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8화 (158/200)

                                            43악장 3화

화르륵―! 

"흐아아아악!" 

"마법사, 마법사를 막아!" 

"궁사들은 뭘 하느냐!" 

넬피엘의 불꽃에 달려들지 못하고 근위기사는 궁사들을 재촉했다. 그러자 2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궁수들이 무차별

로 활을 쏴댔다. 

"바람이여‥." 

하지만 시즈의 바람은 화살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에게 한 남자가 껄껄 웃어대며 달려들었다. 

"하핫!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부웅! 

남자의 주먹은 무섭도록 빨랐다. 시즈는 뒤로 피했지만 그의 권에 일어난 바람에 넘어질 뻔했다. 겨우 몸을 추스린 

시즈가 바라보니 사내는 아리에에게 윙크를 하고 있었다. 

"안녕! 그러기에 나랑 사귀자고 했을 때 말을 들었어야지." 

"페스튼‥." 

국왕은 슬슬 일어나서 자리를 떠나려고 하다가 펠리언을 바라보았다. 펠리언이 페스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자가 바로 페스튼입니다. 저와 함께 킬유시  공작을 암살했습니다. 이번에 저 반도들을 퇴치하는데  성공한다면 

그에게도 작위를 주십시오." 

"그러지. 두 번이나 이 나라를 구해주었는데 뭘 못하겠나?" 

일부러 펠리언은 소리를 내서 말하고 있었다. 페스튼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며 진각이 좀전과는 딴판으로 강해졌

다. 

아리에는 근위기사를 맞아서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날렵하다고  해도 정식으로 검을 연마한 근위기

사한테는 상대하기에 있어서 한참 부족했다. 파마리나가 양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아리에에게 소리쳤다. 

"피해!" 

아리에가 드레스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테이블을 구르며 벗어나자 파마리나가 그린 마법의 원에서  불기

둥이 콰륵 쏟아져나왔다. 눈이 없는 불기둥은 진로에 있던 엉뚱한 귀족들까지 새까맣게 태워버렸다. 그러나  마법사

를 그냥 놔두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근위기사들은 교육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기사도고 뭐고 없이 두 

세 명의 기사가 한꺼번에 달려들자 그녀는 당장 앉았던 나무 의자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서 부쉈다. 

"자아‥ 나의 종들아. 저들을 물리쳐다오." 

그리고 주문을 외우자 나무 조각들이 근위기사들의 검과 부딪혔다. 하지만 나무,  얼마 버디지 못했다. 그녀는 젠티

아에게 도움을 청했다. 

"젠티아, 아무 거나 좀 던져봐요." 

"좋아!" 

쐐액! 

"히익!" 

쏨살같이 날아온 창에 파마리나는 비명을 지르며 피했다. 그토록 난폭하게 던지다니 피하지 못했으면 어쩌려고! 그

녀가 주먹을 불끈 쥐고 불만을 토하려는 순간 뒤에서 피가 쏟아졌다. 돌아보니 창에 검을 치켜든 기사의 머리에 꽂

혀있었다. 갑자기 젠티아가 고마워졌다. 

"잉크까지 마련해주다니‥." 

보통 피는 마녀들에게 '생명의 잉크'라고 불려졌다. 파마리나는 병사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창대에 주문을 그렸

다. 그리고 나무조각들 때처럼 외치자 창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근위기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세 개를 더 올리자 그녀는 다른 데 정신을 쓸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한 편, 창을 파마리나한테 던진 젠티아는 기척도 없이 다가온 기사가 휘두른 검에 허벅지를 베었다. 깊은 상처는 아

니었지만 상대의 실력에 등에서는 진땀이 흘렀다. 

이를 악 문 그의 입에서 흑색의 갑옷을 입은 상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바스티너‥." 

"여기가 네 무덤이다! 젠티아 드로안." 

바스티너를 주축으로 펠리언의 뒤에 있는 문에서는 역사의 고리들이 튀어나왔다. 노르벨, 노리스, 머리에 혹을 달고 

있는 로진스. 동시에 창문이 깨지면서 흰 갑옷을 입은 기사가 뛰어들었다. 바스티너와는 대조적인 색깔로  중무장한 

그는 활기찬 목소리로 외쳤다. 

"기다리다가 지칠 뻔했지. 받으라고 모두!" 

보를레스는 한 보따리의 무기를 공중에 던져버렸다. 알아서 찾아가라는 뜻이었다. 

시즈들이 모두 무기를 갖고 근위기사, 그리고 역사의 고리와 대치했다. 그런데 싸움에 대한 흥분으로 가득  찬 보를

레스의 두 눈에 가득히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2m를 가볍게 넘어가는 거구에 터져 버릴  듯한 근육. 그림자 사이

에서 서서히 모습을 들어낸 그를 향해 보를레스가 분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헤에‥ 라즈으으!!" 

"잠깐! 보를레스, 그만 둬요." 

"왜냐? 왜 막는 거냐? 시즈!" 

보를레스는 자신의 목을 겨눈 예도의 주인에게 진의(眞意)를 물었다. 

"지금 이라면 보를레스는 분명 질 겁니다." 

"내가 진다고!?" 

"그 말에는 나도 동감이네. 저 성투사는 시즈가 맡도록 해." 

젠티아의 말에 보를레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도 헤라즈에게 갚을 빚이 많은 사람은 바로 시즈였으니까. 

"헤모 사제님‥." 

"시즈, 이제는 생명의 무게를 구할 수 있겠나?" 

"대충 알게 되었습니다." 

"말해보게." 

헤라즈의 말투는 꼭 애원하는 듯 간곡했다. 시즈는 고개를 저었다. 

"레이모하께 물어보십시오." 

발검의 자세를 취하며 시즈가 입을 다물자 헤라즈도 주먹을 꾹 쥐고 싸울 태세를  했다. 어찌 보면 곰과 여우의 싸

움 같았다. 귀족 군중 사이에서도 시즈를 염려하는 여인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헤라즈는 처음 시즈를 만났을 때를 기억했다. 

검은 눈동자에 담긴 은은한 미소를 짓는 시즈를 엘프로 착각했었다. 그 때  보여주었던 한 줄기의 검광은 집채만한 

케워크를 갈라 버렸다. 헤라즈라고 해서 그 섬광에 갈라지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정말 달라졌구나, 시즈.' 

은백의 머리, 투명한 눈동자.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그래, 다른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야! 시즈,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을 바로 잡은 헤라즈에게서 강렬한 힘이 뻗여 나왔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날릴 정도의 기운. 그러나 시즈는 

엄청난 기운이 헤라즈 주위에 일렁이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으면서도 담담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음유술사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상대할 정도가 아니라 제압까지도 가능하다고 시즈는 믿었다. 아니, 마

법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고 해도 충분히 검에 자신이 있었다. 

헤라즈 또한 시즈에게서 풍겨나오는 기세에 감히 마음을 놓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바람의 마력만이 아니었다. 검

사 자체로서의 시즈가 막강한 투기로 헤라즈 마음 속 깊은 곳의 무사를 깨웠다. 무사는 재촉했다. 어서 겨뤄보라고. 

"섬(閃)!" 

이를 악문 시즈의 일검이 터져 나왔다. 예도가 어찌나  빠르게 빠져나오는지 우우웅하고 검집이 진동을 했다. 검이 

있던 공간이 순식간에 비어지면서 생기는 압력으로 떨리는 것이다. 하지만 진동하는 것은 검집 뿐이 아니었다. 

떵! 

"우으윽!" 

헤라즈의 거구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의 눈이 종전의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부풀었다. 몸이 허공으로 뜬 

사실을 믿을 수 없는 게 아니었다. 팔, 팔의 뼈가 부서질 듯 아팠기 때문이다. 

성투사들의 건틀렛과 완갑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고들 한다. 그 이유는 성투사에게만 허락된 격투술, 신성강화법

에 있었다. 신성력에 의해 푸른색으로 달아오른 완갑은 전설의 보석 오리하르콘에 비할 수 있는 강도를 가졌다. 뿐

만 아니라 신성력은 성투사 자신의 몸에도 영향을 미쳐서 자체로서 축복을 받는 것과 같고 상처가 나도 바로  치료

가 된다. 그런데도 아픔이 전해진 것이다. 

'진동인가?' 

부딪힐 때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그냥 보기에는 한 번 부딪힌 것처럼 보이지만  예도는 완갑을 한 순간동안 수 백 

번을 때린 것이다. 헤라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좋아.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보여주지. 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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