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악장 바람은 태어난 곳을 향해 돈다. 3화
촤라라라라라….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두 개의 바퀴 위에 앉아서 느긋이 나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호기심을 선사했다. 식사
를 하기 위해서인지 잠시 멈춰서 짐을 푸는 그들에게 멀리서 신기한 눈망울을 반짝이던 목동이 다가왔다.
"아저씨, 아저씨. 어디로 가십니까?"
목동이 물음을 던진 상대는 대끔 눈썹부터 찡그렸다. 보를레스라는 이름을 가진 장신의 사내는 목동의 호칭이 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목동은 첫눈에도 무척이나 어렸으니 커다란 숨을 내쉬고 지나갈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보를레스의 나이, 향년 27세.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면 분명 목동 만한 아이도 있기 충
분했다.
"우린 북쪽으로 간단다."
분노를 잠재우려 노력하는 보를레스의 모습이 위급해 보였는지 얼른 앞을 막아선 유레민트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긴 금발이 향긋한 공기를 뿌리며 코앞을 수놓자 어린 목동의 얼굴이 약간 홍조를 띄었다.
"그, 그렇군요. 그런데 누나, 저 건 뭐지요? 마차는 아닌 것 같은데요. 처음 봐요."
"자전거라고 하지. 내가 만들었으니 처음 볼 수밖에."
목동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워낙 자전거라는 물체에 심취해 타고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지 않은 게 이유였을
것이다. 만약 그들을 자세히 살폈다면 쉽게 다가서지 못했을 테니까.
백은 머리카락과 투명한 눈동자, 인간이라고 믿기 어려운 이질감을 용케 품고 있는 청년이었다.
"만든 거라고요?"
반문한 그에게 청년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북쪽은 여기가 끝이에요. 저기 보이는 강 뒤로 보이는 하얀 땅은 전부 얼음으로 덮여있거든요."
"그래, 우리는 흰땅으로 갈 거야."
"얼어죽을 거 에요. 정말 춥다고요. 에스키모라도 되지 않는 한은‥."
"괜찮아."
물끄러미 바라보자 청년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의 결정처럼 투명한 눈동자가 그를 얼음의
정령처럼 보이게 했다. 그 때, 잠자코 있던 보를레스가 투덜거리며 시즈의 말을 끊었다.
"괜찮지 않아. 너라면 몰라도! 우리는 무척이나 춥다고."
착각일까!? 사내의 투덜거림과 동시에 은발의 청년 주위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살풋 웃음을 띄운 입
가를 가리며 유레민트가 목동 소년에게 물었다.
"이 주변에 마을이 있나요?"
"제가 사는 곳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좀 안내해줄래요?"
목동 소년의 마을에서 시즈들은 두꺼운 양털 외투를 몇 별이나 샀다. 북부 볼케아스의 바람은 매우 사나워서 시즈
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일행의 속살을 건드렸던 것이다. 거대한 장신에 양털에 몇 겹으로 둘러싸이자 보를레스는 금
새 북극곰으로 돌변했다.
"확실히 보를레스는 곰 종류야."
"뭐라고!?"
아리에의 말에 보를레스가 발끈했다. 유레민트가 팔에 매달려 말했다.
"잘 어울린다는 뜻이에요."
"그, 그런 거야?"
유레민트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자 보를레스는 정말로 믿어버렸다. 아리에는 그가 정말로 곰이었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에 키득거렸다.
목동 소년의 배웅을 받으며 보를레스와 시즈는 열심히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푸르렀던 초원의 풀이 자취를 감추
고 흰 서리와 눈의 흔적만이 남아있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추위를 타지 않았다
"대륙을 흐르는 바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은데!?"
문제는 새로이 나타났다. 목동 소년이 거론했던 지평선의 강은 그들의 상상보다도 훨신 폭이 넓었다. 보를레스가 시
즈를 바라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유레민트도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시즈‥."
어두워진 시즈의 얼굴. 아리에는 차가운 손을 시즈의 양털 속으로 넣어 은발이 삐져 나온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너무 심각해지지 마."
"후후‥."
아리에의 귀여운 행동에 얼어붙었던 머리 속에 풀렸는지 시즈는 훈훈하게 미소를 입가에 드리웠다.
"할 수 없군요. 여기서 쉬었다가 갈까요?"
'대륙을 흐르는 바다'라는 뜻으로 '우클자인'강은 폭이나 길이에서 대륙의 강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얼음의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빙하들이 육중한 본체를 숨긴 채 동동 떠다녔다.
"그러니까 역사의 고리가 저 빙하의 대륙에서 시작했다는 거야?"
"세이서스 가에 내려오는 문서에 따르면‥ 새하얀 대륙의 중심에 역사를 잡고 있는 둥근 고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특이하군요. 이 곳만 해도 사람이 살기에는 추운데 저 얼음의 대지에서 문명을 좌지우지한다는 조직이 숨쉬고 있
다니‥."
역사의 고리가 국제적으로 드러난 것은 세이서스 일가의 침몰인 '봄의 혈사' 때였다. 당시에 헤트라임크가 외쳤던
단체의 이름이 후일, 실베니아 내전의 배후라고 알려지면서 유레민트를 비롯한 아스틴네글로드의 학자들의 관심도
은근히 쏠렸다. 그러나 관심뿐. 아무 것도 알려진 바가 없는 역사의 고리. 그 본거지를 알게 된 유레민트는 흥분했
다.
얼굴이 붉어져 주먹을 불끈 쥔 그녀에게 아리에가 말했다.
"유레민트, 수프 쏟아져요."
소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시즈는 우클자인 강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정확하게는 수면에 떠있는 얼음들을. 그리고 조용
히 보를레스에게 말했다.
"얼음의 배를 만들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