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134/200)

                                            41악장 4화


멜첼은 사람을 비웃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아직 검술을 완성하지 못했으니까.'라는 걱정에 휩싸여 있던 보를레스가 단숨에 불타오를 정도로. 

"우선은 그 걸음부터 고쳐야겠어." 

멜첼은 보를레스의 걸음걸이가 기사의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는 빠르지만 무게감있게 발을 놀린다. 하지만 그가  정

찰 및 적군 포획에 있어서 '도둑발'을 추천했다. 

"빠르고 가볍게. 발이 땅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시키고 움직여야 해요" 

그는 잠시 후 교대했는데 상대는 거리 춤꾼이었다. 보를레스와 동갑내기라는 그는 손뼉을 짝짝 치며 리듬을 돋궜다. 

"짝! 짝! 짜자작! 더 빠르게 경쾌하게!" 

탭댄스를 춘다는 그의 발에 움직임을 맞추려고 보를레스는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아직도 힘에 묶여있

었다. 마치 고릴라가 침팬지 흉내를 내는 듯 했다.  미세하지만 탄력있게 튀고 있는 탭댄스의 빠르기를 따라가려면 

한동안 노력해야할 것 같았다. 

"할 수 있겠지?" 

"충분합니다." 

"할 수 없다면 그만 두게." 

'병 주고 약 주기는‥.' 

다음 날, 마크렌서 자작의 자상하고 배려 깊은 말에 보를레스는 내심 투덜거렸다. 아직 검술의 요체도  파악하지 못

한 상태에서 적진에 잠입을 명령한 최종 결정자가 틀림없이 마크렌서 자작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이며 춤을 춘 덕에 그의  다리는 아직도 후들거렸다. 물끄러미 부들거리는 그

의 다리로 향하는 마크렌서의 시선. 보를레스는 이를 악물고 다리의 경련을 멈췄다. 토클레우스 마크렌서는 순간 이

채를 띠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손짓했다. 

"그럼 가보게, 보를레스. 건투를 비네." 

"예." 

찰칵. 터벅터벅터벅‥. 

"멜첼, 어떤가?" 

"위험하지는 않겠지?" 

"하하하! 적진이 위험하지 않을 리가 없잖습니까." 

"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어렵게 말한 것도 아닌데‥."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비꼬지 말아주십시오. 각하의 날카로운 혀는 정말이지 감당하기 힘듭니다." 

"칭찬으로 들어두겠네. 보고나 하게." 

"보를레스의 성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멜첼은 싱글벙글 웃었다. 잔혹한 깐깐함이 표현될 정도로 무표정한 그가  이토록 실없이 웃는다는 것은 주목할만했

다. 이미 그동안의 보고를 통해서 보를레스가 상상을 초월하며 빨리 성장하고 있다고 들어온 마크렌서는 마음을 놓

았다. 

"만약 그가 방어를 읽는 힘만 갖는다면‥. 아마 전 그에게 5분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지금은 갖추지 못한 모양이군. 그렇다면 아직 이번 임무는 위험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어요. 오늘부터는 군사들의 간단한 진형 훈련으로 다들 바쁘지 않습니까. 연습 상대로 적군보다 좋은 것

은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따라갈 테니까 너무 염려 마십시오." 

"흐음‥ 그렇게 해주게. 재능 있는 인재를 쉽게 잃을 수야 없지. 아! 근데 말이야‥." 

"예?" 

"자네, 젠티아 님한테도 5분은 견디지 않나?" 

"3분입니다." 

마크렌서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멜첼이 '싱겁게'하고 중얼거리며 피식 웃고 나가자 그는 순식간에 심각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나도 3분 정도인데‥. 멜첼 녀석 언제 그렇게 실력이 늘어버린 거야? 나도 노력해야 겠는 걸‥." 


그로부터 다섯 시간 후 보를레스는 수풀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기어다닌다고는 해도 땅에 닿아있는 것은 발

끝과 손 뿐. 옆에 함께 있는 멜첼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네 발 짐승이라고 해도 믿어질만큼 신속하고 소리없이 움직

였다. 

"여기서부터는 위험지역이다. 들키지 않게 조심해." 

"그러니까 적군 한 명만 잡아오면 되는 거요?" 

"그래. 일단은‥." 

보를레스는 멜첼의 마지막 한 마디, '일단은‥.'이라는 단어와 함께 말이 흐려지는 게 왠지  불안했다. 하지만 '일단

은' 지시대로 움직였다. 

하루만에 배워서인지 몰라도 '도둑발'은 검술보다 익히기 어려웠다. 아직도 완전하지는 않아서 빨리 이동하면 기척

이 적군에게 잡힐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그는 주의를 세밀히 살피며 조심조심 움직였다. 

'식사 배급 시간인가 보군‥.' 

보를레스는 풀숲에 숨어서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식사 배급시간이라면 분명히 곧 휴식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적어

도 용병 일을 하면서 몇 번 전쟁에 참가했을 때 비슷한 종류의 일은 몇 번 맡았기 때문에 식사 후 병사들이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때는 기척이 없으면서도 빠른 시즈가 함께였지만‥. 

'누구를 잡아갈까?' 

보를레스는 고민했다. 카로안군의 식사 소리가 들려오자 그의 내장도 조금씩 요동을 쳤다. 

'크으‥ 잘못하면 들키겠군.' 

시간이 좀 걸리리라 생각한 그는 아예 배를 깔고 누웠다.  기회는 일찍 왔다. 많이 먹은 탓인지 아니면 타국이라서 

소화가 안 되는지 복부를 움켜쥐고 숲으로 뛰어들어가는 병사가 있었던  것이다. 보를레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은 습격을 당하게 되면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보를레스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혼자서 도망

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태를 미연(未然)에 방지하기 위해 그는 병사의  숨소리도 들릴만큼 접근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크윽‥! 냄새 한 번 엄청나군." 

소화가 안 된 배설물은 냄새가 정말 심하다.  제대로 숙성된 것의 고아한 냄새가 그리워졌다. 병사의  배는 부드득! 

부드득! 하는, 도저히 인간의 배설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고함을 지르며 위로 먹었던 것을 죄다 토해냈다. 

"휴우‥." 

저 얼마나 행복에 겨운 음성인가. 아마도 병사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단, 뒤에서 보를레스가 

코를 막고 째려보는 것을 알지 못할 게 지옥의 귀환을 예고하고 있었다. 

퍽! 퍽퍽! 팍팍팍! 

우선 한 사람이 카로안 군의 진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보를레스의 임무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매일 카로안에서는 한 명씩 병사들이 자취를 감췄다. 병사들 사

이에서는 카로안군을 잡아가는 귀신이 있다고 했고 2m 정도 되는 괴물이 실종된 병사들을 잡아먹고  있는 것을 보

았다는 목격자도 나타났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카로안 군은 밤을  무서워하기 시작했고 진영을 이탈하는 사람들

이 생겨났다. 이쯤 되자 지휘관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울분에 찬 어조로 자크 왕이 호통을 쳤다. 하지만 지휘관들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소문으로 나도는 존재

를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하자 자크 왕은 한층 노성(怒聲)을 높였다. 

"이렇게 되다가는 싸우기도 전에 사기가 물 맞은 불씨처럼 없어질 게 아닌가? 무슨 수를 써보라!" 

"폐하, 진정하십시오."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바르스젠." 

"폐하는 충분히 미남이십니다. 진정하시리라 믿습니다." 

이 젊은 재상은 사람 다루는 법을 잘 알았다. 그가 웃으며 농담하듯 말하자 자크 왕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자

신이 기사들 앞에서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안하네. 너무 흥분했군. 하지만 자네들도 현재의 사태를 알고 있겠지?" 

"예!" 

자크 왕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왕이었기에 광폭한 면을 가지고서도 신하들의 신임을 얻는 것이다. 그의 사과에 

지휘관들은 웃음을 참으며 크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자크왕은 얼굴에는 흉터가 가득했고 그 동안 받은 스트레

스로 주름살이 나이에 비해 많아 절대 미남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기사들이 보기에는 매력적인 카리스마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이 흉터의 카리스마든 내면에서 우러러 나오는 본연의 카리스마든 간에 자크 왕에게 사람

들은 끌렸다. 

"우선은 경비를 강화하도록. 용변을 볼 때는 몰려가도록 하고, 밤에는 경비를 세 배로 늘려라." 

"폐하, 경비를 모두 늘릴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바스트젠." 

"경비를 강화한다면 소문의 괴물이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침체된 사기를 되돌리기는 힘듭니다. 게다가 

그로 인한 피로도 또한 대단합니다. 함정을 놔서 소문의 괴물을 잡아야 합니다." 

"재상의 말은 한 군대만 경비를 허술하게 해야 한다는 말 이렸다?" 

"한 군대 밖에 없다면 의심하고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두 세 군대는 둬야겠군." 

"역시 영민하십니다." 

과장 섞인 칭찬에 자크는 껄껄 웃었다. 바스트젠은 젊은 재상답지 않게  능숙했다. 심지어는 아부까지 말이다. 기분

이 좋아진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장소의 결정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경비를 소홀히  한다면 그 말은 인원은 적어도 실력이  있는 배치해야 할 터인

데‥ 킬튼!" 

"예! 폐하." 

"이시므!" 

"예! 폐하, 하명하십시오." 

"자네들이 수고해줘야겠어. 재상, 내 시위들을 빌려주지. 계획이 성공하길 빌겠네." 

용병왕의 시위들은 일당백의 용사들이었다. 개인적인 전투에 있어서는 기사들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들이었

기에 재상은 용병왕의 처사에 감사하고 바닥에 엎드려 절했다. 자크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을 쉬쉬 흔들며 막사를 

나갔다. 

"자아‥ 그럼 우리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해봅시다." 

카로안 군 지휘부의 심상찮은 움직임. 이것을 글로디프리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들이 이빨을 들

어내고 입을 벌리고 있는 줄 모르고 '손님'은 식사 배급시간에 어김없이 동쪽 수풀에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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