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2화 (192/200)

                             47악장 슬픔이 흐르고 나야 눈물이 흐른다. 6화

"찾았다! 아스틴에 있었군. 우하하하핫!" 

자리에서 일어난 로진스는 뭐가 그리 좋은지 광소를 터뜨렸다. 테이블에 앉아서 턱을 괴고 있던 츠바틴이 한심하다

는 듯이 중얼댔다. 

"3 일이나 아무 것도 안 먹었으면서 소리칠 기운이 있다니‥. 마법사들은  어딘가 미친 구석이 있다더니 이유 없는 

소문은 없는 법이지." 

"3 일? 내 명상이 그렇게 오래 되었다고?" 

"그래. 자네 명상 시간은 그리 관심 없어. 그들을 찾았다고 했지?" 

솔직히 로진스는 무의식중에 명상시간이 늘어났다는 걸 두고두고 자랑할  생각이었다. 마법사들에게 명상시간의 집

중은 마나의 축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번에 끊어버리다니 츠바틴은 정말 얄미운 자였다. 

"벨루온에서 그리 멀지않아. 럴크 산맥 주변이야. 왠일인지 모르겠군." 

"얼마 전, 그들이 얼음의 대지로 향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었지. 만약 늙은이들을 만났다면 몽충에 대해  알게 되었을 

거다." 

"곧 일어날지 모를 성스러운 회귀를 막으려는 거군. 이거 얘기가 쉬울 지도 모르겠어." 

"아니야. 그들은 우리를 보통 경계하는 게 아니니까. 이쪽에서 완전히 털어놓지 않는 한 마음을 열지 않을 거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당장 가야지." 

츠바틴은 얘기를 하면서 채비를 차렸다. 허름한  옷과 끝이 헤어진 로브를 걸치자 행인으로  지나칠 평범한 사내가 

나타났다. 머리를 대충 털어 자연스럽게 만든 그는 능글맞게 웃었다. 후드를 쓰면 오히려 시선이 몰린다. 

"나, 나도 갈 거야. 몽충은 자네보다 내가 잘 알고 있어." 

몽충은 마법의 산물이었다. 로진스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당연했다. 그 때, 문을 열고 노리스가 들어왔다. 

"로진스, 자네는 우선 밥이라도 먹는 게 좋을 걸." 

"맞아. 3 일이나 굶었으니 100m도 못 가서 쓰러질 거야." 

"필요 없는 물건(?)은 산매장이 최고지." 

짓궂은 농담을 하며 노리스는 음식물 꾸러미를 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로진스가 깨어날 거라고 예상을 했던 모양

이다. 인간의 집중력은 아무리 좋다해도 체력에 기인하기 때문에 3일 이상은 힘들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코웃음을 치고 로진스는 음식을 마구 먹어댔다. 닭다리를 뜯어먹는 모습이 뼈까지 삼킬 듯 했다. 

단 10여분만에 상당한 양의 음식물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로진스는 만족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럼 가볼까‥." 

"자네들 먼저 가있어. 쫓아가도록 하지. 난 할 일이 남았어." 

손을 휘휘 저으며 노리스가 말했다. 그의 표정에서 미세하게 엿보이는 불안감에 츠바틴이 눈썹을 찡그리며 뭔가 말

을 하려고 했지만 노리스가 고개를 젓자 알았다는 듯 돌아섰다. 분위기 파악에는 요령이 없는 로진스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천천히 가도록 하지. 노리스가 길을 잃으면 안 되니까." 

"내가 그렇게 어린애로 보이나?" 

"어린애는 아니지만, 방향치는 마법으로도 못 고치는 불치병이잖아." 

마법사들은 괴짜다. 어떤 면으로는 괴팍한 늙은이 같고 어떻게 보면 어린애 같기도 하다. 로진스는 마법에 미칠 때

는 도저히 건들 수 없는 사람이지만 행동과 말투는 멋모르는 소년 같아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이 건물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창밖으로 바라보던 노리스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만 나오게. 할 말이 있어서 기다린 게 아니었나?" 

"역시 노리스로군요. 솔직히 당신에게 알아채지 못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테이블의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더니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플로먼들은  그림자 숨기라는 기술에 매우 능

했다. 이 기술은 사람들이 많을 때는 아주 뛰어난 무도가도 기척을 찾기 힘들었다. 그림자의 주인이 만든 기척이라

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플로먼 중에서도 엘리트에 가까운 노르벨의 그림자 숨기야 말할 것도  없었다. 노르벨은 털썩하고 의자에 엉덩이를 

깔았다. 몸에는 힘이 없어 보였지만 은연중에 예리함이 풀풀 날렸다. 그것이 살기임을 모르지 않는 노리스는 눈빛을 

가라앉혔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어쌔신의 순간 속도는 하나  하나가 검술가의 발도술을 능가한다. 잠시의 방심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요. 노리스의 말대로 난 얘기를 전하러 왔을 뿐이니까." 

"뭐지?" 

"난 그리스의 편입니다." 

"그리스가 아니라, 에즈민의 편이겠지." 

"훗‥."하고 노르벨은 미소를 지었다. 잔혹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미소에서 노리스는 역린(逆鱗)을 건드렸음을 깨달

았다. 몸이 떨릴 정도의 살기가 방 전체에 팽배했다. 암살자들은 살기를 숨기는데 능숙하다. 무도가들은 기(氣)를 내

보내고 거둬드리는 행위가 상당한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어렵다고 말한다. 살기도 기에 종류임에 틀림이 없었다. 노

르벨이 숨기지 않고 내뿜는 살기는 노리스를 압도할 지경이었다. 

'진정한 괴물이 숨어있었군.' 

내심 침을 삼키며 노리스를 이를 불끈 물었다. 어쩌면 살아서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유술사들

과 싸우면서도 들지 않던 가정이 떠오르다니 이상한 노릇이었다.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는 듯하던 노르벨. 그의 나사

가 채워진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꽤나 단단하게 채워졌어.' 

노리스는 무의식중에 검으로 손이 갔다. 손가락이 검 끝에 닿으려 할 때, 숨이 막히던 살기가 사라졌다. 

"아아‥ 죄송. 대화를 할려고 와서 이게 무슨 꼴인지‥. 누구의 편이든 간에 당신들과는 적입니다. 알겠지요? 난 방

금 전에 들은 내용을 그대로 그리스에게 전할 겁니다." 

"특이하군. 먼저 보고를 해야 정상이야." 

"역사의 고리 중에 정상이 있습니까?" 

"나 밖에 없겠지." 

"그러니까 당신은 정상일 수가 없는 겁니다." 

시답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웃어댄 노르벨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일피어론아드가 어찌 되건 난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힌트를 드리죠. 츠바틴

과 로진스에게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지금처럼 말인가?" 

노리스는 이를 갈며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뒤늦게 깨달았다. 노르벨은 가장 위협이 되는 자신을 츠바틴과  로진스에

게서 떨어뜨려 놓으려는 것이다. 지금쯤 두 사람은 노르벨의 수하에 의해 곤란한 상황이 되어 있겠지. 다리가 빨라

졌다. 그렇기에 그는 뒤에서 노르벨이 중얼거리는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이번에는 경고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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