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 (172/200)

                              46악장 바람은 태어난 곳을 향해 돈다. 1화

"므헤헤헤‥." 

유레민트가 온 이후로 보를레스의 입가에서는 멍청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장작을 패는 주제에 히죽거리는 모습

이라니 물을 길어서 나르던 아리에가 대끔 한 마디를 내던졌다. 

"바보‥." 

"므헤헤헤‥!" 

그런다고 행복감이 사라지리‥. 아리에는 고개만 설레설레 저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보를레스의 상태이상을 부추

킨 장본인이 얼른 대야를 받아들었다. 

"미안해요. 저 때문에‥." 

"괜찮아요. 그보다도 아이는 어때요?" 

실리미엔 에이아의 오두막에는 유레민트가 영입됨에 따라서 당연히 하나의 방에  더 생겨났다. 하지만 그녀의 방에

는 침대가 둘 있었다. 그 자리가 보를레스의 침대였다면 그가 오죽 좋아했을까. 안타깝게도 유레민트의 치료를 받기 

위한 환자들의 자리였다. 

엘프는 예전부터 약초를 잘 쓰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소문은 금방 퍼졌다. 오늘의  환자는 친구들과 뛰어 놀다가 넘

어져 무릎이 길게 찢겨있는 소년이었다. 

울 듯하면서도 용케 참고 있는 것은 모두 유레민트의 공(功)이었다. 

"자아‥ 안 아플 거 에요. 조금만 참으면 되요." 

"저기, 요정님. 괜찮을까요?" 

가장 호들갑스러운 사람은 아이의 어머니였다. 아리에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있는 말 없는 말을 다해가며 진땀

을 뺐다. 

약초를 으깨어 바르고 붕대를 싸맨 유레민트가 일어날 때까지 아리에의 고초는 계속됐다. 

"괜찮을 거 에요. 별로 크게 다친 게 아니거든요." 

'그 말을 왜 이제야 하는 거에요?' 

내심 아리에는 절규했지만 상냥한 인상의 유레민트한테 감히 대놓고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다. 그저 소리 죽여 눈

물을 흘릴 뿐이지. 

문제는 그 후였다. 일이 있은 후부터 로지 마을의 사람들은 다치기만 하면  신전이나 약사에게 가지 않고 유레민트

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돈을 받지 않는  유레민트의 배려였지만 옆마을의 사람들에게까지 소문이  퍼지면서 결국은 

화가 난 신전에서 실리미엔 에이아를 찾아서 로지 마을로 찾아왔다. 

"당신이 사람들을 치료해준다는 엘프입니까? 실력이 레이모하의 권능보다도 뛰어나다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눈꼬리가 축 처져 인상이 온화해 보이는 젊은 신관은 보기와는 다르게 날카롭게 외쳤다. 

"어떻게 신보다 뛰어나겠습니까?" 

유레민트가 황송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녀가 아무리 뛰어난 현자고 치료사라고 해도 신에 비교될 수는 없었다. 신

에 비교된다는 것은 반은 칭찬이었지만 반은 무서운 위협이기도 했다. 

레이모하의 치료 신관이 보기에 실리미엔 에이아는 범상치가 않았다. 여인들은 아름답고 사내들은 특이하다. 솔직히 

시비를 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신전의 수입과 관련된 일이니 만큼 어쩔  수 없었다. 어찌 보면 환자는, 신도보다

도 민감한 사항이었다. 

"신전의 환자가 그리 말했소. 레이모하의 권능이 의심을 받게 생겼으니 어찌 하겠소?" 

"진료를 조금만 싸게 해준다면 레이모하의 권능을 믿을 것 같습니다만‥." 

자전거에 탄 채로 지켜보던 시즈가 말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빈 소매가 흔들렸다. 

"감히 외팔이가 어디라고 껴드는 거냐?" 

신관을 따라온 신전 무사가 검을 빼 들이댔다. 하지만 시즈의 반경  1m 내에 들어오기도 전에 청명한 금속음을 내

며 튕겨 나갔다. 

챙! 

"자비로워야 할 신전의 무사가 바로 검을 빼들면 안 되지‥." 

보를레스가 무미한 표정으로 신전 무사를 가로막았다.  거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신전 무사는  당황한 기색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칼바람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자  아리에도 말없이 양손에 단검을 쥐었

다. 

"싸우려고 온 게 아닙니다." 

치료신관은 얼른 말리면서도 내심 이를 갈았다. 시골에서 노래나 부르며  살아간다는 음유시인들 사이에 검술을 하

는 이가 있다니 완전히 계산착오였다. 거구의 재빠른 몸놀림으로 봐서 신전기사라도 데려오지 않는 한 승산이 없었

다. 

"대사제께서는‥." 

"유레민트입니다." 

"흠흠‥ 유레민트님이 신전을 한 번 방문해주셨으면 하십니다.  보잘 것 없는 제 생각입니다만, 치료술을  비교하실 

생각이실 겁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할까요?" 

"보여주지 않으면 믿지 않는 우매한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적어도 내일까지는 방문해주셨으면 합니다." 

유레민트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신관은 돌아갔다. 그가 말한 신전이 있는  언덕을 바라보던 아리에가 입을 열었

다. 

"그냥 오두막에서 나오지 않으면 저들도 우리를 찾지 못하잖아!?" 

"가보죠." 

"시즈!" 

보를레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시즈를 불렀다. 하지만 돌아선 시즈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무심결에 고개를 끄

덕였다. 

"괜찮을 겁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던 간에‥." 

시즈에게서 흘러나오는 바람에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그들은 접하면 접할수록 편안해졌다. 그리고 믿음이 갔다.  그

는 불안해하는 보를레스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난 소중한 사람들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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