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2화 (182/200)

                              46악장 바람은 태어난 곳을 향해 돈다. 11화

"대충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하루가 지나 시즈는 수척하지만 밝은 얼굴로 말했다. 일행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조용히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답이 될까 의문이 갑니다." 

"대체 뭔데 그러는 거야?" 

"바람은 태어난 곳을 향해 돈다고 하지요." 

"시즈가 이 곳에서 태어났다는 뜻인가요?" 

유레민트가 믿기 어렵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즈는 헤트라임크의 양자로 세상에 알려진 만큼 그 출생에 대해

서는 의문투성이였다. 그런 그가 보이는 것은 모두 얼음뿐인 세상에서 태어났다는 건가? 시즈의 머리카락와 눈동자

를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얘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판단에 시즈가 놀라서 양

손을 저었다. 

"무슨 소리에요? 나의 출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음유술사에 대해 그러는 거죠. 젠티아는  세일피어론아드 자체가 

부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역사의 고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음유술사들의 탄생을 말하는 거군요." 

시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가 이 곳에 온 이유‥." 

"무슨 뜻인가요?" 

"전 이방인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의 모습에서 동방인이라는 사실은 엿볼 수 있어요. 하지만 동방인이라고  해서 꼭 동방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

잖아요." 

유레민트는 시즈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은 시즈에게 그저 미소만  떠올릴 뿐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바라고 있지는 않다고 해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시즈는 무릎을 짚고 일어서서 말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따라오실 겁니까?" 

"난, 간다." 

보를레스가 일어섰다. 

"전 고용된 몸이니‥." 

유레민트도 일어섰다. 일어선 이들은 모두, 앉아있는 한 사람을 응시했다. 기대에 물든 눈빛, 아리에는 부담을  느꼈

지만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한 마디를 하는 대신에 폴짝 뛰어 시즈의 품에 안겼다. 혀를 내밀고 헤헤하고 웃는 그

녀를 보자 일행은 긴장이 주룩 빠져버렸다. 흐물흐물해진 손짓을 하며 시즈가 말했다. 

"가, 갑시다!" 

어쨌든 에스키모들과의 다툼이 있은 후로 시즈는 아리에 곁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아리에도 마찬가지

였다. 하지만 아리에는 말투가 어린애 다루듯 시시콜콜하여 가끔씩 시즈는 공처가가 될 미래를 미리 경험해야 했다. 

"네 말대로라면 거의 다 온 게 아닌가?" 

그들이 다시 길을 떠난 지 알 수 없었다. 설원은 밤마저도 낮처럼 밝았으니까. 밤낮을 구별할 수 없는 현상은 일행

에게 더욱 피로를 안겨주었다.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짜증을 물리쳐가며 일행은 눈을 헤치고 얼음을 미끄러져 갔다. 이윽고 어느 날, 보를레스

의 물음에 시즈는 대답 대신에 짐에서 나침반을 꺼내서 던졌다. 

휘익―하고 날아간 나침반이 먼저 보를레스가 언급한 곳에 떨어졌다. 그리고 시즈와 일행은 한 걸음, 한  걸음을 긴

장과 피로에 찌든 다리로 다가갔다. 면도도 제대로 못해 턱수염에 얼음이 잔뜩  단 보를레스와 시즈는 눈사람을 방

불케 했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나침반의 바늘‥. 보를레스는 헛것을 보았나, 눈을 비볐다.  시즈가 말하길 얼음의 대지 중앙에

서는 나침반이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돌 거라고 했던 것이다.  유레민트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어이없는 말이었지만 

그는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버텨오며 찾지 못하면 시즈를 반 죽도록 패대기를 치리라 결심했는데‥. 나침반은 놀

랍게도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다. 마치 길 잃은 미아를 보는 듯 했다. 

"에효∼." 

"드디어 도착했군요. 설마 세일피어론아드에 나침반이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곳이 존재할 줄이야. 이건 새로운 발견

이 될 거에요." 

아리에는 주저앉았지만 유레민트는 지치지도 않았는지 열의에 찬 음성으로 새로운 발견을 찬미했다. 반짝거리는 녹

색의 눈동자에 새로운 별자리가 생겨났나 착각할 정도였다. 물통을 돌려 목을 축인 시즈는 말했다. 

"이 주위 어딘가에 역사의 고리가 세력을 키워온 은거지가 있을 겁니다." 

기운이 솟았다. 방금 전까지 어디에 숨었을지 코빼기도 안보이던 기운이 콸콸 쏟아졌다. 시즈의 일행은 모두 일어나

서 사방으로 퍼졌다.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다. 그 때, 아리에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아리에!" 

에스키모와 같은 전례가 일어났나? 다급하게 보를레스와 시즈 등 일행들이 달려왔다. 하지만 아리에는 상처 머리카

락 하나 사라진 것 없이 멀쩡했다. 그녀는 다만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키며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왜 그러지?' 

고개를 돌리는 사람마다 굳어버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들은 대체 무얼 본  것일까? 그것은 햇빛에 반짝이는 얼음

의 도시였다. 기뻐했어야 할 상황이 아니냐고? 다음 시즈의 중얼거림을 들어보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저것은‥ 타이즈벡!" 

"우리는 얼음의 대륙을‥ 한 바퀴 돌았다는 건가?" 

그렇다. 너무나 눈에 익다는 게 문제였다. 허탈해진 그들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걸고 보를레스는 시즈가 들

고 있는 나침반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나침반이 계속 돌고 있는 거지?" 

"그것은‥." 

"타이즈벡이 얼음의 대지 가운데에 있기 때문이지."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 또한 귀에 익었다. 고개를 든 그들의 시야에 장년의 사내가 걸어들어왔다. 그를 보며 유레

민트는 무거운 침음성을 흘렸다. 

"르베븐‥." 

"유레민트, 실망이야. 네가 날 못 알아볼 줄이야. 역시 얼음의 반사광에 진실을 보는 눈이 어두워 진 거야?" 

유레민트가 르베븐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일행 또한 그렇게 보았던 사내는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변했다. 주름살이 

주룩한 늙은이가 되기도 했고 멀쑥한 청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섰을 때 유레민트는 망연히 중얼

거렸다. 

"미헬 드나헤‥." 

"예!?" 

일제히 놀란 얼굴을 하는 일행. 그리고 미소를 짓는 르베븐 아니, 미헬 드나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인사를 건

넸다. 

"바람을 노래하는 이와 일행 여러분, 반갑소. 역사의 고리의 80번째 수장인 나, 미헬 드나헤가 인사를 드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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