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200)

                         40 악장 내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시를 쓴 다면‥. (14)

노르벨의 생각은 그가 옆으로 재빠르게 피함으로 1차는 성공했지만 그 후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놀랍게도 시즈는 

비천세의 자세 그대로 옆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어, 어떻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검이 휘둘러졌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노르벨은 미간에 차갑게 식히는 검풍을 느꼈다. 

"크아아아아아아앗!" 

푸욱! 

‥‥. 

시즈는 바닥에 대(大)자로 뻗어버린 노르벨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지었다. 그의 검에 맺혀있던 붉디붉은 핏물이 또륵

하고 떨어져 내렸다. 흘러내리는 양이 많아졌지만 시즈는 검을 털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정지해있었다. 

"암기는 없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검에 흐르는 것은 시즈의 선혈이었다. 어깨에는 깊숙하게 단도가 박혀있었는데 그는 망설이지 않고 뽑았다. 촤아악! 

피가 왈칵왈칵 넘치며 바닥을 적셨다. 

"난 원래 무기가 두 개야. 적어도 던지지는 않았잖아." 

노르벨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멀리 떨어진 브로드 소드가 두 조각이 나있었다. 검이 잘리는 순간을 틈나 시즈의 

어깨에 단도를 박지 않았다면 자신도 양단되어 버렸을 것이다. 양심이 찔리긴 했다. 아주 약.간. 

"어쨌거나 그런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군." 

"감춘 게 아닙니다. 어쩌다가 보니까 나온 거지‥." 

단도로 시즈의 공격을 무마시키긴 했지만 노르벨도 무사하진 못했다. 부러진 브로드 소드의 조각은 그의 이마에 긴 

칼자국을 남겼고 시즈는 왼쪽 팔에 단도가 박혀도 포기하지 않고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땅에 부딪힐 때 중심을 제

대로 잡지 못하고 머리부터 부딪혔다. 눈앞이 팽글팽글 도는 것을 노르벨은 간신히 견디고 일어선 것이다. 

"이대로는 둘 다 힘들 것 같군. 승부는 다음 번으로 미루기로 하지." 

비틀비틀 주정뱅이 걸음으로 사라지는 노르벨. 과연 이번에는 살아서 다시 시즈의 앞에 나타날 수 있을지 의문시되

는 모습이었다. 

"허억!" 

그가 사라지자 털썩하고 주저 앉은 시즈. 그 역시 출혈과다로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단도를 뽑은 것은 과시용이

었다. 아무리 생명력이 무한하다지만 그것도 피가 없으면 소용없는  것. 쓰러지는 시즈의 손가락은 한 가닥 바람을 

쏘아보냈다. 

"네? 없었다고요?" 

"그래. 실패야. 공작이 이렇게 치사하게!" 

"치사한 게 아니라 당연한 행동이다." 

넬피엘의 한 마디에 젠티아는 입을 삐죽거리며 데린에게 안겼다. 귀엽다는 듯 데린이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곧 

헤∼하고 웃어버리는 '값싼 남작'. 파마리나는 중얼거렸다. 

"정말 값.싼. 남작이로군.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거죠?" 

"수도로 갈 수밖에. 로바메트의 뜻대로 이루어지면 실베니아는 무너진다." 

구름은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은 멈추지 않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시즈가 오는 대로 다시 출발한다." 

"시즈는 무사할까요?" 

아리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빙그레하고 넬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바람의 음유술사다. 당대 최고의 마법사라고 할 수 있지." 

"그는 마법을 쓰지 못해요." 

"뭣!?" 

"그게 정말인가?" 

젠티아와 시즈는 경악했다. 그렇다면 그가 일으켰던 바람은 무엇이란 말인가? 울상이 되어 아리에는 말을 이었다. 

"그는 왼팔을 다친 후 에릭사에서 얻은 생명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그 힘은 마나에 의존하는데 마법을 사용하느

라 마나를 움직이게 되면 왼팔을 다시 사용할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 

"넬피엘!" 

"모두 날 잡고 서라!" 

다급하게 이어지는 넬피엘의 텔레포트 주문. 그 후 시즈의 구원 요청이 담긴 바람을 느낀 것은 아리에들이 그를 찾

은 지 30여 분이 지난 후였다. 

"이런, 이런‥. 완전히 걸레가 되어버렸군." 

사내는 바닥에 널부러진 청년을 발로 툭툭 걷어찼다. 아직 변사체 신세가 될 생각은 없는지 청년이 꿈틀댔다. 

"여전히 생명력 하나는 바퀴벌레 뺨친다니까. 어이! 노리스, 이 놈 살아있는데?" 

"그냥 죽여버려. 기껏 다 죽어 가는 거 살려놓으니까 혼자 싸우다가 또 반죽음이 되어서 오다니."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아스틴의 '그'가 이 녀석을 아낀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할 수 없군. 빚진 것도 있으니까." 

츠바틴이 지혈을 한 노르벨의 머리를 노리스는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한  방 두들겼다. '기껏 지혈한 거 다시 솟게 

만들래?'라는 핀잔에 얌전히 노르벨을 짊어진 그는 물었다. 

"음유술사들은 역시 수도로 향하겠지?" 

"로바메트에게 한 가지 수단 밖에 없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그들이야. 물론 그걸 우리도 알기에 그들이 대응할 방법 

또한 하나 뿐이라는 걸 알고 있지." 

"시즈가 골탕을 좀 먹겠는 걸!?" 

"이런! 이런! 시즈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마음 약해지니까." 

그들의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노르벨이 천천히 눈을 떴다. 

"으음‥. 노리스? 여기는 어딥니까?" 

"츠바틴, 노르벨이 일어났는데?" 

"다시 재워." 

퍽! '두, 두고 봅시다.'라고 중얼거리며 노르벨은 다시 정신의 끈을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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