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3화 (193/200)

                             47악장 슬픔이 흐르고 나야 눈물이 흐른다. 7화

츠바틴과 로진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히 산길을 따라서 갔겠지. 마법사나 학자나  걸음걸이

가 느긋하기는 매한가지일 테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고, 암습자들 또한 사람이 많은 벨루온에서 공격하기는 꺼렸

을 테니 빨리 간다면 아직 무사할 거라고 노리스는 판단했다. 

그의 예상이 맞았던 걸까? 츠바틴과 로진스는  무척이나 건강한 모습으로 산 너머의 강가에  앉아있었다.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로진스가 말했다. 

"노리스! 생각보다 빨리 왔잖아!" 

"그렇게 숨이 차게 뛰어올 필요 없었는데‥." 

싱글싱글하고 츠바틴도 중얼거렸다. 노리스는 '내가 왜 이런 놈들 때문에 뛰어야 하는 거지?'하고 한탄했지만 이내 

세일피어론아드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고 내심 다그쳤다. 말을 들어보니 지크  강을 건너기 위해 뱃사공을 기다리

는 중이라고 했다. 노리스가 집중해서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암습자의 기척은 찾을 수 없었다. 

"‥리스! 노리스! 뭘 하느라 그렇게 정신이 없나?" 

"아!? 미안하군.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저길 보라고‥. 배가 오고 있어." 

츠바틴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이 있는 지크 강의 나루터는 동부에서 벨루온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음으로 배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강폭도 엄청나게  넓어서 작은 배로는 손님들을 감당

할 수 없었다. 상선에 가까운 거대한 배가 나루터에 천천히 다가왔다. 

배가 나루터에 옆구리를 붙이고 사람들이 모두  내리자 츠바틴들은 갑판에 올랐다.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원래 수도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은 저녁에야 많아지므로 신경쓰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이상한 놈들은 없는 것 같군.' 

"노리스." 

츠바틴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를 툭쳤다. 의아하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왜 그렇게 굳어있는 거야? 마치 죽을 장소를 찾아온 사람 같잖아." 

"으음‥. 아니야." 

"혹시 시즈를 찾아가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러나?" 

노리스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제까지 적으로 지냈다고 친구가 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전쟁터에서 적과 친구는 

시시때때로 바뀌니 말이다. 전투의 경험이 많은 노리스의 얼굴가죽은 가면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충분히 두꺼웠다. 

"츠바틴, 자네 같으면 암습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암습!? 글쎄, 시장 같은 곳이겠지." 

"보는 눈이 적은 곳에서 한다면?" 

"역시 산이나 바닷가, 아니면 배도 좋겠지. 한정된 공간이니 사방이 막혀있거든. 승객이 문제겠지만‥." 

"그렇군." 

눈매가 가늘어지며 노리스는 검을 잡았다. 성스러운 회귀를 시작하려는 자들이다. 승객  몇 명이 걸릴 리가 없었다. 

오히려 노리스들을 사냥하기 위해 좋은 도구일  뿐이었다. 심각한 표정에서 낌새를 눈치챘는지  츠바틴이 팔꿈치로 

로진스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이 중에 몇 명은 암살자일 것이다.' 

그러나 노리스는 곧 암살자를 가려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을 향해 돌아선 

승객이 모두 품에서 단도와 칼을 비롯한 무기를 꺼내든 것이다. 

"하하‥. 그렇군. 전체가 암살자라면 승객을 죽이지 않아도 되지."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하늘을 찌르는 살기에 당황한 로진스가 뒷걸음질 쳤다. 앞을 주시하며 노리스가 대답했다. 

"노르벨이야. 노르벨의 복병이다." 

"그 녀석이 왜!? 아! 그렇군." 

로진스는 소리를 길게 지르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에즈민에 대한 노르벨의 집착은 진정한 남매(?)애를 넘어섰으

니까. 커다란 덩치 뒤로 츠바틴과 로진스를 밀어내고 노리스가 말했다. 

"로진스! 어떻게든 저쪽 강변으로 갈 수 있나?" 

"이봐, 이 넓은 지크 강을 무슨 수로 건너라는 거야. 아직 반도 못 왔다고!" 

"어떻게든 해봐. 이대로는 내가 힘들어. 자네들이 있으면 거추장스러울 뿐이야." 

"내가 마법을 쓰면‥." 

"저들은 대부분 암살자야. 그것도 아주 뛰어난‥. 노르벨이 동원했다면 플로먼들이다." 

그 말에 공기가 바뀌었다. 플로먼과 플로먼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플로먼이라는 어쌔신은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들은 절대로 협력하여 목표를 암살하지  않는다. 단, 예외는 있었다. 문제는 예외를 목표로 

움직일 때의 플로먼이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분담해서 상대를 공략한다. 10인 이상이 나선 공략에서 그들은 100%의 

성공률을 자랑했다. 플로먼이라는 이름이 드높아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플로먼이라고 해도 마법을 어쩌지는 못 하잖아!?" 

츠바틴이 로진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암살의 대상은  꼭 검사가 아니다. 

플로먼의 의뢰대상에는 검사보다도 마법사가 많았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마법사를 공격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

지만 플로먼들이라면 어디서든지 마법사를 죽일 수 있다. 

"마법이라고 해서 완벽한 방어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각종 마법마다 약점이 남아있지. 게다가 시전자의 집중력이

나 주의에 상당한 비중이 있어서 내가 신경쓰지 않는 곳이라면 마법의 세기도 약하게 전개돼." 

"그렇다면‥. 도망쳐야 겠군." 

"하지만 무슨 수로?" 

수면으로 도망칠 수는 없다. 암살자들은 수영에도 능하다. 수면과 마법의 반발력을 이용하는 방법도 힘들다. 단도와 

활이 그냥 있겠는가? 암살자의 주무기인데. 여러 가지를 계산하던 츠바틴은 한 가지를 꼽았다. 

"수중으로 가야겠군. 로진스, 가장 압력이 강한 주문을 영창해주겠나?"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걱정 마. 노리스는 그리 쉽게 밀리지 않을 테니까. 안 그런가?" 

"무리한 부탁이야." 

노리스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검을 뽑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드는 어쎄신들. 그는 침착하게 검을 하나하나  쳐냈

다. 뒤에서 중얼대는 로진스의 영창이 들렸다. 츠바틴에게 영감이 떠올랐다면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믿음은 확신을 

주고 확신은 힘을 준다. 노리스의 힘이 검끝까지 피어올랐다. 

"욱!" 

어쌔신들이 움찔거리고 멈칫했다. 그러나 잠시였을 뿐이다. 체계적으로 닦아온 합격술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들은 공격하는 부위도 계획적으로 검의 동선이 가장 긴 방향을 택해서 공격했다. 그러니 방어가 힘든 게 당연했다. 

"으윽! 아직 멀었어?" 

한 명의 어쌔신도 무섭고 십여 명만 해도 공포스럽다. 하지만 배 안에 탄 사람들이 모두 어쌔신인데 어쩌겠는가. 다

급한 노리스의 외침에도 츠바틴은 담담히 대꾸했다. 

"조금만 더 버텨." 

츠바틴은 힘이 없었다. 아마 어쌔신의 일격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어떻게 대답하건 간에 노리스에게 달려있는 책임

이었기에 그는 방관자의 입장을 취했다. 

"크윽!" 

무려 일곱 개의 암기를 동시에 쳐낸 노리스가 신음을 터뜨렸다. 왼쪽 어깨 깊숙이 박힌 단도가 붉게 빛났다. 그 때, 

로진스의 손에서 모인 마력이 주문의 영창으로 안정화되면서 준비를 끝냈다. 

"지금이다!" 

츠바틴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노리스는 두 사람을 양팔에 잡고 물로 뛰어내렸다. 칼을 집어넣을 새도 없었다. 뒤

로 칼이 수두룩하게 날아왔다. 

풍덩! 

세 명의 무게가 한꺼번에 떨어지자 상당한 깊이까지 들어갔다. 어느 정도가 되었다  싶자 로진스가 입을 쩍 벌리고 

공기방울을 뱉었다. 

꾸르르륵! 

그러자 손에서 강한 압력이 폭사됐다. 반발력은 대단해서 살이 쏠릴 정도의 속도로 그들은 쏘아져나갔다. 위에서 수

면위로 드러나길 기다리는 이들에게 한 어쌔신이 명령했다. 

"그만 둬. 돌아가자." 

"옛!? 하지만‥." 

"우리는 그냥 위협을 하라는 명령만 들었다. 그 이상할 필요없다." 

말을 끝낸 그는 모자를 쓰고 상인의 옷을 걸쳤다. 주름진 웃음을 짓는 그는 영락없는 과일장사였다. 수군수군‥. 그

들이 탄 배는 여느 배나 다름없이 건너편을 향해 유유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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