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화 (166/200)

                                            45악장 1화

대륙 남쪽에서는 반란과 위대한 귀족의 죽음 등, 시끄러운 일들이 빈번할 동안 북쪽은 조용하다. 이유라고  치면 북

적거리는 도시가 적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이란 많이 모일수록 불협화음을 내는 존재들이니까.  그렇다고 

하여 인간 자체가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얼마든지 아름다운 음률로 노래할 수 있

는 자들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자네, 자네들었나?" 

"뭘 말이야?" 

"실리미엔 에이아가 옆에 로지 마을있지? 거기에 왔다더군." 

"요즘 들어서 이름 높은 음유악단을 말하는 건가?" 

"그래! 자네도 소문을 들은 모양이로군." 

"그 악단의 이름처럼 귀엽고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춤을 춘다지? 유혹하는 여신처럼 말이야." 

외팔이 청년의 단음 연주는 화려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와 겹쳐지면 더할 나위 없는 감미로운 배경음으로 

되어 준다. 신비로운 은색의 머리카락처럼 청량하고 그 투명한 눈동자처럼 맑은 목소리. 그는 책을 읽는 듯하면서도 

박자를 주어 나직하게 말하는 어조가 마음을 흔들어놓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저 가늘고 흰 손가락으로 넬피앙

을 튕기는 청년의 선율에 묶여버린 여신일까‥ 소녀는 기다란 옷자락을 흘리며 표홀한 춤을 춘다. 

"와아!" 

텅빈 들판을 무대로 삼고 시작했던 공연이  끝났을 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박수를 치면서  그들은 노래와 춤에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멋진 공연이었어요. 다음에도 또 오겠죠?" 

"정말이지 여신이 현신한 것 같았어!" 

어떤 노인네는 죽기 전에 여신을 보았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초원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악단은 사람이 없는 자리

에서 공연을 하기로 유명했다. 어느 자들은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그들의 노래를 들은 사

람들은 말한다. 

"실리미엔 에이아는 한 사람을 두고 공연하는 거야. 한 사람만을 위해서 말이야." 

척 보기에는 뭍 여행자들과 다를 게 없는 모습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들은 어느 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다고 한다. 그렇기에 실리미엔 에이아의 공연을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우연 뿐이라고 소문은 전했다. 돈이 많은 귀

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음유악단을 무슨 수로 초청할까. 

한 음유악단의 소문은 천천히 초원의 구름을 따라서 사막의 나라, 볼케이스로 퍼져나갔다. 

                                              * * *

"시즈, 그 쪽에 있는 수건 좀 줄래?" 

"음‥. 여기요." 

한바탕 춤을 춘 후에 아리에는 언제나 목욕을 한다. 그 때의 반경 100m 안에 들어올 수 있는 허락을 받은 이는 오

직 시즈 뿐. 시즈도 시중을 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물을 모두 닦은 그녀가 얼굴에 약간 홍조를 띄고 나무 뒤에서 걸어나왔다. 아직도 춤의 열기가 가시지 않아서였다. 

"보를레스는 다음 마을을 어디로 정했대?" 

"아뇨. 한동안 여기에 머물 생각이던데요." 

"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그랬잖아!?" 

"음식이 제일 맛있데요." 

시즈는 어깨를 으쓱하고 아리에를 확 끌어당겼다.  갑작스런 시즈의 장난에 순간 아리에는  당황하여 비틀거렸지만 

이내 춤을 출 때의 유연한 몸짓으로 균형을 바로 잡고 눈을 세웠다. 

"치사하게!" 

시즈가 미소로 얼버무리려 했지만 아리에는 바로 반격했다. 밀고 당기고를 반복하며 깔깔대고 있을 때, 굵직한 목소

리가 들려왔다. 

"시즈, 로지의 촌장님께서 닭구이를 직접 사주신다는데 안 갈 거야?" 

"아! 가요!" 

보를레스의 말은 시즈의 잘 잡힌 균형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기회를 노린 아리에의 밀침에 열심히 그녀를 끌어당기

고 있던 시즈는 뒤로 발랑 넘어졌다. 

풍덩! 

"하하하핫! 시즈, 여자한테 지다니 꼴불견이야." 

보를레스가 웃음만 남기고 사라졌을 때, 아리에가 손을 내밀고 새침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즈, 솔직히 말해. 날 속일 생각하지 말고‥. 보를레스가 여기서 머물 생각을 한 이유가 뭐지?" 

"헤헤헷‥. 제가 그러자고 했죠." 

"닭구이의 유혹에 넘어갔구나?" 

그제서야 시즈는 아리에가 내심을 모두 꿰뚫고 있었음을 깨닫고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먼저 걸어가는 보를레스

가 중얼거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저 놈, 완전히 공처가되겠네." 

그 날 이후로 시즈 일행은 로지 마을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별빛조차 길을 잃는다는 '별의 미궁'이 가까웠기 때

문에 실리미엔 에이아의 소문이 퍼져도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음식이 맛있다는 이유가 첫 번

째였다. 

촌장에게 닭구이를 대접받은 이후 잠시 머물 생각이었던  보를레스와 아리에도 아예 자리를 잡기로 마음을 굳였을 

정도였으니‥. 

여러 가지 힘든 사건을 겪었기 때문인지 모두가 사람들이 뜸한 별의 미궁 근처에 집을 지었다. 로지 마을 사람들은 

만류했지만 시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원래 방향치라서, 굳이 별의 미궁이 아니더라도 길을 잃습니다." 

지상에는 바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었고  별의 미궁 또한 마찬가지였다. 양치기의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하는 

숲도 시즈에게는 다른 숲이나 다를 바 없었다. 

숲에 가득하다는 몬스터들도 보를레스가 있었기에 문제없었다.  광풍의 검사로 대륙에 이름을 떨친  그에게 있어서 

좋은 연습상대만 되어줬을 뿐. 가끔 그가 감당하기 힘든 무리일 때는  시즈와 아리에도 가담했다. 언제부터인가, 그

들의 집은 별의 미궁에 있어서 성역이나 다름없는 자리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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