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200)

                         40 악장 내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시를 쓴 다면‥. (13)

넬피엘은 곤란함을 느꼈다. 시즈의 도움으로 막사 안에서 탈출하기는 했는데 어떻게 로바메트를 찾는단 말인가.  능

구렁이 같은 로바메트는 음유술사들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함정을 만들어 둔 게  틀림없었다. 그는 벌써 이 곳

을 벗어났겠지. 

"넬피엘, 따라와." 

"어디로 가는 거야?" 

젠티아는 대답도 없이 움직였다. 그는 부대의 참모가 쉬는 막사를 찾아 다짜고짜 들어갔다. 

"허억! 당신 누구야?" 

대답이 없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 다만 여러 가지 구타음이 터졌고 가끔씩 관절기도 쓰는지 뼛소리도 요란했다. 그

런 와중에도 입은 막았는지 신음 소리는 크지 않았다. 

잠시 후 손을 툭툭 털고 나온 젠티아를 보며 넬피엘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화풀이냐?" 

"난 엄연하게 고문을 한 거야. 그리고 로바메트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냈지.  그는 수도로 향했어. 이런 건 군사일에 

통달한 내게 맞기라고!" 

"고문!?" 

"대답하기 싫어진다." 

"전장을 그대로 놔두고 자신만 몸을 피했다?" 

"현재 중앙군을 지탱하는 사람은 오직 로바메트 뿐이야. 조심하는 게 당연하지." 

"네 말이 맞다면 그는 지금 피난 준비를 하고 있을 거다." 

데린과의 약속 장소로 달려가던 젠티아의 다리가 우뚝 섰다. 그리고 서슬 푸르게 뒤로 돌아서며 고함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피난 준비를 한다고!? 로바메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지금 그는 네가 생각했던 사람과 다르지 않나. 암시 때문에  로바메트가 정상이 아님은 네가 더 잘 알 거다.  그는 

군량이 부족한 북부, 반란군에 비해 식량이 풍부한 남부를 차지하고 있어. 처음부터 항복했다면 몰라도 이미 전쟁은 

시작됐다. 시간을 끈다. 그게 로바메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다." 

젠티아는 다급해졌다. 모르면 모르되 소멸의 불꽃과 함께 전승된 '불꽃의 춤을 추는 이'의 지식은 학자로서의  시즈 

세이서스에 떨어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그가 아무리 넬피엘의 생각이 틀리기를 바래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실베니아는 그 피해를 회복하는데 향후 10년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그 동안에 용병국에서 기회를 

틈나 공격한다면 저항은 무모한 선택일 뿐이다. 어서 막아야 돼." 

후두둑! 

노르벨이 한 번 팔을 털자 암기가 마구 쏟아졌다. 사람의 몸에 그토록 많은  암기가 들어갈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

이었다. 

"내가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군. 보통 때라면 벌써 죽여버렸을 텐데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암습했다면‥." 

"전 피할 수 없겠죠." 

시즈가 순순히 인정하자 노르벨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하하하하하! 사람 한 번 좋군. 흐흐! 그럼 아까의 흥분되었던 대결을 다시 이어볼까?" 

"‥‥." 

우웅! 투기에 공명하듯 검집이 울며 예도가 빠져나왔다. 그러나 검은 얼마가지 못하고  막혔다. 노르벨의 브로드 소

드는 그리 길지는 않지만 검신이 넓어서 예도의 강한 공격을 견뎌낼 수 있었다. 더욱이 노르벨의 빠른 대응으로 끝

까지 시즈의 공격이 펼쳐지지 않은 영향도 있었다. 

"너무 공격이 정형화되어 있어. 맨날 같은 공격을 하나?" 

"후우‥." 

시즈는 숨을 길게 내뿜었다. 이렇게 실력 차가 분명한 상대를 맞이해서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둘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오직 상대의 눈과 검을 주시했다. 

시즈는 오른손잡이였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두르는 검이 훨씬  빠르고 강했다. 노르벨은 곰의 앞발이 후려치는 

듯한 충격에 몇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시즈의 발움직임은 그런 노르벨을 금새 따라잡았고 예도의 사정

거리 이상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핏기가 노르벨의 안색에서 사라졌다. 

"이, 이 노오오옴!" 

위기에 몰리자 살기가 피부로 느껴질 만큼 강해졌다. 노르벨은 방심했던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공격이라도 놓치면 그는 황천행 지팡이에 올라야 했기에 필사적이었다. 

한 편 시즈는 점점 신중해졌다. 노르벨은 빨랐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와 몸의 움직임을 떼어놓고 살펴본다면 시즈는 

어느 것 하나 그를 따르지 못했다. 그러나 전투는 변수의 오차를 줄이는 싸움이다. 시즈의 힘이 폭발적으로 발휘되

는 해동도예는 노르벨의 다음 움직임을 봉쇄하고도 남는 파괴력이 있었다. 상대가 자세를 가다듬을 동안에 이미 시

즈는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때문에 현재 노르벨의 속도는 본실력의 절반 정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필사적인 

노르벨의 방어는 조금씩 반격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열세에서 벗어나기에는 부족했다. 

'즐겁다?' 

시즈는 갑자기 솟아오른 감정에 내심 당황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그의 몸에서는 주륵주륵 땀이 흘러내렸다. 에릭

사를 복용한 이후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물론 노르벨은 강했다. 절대적인 열세에서도 가끔씩 허를 찌르는 공격을 해오는 그에게 방심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이상하군. 몸이 상쾌하다. 그리고 이 긴장‥ 신중함이 즐겁다?' 

춤이라도 추듯 시즈의 자세가 하늘거렸다. 스르르 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느리게 느껴지는 시즈의 움직임은 뚜

렷한 잔영을 남기고 노르벨에게 파고들었다. 

"크윽!" 

이번 공격은 비천세. 검끝이 머리 중앙에서 하늘로 향하고 검을 내리치는 일격필살의 자세다. 그러나 그만큼 허점도 

많았다. 보통 일격필살의 자세들은 공격의 방향이 고정되어버린다는 허점이 있었던 것이다. 

'기,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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