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아내를 이용한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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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아내를 이용한 나쁜 놈
20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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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선 설광태의 사진과 함께 불법 정치 자금에 대해 흘러나왔다.
[……설광태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그간 시의원과 구의원 출마하는 사람들로부터 당 공천 청탁과 함께 6억 원의 정치 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선거 기간 중 유권자들에게 고가의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다른 뉴스 채널을 돌리자 또 설광태 의원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번엔 정치 자금과 함께 다른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영상은 신호 위반에 걸려놓고 소리치는 모습이었다. 내가 누군 줄 아냐며 경찰의 멱살을 잡고 밀치는 장면이었다. 폭행죄와 공무집행방해죄도 추가될 모양이었다.
현조는 턱을 매만지며 뉴스를 경청했다.
국회 회기가 끝나자마자 구속이라.
그전엔 구속이 안 되니 정기 국회가 끝나는 시점을 기다렸다가 터진 뉴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도로 일을 진행할 사람은 바로.
현조는 앞에 앉은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남호가 또 다른 뉴스 채널을 찾아 화면을 돌렸다.
이번엔 갑질이었다. 광태가 아닌 하연의 새어머니 희숙의 관련 사건이었다.
한 식당 주차 요원에게 삿대질하며 욕하는 영상이 찍혀 있었다.
남호는 뉴스가 끝나기 전에 TV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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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이라는 작자가 이 꼴이 됐는데, 태상까지 망신살 뻗치겠구나. 이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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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라니요!”
현조의 목소리가 넓은 거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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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릴 감쪽같이 속여놓고 어디서 언성을 높이는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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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이 있는 곳이나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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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연이 다시 받아줄 생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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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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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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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하연이와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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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리는 모든 것을 다 내놓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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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참에 성도 바꾸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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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없다. 가 봐.”
남호는 알려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현조 역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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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 집과 맞지 않은 아이를 집에 들였을 때는 네가 사랑한다는 말 하나에 그리했다. 연애도 못 하는 자식이 병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싶어서 아무것도 안 따지고 결혼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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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하연이를 도와주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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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주도한 것이니까! 설마하니 하연이가 결혼하자고 할 리도 없고. 제 아비 때문에 억지로 결혼하는 것도 모자라 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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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현조야. 불쌍한 애를 너 역시 이용한 거잖니.”
상희까지 현조를 탓하고 나섰다.
현조는 뭐라고 말하려다 입만 달싹이다 닫았다.
당당한 얼굴로 이혼해줄 테니 결혼하자고 했던가.
별의별 추문을 다 들먹이며 깜찍하게 협박하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서 어룽거렸다.
하연의 이런 모습은 전혀 모르는 듯 부모님은 그녀를 연약하고 가녀린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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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이 먼저 결혼하자고 했단 말을 했다간 뒤로 넘어가시겠네.’
그녀를 여리게만 보는 두 분을 보며 하연이 연기 하나는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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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도와주셨어요? 설의원 구속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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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가 좀 구려야지. 어차피 터질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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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이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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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모르지. 멀리 간다고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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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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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넌 뭐하다가 이제야 이 난리냐!”
남호의 호통에 현조의 눈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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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하연이 있는 곳이나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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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애 실컷 이용하고 갑자기 하연이 필요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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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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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해줄 사람으로?”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하연이 어떻게 부모님을 구워삶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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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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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목숨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데. 설마 바람피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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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현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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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가 바람났다는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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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유가 어떻든, 사는 동안은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한 도리다. 그런데 여자가 있어? 에라이!”
그간 눈 뻘겋게 하연의 행방을 찾는데도 부모님이 모른척했던 건 아무래도 이 이유 같았다.
현조는 남호를 유심히 바라봤다. 한평생 어머니만 알고 산 아버지다. 다른 건 몰라도 한눈파는 건 용납 못 한다고 누누이 말해왔었다.
그러니 오죽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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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연이를 도와주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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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인 게 괘씸하긴 해도 다 네가 주도했으니 하연을 탓할 순 없지. 울면서 부탁하는데 안 들어줄 재간이 있어야지.”
남호는 눈물을 쏟는 하연의 모습이 떠올라 입안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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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울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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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울면서 왔다가 울면서 갔다.”
현조의 한숨이 길어졌다. 하연이 울면 난감해지는 건 비단 자신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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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너, 선은 어떻게 된 거니. 하연이와 선 자리는 없었는데.”
상희가 궁금했던 것을 현조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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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고검장 딸과 보려 했던 선 자리에 하연이 대신 나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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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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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의원이 그 선 자리를 팔아달라고 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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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도 대단하다.”
기가 찬 얼굴로 남호는 고개를 털며 냉수를 마셨다.
하연이 있는 곳을 말해주지 않는 남호와 대립하다가 현조가 머리를 꾹꾹 눌렀다.
수면 부족에 알코올 축적으로 두통이 심했다. 욱신욱신 대는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꽉 누를 때 집 안으로 누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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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도련님 웬일이세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쾌활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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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동서가 사라졌지. 참.”
걱정하는 것도, 비꼬는 것도 아닌 묘한 목소리였다.
현조가 눈매를 좁히며 수희를 보다가 수희 어깨에 손을 올린 현태를 바라봤다.
형이 웃고 있다? 나 빼고 뭔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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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도련님, 그거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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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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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생겼다면서요. 그럼 새 동서 생기는 건가요?”
현조의 한쪽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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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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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만큼 사랑한다지요? 누굴까. 나 너무 궁금하다. 안 그래요,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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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긴 하네. 현조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여자라니.”
형까지 거들자 현조는 기가 막혔다.
나를 뭐로 보고. 목숨만큼 사랑하는 상대가 있었으면 애초에 그 상대와 결혼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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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도련님이 목숨만큼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고는 믿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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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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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이 살짝 바람난 거겠지요.”
수희가 꺄르르 웃으며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살짝’의 양을 표현했다.
바람을 그 양만큼 피울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수희의 손가락을 본 현조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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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더 많이 난 거예요? 혹시 이 만큼?”
수희의 손가락이 점점 벌어졌다.
현조는 고개를 짧게 흔들고는 그녀를 외면해 버렸다.
하연과 사이가 좋은 건 별개로 예나 지금이나 얄미운 건 사라지지 않았다.
가만, 눈치 빠른 수희가 이런 분위기에서 되먹지 않는 농담을 한다? 그 사실이 현조의 뒤통수를 때렸다.
정신이 번뜩 든 그는 가만히 가족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곤 대화를 곱씹으며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선보러 온 하연을 자신이 이용해 결혼식을 올렸고,
설광태가 돈 받은 사실을 알고 본가로 찾아와 도망가게 해달라고 했고,
남호는 불쌍한 하연의 부탁을 들어주고, 더불어 설광태를 재기 불가능으로 만들었고,
나는 졸지에 하연을 이용하고 다른 여자를 만난 나쁜 놈이 되고,
그리고 하연을 숨기는 데는 모든 가족이 일조했고. 또 완벽하게 숨겼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현조는 조급함을 풀었다.
지금, 가족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제게 화를 내고 있다는 뜻이다.
하연은 안전한 곳에 숨겨놓고서는 말이다.
현조는 예의 느른한 표정을 지으며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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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앉아 보세요.”
그는 긴 한숨과 함께 하연과 결혼하게 된 이유를 먼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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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자리에서 하연이가 설 의원을 벗어날 수 있게 제가 도와주기로 한 겁니다.”
수갑까지 찰 마음으로 결혼할 수 있다고 다부지게 외치던 하연이었다고 말해봐야 믿을 사람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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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속이고 결혼했니?”
상희는 아들의 거짓말이 괘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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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미가 싫었고, 하연이는 숨 쉴 구멍이 필요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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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남미로 가기 싫다고 그런 불쌍한 애를 이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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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고작이라니요. 당시 제게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셨습니까. 한국 리조트 사업이 지지부진하고 있을 때 제가 들어와서 얼마나 사활을 걸었는데, 갑자기 남미라니, 그것도 부장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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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또 곧이곧대로 들었냐.”
남호의 한마디에 현조는 하도 어이가 없어 이상한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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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그렇게 애비 말을 잘 듣는 자식인 줄은 몰랐구나. 하도 일에만 매달려 사니까 주위도 좀 돌아보고 살란 뜻으로 한 말이다.”
허탈함을 느낀 현조가 물을 한 컵 다 비웠다. 어쩐지 아버지에게 속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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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불쌍한 애를 데리고 살면서 밥하게 했니? 처음엔 사람도 안 썼다면서.”
상희의 타박에 현조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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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닙니다. 물론 처음엔 서로 필요해서 결혼해서 살았지만, 살다 보니…….”
자신의 사생활을 남에게 설명해 본 적 없는 그라서 아무리 가족 앞이라도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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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사랑에 빠졌고요?”
수희가 툭 끼어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인상을 썼겠지만, 지금은 브레이크 없이 끼어드는 수희가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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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하연이를 많이 사랑합니다. 하연이가 사라지고 일상이 엉망이 될 만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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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른 여자는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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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
현조도 그 여자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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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가 말하더라고요. 같은 이름을 두 번 들었다고. 전화기에서 한 번, 문자에서 한 번. 이름이…… 아! 오채영. 그리고 처음에 그랬다면서요. 목숨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 알고 결혼하라고. 그러니 몇 번 반복된 이름이 당연히 그 사람 아니겠어요? 목숨 걸고 사랑한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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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현조는 어쩔 수 없이 오채영과 이규호에 대해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남호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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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천하에 몹쓸 놈들에게 돈을 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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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소니 잡으려 투자한 겁니다.”
현조는 그깟 일로 뭘 그러냐는 얼굴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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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찬다, 기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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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뺑소니 잡았으니, 날 도와준 여자도 찾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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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직도 그 사고에서 못 벗어 난 게야?”
남호는 그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지 찬물을 연신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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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조는 주머니에서 브로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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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이! 그걸 아직도 가지고 다니냐? 쯧!”
남호가 못마땅한 듯 혀를 짧게 찼다. 피 묻은 저 브로치를 들고 분명, 노란색 카디건을 입은 여자가 있었다며 찾아 달라고 했었다.
뇌가 다쳐 기억이 손상된 건 아닌지 남호는 전전긍긍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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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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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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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고 났을 때 하연이가 도와준 겁니다. 하연이는 알았고, 저는 몰라봤습니다.”
현조는 하진과 함께 찍은 하연의 사진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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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리고 간 사진입니다. 거기 옷 보시면 제가 한 말과 일치한단 걸 아버지는 아시지 않습니까.”
남호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사진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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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하연이 속초에 있었습니다. 실제로 하연의 삼촌이 그곳에 살았고 하연이와 언니가 방학 때마다 그곳에 일손을 돕는다고 왔다더군요. 다 확인했습니다.”
이가 빠진 슈퍼집 할머니의 발음이 어설프지만 않았어도 좀 더 빨리 찾았겠지만.
테이블에 놓인 브로치와 사진을 번갈아 보던 남호는 대뜸 아들을 타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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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잇, 못난 놈! 그걸 이제야 기억했다고? 그런 머리로 잘도 리조트 짓겠다.”
현조도 그토록 찾던 여자가 하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한 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계속 후회했었다.
하연은 끊임없이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는데.
현조는 하연이 했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속초에서 수영하다 해파리에 쏘였다는 말. 아프지 않냐며 가슴의 상처를 더듬던 손길. 비가 오면 다리 아프냐며 걱정하던 눈빛. 정확히 알고 있던 팬던트의 모양.
파란색 새를 알고 있던 하연은 처음부터 저라고 말하고 있었다.
왜 그 여자가 나였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내내 생각해보아도 그 부분은 의문이었다.
현조는 아버지 말대로 스스로 못난 놈이란 걸 인정해야 했다.
평생 틈이라곤 없던 인생이었지만 하연을 만나고선 아니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판단도, 감정도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어느새 하연은 현조에게 깊숙이 스며들어 모든 걸 뒤흔들어 놓았다.
현조의 공간과 시간, 그리고 심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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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설 의원은 어떻게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