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8/200)

                                            41악장 8화

"카로안 군의 발이 묶여있다고요?" 

지금쯤 격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보를레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난 번의 자네가 카로안의 병사들을 포획했던 행동이 그들의 사기 저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 그래서 

자네를 잡으려고 함정까지 파두었는데 그 또한 실패했으니‥."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의 수는 글로디프리아의 군사에 비하면 까마득하게 많지 않습니까?" 

보를레스도 물론 사기(士氣)가 전쟁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카로안 군의 

숫자는 충분히 모자른 사기의 차이를 채우고도 남는다고 생각했다. 

마크렌서 자작이 지도를 펼치고 말했다. 

"글로디프리아는 지금까지 수많은 카로안군의 공격을 막아냈어.  대부분이 군사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했지.  이 

거대한 성벽을 보게. 보통 성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이, 삼 만 명의 군사가 필요하다고 하지. 그러나 글로디프리아의 

성벽을 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의 배인 육 만도 모자를 걸세. 하물며  뒤는 절벽이요, 앞은 골짜기지. 아무리 용병

왕이 뛰어나고 대군(大軍)이라고 해도 함부로 올 수는 없어." 

"그렇다면 이쪽에서 공격하는 게 격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할거야." 

학사의(學士衣)의 피브드닌이 발코니로 걸어나갔다. 그에 따라 보를레스와 토클레우스도 걸음을 발코니로 움직였다. 

"하지만 드로안 남작이 없다는 소문이 확인되면 카로안 군의 사기는 용기로 돌변할 거야. 그렇게 될 시에는 승부를 

장담할 수 없어. 곧 실베니아의 내란(內亂) 소용돌이에 휘말릴 글로디프리아야. 될 수 있는 한 피해를 줄여야 해." 

"저는 지금 남작님께 얼마나 근접한 겁니까?" 

"자네가 지금보다 세 배 이상은 강해져야 할거야." 

이시므를 꺽은 후 자신감이 생긴 보를레스. 그는 마크렌서 자작의 말에 순식간에 어깨가 축 쳐져버렸다. 솔직히 단

시일에 키울 수 있는 실력으로는 지금의 성과도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아무리 호승심을 자극한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좌절하는 보를레스와는 달리 피브드닌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글로디프리아의  기사들은 젠티아 드로안을 우상화하

고 있다. 그래서 말의 반 정도는 과장이라고 판단했다. 만약 그게 아니라 마크렌서 자작의 말이  사실이라면 누가 '

값싼 남작'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남작님과 함께 대륙 3대 검사라고 칭해지는 용병왕도 마찬가지로  강할 것이 아닌가. 지금의 보를레스로

는 이길 수 없어." 

"방법이 있습니다. 토루반님께 부탁을 해놓았죠. 지금쯤 완성이 되었을 겁니다. 보러 가실까요?" 

땅! 땅! 금속을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는 대장간,  마크렌서는 용광로의 화광(火光)만으로도 뜨거워 들어

가지도 못하고 소리쳤다. 

"토루반 님! 토클레우스입니다. 부탁드린 게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알고 싶어 왔습니다." 

"흠흠, 왔는가?" 

대장간 안에서 걸어나온 사람은 토루반이 아니라, 노마법사 마나이츠였다. 평소에 입고 다니던 법의는 어디로  갔는

지 그는 아예 윗통을 벗어 갈비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목에 걸고 있던 수건을 거대한 대야에 받아두었던 찬물에 적

혀 몸을 문지른 그는 대장간 앞에 마련된 테이블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자네가 부탁한 것은 오늘 아침에 모두 끝냈네. 그런데 금속이 조금 남아서 검을 만들고 있어." 

"금속이 남다니 이상하군요. 남작님의 갑옷을 녹여서 똑같은 갑옷을 만드는 게 아닙니까?" 

마크렌서가 말한 '방법'이 밝혀졌다. 보를레스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작님이 말씀하신 방법이 갑옷이었습니까? 용병왕의 검 앞에서 갑옷이 효과가 있을까요?" 

"걱정말게. 보통 갑옷이라면 마법사인 내가 왜 여기 있겠는가. 벌써 마법사들과 주문 해독이나 하고 있지‥." 

"마법 갑옷입니까?" 

뒤에서 잠자코 있던 피브드닌이 물었다. 신의  장인이라는 드워프와 8 클래스의 마법사가  함께 제조했다면 단순한 

갑옷은 확실히 아닐 것이다. 어떤 갑옷일지 궁금했다. 마법 왕국 아스틴에서는 마법사들이 많은 만큼 그들의 손길이 

닿은 무기나 방어구도 많았지만 대부분이 전투에서는 쓸모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어두운 곳에서 빛

을 내는 야광 검 같은 것. 대륙 제일의 마법사들도 전설의 무기와 같은 무구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마나이츠는 자신감을 감추지 않고 웃었다. 

"그렇지. 적어도 착용자의 능력을 두 배 이상은 증폭시켜줄 거야. 인간이 마법을 끼어넣은 갑옷 중에서는 수위의 것

이라고 할 만하지. 암! 그리고 금속이 남은 이유는 어차피 보를레스는 갑옷의 원래 목적인 방어보다는 상징일 뿐이

지 않나. 게다가 마법의 효과가 금속으로 잘 침투하기 위해서 얇게 했지." 

"무슨 마법을 첨가했길래‥." 

"흐흐흐흐‥. 그건 비밀이야. 입으면 알게 되니까." 

보를레스는 마법의 갑옷이라고 하자 역사의 고리의 바스티너가 떠올랐다. 철컹거리며 거대한 흑색의 검을 휘두르며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갑옷과 자신이 비슷해질까 싶자 섬뜩하고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강해진다는 게 싫지는 않았

다. 

"어어‥ 왔군. 자작, 자네가 부탁한 것은 다 끝냈어. 우리 드워프들에게는 천직이지만 늙어서 하려니 힘들구먼‥." 

"오늘밤에 괜찮은 명주(名酒)를 뜯겠습니다." 

"흐흐흐‥ 그렇다면야 불만 없지. 그리고 보를레스, 금속이 조금 남아서 말이야. 검을 만들어보았네. 쓸만할 거야." 

토루반은 방금 전에 작업이 막 끝나서 아직도 뜨거운 느낌이 남아있는 검을  가져왔다. 바스터드 소드 정도의 길이

지만 두께는 롱소드도 안 되어 보이는, 사람에 빗대어 보자면 마른 남자 같은 검이었다. 

"대단하군요." 

하지만 보를레스는 검에서 힘을 느꼈다. 검의 힘을 좌우하는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그의 검이 돋보

이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날카로움이었다. 그의 감탄에 토루반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가볍지? 하지만 미스릴이 섞여서 그레이트소드와 부딪힌다고 해도 부러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네. 가벼움

과 강도, 우리 드워프는 진정한 투사지. 자네가 수련하는 걸 보고 어떤 무기가 어울릴지는 금새 알았네." 

"고맙습니다. 이 검이라면‥." 

"지금보다 두 배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저기 준비되어 있는 갑옷까지 입는다면 세 배는 장담하지. 어떤가?" 

마크렌서 자작은 하루종일 침이 마르도록 토루반과, 마나이츠를 칭찬했다.  이미 더 나아갈 수 없을 정도의 찬사를 

받는 두 사람이었지만 칭찬은 아무리 들어도 좋은 법. 보를레스가 따르는 술을 입에 들이부었다. 

이제는 젠티아 드로안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가정한 피브드닌은 '이제 무리한 전술은 구상 안 해도 되

겠군.'하고 좋아했고 기사들은 성공해버린 '보를레스 육성 프로젝트.'에  부러움을 표했다. 그러나 멜첼의 '하하, 내 

얼마든지 훈련시켜 주지.'라는 말과 진지한 눈빛에 고개를 마구 흔들어댔다. 

식사가 끝날 무렵, 마크렌서 자작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남작 각하께서 계실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전쟁이 기다려지기는 처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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