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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당신은 방탕 황자, 나는 (38/110)


#38화. 당신은 방탕 황자, 나는
2022.04.11.


아침부터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날, 페가수스에서 두 가지 소식이 날아들었다.

자문단의 고명하신 귀족들에게 동정표를 얻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그리고 쓰느라 부산을 떨었더니, 저택의 사용인들까지 결과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2차 청원 기각. 판결에 대한 자문단 의견은 이의 없음.

이변은 없었다.

잘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는 흔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지난 열여섯 번의 삶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알지만, 정성을 들였던 만큼 기운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소송 결과에 덧붙여 전해 온 사교계 근황이야말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가 이혼 청원을 위해 정성 들여 만든 그 버섯 그림엽서들이 암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는 게 아닌가.

엽서 뒷면에 내 진심과 간절함을 담아 한 자 한 자 눌러 쓴 편지가 그대로 박힌 채로.

거리에서 알몸으로 춤을 춰도 이보다는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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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간들 하는 짓이 그렇지. 내가 그 닳고 닳은 속물들에게 대체 뭘 바란 걸까!’

아무리 그래도 어쩜 이럴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절절한 바람이 담긴 서신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는지.

이 어처구니없는 소식에 위안이랍시고 덧붙인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다.

그 버섯 그림들이 미술품 시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버섯들의 몸값이 연일 치솟는데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어떤 부호는 버섯 종류별로 전부 수집하고 싶어 한다나.

그 일을 두고 호사가들이 신나게 입방아를 찧었음은 물론이다.

내 버섯 그림들 중에서도 이혼을 희망하는 서신이 담긴 이 그림들은 다음과 같은 명칭으로 불린다고.

버섯 부인의 독버섯 시리즈, 버섯 부인의 이혼 열망 시리즈, 레이디 머시룸 컬렉션.

버섯 부인은 물론 나다.

마음대로 버섯 부인이라니!

내가 그린 게 버섯이 맞고 내가 부인인 것도 맞지만, 민망하기 짝이 없는 별호였다. 내가 버섯 부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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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마시죠.”

내 앞에 다리를 꼬고 기대앉은 진에게 괜한 화살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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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웃었다고?”

진이 간만에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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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진작 나한테 그림을 넘길 것이지. 엉뚱한 인간들 좋은 일이나 실컷 하고, 쯧쯧.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잖아?”

나의 생떼에 진이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장단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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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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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그래서 아주 고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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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한 것보다 흐뭇하지. 그때 버섯 그림을 받아 두길 잘했지. 서명과 날짜를 받아 둔 건 신의 한 수였고. 내 소장품은 말이야, 이혼 열망 시리즈가 아닌 퓨어 시리즈의 1호 작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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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어 시리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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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만큼 소장 가치가 아주 높지.”

영혼이 탈탈 털린 기분이었다.

염원하던 이혼에는 눈곱만큼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그저 귀족의 노리개로 전락해 버린 내 버섯들이여.

이로써 엉뚱한 유명세만 잔뜩 얻고 남사스러운 별호만 생기게 되었다.

별호로 유명한 사람이 여기 한 명 더 있었지.

방탕 황자와 버섯 부인이라. 정말 소름 돋는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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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말린에 가는 일은 어떻게 됐어? 그때 몇 개월 후에 갈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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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혹시 구직 신청서를 낸 레이디? 구직에 그다지 목을 매진 않나 봅니다. 고용주를 반말로 윽박지르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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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되었습니까, 보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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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국을 뜨고 싶기라도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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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좌절감과 수치심이 밀려와서 외국으로 도망이라도 가고 싶어. 이대로는 치욕의 역사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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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이혼 소송 중인 귀부인을 외국으로 빼돌린 희대의 망나니라는 악명을 추가하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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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로는 이미 명성이 자자하지 않으십니까. 하나 더한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전하.”

내가 존대하며 이죽거리는 걸 가만히 두고 보던 진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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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너스를 없애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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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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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뭐가 꿀려서 도망을 가나. 안 그래? 그러느니 차라리 놈을 처치하는 게 빠르지. 말만 해.”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다고 죽이는 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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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안 돼. 프러너스가 죽으면 아젤리아랑 아이는 어떡하라고.”

살벌한 눈빛을 하고 있던 진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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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가 차는군. 그런 이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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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죽이는 건 너무 쉽지. 그렇게 쉽고 편하게 끝낼 순 없어.”

진의 입꼬리가 소리 없이 올라가는 걸 보며 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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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병장수해서 가능한 한 오래오래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할 기회를 주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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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처음부터 당신은 쉽고 빠른 결과보다는 명예로운 과정을 원했지.”

진이 나도 잊고 있었던 목표를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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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하말린에 가더라도 일 때문에 가는 거지, 놈을 피해 도망가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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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페가수스엔 중요한 일일 텐데, 그런 식으로 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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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말린에 갈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버섯을 좀 더 빠르게 많이 그려 보는 건 어때? 이번엔 과정보다는 쉽고 빠른 결과를 노려 봐도 좋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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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어?”

나는 진을 흘겨보다 쑥스러움을 감추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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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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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이 얼마나 셈에 냉정한 족속들인지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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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끔 제정신이 아닐 때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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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 안목을 믿어. 난 반만 황족이잖아. 그만큼 균형감이 있지.”

그 사실을 장점으로 써먹깁니까. 새삼 경외의 눈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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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한테 준 그 슬픈 암살자란 독버섯 그림은 색이 무척 오묘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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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그 빛깔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 내가 염료에 얼마나 신경을 썼게. 앤한테 얻은 비법대로 광물을 채취하고 돌가루를 개어서 어렵게 만든 염료라니까,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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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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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소작 농가의 아이인데, 무척 영리하고 야무진 소녀야. 어린 나이에 벌써 정보를 거래하는 수완이 대단하다니까. 내 특급 해결사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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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가수스에 스카우트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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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요새 앤을 통 못 봤네. 벌써 몇 번은 자기 정보를 팔러 왔어야 하는데.”

근래 이혼 청원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나는 문득 그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몇 발짝 뒤에서 시중을 들던 마델이 다가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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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앤의 소식을 모르시지요. 실은 앤이 가출한 지 사흘이 지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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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가출이라니? 무엇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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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게…… 진학 문제를 놓고 부모와 갈등이 있었다고요.”

앤 같이 영리한 소녀라면 충분히 진학을 욕심낼 만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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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 때문인가? 그 정도는 내가 지원해 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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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도 문제지만, 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직업학교가 아닌 칼리지라서 아버지인 존슨 씨가 난감해했답니다.”

직업학교는 평민들이 취업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곳이었고, 칼리지는 하급 귀족이나 준 귀족, 부유한 평민 출신들이 다니는 고등 교육기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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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칼리지는 평민에게도 문이 열려 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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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도 평민 나름이지요. 이 구석진 시골의 소작농 여식에겐 멀고도 먼 일입니다.”

내가 아는 앤은, 확실히 직업학교로 만족할 아이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진을 쳐다보자 진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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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이름 있는 귀족이나 황족의 추천장이 있으면 입학시험을 치를 자격은 준다더군.”

차라리 방법이 없다고 하시죠.

그리치에서도 한참 떨어진 동부의 후미진 시골 마을 출신이 고위 귀족이나 황족의 추천장을 받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그나마 입학을 허가해 주는 것도 아니고 입학시험을 치를 자격을 준다?

미미고 풀 뜯어 먹는 소리지.

정말이지 제국의 제도란 제도는 죄다 썩을 대로 썩은 걸까.

법이라고 정해 놓은 것들이 전부 사람 웃기려고 작정한 것들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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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을 찾는 일이 가장 급한 것 같은데. 여기서 가까운 대도시인 그리치로 갔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 사람을 풀어 찾아보도록 하지.”

진이 탈라리아 메신저를 꺼내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앤이 아무리 영리하다 해도 아직은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그런 앤에게 그리치는 거칠고 위험한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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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진.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앤도 참.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털어놓고 상의를 하지.

나의 불운에 더해 앤의 불운까지 생각하려니 마음이 복잡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이 한 몸 건사하며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여생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랬는데…….

세상이 자꾸만 내 못된 뿔을 건드린다. 간섭하고 책임지고 싶은 일과 사람이 늘어 간다.

이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제 코가 석 자인 주제에 누가 누구 인생에 참견하겠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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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가수스에서 금세 찾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마.”

내 표정이 복잡해 보였는지, 책임 1호가 툭 내뱉듯 말했다.

저렇게 무심한 듯 다정하니까, 나로서는 참견하지 않을 수가 없다.

* * *

앤은 진의 짐작대로 그리치의 뒷골목에서 발견되었다.

일자리 알선 사기단에 걸려 쥐도 새도 모르게 팔려 가기 직전, 페가수스 직원들이 구해 냈다고 한다.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다. 앤은 놀라서 얼이 빠졌던 것도 잠시, 금세 흥분해서는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 얘기를 듣는 어른들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과 페가수스 직원들에게 큰 빚을 졌다. 이 은혜는 꼭 갚아야지.

앤은 진학이 불가능하다면 칼리지의 잡역부로 취직해 몰래 수업을 엿들을 계획이었다고 했다.

참 맹랑하고도 당찬 꼬마 아가씨가 아닐 수 없었다.

귀족의 추천장이라…….

내가 여전히 카를슈테인 공작부인이거나, 하다못해 루이라면 앤에게 더 도움이 됐을까.

씁쓸했다. 내가 가치 없다 비웃은 것들 앞에서 작아지는 이 무력한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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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약소하지만 이거 받아 주세요. 가출하느라 미처 전해 드리지 못한 염료 제조법이에요. 이번엔 1실버 안 주셔도 돼요. 구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앤은 이렇게 인사하며 꼬깃꼬깃 접힌 쪽지를 내밀었다.

얼결에 쪽지를 받아 든 내 머릿속에 번쩍하고 깨달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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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나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지.’

레이디 앰브로시아는 별 볼 일 없을지 몰라도, 버섯 부인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질지도.

* * *

나는 앤을 후원하는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사교계 유명인사인 버섯 부인이 장래가 촉망되는 영재를 후원하기 위해 한정판 퓨어 시리즈를 선보이는 자리.

요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버섯 부인에게 전시회 초청장을 받는 일은 귀족들 사이에서 꽤 자랑거리가 될 터.

전시장을 찾은 귀족들에게 그림 몇 점 팔고, 칼리지 추천장에 서명을 받을 셈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 선보일 야심작이 하나 더 있었다.

버섯 그림엽서 책.

그림을 컬러 인쇄해 작은 도록 형태로 묶은 것으로, 낱장씩 뜯어 엽서로도 쓸 수 있게 만들 계획이었다.

사실 반 년 후에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 물건이지만, 내가 먼저 가로채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 그림엽서 책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는 게 바로 프러너스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외국의 그림을 무단으로 도용해 만든 것이었다.

외교 사절이나 상단의 대표로 자주 외국을 방문하는 그는, 그곳 무명 화가의 작품을 점찍어 두었다가 그런 식으로 이용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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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엽서 책을 어디서 만들 거라고?”

이제 별로 놀라지도 않는 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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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긴요, 전하. 당연히 페가수스죠. 내가 지난번에 봤거든. 2층에 인쇄기 있는 거.”

페가수스 정도의 정보 길드라면 인쇄기는 당연히 갖추고 있을 터였다.

나는 책임 1호와 함께 마차를 타고 그리치로 가는 중이다.

책임 2호를 후원하는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덕분에 책임 3호가 탄생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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