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알고 보면 쌍둥이인 것들 (84/110)


#84화. 알고 보면 쌍둥이인 것들
2022.09.19.



 
황제가 몽펠리가를 반역죄로 처단할 것이라는 소문을 귀족들에게 흘릴 때, 당연히 이자를 빠뜨리지 않았다.

강한 이에게 조아리고 약한 이에게 잔인하게 구는 비겁한 자이기에 유난스럽게 몸을 사리겠지만.

가십지 〈팩트〉의 기자 척 슈발럼.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무지몽매한 인간들쯤은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다는 오만과 자아도취가 그것이었다.

그 오만과 과시욕이 가끔 어울리지 않게 위험을 무릅쓰도록 만들었다.

그건 약도 없는 병이어서, 끊임없이 미끼를 살랑거리며 기다리면.


‘물지 않고는 못 배기지.’

나는 탈라리아 메신저를 들여다보며 조소를 머금었다.

이번 일과 자신을 엮지 말라며 사납게 짖어 대던 슈발럼은 결국 먼저 연락을 해 왔다. 특종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잠이 안 왔을 테지.

카를슈테인과 황제가 일부러 마수를 사육하고 있다는 증거를 잡아 대형 정치 스캔들을 터뜨리는 것이 이번에 슈발럼이 맡게 될 임무다.

그는 이참에 영웅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다른 사람들을 속여 왔던 그는, 이번엔 끝없이 자기 자신을 속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생에 내가 슈발럼을 위해 준비한 특별한 선물이자 소소한 복수였다.

영웅 놀음에 등이 떠밀린 슈발럼 덕분에 백성들에게 등이 떠밀린 귀족들이 황위 교체를 울며 겨자 먹기로 지지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나의 계획이다.

이처럼 나는 비뚤어진 책략가다.

귀족들과 가십지 기자들에게 어떠한 진심 어린 반성이나 깨우침도 기대하지 않는 게 내 기본적인 입장이니까. 여러 생을 통해 체득한 슬픈 결론이었다.

너무 감상적인 통치관인지 몰라도, 나쁜 사람이 좋은 선택을 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도 종종 실패한 정책을 내놓기는 하지만, 나쁜 사람이 어떤 부분만 올바르게 처리하는 법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 우리 진이 황제가 되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르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다 이거지.

물론 변화 자체를 바라지 않는 무리가 언제나 있겠지만, 그래서 나같이 불신과 회의로 담금질된 심술궂은 책사가 필요한 것이다.

스캔들의 극본을 짜는 일은 플록스와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성실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꽤 악랄한 구상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는 능력자인 데다, 내 비밀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기에 대하기가 편했다.

또 내겐 언제나 잘해 주었던 사람이고. 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기도 하고?

여하튼 조합이 잘 맞는 우리는 함께 슈발럼과 접선할 장소로 갔다.

평민 거리에 있는 화원 ‘꽃과 나무’에 들어선 나는 잠시 멈칫했다.

꽃에 둘러싸인 슈발럼도 소름 돋게 안 어울렸지만, 화원 주인인 듯 앞치마를 하고 우리를 맞이한 이도 이곳과 안 어울리기는 마찬가지였기에.

사냥매처럼 날카로운 눈매, 떡 벌어진 어깨와 근육이 불거진 굵은 팔, 우울해 보이는 눈 밑 다크 서클과 얼굴의 상처까지.

아무리 봐도 화원 주인은커녕 꽃으로도 사람을 때려서 보낼 수 있을 분위기인데.

게다가 더 중요한 건,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라는 점이었다. 언제 어디서 봤더라? 낯이 익은데…….


“레이디 M, 오랜만에 뵙습니다.”

능구렁이 같은 웃음을 머금고 다가온 슈발럼 때문에 나는 다시 현실의 문제로 돌아왔다.

슈발럼에게도 호칭을 단속해 두었고, 그는 별로 문제 삼지 않고 받아들였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됐을 때,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발뺌하는 게 그에게도 유리할 것이므로

우리 세 사람은 누가 봐도 수상쩍은 화원의 비밀 방으로 안내됐다.


“곧 동부의 변두리 지역부터 시작해서 마수가 출몰할 겁니다.”

메모할 자세를 취하고 있던 슈발럼이 내 말에 황당한 표정으로 필기도구를 내려놓았다.


“아, 이런, 레이디. 몽펠리 건도 그랬지만, 이러다 제 심장이 남아나지 않겠습니다. 마수요?”

마수는 백여 년 전에 제국에서 사라진 존재였으니, 슈발럼의 반응도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믿지 못할 말이 실현된 경우가 존재하므로 그도 함부로 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그 대단한 몽펠리가 그렇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죄송합니다, 너무 갑작스런 말씀이라. 그 마수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랍니까?”

불쾌하게 바라보는 플록스의 눈초리에 슈발럼이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물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걸 밝혀내는 게 남작의 역할이겠죠.”

“예?”

“왜요? 남작이라면 충분히 해낼 능력이 있을 거라 판단했는데.”

“……다른 정보는 더 없습니까?”

“이건 다른 얘긴데, 황제 폐하께서 그렇게 동물을 좋아하신다면서요? 카를슈테인 공작의 지휘 하에 애견 육성을 황실 사업으로 채택하셨다더군요.”

내 말에 슈발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수작이지? 딱 그런 표정이었다.


“그 애견 사육장이 어디 있는 줄 알아요? 에인절스 딤플, 제도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죠. 카를슈테인 가문의 페트룸 광산이 있던 곳인데, 지금은 폐광이 돼 인적도 드물고, 뭔가 은밀하게 추진하기에 딱이죠.”

“설마…….”

“아마 남작의 촉이 맞을 겁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앉은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던 슈발럼은 답답하다는 듯 내뱉었다.


“아니, 대체 이유가?”

“글쎄요, 무척이나 두려운 것이 있나 보다, 짐작할 뿐입니다.”

“정말로 애견 사육장이면…….”

“아니, 남작님, 내가 뭐랬죠? 애견 사육장이라고 했을 텐데? 그러니 더욱 문제없는 거 아닙니까?”

“그, 그렇죠.”

슈발럼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니까. 나는 예전의 카를슈테인 공작부인도, 레이디 앰브로시아도 아닌, 레이디 M이라니까.


“이번 일, 공작이 단독으로 벌인 걸까요, 황제도 알고 있는 걸까요?”

슈발럼이 모르는 척하며 물어 왔다.


“남작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지금 단계에선 열린 결말이란 걸. 그래서 꼼꼼한 취재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현장에서 순발력 있게 판단해야죠. 둘 다 잡는 것과 하나만 집중적으로 족치는 것, 어느 쪽이 유리할지.”

“레이디께서 저보다 훨씬 전문가십니다.”

“설마요, 남작을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그저 연극을 좋아해서 즐겨 봤을 뿐이랍니다.”

말이 길어지는 것 같았는지, 중간에 플록스가 끼어들었다.


“마수가 출몰하기 전에 에인절스 딤플에 관한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안전하겠지요.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준비해 온 가방을 슈발럼에게 건넸다. 꽤 넉넉한 뒷돈을 확인한 그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번졌다.


“아니, 뭘 이런 걸 다.”

“앞으로 고생하실 텐데, 소소한 추진비라고 생각해 줘요. 진행하면서 더 필요한 금액은 청구하고요.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떠맡아 주었으니 조금 더 신경 쓸게요.”

내 말에 슈발럼이 짐짓 심각한 얼굴을 가장하더니 말했다.


“레이디께서 오해하고 계신 듯해서 말입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늘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한다는 사명감으로 임해 왔습니다.”

스스로는 정말로 그렇게 믿는 듯한 표정이어서 소름이었다. 가십으로 정의 구현이라, 설마 농담 같은 거겠지?


“그렇다면 이번이 더없이 좋은 기회군요. 남작의 큰 뜻을 펼칠.”

농담에는 농담으로 화답해 주었다.


 
구체적인 사안을 조금 더 논의한 뒤, 슈발럼이 먼저 화원을 나섰다.

플록스와 둘만 남게 되자 나는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얼른 물었다.


“이 화원 진짜 화원이 아니죠? 저 주인도.”

“예? 진짜 화원입니다만. 저 주인도 진짜고.”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고, 화원에 웬 비밀 방? 페가수스 길드원인가요?”

“반은 길드원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엄밀히 말하면 그의 쌍둥이 형이 길드원이죠.”

“쌍둥이요?”

“앞으로 이곳에 종종 들르게 될 테니, 레이디께서도 사정을 알아 두시는 게 좋겠군요. 실은 이곳 주인의 쌍둥이 형 윈터가 암살 길드에 속해 있는데 알아주는 실력자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플록스는 목소리를 한층 낮추고 이어서 말했다.


“페가수스의 첩자이기도 하고요. 평소에는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며 정체를 감추고 있지요.”

호텔? 아, 생각났다! 화원 주인 닮은 사람을 어디에서 봤는지.

그래,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그쪽이 훨씬 더 냉정하고 날렵한 느낌이었지.

지난 생에 만난 웰츠 호텔의 지배인. 그가 이 화원 주인의 쌍둥이 형이자 솜씨 좋은 암살자이며 페가수스의 첩자임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생에 처음 그리치에 와서 진의 정보 길드를 수소문할 때, 페가수스에 대해 알려 준 것도 그였다. 첫인상이 범상치 않아 물어본 것이었는데, 역시.

그리고 지난 생엔 미처 신경 쓸 여유가 없어 지나치고 만 고마운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암살 길드에 심어 놓은 우리 쪽 첩자한테 연락이 왔어. 천만다행으로 그가 당신을 알고 있어서.」

덕분에 올랜도의 암살 의뢰 사실을 알게 된 진이 제도까지 급히 달려왔고, 뜻하지 않게 황후와 맞닥뜨린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지.

나도 모르는 사이 윈터에게 많은 신세를 진 셈이었다. 이번 생에야 좀 이상한 경로로 알게 되었지만.


“그에 비해 동생인 서머는 식물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진심인, 진정한 화원 주인인데 말이죠. 험상궂은, 아니 박력 있는 외모 탓에, 그리고 암살 전문인 형과 쌍둥이인 탓에 오해를 많이 사는 편이죠.”

“저런, 안됐네요.”

“별별 괴담이 다 있답니다. 문 앞에 죽 세워 둔 커다란 화분 안에 사람 머리가 하나씩 들어 있다든가. 그래서 화초들이 유난히 크고 싱싱하다든가.”

“어휴, 사람들도 참. 그런데…… 형인 윈터가 그랬을 수 있잖아요? 암살한 사람들을 거기에 몰래…….”

“…….”

“흠흠, 나중에 서머 씨와 식물에 대해 이야기 나눠야겠네요. 저도 정원 가꾸는 걸 좋아하거든요.”

슬슬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설까 하는데, 갑자기 비밀 방의 문이 쾅 하고 열렸다.

뭐야? 벌써 발각된 거야? 문 여는 기세가 어찌나 요란한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문을 열어젖힌 건 다름 아닌 진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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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버마리에 있는 로제트 앰브로시아가 습격을 받았어.”

플록스를 물린 후 진이 말했다.


“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다쳤나요? 설마, 죽은 건 아니죠?”

나는 뷰글라스와 시아를 떠올리며 놀라서 소리쳤다.

그저 감시를 따돌리기 위한 눈속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일인 걸 알았다면 결코 두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해. 두 사람은 괜찮아. 레이디 앰브로시아는 자객의 습격을 피해 달아나다 행방이 묘연해진 것으로 해 두었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습격한 건 누구죠? 프러너스가…… 지시한 건가요?”

진이 복잡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상황이 굉장히 묘해. 잠복 중이던 부하들 말에 따르면, 도리어 공작이 심어 놓은 감시책 덕분에 습격을 피할 수 있었다는군.”

부하들의 보고 내용은 이러했다.

레이디 앰브로시아가 혼자 정원에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괴한 두 명 중 하나가 그녀의 입을 막았고 나머지 하나가 검을 겨누었다.

그렇게 그녀를 위협해 끌고 가려는 찰나, 잠복해 있던 스콜피온스의 감시책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전광석화와 같은 솜씨로 괴한을 제압하고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괴한 일당이 더 있었는지, 두세 명 정도가 달아나는 그들을 쫓기 시작했고, 거의 동시에 정원으로 나온 하녀가 사태를 파악하고 추격에 합류했다.

매우 충직한 하녀인지, 다른 사람을 부르러 가지 않고 직접 뛰쳐나갔다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넋을 놓고 있던 페가수스 쪽 사람들도 먼저 쓰러진 괴한을 살핀 후 추격에 합류했는데, 괴한들에게서 황제의 비밀 암살단 표식인 보라색 도끼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렇게 잠복 중이던 스콜피온스의 감시책이 레이디 앰브로시아를 들쳐 안고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 뒤를 습격에 실패한 황제의 암살단과 그녀의 하녀와 페가수스 직원들이 쫓았다.

그럼에도 혼란한 추격전 중에 그녀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

진이 이미 말한 것처럼 뭔가 묘한 전개였다.


“황제와는 어떻게 얽힌 거야?”

진이 나를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 생각했던 거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잖아. 황제에 대해서도 내게 말하지 않은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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