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200)

                                            41악장 9화

이윽고 카로안 군이 움직였다. 그들의 거대한 진형이 통째로 이동하는 것을 고산의 위치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피브

드닌이 무거운 침음성을 내뱉었다. 

"대단하군요. 2, 3일 만에 침몰했던 사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다니‥. 과연 용병왕입니다. 무슨 수를 썼을지 궁금하군

요." 

"글쎄‥. 우리가 알 바는  아니지요. 저쪽이 어떻든  간에 우리는 충분히  준비를 끝냈습니다. 임시 남작님도  계시

고‥." 

그렇게 말하며 마크렌서 자작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그러나 피브드닌은 카로안 군의 위세가 자못 마음에 

걸렸다. 

"자작께서 보시기에는 저들의 군세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보고에 따르면 약 육 만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글로디프리아의 병사는 기껏 해봐야 1만 4천인데 괜찮을까요?" 

"이거 전략을 짜주셔야 할 분이 이렇게 자신감이 없으시면 기사들이 어떻게 믿고 싸우겠습니까? 이  정도의 지형과 

우리 군의 용맹이라면 충분합니다. 용병국의 군사들은 개인 전투에서 뛰어날지 모르지만 진형에는 약합니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제대로 된 진형을 갖춘 군사들을 뚫기는 어려울 겁니다. 가장 효과적인 전술만 일러주십시오.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합니다." 

그러자 피브드닌은 고개를 끄덕이고 골짜기와 절벽의  지형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양군의 격돌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때, 보를레스는 오랜만에 입어보는 정규 기사갑옷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오랜만에 입으니 힘든 걸‥." 

"무게는 어떤가?" 

가벼웠다. 보를레스는 갑옷을 입은 채로 폴짝 뛰어보았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몸은 통통 튀는 것 같

았다. 주위의 기사들도 놀랍다는 듯이 '오오!'하고 탄성을 질렀다. 

"굉장히 가벼운데요?" 

"글쎄‥ 건틀릿을 벗어보게." 

보를레스는 토루반의 말대로 건틀릿을 벗었다. 그 모습을 멀찍이 서서 마나이츠가 미소를 짓고 바라보고 있었다. 

"멜첼, 자네가 한 번 들어보지." 

"큭!" 

멜첼은 보를레스가 던진 건틀렛을 받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리고 보를레스한테 고함을 쳤다. 

"이렇게 무거운 것을 세게 던지면 어떻하나? 관절이 상하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다른 기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멜첼도 곧 자신의 말에서 뭔가 이상함을 발견했는지 문제가 되는 건틀릿의 무게

를 다시 감지해보았다. 하지만 다를 바 없이 무거웠다. 의아한 표정으로 멜첼이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마나이츠님께 묻게. 마법을 주입한 건 그 쪽이니까." 

그 말에 기사들의 열망 어린 시선이 마나이츠에게 쏟아졌다. 잠자코  앉아있던 노마법사가 못이기겠다는 듯 일어섰

다. 솔직히 그는 이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할 시간이 아니겠는가. 

"하하핫! 그대들의 지식에 대한 열망이 그토록 뛰어나니 내 알려주지 않을 수가 없군. 건틀렛의 안을 보게." 

멜첼은 갑자기 설명을 듣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돋았으나 그랬다가는 괴팍한 노마법사의 마법에 무사할 리가  없었

다. 안을 살펴본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놀랍다는 듯 말했다. 

"뭔가 이상한 문자들이 잔뜩 있는데 꼭 그림 같습니다. 작은 문자들이 모여서  선을 이루고 다시 뭔가 그림을 이루

고 있는 것 같은데요. 주문입니까?" 

"잘 봤네. 간단하게 말하자면 실제로 무거운 장갑은 건틀렛 뿐이야. 나머지는 자네들이 입고 있는 갑옷에 비해 훨씬 

가볍지. 그리고 갑옷에는 기본적으로 힘을 강하게 하는 것과 몸을 가볍게 하는, 두 종류의 마법이 걸려있네." 

기사들은 호오∼하고 탄성을 질렀지만 마법사들은 아니었다.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던 젊은 마법사  중 한 사람이 

의문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하지만 근력강화의 마법이나, 중량감소의 마법이나 모두 기본적인  클래스의 주문이 아닙니까? 대마법사께서는 아

까 인간이 만든 마법 갑옷 중에서서 수위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2 종류의 2클래스가 내

포된 갑옷은 많지는 않지만 꽤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하‥. 역시 마법사답군. 자네가 묻지 않았다면  정말 이 나라의 젊은 마법사들에게 실망했을  거야. 아까 멜첼이 

보았던 문자와 그림이 바로 해답일세. 혹시 '마나의 길'이라도 들어봤나?" 

질문을 했던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의 길'이라면 왠만한 마법사들은  저(低) 클래스라고해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 말뜻대로 마나가 지나는 길이라는 뜻으로 자연상에는 마나가  균등하게 퍼져있지만 그 중에서도 마나

가 밀집되어 이동하는 길이 있다는 있다. '마나의 길'을 가장 알 수 있는 것은 식물의 성장인데 마법사들은 늦봄부

터 초여름까지 식물이 활발하게 성장할 시기만 되면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이 무기력한 증상을 보이는 것을 보고 그

것을 유추했다. 

그리고 이렇게 예상되는 '마나의 길'을 임시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한 여인이 개발하는데 그녀가 바로 세일피어론아

드 인류 마법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법사 페르미안 유스테리아다. 뛰어난 수학자라도 중간에 헥갈릴 복잡한 수식

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마나의 길'은 그리는데 쏟아 붓는 마력 또한 엄청나서  왠만한 마법사는 도중에 나가떨어져 

버린다. 

"옛날부터 전설의 무기들에는 무기의 힘을 상징하는 보석이 박혀있거나 문자가 새겨져 있지.  '힘의 문자' 또는 '령

(靈)의 문자'라고 하는데 단, 한 문장으로 되어있거나 심할 때는  한 글자로 되어있어 해독하기가 불가능하지. 재미

있는 사실은 이 문자가 바로 마나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지. 난  그래서 그와 비슷한 효과라도 내기 위해서

는 '마나의 길'을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에헴!" 

"그렇다면 이 문자들의 그림이 바로 '마나의 길'입니까?" 

"그렇지. 드워프의 현자이신 토루반님의 도움을 받아서 나는 기사들이 갑옷을 움직이는데 힘이 필요한 부분과 아닌 

부분을 나누었다. 그래서 마나의 길로 하여금 힘이 필요한 부분으로 마나가 이동하도록 만들었지. 관절과, 손 끝, 발 

끝은 마나가 마지막으로 집결되는 부위야. 보를레스 한 번 발가락에 힘을 줘서 땅을 굴러보게." 

보를레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들어 바닥을 힘껏 찼다. 

파앙! 

"우와!" 

움푹 패어버렸다. 마나이츠는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을 이었다. 

"그리고 기사들의 인체 상으로 근육이 많이 있는 부분을 통해서 마나가 흐르게 했지. 사실 착용자 육체가 한계이상

으로 혹사당하는 걸 막기 위해서야. 게다가 중량감소의 주문은 몸에 부담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약하지만 자네들 같

은 기사들에게 있어서 그 정도의 느낌은 전투의 상승세를 타게 해주는데 충분할 거야." 

보를레스는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그러자 부러운 표정을 지으며  멜첼이 다가와서 

그의 갑옷을 툭툭 건드렸다. 다른 기사들도 하나 둘씩 모여서 보를레스(?)를 마구 만져대기 시작했다. 

"그, 그만해! 거긴 만지지마!" 

그 때 적군의 상황을 살피러 갔던 마크렌서 자작과 피브드닌이 돌아왔다. 마크렌서는  한 데 엉켜있는 기사들을 보

고 말했다. 

"저게 뭐하는 거죠?" 

"다, 우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니겠나?" 

토루반의 대답에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를레스가 지르는 비명은 결코 기쁨의 비명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후, 멜첼의 설명을 들은 마크렌서는 입맛을 다셨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내 갑옷도 만들어달라고 할 걸  하고 생

각한 걸까. 어쨌든 그는 수고한 토루반과 마나이츠의 어깨를 두들겼다. 

"대단하십니다." 

"내가 뭐랬나? 세 배는 강해진다니까." 

"보를레스, 그만 일어나게. 적군이 진군하기 시작했어." 

"예?" 

우정 범벅이 된 보를레스는 의외로 힘차게 일어났다. 자신의 몸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벼웠다. 손을 펴고 내

려다보고 있는 그에게 토루반이 소리쳤다. 

"어서 안 오고 뭐하나?" 

"토루반, 이거 정말 굉장한데요?" 

"만족스러운 모양이지? 어서 가서 시험가동하고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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