄덕이는 버릇은 여전했다. 투명한 눈동자가 어둠 

속에 달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다. 이름높은 학자이기도 했던 그의 뇌도 일국(一國)의 수장(首將)에 대한 호위가 

너무 허술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녀석들은 이 진영 안에 없다." 

무슨 소리냐는 듯 넬피엘이 젠티아를 돌아보았다. 어느 새 숨을 안정시켰는지 진지한 얼굴로 돌아온 '값싼  남작'은 

땅을 발로 차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바스티너 같은 이질적인 기척은 멀리서도 알 수 있지. 하지만 느낄 수 없어." 

"기척을 숨길 줄 아는 게 아닐까요?" 

"글쎄. 나무 위에라도 올라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땅을 밞고 있는 한 적어도 내게서 벗어날 수는  없어. 자연은 이질

적인 것에 민감하지." 

"그렇다면 지금 막사 안에 있는 사람이 로바메트가 확실한가?"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 그와 비슷한 몸체를 가진 사람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 이 곳의  병사들 중에도 얼마든

지 있겠지." 

"그렇다면 넌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군." 

"어이어이! 어떻게 말이 그렇게 해석되지?"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넬피엘은  젠티아를 시야에서 지워버렸다. 그가 무슨 말을 물을지  이미 알고 있는 

시즈는 대답했다. 

"숨소리는 자고 있는 자가 분명해요. 매우 고르고 얕습니다. 숙련된 무투가나 기사가 숨을 죽인다고 해도 이토록 자

연스럽기는 힘듭니다." 

"그렇군. 어쨌든 확인해야 한다. 저 앞의 경비는 귀찮을지 모르니 내가 죽인다. 그 사이 들어가라. 빠르게." 

"제가 하지요. 소리가 나면 곤란하니까요." 

"할 수 있겠나?" 

시즈는 피식 웃었다. 용병일을 하면서 사람을 한 두 번 죽인 게 아니었다. 살인기술의 종류만 따질 때 넬피엘은 그

를 따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허리를 찌를 것 같이 기다란 예도는 믿음직한 동반자였다. 

스륵! 신호는 필요없었다. 시즈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젠티아와 넬피엘의 모습도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바람이여‥. 길을 비키라. 나의 의지가 나아갈 길을‥.' 

"핫!" 

막사의 입구에 서있던 두 경비병은 시즈가 내는 작은 기합성을 들었다. 그러나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해도 몸이 마음대로 따르지 않았다. 

'어라! 저 친구의 팔에 난 흉터는 나와 똑같군.' 

동류의식을 느낀 사람에게 말도 한 번 걸어보지 못하고 피식 미소지으며 그는  죽어갔다. 사내의 몸은 목이 떨어져

나간 후로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쓰러졌다. 옆의 경비병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한 번에 목이 잘렸으니까. 

"후우‥." 

시즈는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검이 지나갈 공간을 바람의 의지로  하여금 진공상태로 만들었다. 진공상태에서 물질

의 에너지는 저항없이 100%를 발휘하게 되고 시즈의 검은 강철도 가볍게 벨  수 있는 빠르기를 가지게 된다. 막을 

수 없는 절대의 검술이었다. 

이와 같은 무서운 힘이 시즈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일을 빨리 끝내는 게 중요했으므로 내색하지 않고 막사로 파고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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