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4화 (194/200)

                             47악장 슬픔이 흐르고 나야 눈물이 흐른다. 8화

재물이 있는 자에게는 기회가 많다. 그러나 행운마저 넘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상인들은 위험을 감수하기  마련이

고 부자들은 호위를 둔다. 만약 돈은 많고 만만해 보인다면 시비를 걸어오는 이들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이틀 전에 묶었던 마을에서 이어졌던 기분이 싸그리 불쾌함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며 보를레스는 정면의 건달을  노

려보았다. 

"어쭈!? 노려봐? 그래! 싸움 좀 한다 이거지? 키 좀 크고, 칼 좀 찼다 이거지?" 

뱁새처럼 가느다란 눈을 가진 건달은 거만하게  고개를 15도 각도로 올리고 한쪽 다리를  달달거렸다. 그의 뒤에는 

10여명의 젊은이들이 몰려있었으니 거만할 만도 했다. 

"하.하.하‥." 

하지만 상대를 잘못 가렸다. 허탈하게 웃는 보를레스의 눈에는 어이없게만 보일 뿐이었다. 이런 지경에 이를 게 한 

장본인이면서 테이블의 음식을 먹느라 정신이 없는 시즈와 아리에가 얄미웠다. 

"유레민트, 여기는 음식을 잘하지 않는데도 비싸네요." 

"아, 아리에‥." 

태연하게 아리에가 말하자 유레민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보를레스는 먼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뭔가를 바란 내가 잘못이지‥." 

"이 놈들이 겁을 집어삼켰나. 왜 이래? 너희들 죽고 싶어?" 

이제는 단도까지 빼들고 협박이다. 왜 이런 일이 있어났는지 알고 싶다면 시즈가  음식을 시키기 전으로 돌아가 보

면 된다. 그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낼 때, 투명한 보석 하나가 또르륵 떨어졌다. 엄지손가락만한 보석은 종류가 무

엇이라고 해도 상당한 값이 분명했기에 음식점의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행색은 고루해 보이기까지 한 

청년이 그런 부자라니‥. 그들의 놀람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땅을 구르는 보석을 잽싸게 잡아챈 단발머리의 아

름다운 여인은 그것을 눈에 가까이 가져가 살펴보며 말했다. 

"이게 바로 성신석이라는 거지? 정말로 결정에 별들이 숨어있는 것 같네." 

어두운 방안에서 성신석에 빛을 비추면 우주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그 정도로 반짝인다는 뜻이다. 

안에 또 다른 우주가 들어있다는 보석, 성신석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자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일단의 무리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벌떡 일어서서 다가왔다. 손톱만 해도 몇 

만의 가치를 가진 성신석이다. 엄지손가락이라면 판단할 수 없는 값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 글쎄‥. 우리가 사업을 하는데 자금이 많이 쪼달려. 그래서 그런데 원조 좀 해주지." 

첫눈에 껄렁함과 협박성이 두드러진 말투였다. 보를레스가  천천히 거구를 일으켜 그들을 내려다보며  저리 가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수가 많이 붙었으니 뭐가 무섭겠는가. 아무리  장사라고 해도 한 번에 열 사람을 상대할 수는 

없다. 상대가 검사라고 해도 이들은 산에서 자라 상당한 근력과 싸움실력을  가졌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식사

를 하고 있는 청년은 아무리 잘 봐줘도 계집애나 다를 바 없이 허약해  보였고, 옆의 계집들은 뛰어난 미모를 가졌

으니 허약하다고 판단이 됐다. 산에서는 그저 우락부락해야 힘이 쎈 게 당연한 이치였다. 

"어이, 청년. 어서 말리라고. 저들은 이 주변에서 소문난 망나니들이야. 어지간한 무사는 힘을 못쓰고 당한다고." 

음식점의 주인이 살금살금 다가와 시즈에게 귓속말을 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저 사람은 어지간한 무사가 아니거든요." 

"어허‥. 위험하다니까. 저 망나니들은 보통 악독한 게 아니야. 큰 코를 다치고 나서는 이미 늦어요." 

다시 한 번 얘기했지만 시즈의 웃는 얼굴에서  주인은 그가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걸 이미  알았다. 혀를 쯧쯧차며 

돌아선 그는 종업원이 그들 옆으로 가까이 가지 못하게 카운터 안으로 데려가며 중얼거렸다. 

"저런, 저런‥. 누가 청년을 위해 그런 말 한 줄 아나‥. 아름다운 여인들이 위험하니까 그런 거라고." 

"이야아앗!" 

맨 앞에서 시비를 거는 사내가 첫 번째였다. 보를레스는 가볍게 그의 손목을 잡아서 던져버렸다. 기합처럼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건달 사내는 구석에 처박혔다. 그의 허리 대신에 테이블 하나가 쿠션 역할로 부서져 나갔다. 건달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떡 일어나서 꽥꽥 외치는 걸 보니 차라리 건달의 허리가 부서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뭐하는 거야? 그 녀석, 죽여버려!" 

"바닥에 팽기칠 걸 그랬군." 

"저 아까운 테이블‥." 

식당의 주인도 보를레스의 중얼거림에 은유적으로 동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아우성을  떠는 것은 뱁새눈 밖에 없었

다. 뒤의 건달들은 어디서 검을 수련한 이들처럼 천천히 보를레스를 노려보며 검을 뽑았다. 

'특이하군.' 

보를레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산골의 건달들이 어떻게 철장검을  가지고 있는 걸까. 맨 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는 등에 찬 검이 묵빛이 흐르는 게 강철이 틀림없었다. 

'주변 부호의 용병이라도 되는 건가?' 

눈썹부터 호랑이처럼 거칠게 뻗어 있어 외모만으로 카리스마가 흘렀다.  하지만 카리스마에서는 보를레스도 만만치 

않다. 숨은 하나 가득 들어 마시고 어깨로 앞에 있는 사내를 단숨에 들이박았다. 

"윽!?" 

뒤에 있던 무리가 힘을 합해서 사내를 잡았다. 하지만 보를레스의 담력검술은 엄청난 돌진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

다. 뒤에서 자세를 잡고 있던 두목까지 그 힘을 당하지 못하고 뒤로 벌렁 뒹굴었다. 

뒤를 돌아보고 눈을 찡긋하는 보를레스, 유레민트의 눈에는 제법 멋지게  보였는지 그녀는 엄지손가락을 쑥 내밀었

다. 아리에가 입은 손으로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하여간 힘 하나는 무식하게 강하다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리에 역시 보를레스의 기세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뒤에 있기에 여유있게 농담

을 주절댈 수 있는 것이다. 땅을 구른 건달들이 올려다 본 보를레스는 더욱 거대했다. 발악을 하듯 두 사내가 한꺼

번에 검을 내질렀다. 

"흐음‥." 

동시에 보를레스도 한 발을 쿡 벌리며 제뷔키어를 발검했다. 가는 금속성이 퍼지고 두 개의 검 조각이 허공으로 튕

겨 올랐다. 보를레스의 큰 발이 두 사내의 가슴에 차례로 작렬했다. 

"정말이지 귀찮게 하는 녀석들이군." 

"강하군." 

우두머리로 보이는 호랑이 눈썹이 앞으로 건달들을 재치고 나왔다. 아무래도 직접 상대를 해야 되겠다고 판단한 모

양이었다. 확실히 성신석이나 되는 거물인데 호위가 거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할 정도

로 성신석은 귀한 물품이었다. 

스륵! 

호랑이 눈썹은 펄쩍 뛰어올라 등의 바스터드 소드를 뽑아 내리쳤다. 빛이 번쩍하고 일어날 정도로 빠른 검격이었다. 

건달들은 주먹을 꽉 쥐고 탄성을 질렀고 음식점에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도 감탄성을 흘렸다. 하지만 보를레스는 웃

기지도 않는다는 묵묵한 표정으로 제뷔키어를 견고하게 들어 막았다. 

캉! 

힘에 겨운 듯 처지는 제뷔키어를 보며 호랑이 눈썹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람의 무게까지 실린 공격은 상상할 

수 없을 만치 강했다. 그는 이렇게 해서 사람만한 바위도 두쪽으로 가른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이내 일

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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