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악장 2화
"보를레스 씨, 시즈씨까지 오다니 놀랍군요."
"볼란 할아버지의 닭굽는 솜씨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겠죠."
"허헛! 시즈군, 이 노인네의 요리를 인정해주다니 특별히 넙쩍 다리를 주지."
시즈의 만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평소에 시즈는 왠만하여 마을로 나오지 않았다. 방 안에서 뭔가를 만들며 꾸물쩍거리다가 한 번씩 실험을 해보러
나오는 게 다였다. 이번에도 역시 요리의 음미라는 이유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바퀴 달린 의자는 뭔가? 특이하게 생겼군."
"자전거입니다."
"역시 이번에도 뭔가를 실험하러 나온 게군."
볼란은 서운하면서도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즈가 가끔씩 들고 나오는 물건들은 그로서는 본 적이 없는 신기한
것들로서 가끔씩 실리미엔 에이아의 노래를 듣기 위해 찾는 방문객들도 감탄하는 좋은 관광상품이 되어 주었기 때
문이다.
이번 것은 사람만큼이나 커서 관광상품으로는 부적절했지만 반대로 호기심도 자극했다. 볼란 외에도 보를레스와 아
리에도 궁금해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에 시즈는 빙그레 웃으면서 자전거에 올라탔다. 페달에 발을 놓고 힘을 주자
서서히 앞으로 굴러가는 바퀴를 보며 볼란과 보를레스는 점점 커지는 입을 주체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오오‥. 간다, 간다!"
한 5m를 갔을까? 시즈는 문득 자전거를 멈췄을 때, 그들은 한결같이 원성을 내뿜었다.
"아니, 잘 가는데 왜?"
"엉덩이가 아파요. 역시 고무나무를 구할 수 없어서 타이어를 만들지 못했더니‥."
"안장에다가 쿠션을 넣어보는 건 어때?"
어느 새인가 시즈보다도 더욱 자전거에 열을 올리는 아리에와, 볼란. 보를레스는 그들을 가리 키며 시즈에게 말했
다.
"연장을 직접 쥐어 줘도 저렇게 말할 지 의문이로군."
하지만 노인과 여인의 의견은 참조되어 3, 4일이 지나서 다시 마을에 나왔을 때, 시즈는 자전거를 탄 상태였다. 빠
른 속도를 낼 수는 없었지만 걸어가는 것보다야 편하고 나아서 그가 자전거를 타고 나갈 때면 언제나 뒤에서 아리
에가 아쉬운 표정을 짓고 했다. 시즈에게 있어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여인의 애절한 표정은, 자전거에 안장을 하
나 더 달아놓고야 말았다.
"꺄하‥."
덜컹거림은 오히려 즐거움이었을까. 아리에는 시즈의 등에 매달려 어린아이처럼 웃어댔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재미
있게 보여 로지 마을의 아이들은 시즈가 지나갈 때면 태워달라고 졸라댔고 아리에는 울상을 지으며 비켜줘야 했다.
물론 그녀를 달래는 것은 시즈의 몫이었다.
"맨날 아리에 양을 달래느라 고생하지 말고 아이들 것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떤가?"
촌장의 말에 시즈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지만 제동(璪)장치가 없어서요. 내리막길에서 타기라도 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타지 않게 주의를 주면 되지."
"말은 모든 행동의 책임을 질 수 없는 법이죠."
시즈는 빙그레 웃었고 볼란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의 웃음과 다를 바 없이 청년의 웃음은 헤프
지만 파고 들어갈 곳 없이 강한 의지를 따로 품고 있었다.
평화롭게, 아주 평화롭게 생활하던 것도 좋지 않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 법, 하루는 쓸쓸하게 마을거리를 거닐고 있
는 보를레스를 불러 볼란이 말을 걸었다.
"자네는 왜 혼자서 궁상을 떨고 있나? 외로우면 인연을 찾는 게 어떤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혹시 로지의 처녀인가?"
볼란은 무척이나 기대하는 눈치였다. 얼마 전에 습격해온 몬스터 무리를 베어버리는 보를레스의 검술은 마을의 처
녀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것이다. 별의 미궁에서 몬스터들의 습격이 잦은 로지 마을에서는 그만큼 강한 남자가 인
기였다. 촌장의 입장에서도 볼란은 보를레스 같은 검술가가 있다면 로지 마을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었
다.
"아닙니다. 그녀는 아스틴에 있지요."
"아스틴에? 국경 너머에 있다고 하니 그리워 할 만도 하겠군. 만난 지 얼마나 되었나?"
보를레스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하‥. 모르겠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오래 전이었던 것 같군요. 하지만 그녀가 바로 옆에 있다 하더라도‥.
감히 다가갈 수 있을지 걱정디 됩니다."
"허허허‥. 뛰어난 검사인 그대가 다가갈 수조차 없다니 누가 갈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군."
"저도 그래서 안도가 됩니다."
애수의 무게가 그렇게 무거웠던가. 보를레스는 처진 어깨를 하고 다시 시즈와 아리에가 기다리는 나무오두막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 때 청년 하나가 경사라도 났는지 춤을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달려왔다.
"이보게, 안딜. 무슨 일인데 흥분하다가 쓰러질 지경인가?"
"보를레스 씨, 보를레스 씨‥. 실리미엔 에이아의 노래를 들을려고 아스틴에서 손님이 왔어요."
"네네, 오늘 공연은 저녁 때라고 전해주세요."
"보를레스 씨, 그런데 손님이 시즈님과 보를레스님을 아시는 듯 했는데요? 메네이나라는 소녀와 유레민트라는 엘프
아가씨가‥."
안딜은 갑자기 광채를 띄는 보를레스가 땅에서 솟아난 듯이 눈앞으로 돌아오자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그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보를레스는 힘을 주어 말했다.
"어디에 있어!?"
‥안딜은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액체에 하체가 축축해지는 걸 느끼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이 걸어왔던 방향을 가리켰
다. 그리고 보를레스가 사라졌을 때, 울먹였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