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남편의 손길 (33/101)


33화. 남편의 손길
20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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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기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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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의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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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무슨 컨셉이요. 아무 일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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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또 모르지.”

현조가 입가를 매만지며 하연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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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죠? 그 표정은?”

현조의 턱 아래서 기웃대던 하연이 그의 손을 잡아 내렸다.

방패 같았던 손이 사라지자 현조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웃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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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데?”

미미하게 씰룩거리는 그의 볼이 의심스러웠지만, 전체적으로는 평소와 같은 얼굴이었다.

엘리베이터 도착하는 소리에 의심을 거두고 그와 함께 내렸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하연이 현조를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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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좀 있다가 출발해요.”

차를 멈추게 하고선 그녀는 백에서 뭔가 꺼냈다. 조물조물 열심히 만지는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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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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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커치프 접을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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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웠어요. 현조 씨가 늘 행커치프를 하잖아요.”

이게 뭐라고 따로 배우기까지 하는 건지.

현조로선 이해 못 할 대목이지만 작은 것에도 항상 성실하게 임하는 하연이라서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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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조 씨 드레스 룸에서 하나 슬쩍 했어요. 색깔이 딱 맞는 게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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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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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랑 같은 색으로요.”

하연은 구두와 백을 가리키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색을 본 현조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연의 손에 든 행커치프는 분홍색 바탕에 흰 도트무늬였다.

색깔별로 있다고 해서 다 해 본 건 아니었다. 특히 분홍색은 현조와 거리가 먼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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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 됐어요. 퍼프드 폴드!”

현조는 늘 두 가지 모양으로만 했다. 포켓 위로 조금 올라오는 사각 모양과 한쪽만 솟은 삼각 모양.

하연이 만든 모양은 마치 커다란 꽃잎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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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리 와 봐요.”

하연은 상체를 내밀어 현조의 가슴 쪽으로 다가갔다.

손이 주머니에 손이 닿지 않아서 현조가 상체를 조금 틀어주었다. 그런데도 여의치 않아 하연은 무릎을 꿇고 시트 위로 올랐다.

위태로운 자세지만 거리가 딱 맞았다. 현조의 가슴 포켓에 조심스럽게 행커치프를 넣었다.

문득 뺨에서 더운 숨결이 느껴져 눈길을 돌리자, 그의 얼굴과 볼이 닿을 듯 가까웠다.

긴장한 하연이 얼른 마무리하고 급하게 몸을 빼내다가 풀썩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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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현조가 재빠르게 하연의 몸을 받쳐서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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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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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현조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영문을 몰라 눈을 끔뻑대다가 현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내렸다.

어? 제 손이 현조의 가슴을 꽉 움켜잡은 게 보였다.

탄탄하고 웅장한 근육이 손에서 선명하게 느껴졌다.

왜 이리 잡기가 편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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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현조가 잡힌 가슴을 내려다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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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연이 현조의 가슴에서 손을 떼려다 그가 배를 받치고 있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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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읍.”

재빨리 호흡을 들이켜 최대한 배를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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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왜 참아.”

갑자기 납작해진 배를 힐긋 살핀 그가 짓궂게 놀랐다.

정말인지 민망함에 차를 뚫고 솟아오르고 싶을 정도였다. 급기야 버둥대며 몸을 일으키다 차 천장에 정수리를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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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정수리를 문지르다 몸이 뒤로 쏠려 뒤통수가 창문에 또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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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야!”

머리를 문지르는 하연은 여전히 허둥지둥 수선을 떨어댔다.

웃으며 구경하던 현조가 안전띠를 풀고 몸을 하연에게 들이밀었다. 허리에 손을 넣어 그녀를 똑바로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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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

하연은 허리를 감아오는 감촉에 심장이 격하게 요동쳤다. 이러다 늑골을 뚫고 튀어나오는 건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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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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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한 슬랩스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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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랩…… 아니에요! 그런 거.”

뾰로통하게 대답하고는 창문을 내려 열 오른 얼굴을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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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어.”

얄미워.

*

현조가 하연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선봤던 호텔 레스토랑이었다.

현조와 하연이 들어서자 지배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룸이 아닌 홀로 안내를 받았다.

창가 자리에 앉은 하연은 밖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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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은 언제 어디서 보더라도 참 예뻐요.”

현조는 의자를 등에 기댄 채 그녀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조도 낮은 조명이 하연의 머리위에서 은은하게 떨어졌다.

일순 무대를 보는 것 같았다. 주위는 암전되고 단상 위에 하연이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은. 그래서 자연히 시선이 집중됐다.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늘따라 유독 예뻤다.

그러면 평소에는? 평소에도 예뻤다.

다만, 평소에는 의식 못 하다가 오늘 새삼스럽게 하연의 얼굴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인기척 소리에 현조가 하연에게로 향한 눈길을 걷었다.

하연은 지배인이 들고 온 샴페인 크기에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일반 샴페인 병보다 훨씬 커다란 사이즈로 은색 커버로 감싸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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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걸 어떻게 다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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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산 빈티지 화이트 제로보암입니다.”

지배인이 코르크를 열고 현조에게 보여준 뒤 샴페인을 조금 따라주었다.

맛을 본 현조가 고개를 짧게 끄덕였고 지배인은 하연에게도 따라주었다.

곧이어 케이크를 실은 카트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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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너무 예뻐요.”

하얀 케이크 위엔 분홍색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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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꽃 좋아한다고 특별히 주문했어요?”

주문은 비서가 했지만, 현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리 기대하는데 굳이 진실을 말할 필요가 없으니.

하연은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행복하게 웃었다.

생일날 혼자이지 않고 이렇게 예쁘게 꽃 케이크까지 받다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조가 지배인에게 눈치를 주자 지배인이 카트에 샴페인을 실어 손님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한 하연은 어깨를 짧게 올리며 현조에게 답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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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도 잔을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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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얼결에 잔을 들자, 현조가 잔을 부딪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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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 축하 겸, 생일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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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게 다…….”

하연은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웃으며 잔을 들어주었다.

현조는 놀란 하연을 구경하며 재킷 안에 들어 있던 상자를 꺼내 하연의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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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선물.”

덤덤히 선물은 내미는 현조의 모습에 하연은 목에서 이물감이 느껴져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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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평소와 다른 어감은 아니었다. 지극히 그 다운 무심하고 느릿한 말투.

표정도 그러했다. 느른한 얼굴로 약간 재미있다는 듯 하연을 바라보는 무감한 눈빛.

그런데 뭔가 달랐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하연은 온몸으로 느꼈다.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을 보이자 현조의 고개가 갸웃이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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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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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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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데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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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말 고마우면 눈물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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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콧물은 안 돼.”

하연은 울다가 웃었다. 그러다 다시 울었다.

현조가 팔을 뻗어 누진 뺨을 감쌌다. 엄지로 하연의 눈물을 천천히 쓸어냈다.

그의 손길에 얼굴이 덴 것처럼 화끈거려 눈물이 쑥 들어갔다.

단순히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내민 손길인 걸 아는데도 심장은 가만있질 못했다.

실상은 그저 계약관계일 뿐인데.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관계가 어떻든 착각하고 싶었다.

그의 사랑을 받는 진짜 부인이 되는 착각.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부인이 된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착각은 이내 강한 바람으로 이어지고 욕심을 만들어냈다. 그를 가지고 싶다는 욕심.

하지만 종내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할퀴어댄다.

그의 곁에 언제나 있고 싶다는 절절한 염원이 하연의 가슴에 여울쳤다.

음식이 나오고 현조가 손길을 거두었다.

하연은 남은 눈물을 닦으며 찰나지만 헛된 마음도 걷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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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풀어봐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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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행여 포장지가 찢어질까 봐 조심조심 뜯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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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네요?”

결혼반지보단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결혼반지를 빼서 내려놓고 선물 받은 반지를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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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너무 예뻐요.”

반지가 좀 큰 감이 있어서 손가락을 딱 붙여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다.

줄이면 되겠지.

현조가 손가락 사이즈를 알 리 없으니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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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그 손가락 아니야. 빼.”

어리둥절한 얼굴로 반지를 빼냈다.

현조는 반지를 뺏어 하연의 오른손을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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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현조의 손끝에 있던 반지가 하연의 검지에 끼워졌다. 반지는 손가락에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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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상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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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린 시절 새어머니가 밀어 넘어지면서 다친 상처였다.

가늘지만 손가락을 따라 둥근 모양으로 길게 난 상처를 현조가 우연히 본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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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처는 왜 이래? 좀 특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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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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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 못 할 상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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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밀어서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예요. 유리잔을 깨트렸다고. 하필 거기에 넘어졌거든요.’

 
당시 현조의 눈가가 구겨지는 걸 하연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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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역할을 너무 잘하시는 거 아니에요?”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으로 현조를 향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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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 역할만 하지만, 너는 아내 역할과 며느리 역할도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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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역할 아니에요.”

하연이 눈가를 꾹 누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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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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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부모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걸요. TV에서만 보던 분들이어서 처음엔 무서웠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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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보다 시댁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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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쾌활한 대답에 현조는 할 말을 잃었다.

하연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상한 곳에서 패배감이 들곤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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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거.”

현조는 아까 지배인이 두고 간 종이가방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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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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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선물.”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종이가방을 열었다.

설마.

종이가방 안에 있는 물건을 대강 눈치채고 콧등을 씰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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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렌징폼이랑 블러쉬야.”

물건을 주섬주섬 꺼내던 하연은 큼지막한 기계를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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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쉬네요? 왜 이리 무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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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이야. 편하게 쓰라고. 눌러 봐.”

버튼을 누르자 블러쉬가 뱅글뱅글 돌아갔다.

이걸 꼼꼼하다고 해야 하나, 세심하다고 해야 하나.

현조의 의도가 모호하긴 했지만 어쨌든, 선물이니까 기분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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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있어. 여성용으로.”

뭐가 더 있으려나.

종이가방 안에 얼굴을 밀어 넣다시피 해서 바닥에 있는 뭔가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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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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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 쓰지 말라고.”

두 번째 선물은 여성용 면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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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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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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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없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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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털이라도.”

하연은 현조를 향해 눈을 거들뜨며 노려보다가 다음 코스가 나오자 갑자기 표정을 풀었다.

그러고는 느릿한 동작으로 냅킨을 들어 입가를 톡톡, 닦은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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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얼른 드세요. 그리고 입가 좀 닦으세요. 당신도 참, 아이처럼 칠칠찮게 묻히고 그래요.”

높은 톤을 구사하며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입가에 묻히지도, 흘리지도 않고 정갈하게 먹는 현조였지만 하연은 부러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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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닦아야지. 아! 우리 오늘 호텔에서 묵고 갈까? 결혼 1주년인데 그냥 보낼 수 있나. 밤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오늘 밤은 왠지 길 것 같지 않아?”

현조의 반격에 하연의 커다란 눈동자가 좌우로 마구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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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일이기도 한데 분위기 한번 잡아야지.”

현조가 느긋하게 하연의 말을 기다릴 때, 옆에 있던 지배인이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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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해 놓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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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요!”

하연이 손바닥을 보이며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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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할 일이 있잖아요. 당신도 참.”

하연이 현조에게 항복의 의사로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지배인이 물러가자 하연이 아랫입술을 말아 물고 테이블 위에 있는 현조의 손을 톡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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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러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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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기 호흡을 맞췄을 뿐인데. 우린 배역이 부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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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나 먹어요.”

하연은 빨간 귀 끝을 살짝 만지며 셔벗을 먹었다.

몇 숟갈 먹다가 하연은 그만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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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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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조 씨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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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못 하는 게 없거든. 그리고 선물 하나 더 있어.”

현조가 옆 의자에 있던 포장된 상자 들어 하연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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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요?”

기대감과 의심이 서린 눈빛으로 현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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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한테 꼭 필요한 중요한 물건이야. 신경 써서 골랐어.”

신경 썼다는 말에 의심을 치우고 천천히 포장을 풀었다.

포장을 벗기자 상자가 나왔고 뚜껑을 열자 지류를 가늘게 자른 종이 스타핑이 나왔다.

도대체 뭘까.

종이 장식을 걷어내고도 내용물을 한눈에 알기 힘들어 손으로 집어 올렸다.

요리조리 둘러 보다 하연의 눈이 점점 커지고 입이 쩍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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