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3화 (183/200)

                              46악장 바람은 태어난 곳을 향해 돈다. 12화

사내는 일행이 알고 있었던 르베븐과 외모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풍기는  이미지는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듯 했다. 유레민트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이게 무슨‥." 

말을 잇지 못하는 시즈. 그의 일행을 휘이 돌아보고 미헬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꽤나 고생들을 하신 모양이군. 갑시다. 역사의 고리가 태어난 곳이자, 아직도 숨쉬고 있는 '환원의 도시', 프르즈를 

소개해 주겠소." 

"이게 누구 때문인데‥." 

"하하, 어쨌든 죽지는 않았잖소." 

손으로 안내하는 모습이 자못 정중했다. 이러니, 먼저 시비를 걸 수도 없었다. 헛기침을 하며 보를레스는 미헬을 지

나쳐 걸었다. 시즈는 미헬의 옆에서 걸으며 담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의 한 쪽 팔에는 아리에가 잔뜩 긴장해서 매

달려있었다. 

"타이즈벡이 얼음의 대지, 정중앙이라니‥ 대체 무슨 뜻입니까?" 

"말한 그대로요. 그 나침반이 증거가 아니겠소? 하긴‥ 궁금할 테니 설명해 주리다.  그 전에 내가 하나 묻지요. 시

즈, 그대는 지도가 내 집에 있다는 사실에서 뭔가 의심점을 발견하지 않았소?" 

"‥하기는 했습니다. 위험한 여행을 떠난 이가 어째서 지도를 가져가지 않았나‥." 

"왜 그 때의 의심을 무시한 거요?"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지요. 아니, 솔직히 말해서 설마‥하고 의심을 지웠지요." 

"하하‥ 바람을 노래하는 이여, 그대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이로군." 

미헬은 껄껄대고 웃었다. 그의 집에 지도가 있었던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유적을 찾아서 떠났던 미헬은 유적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암중에서 대륙을 조종하던 역사의 고리도. 필요 없는 지도를 집안 구석에 박아두는 건 당

연했다. 

한동안 웃어댄 그는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돌변했다. 

"좋아. 시즈, 그대가 궁금해하는 것을 말해주지. 그대들이 타이즈벡, 아니 프르즈에 왔을 때, 난 무척 놀라고 당황했

소. 다행히 당신 일행은 추위로 인한 위기에 처해 있었지.  그로 인해 눈에 보이는 현상의 이면을 파악하는 능력이 

무뎌진 거요. 아니라면 아스틴네글로드 최고의 현자와 그 이상 간다고 전해지는 '마땅찮은 이'가 의심이 생겨도  넘

어갈까?" 

"‥음‥." 

"특히 유레민트의 동행은 뒤통수를 맞는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난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약간의 빛을 움직일 줄 

알지. 인간은 빛에 따라서 이미지가 확연히 바뀌니까.  그대들이 처음 도착한 날, 추위로 인한  혼란에 빠져있을 때 

나는 당신들에게 르베븐이라는 존재를 입력시켰소. 매우 성공적이었어. 유레민트는 냉정해진 후에도 날 알아보지 못

했으니까. 르베븐이라는 존재가 미헬의 이미지를 은근히 가렸기 때문일 테지." 

시즈 일행은 말을 잃었다. 그들은 르베븐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한푼의 부자연스러움도 느끼지 못했다. 그게  자신

들의 실수였다니‥. 시즈는 내심 중얼거렸다. 

'그 때, 무사히 강을 건너서 냉정한 상태였다고 속았을 거야.' 

침중한 그들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헬은 미소를 지었다. 

"내 정체를 알지 못하는 이상 그대들이 두려울 것은 없었소. 난 그대들이 음유술사 일행이라는 사실을 잊기로 했소. 

실제로 내가 고민했던 것을 부탁하기도 했고 차를 마시면서 아주 즐거웠어. 그대들이 떠날 때, 양털 대신 순록의 가

죽을 준 것도 순전히 호의였소. 그것은 알아주시오. 

아! 왜 타이즈벡이 프르즈인지를 물었소? 인간은 나쁜 버릇이 있다오. 한 번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정의를 내려버

리면 가상이었다고 해도 실제로 확인하는 일은 드물지. 그대들은  모두 이 곳은 얼음의 대지, 가장자리라고 정의를 

내렸소. 그대들이 호되게 당했던 강 때문이겠지만. 그게 실수였지. 만약 나침반을 한 번이라도 꺼내봤다면 목적지에 

이미 도착했음을 알았을 거요. 

난 어떻게라도 당신 일행이 나침반을 꺼내지 않게  해야 했지. 모험으로 지도를 건네준 거요.  시즈, 그대에게 달린 

일이었지. 의외로 그대는 그냥 넘어가더군. 그리고 지도를 믿었지. 난 확신했소. 지도를 믿지 못하게 되기  전까지는 

나침반을 꺼내지 않을 거라고. 내 말이 틀렸소?" 

"정확합니다." 

"마땅찮은 시즈라면 고려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양이오!?  생각해보오. 그대는 

헤트라임크의 고서적에서 프르즈의 존재를 알았겠지. 역사의 고리가 창립된 지 몇 천년이 흘렀소. 그 동안 이 얼음

의 대지가 지금의 모습이었을 것 같소?" 

"그렇군요." 

시즈는 뇌리에서 뭘 놓쳤는지 깨달았다. 예전에 얼음의 대지는 정말 거대했을 것이다. 어쩌면 세일피어론아드  전체

가 얼음의 대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읽었던 서적에 근거하면 서적이 쓰여졌을 때의 얼음의 대지는 현재의 

두 배가량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즈는 프르즈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놀랐다. 

"아니!" 

타이즈벡이라고 일컬었던 도시는 없었다. 무지개의 색으로 빛나는 도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울

을 이용한 반사작용으로 여기저기에서 쏟아진 빛은 얼음으로 지어진 건물을 하나하나 찬란하게 변모시켰다. 희안하

고도 화려한 광경에 발이 묶인 시즈들을 미헬은 재촉했다. 

"어서 들어갑시다. 이게 바로 프르즈가 신비하다고 전해지는 이유요. 우리는  이것을 빛의 장막이라고 부르지. 안에

서는 무지개 빛으로 찬란하지만 멀리서는 이 도시가 보이지 않을 거요." 

변한 것은 건물 뿐이 아니었다. 사냥꾼의 복장을 하고 있던 남자들은 푸른 로브를 걸치고 여인들은 머리에 긴 모자

를 썼다. 손가락에는 마법을 강화시키는 반지가 주렁주렁했고 눈에는 현기가 흘렀다. 시즈는 들고 있던 나침반을 물

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늘은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빙빙 돌고 있었다. 

"그대가 마땅찮은 시즈? 생각보다 훨씬 젊군." 

역사의 고리는 시즈가 생각했던 원수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그들은 시즈가 자신들이 싸워오던 음유술

사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었는지 몰려와서 허락하지도 않은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시즈는 상황에 적응을 못하고 조용히 몸을 내맡길 때, 미헬은 학자들과 마법사들을 제쳤다. 

"이보라고. 당황하지 않나. 그는 우리를 해치우러 왔을 텐데‥." 

"아하하! 그렇지. 미안하네." 

'그렇지, 미안하네.'라니‥. 유레민트는 암중 보를레스에게 역사의 고리에 대해 들었던 것과 차이가 많아 혼란스러웠

다. 보를레스는 이게 그들의 정신 공격이 아닐까 의심이 갔다. 그렇다면 상당한 성공적인 충격을 선사했다. 썩은 나

무토막처럼 서있는 그들을 이끌고 미헬은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오색으로 찬찬한 집이었지만 그 안은 예전에 보

았던 르바븐의 집과 같았다. 

"혼란스럽겠지? 이해하고 있소. 그대들이 어려워하는  현실에 대해 조금 설명해주자면 우리는  그대들의 적이 아니

오."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되니까 그대들이 살아있지요. 난 충분히 독을 넣어서 당신들을 죽일 수 있었소. 내 집에서 차 마신  게 한 두 

번이오? 게다가 저들을 얕보지 마시오. 나도 그대들의 소문을 들었고, 또 바람을 노래하는 이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

지는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저들 중에 대부분은 6클래스를 넘어가는 마법사가  대부분이고 10명 이상이 8클래스 마

스터에 도달했소."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대륙에서는 한 국가에 8클래스가 둘이  없어서 난리인데, 한 마을에 10명 이상이 살고 있다

니. 유레민트는 엄청난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미헬이 더 대단해 보였다. 시즈가 얼굴을 찌푸리고 말했다. 

"당신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다고 하여 적이  아닌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십시

오." 

"그러지요. 지금 대륙에 있는 역사의 고리와 여기 프르즈에 있는 역사의 고리는 과거는 함께 했지만 현재와 미래를 

함께 하지는 않소." 

"그 말은 다르다는 뜻입니까?" 

"그렇소." 

미헬은 벽에 걸려있던 순록 머리 박제에서 왼쪽 뿔을 비틀었다. 한 쪽 벽에서 기이한 소리와 함께 푸른빛이 뿜어지

더니 벽이 스르르 사라졌다. 먼저 들어가서 손짓을 하며 미헬이 설명했다. 

"이 것도 역시 빛을 이용한 마법이지요. 실제로 사용되는 양은 매우 적어서 아마 눈치채지 못했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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