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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당신은 좋은 사람이겠지만 (25/110)

#25화. 당신은 좋은 사람이겠지만2022.02.25.

성난 파도 같은 진의 공세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밀리다 ‘어어’ 하며 몸이 뒤로 넘어갔다. 진의 커다란 손이 내 허리를 받쳐 올렸다. 그래도 마지막은 부드럽게 내 입술을 달래며 물러갔다. 거대한 파도에 머리끝까지 삼켜졌던 나는 여전히 숨쉬기가 곤란했다. 키스가…… 이런 거였나? 불이었지? 물이었나? 바람? 나는 지구가 도는 걸 처음 발견한 과학자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내가 키스라고 생각했던 건 조금도 키스가 아니었다. 짝짝짝짝짝! 뷰글라스가 마지막 힘을 짜내는 듯 초췌한 모습으로 박수를 쳤다. 소녀 관객들의 박수를 전한 것이리라. 그래, 관객이 있었지. 진을 의식하느라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잠시 잊고 있었다. 진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너무나 궁금했지만 차마 그 얼굴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키스를 하고 난 다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집 안 가득했던 열기가 조금 가라앉자 미고가 다가와 내 손바닥에 뭔가 쓰기 시작했다. 박수를 마친 뷰글라스가 머리를 움켜쥔 채 쓰러져 있었기에 메시지를 전할 수 없었으므로. ‘고마워.’ 손바닥에 쓴 글자를 보고 콧등이 시큰해졌다. 이 기니피그 녀석이 사람을 아주 들었다 놨다 한다니까. 겨우 기운을 차린 뷰글라스가 비척비척 다가왔다. 그는 정말로 직업 정신이 투철한 심령사였다.

1654866304155.jpg“작은 아가씨가 레이디와 신사분께 따로따로 전할 말이 있으시답니다. 잠시 귀를 좀…….”

뷰글라스가 나와 진에게 각각 귓속말을 했다.

1654866304155.jpg“실은…… 안 해도 아무 상관…… 하지만 둘이…… 좋았지? ……진짜 해답은 ……에 있어…… 꼭.”

키스의 여파로 안 그래도 빙글빙글 도는 귓속을 파고든 이 어지러운 소리는…….

16548663041566.jpg“미고, 너!”

미고의 전언을 이해한 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린 동생에게까지 농락당하다니! 미고에게 직접 따지기 위해 도끼눈을 뜨고 찾아봤지만, 어디에서도 아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 * * 모든 것이 지나간 후 나는 다리에 힘이 스륵 풀렸다. 그대로 침대에서 지난 이틀을 보냈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이 무척 화창했다. 창 너머로 햇살 아래 수런거리는 정원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웃음이 나왔다. 윙크 자두가 아니라 웃음 체리라도 먹은 것 같았다. 공작저를 떠난 이후 거짓말 같은 일이 줄줄이 이어졌다.

16548663041566.jpg‘그런 난리도 없었지…….’

하지만 그와 같은 한바탕 소동이 없었다면. 아무 일 없이 이곳 토버마리로 와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컨트리 하우스에 무사히 짐을 풀었다면.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살 거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아마 난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생에 반복했던 것처럼 꽤 오랜 시간 우울증 약을 달고 살아야 했겠지. 나는 지금까지 일어난 황당한 일들을 떠올리며 숨이 가쁠 정도로 웃다가, 이번 생에 처음으로 실컷 울었다. 내 울음소리가 낯설었다. 새로 태어나기 위한 첫울음인 양, 나는 소리 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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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이틀을 풀 죽은 시금치처럼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 정신을 차려 보니 해치워야 할 일이 줄을 서 있었다. 미고가 떠나기 전 일러 준 것도 있고. 고 앙큼한 녀석이 사람을 실컷 갖고 놀더니 마지막까지 이상한 말을 툭 던지고 내뺀 게 아닌가. 나 혼자 이곳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게 배 아프다는 듯, 미고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다. 컨트리 하우스에서 가늘고 존재감 없이 여생을 보내려던 계획을 조금 손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무시하자니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 호기심을 자꾸만 찔러대는 이야기. 하지만 미고의 수수께끼보다 더 시급하고 난감한 문제는 역시. 진의 얼굴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니 다시 얼굴이 달아오르려고 해 나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러자 기분이 더 야릇해졌다. 어떡하지, 어떡해. 급한 일이 자나가고 나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떨 일만 남았다. 처음 잠에서 깼을 땐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16548663041566.jpg‘모든 게 꿈은 아닐까.’

그 모든 소동이 꿈이거나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이거나. 그건 그것대로 가슴이 허전해지는 일이긴 했지만. 몇 끼는 족히 굶은 나는 일어나자마자 맛있는 냄새를 좇아 식당으로 갔다. 마침 식사 때인지 진이 은 스푼으로 음식을 뒤적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 한결같은 모습에 왠지 안심이 됐다. 요리사 한스가 부글부글 화를 참고 있고, 그런 한스를 마델이 말리고, 집사 프랭클린이 한 발짝 뒤에서 고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뷰글라스와 시아, 휴고도 보였다. 꿈이 아니었다. 모두 무사했다. 안도감이 와락 밀려왔다.

16548663041566.jpg“한스, 내 몫도 있어요?”

인기척을 내자 깜짝 놀란 사용인들이 호들갑을 떨며 자리를 마련했다. 한바탕 안부 인사가 오갔고, 시아가 혹시 모른다며 물약 같은 걸 내게 뿌리면서 간단한 퇴마 의식을 했다.

16548663041566.jpg“모두 고마워요. 덕분에 미고를 잘 보냈어요.”

플럼 하우스의 가주로서 사람들에게 답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진은 늘 그렇듯 무슨 일이 있었냐는 표정이었다. 여느 식사 때와 마찬가지로 쫓기는 사람처럼 급하게 음식을 우걱우걱 씹어 삼키고 있었다. 오늘따라 오물거리는 진의 입술이 확대되어 보였다. 정작 음식은 저리 까다롭게 가리면서, 남의 입술은 푸딩이라도 되는 양 잘도 후루룩…….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다 괜히 열이 오른 뺨을 속으로 찰싹찰싹 때렸다.

16548663041566.jpg‘정신 차리자, 로제트.’

아무래도 퇴마 의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 시아, 여기 이 음란마귀 한 마리도 쫓아 버리라고요. 식사가 끝나자 나에게 볼일이 있는 사람들이 줄줄이 방문을 두드렸다. 가장 먼저 찾아온 이들은 뷰글라스와 시아였다. 원한다면 이곳에 계속 머물러도 좋다고 했지만 그들은 사양했다.

1654866304155.jpg“여기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저희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떠나야겠지요. 원래 떠돌이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만난 시간은 길지 않지만 희귀한 경험을 함께해서 그런지 오랜 친구와 헤어지는 것처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붙잡을 구실이 딱히 없었다. 정말로 마법진 그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며 붙잡고도 싶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떠날 것이냐 머물 것이냐, 본인들 스스로 가장 심사숙고했을 테니. 헤어지기 전에 뷰글라스는 몇 번 망설이다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1654866304155.jpg“제가 살아 있는 분들을 만난 것이 맞겠지요?”

조심스레 묻는 말에 내가 다 오싹해졌다.

16548663041566.jpg“그게 무슨 말이에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뷰글라스가 조심스레 말했다.

1654866304155.jpg“이런 말씀 드리면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참으로 괴이한 점이 있습니다.”

비밀을 지닌 사람으로서 살짝 긴장이 됐다.

1654866304155.jpg“작은 아가씨의 영혼과 레이디의 영혼 그리고 진이라는 신사분의 영혼에서 왜 비슷한 기운이 느껴질까요?”

16548663041566.jpg“어떤 식으로 비슷하다는 거죠?”

1654866304155.jpg“뭐랄까, 세 분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듯 아슬아슬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확실히 뷰글라스는 돌팔이가 아니었다.

1654866304155.jpg“제 말이 불쾌하시다면 사과드립니다. 한 분은 이미 이 세계에 속한 분이 아니고 두 분은 살아 계신 것이 분명한데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

유능한 심령사인 데다 미고의 메시지들을 직접 전했으니 이미 많은 것을 짐작하고 있을지 몰랐다.

1654866304155.jpg“언제라도 저희 재주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기별을 주십시오.”

16548663041566.jpg“어떻게 하면 당신들을 찾을 수 있지요?”

1654866304155.jpg“정보 길드에 잘 아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누구라도 찾아내니 걱정 마십시오.”

뷰글라스와 시아가 플럼 하우스를 떠났다. 한스와 마델이 바리바리 싸 준 윙크 자두 잼과 술을 잔뜩 안고서. 그러고 나자 프랭클린이 헛기침을 하며 어색하게 다가왔다.

1654866308557.jpg“아가씨, 전할 소식이 있습니다.”

이 말을 신호로 집안 분위기가 돌연 경직되는 게,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는 불행한 소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1654866308557.jpg“앰브로시아 후작 각하께서 기별을 보내셨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본성으로 와 달라고 하십니다.”

내가 오빠인 루이를 싫어하긴 하지만 뭐 대단한 소식은 아니었다. 다만 의아한 점은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본가에 얼쩡거릴까 봐 경계하던 루이가 웬일로? 늘 나를 피하다시피 하던 인간이 먼저 나를 불러들이다니? 그나마 이제 공작부인도 아니니 정말로 볼일이 없을 터인데. 이런 내 의문은 이어진 프랭클린의 말에 곧장 풀렸다.

1654866308557.jpg“본성에 카를슈테인 공작 전하가 와 계시다고 합니다.”

그럼 그렇지. 루이 그 인간 하는 짓이란 게.

1654866308557.jpg“가실 겁니까?”

프랭클린의 질문에 나는 새삼 깨달았다. 가지 않는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프랭클린이 루이의 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가야겠지. 안 그래도 프러너스에게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공작저를 떠나기 전날 보인 황당한 행동도 그렇고, 무엇보다 정보 길드에 내 뒷조사를 의뢰했다는 것도 심히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내 행동이 바뀐 탓에 그의 판단이나 행동도 바뀐 걸까. 그냥 지금껏 하던 대로 했으면 했다. 첫사랑 아젤리아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 물론 두 사람을 지극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내가 새 삶을 시작하기에, 아니 영원한 죽음을 시작하기에 홀가분하고 편할 것 같아서. 나는 지난 생이나 이번 생이나 결코 이타적인 사람은 못 된다. 그리고 혹시나, 설마 그런 수고까지 할까 싶지만, 프러너스가 이곳 토버마리의 집까지 오는 상황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내 마지막 안식처에 그가 발을 들여놓는 것만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16548663041566.jpg“가야죠.”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예사롭게 말했다.

1654866308557.jpg“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마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16548663041566.jpg“본가에 가는데 왜들 걱정이에요. 설마 후작 각하가 내게 해코지라도 하겠어요?”

다들 해코지하고도 남는다는 표정이었다. 루이가 사용인들 사이에서 인심을 많이 잃은 모양이었다. 타마린드가 후작부인이 된 후 더 심해진 것 같고.

1654866308557.jpg“아무리 그래도 귀부인 혼자 움직이시는 건 모양새가 그렇죠. 함께 오신 분이 이번에도 함께 가 주시면…….”

사용인들은 진이 본성에 함께 가 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하긴 키스하는 모습을 그렇게나 요란하게 보였으니 각별한 사이라고 오해할 만도 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번만큼은 진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미 충분히 엉뚱한 일에 휘말렸다. 아무리 그의 목숨을 구해 준 대가였다고 우겨 본다 해도 말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번 일은 진에게만큼은 더더욱 보이기 싫었다. 내가 아무리 막다른 절벽까지 내몰린 여자라 해도, 온 제국의 가십지가 나에 대해 별별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떠든다 해도.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키스 연기를 겨룬 상대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16548663041566.jpg“내일 바로 출발할 테니 마차를 준비해 줘요.”

  * * *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나 보다. 프러너스와 만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온통 신경이 쏠려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1654866308557.jpg“아가씨, 괜찮으시죠?”

마차에 오른 후 집사 프랭클린이 이렇게 물었을 때도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그 말에서 미묘한 인상을 받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앰브로시아 본 저택까지는 하루가 꼬박 걸렸기에 이른 시각에 일찍 출발해야 했다. 그렇게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창밖으로 동이 터오는 것을 멍하니 보며 앉아 있었다. 진이 마차에 훌쩍 올라타더니 방만한 자세로 기대앉기 전까지.

16548663041566.jpg“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내가 뾰족한 얼굴로 톡 쏘았다.

16548663111863.jpg“남의 마차에 타고서 할 소리는 아니군.”

그러고 보니 그리치에서 토버마리까지 타고 온 마차였다.

1654866308557.jpg“레이디, 출발하겠습니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마부석에서 들려 온 건 휴고의 신바람 난 목소리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토버마리에 도착할 때 모습 그대로 앰브로시아 본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제야 프랭클린의 ‘괜찮으시죠?’가 무슨 뜻인지 이해됐다.

16548663041566.jpg“왜 이러는 거예요?”

16548663111863.jpg“애초에 호위와 마차를 제공하기로 계약했고.”

16548663041566.jpg“그건 그리치에서 토버마리까지 해당되는 얘기잖아요.”

16548663111863.jpg“당신 사용인들이 하도 사정해서.”

16548663041566.jpg“사용인들이요?”

16548663111863.jpg“우리 아가씨 혼자 가시면 큰일 난다고, 만일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더군. 주인에게 제대로 배웠던데?”

16548663041566.jpg“말도 안 돼. 내가 무슨 연약한 어린애도 아니고.”

16548663111863.jpg“그러게 말이야. 사용인들 앞에서는 노래를 한 번도 안 불렀나? 자기 주인에게 치명적인 무기가 있는지 모르더군.”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튕겨 냈다. 진은 성가셔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리를 쭉 뻗고 좌석에 깊이 기댔다.

16548663111863.jpg“난 좀 잘 테니까.”

그가 눈을 감자 볼 때마다 의외라고 생각하는 긴 속눈썹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쓸데없이 예뻤다. 지금까지 겪은 진은 품위 없고 껄렁껄렁하고 삐딱했지만 참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 내 인생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 그러니 나는 진을 의심할 수밖에. 지금까지 내 삶에 등장한 사람들은 대부분 내게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사람들이었다. 하다못해 프러너스와의 결혼도 귀족에게 흔한 정략결혼이었다. 물론 프러너스와 내가 서로에게 바랐던 바는 많이 달랐지만. 내 소꿉친구인 웰츠 백작의 아내 레이디 올랜도가 별로 살갑지도 않은 나를 지극 정성으로 챙겨 주었지만, 그런 그녀 역시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간 남편의 외도에 눈이 뒤집혀 제정신이 아닌 나를 이용해 먹으려고 그악스레 달라붙었던 수많은 사기꾼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데 이제 와서 정말로 좋은 사람이 내 삶에도 찾아왔다고? 그런 행운이 과연 내 것일 수 있을까? 내가 필요할 때마다 진에게 무리한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뻔뻔하게 나는. 나 자신이 다치지 않기 위해 진을 믿지 않기로 했다. * * * 웬일로 루이 앰브로시아 후작께서 로비까지 나와 직접 나를 맞이했다. 얼마나 치사한 짓을 하려고 이러는 건지 벌써부터 기분이 매우 찝찝했다.

1654866308557.jpg“로제트 카를슈테인, 공작부인씩이나 되는 이가 사리 분별이 그렇게 없어서야.”

역시나 재수 없는 목소리로 나를 카를슈테인이라 지껄인 루이는 나와 동행한 진을 알아보고는 인상을 구겼다.

1654866308557.jpg“세상이 참으로 천박하게 돌아가는군.”

루이는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 으르렁거렸다.

1654866308557.jpg“공작의 인내심을 더 이상 시험하지 말도록. 네게 자비를 베푸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걸 명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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