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악장 10화
"핫!"
챙! 체앵!
"끄아아아아악!"
"비켜라, 비켜!"
"완전히 독무대로군. 남작님 좀 천천히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멜첼의 농담을 뒤로하고 보를레스는 창을 찌르는 병사의 가슴에 한 발 먼저 검을 꽂았다가 번개같이 뽑았다.
촤악―
검을 따라 한 줄기의 붉은 액체가 길게 뿜어져 나왔지만 그는 피하지도 않고 달려드는 장정의 목을 잘랐다.
"네 녀석이 이름 높은 '값싼 남작'이냐? 목을 잘라 그 명예를 내가 이어주겠다."
보를레스가 무차별로 카로안군을 학살(?)해대자 글로디프리아군은 용기 백배하여 상대를 밀어붙였다. 그것을 보다못
한 용병기사-용병국 중앙기사들을 일컬는 이름-하나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보를레스를 나뒹굴게 하
던 바스티너의 흑검보다도 커서 위압감을 가질 만도 했다. 그러나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름이나 말하고 덤벼라."
지금이라면 바스티너도 이길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나의 길'을 따라서 손가락으로 힘이 몰리는 게 느껴
졌다. 맨손으로 돌 깨는 차력사를 하라고 해도 망설이지 않으리라. 한 번에 용병기사의 대검을 향해 9번의 검격을
날렸다.
"윽!"
대검의 용병기사는 두꺼운 검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손이 덜덜하고 떨리며 저렸다. 검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다음을
방어하는 움직임이 느려졌다. 틈을 노리지 않고 보를레스의 검이 사내를 마구 난도질했다.
"으아악!"
"고기를 다지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거람."
옆에서 싸우던 백장의 꽃잎 중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반대편에서는 사람이 누울 수도 있을 정도로 큰 전차의 의자에 앉아있던 용병왕 자크가 뒤로 밀리기 시작한 전세를
가늠하고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저 기사가 누군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에는 드로안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기사가 열심히 날뛰고 있었음으로 바르스젠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젠티아 드로안이 아닙니까?"
자크는 이 때까지 몇 번이나 글로디프리아를 공략한 바가 있기 때문에 '값싼 남작'과는 안면이 꽤 있었다. 헌데 그
가 드로안 가의 갑옷을 입은 기사를 보고 누구냐고 묻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어도 바르스젠의 정보에는 드로
안 가의 사람으로는 젠티아와, 그의 아내 데린 밖에 없었다. 젠티아는 신흥귀족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검의 빠르기는 비슷하지만 남작의 검은 절도가 있으면서도 화려하다. 저것은 거의 막무가내가 아닌가."
"하지만 백 장의 꽃잎들이 그의 손짓에 따라서 진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백 장의 꽃잎은 젠티아 드로안을 주공으로
둔 자들입니다. 실베니아의 국왕이 명령을 내려도 듣지 않습니다."
"흐음‥. 그것도 그렇군."
바르스젠은 국왕을 설득시켜 성급한 판단을 막았지만 그 역시도 혼란스러웠다. 이미 젠티아 드로안이 부재중이라는
정보가 눈앞의 상황과 맞물려 좌충우돌을 일으켰다.
'값싼 남작이 정말로 없어서 다른 대역을 세운 걸까? 아니야, 정말로 남작이 자신이 부재중이라는 거짓정보를 퍼뜨
렸다면 조심성을 기하고 있는 카로안군을 끌어드리기 위해서 가짜를, 아니 가짜인 척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저 정도라니‥ 젠티아 드로안 이외의 저 정도의 실력자가 실베니아에 있었나?"
바르스젠의 상념은 자크의 한 감탄 어린 한 마디로 멈췄다. 앞을 보니 방금 전의 기사가 검을 휘두르자 카로안 군
4인의 어깨에서 동시에 가깝게 피가 솟았다.
"드로안 남작이 연기를 하는 거라면 정말 그는 대단한 자야. 하지만 가짜라면 대륙 3대 검사라는 명칭을 4대 검사
로 고쳐야 할지도 모르겠는 걸."
"백 장의 꽃잎 중에 누군가가 변장을 한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마법사들에게 일러 보라색 망토를 걸친 기사들의 수를 계산하라고 해라."
"‥‥99명입니다."
마법사의 보고에 바르스젠이 탄성을 질렀다.
"앗! 그렇다면 바로 저 기사는 백 장의 꽃 잎 중 누구인가겠군요?"
"안타깝게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저들의 지휘관‥이 보이나? 그가 바로 토클레우스 마크렌서 백 장의 꽃잎 중 첫
번째 잎이지. 저 기사는 백 장의 꽃잎이 아니다."
자크는 심각해졌다. 카로안군은 파죽지세로 갈라지고 있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검을 가져오라. 내가 직접 간다. 백오십 시위 중 오십은 공작을 비롯한 지휘부와 마법사들을 호위하고 나머지는 나
를 따르라!"
기세도 우렁차게 용병왕과 그의 시위들이 전투에 끼어 들자 일방적이던 흐름이 서서히 카로안군으로 역류하기 시작
했다.
"네 이놈, 내가 바로 카로안의 왕, 자크다. 드로안 남작의 흉내를 내는 네 놈은 누구냐?"
"‥‥."
보를레스는 대답은 하지 않고 자크의 시미터를 막았다. 마치 호랑이가 할퀴는 것처럼 검풍이 일어났지만 재빨리 뒤
로 물러서며 손을 위로 들어올렸다. 옆에서 멜첼이 외쳤다.
"퇴각이다!"
"멈춰라. 비겁하게 도망이라니! 네가 용맹한 젠티아 드로안이라면 내 검을 받아라!"
상대가 한 번의 검을 받고 무시를 하듯 등을 돌리자 자크는 분노하여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던졌다. 쇄액하는 소리
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시미터가 쏘아졌다. 날아오는 용병왕의 시미터는 보통 용병시장에서 유통되는 것보다 굵고
길었다. 보를레스는 내심 긴장했지만 겉으로는 담담하게 시미터를 바라보다가 검을 들었다. 토루반이 '제뷔키어'라
고 이름 붙인 검이 반짝인다고 느낀 찰나 차캉! 하는 소리와 함께 금속의 파편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모두가 멍하니 허공에 반짝이는 빛의 향연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 비명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리니 보를레스가 시
미터의 파편을 하나씩 쳐내어 추격하려는 카로안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때문에 병사들은 겁을 먹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보를레스는 산산조각나고 남은 마지막 시미터의 손잡이를 용
병왕에게 휙 하고 던져주었다.
망토를 휘날리며 그가 글로디프리아군의 진영으로 들어가는 순간, 하늘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카로안군의 어깨를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