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첫날밤2021.12.24.
첫날밤이라면, 첫날밤일 것이다. 낯선 남자의 옆에서 동침하는 건, 스물여덟 서지안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억지춘향식으로 간병인용 침대에 누운 지안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게 첫날밤이라면, 지난 3년의 숱한 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잠든 그의 낯빛, 맥박, 혈압 등을 확인한 후 옆에 놓인 간병인용 침대에 누워 잠들었던 지난 3년의 밤들은. 하지만 그땐 단 한 번도 이렇게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간병을 하다가 밤이 깊어지면, 침대에 무거운 몸을 붙이고 누워 세상에서 가장 단잠을 청했었다. 그렇게 익숙하기만 하던 간병인용 침대가 오늘따라 가시방석처럼 불편했다. 그건 아마도 바로 옆자리, 팔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있는 남자 때문일 거다. 의식불명의 환자가 아니라 단단한 두 다리로 움직일 수 있는 커다란 남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는 남자. 지안은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이 남자와 한방에서 동침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환자와 함께 지내는 중이라고 여겼을 뿐. 한데, 지금은 조금 혼란스럽다. 환자인 듯, 환자가 아닌 그를 이전처럼 편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버젓이 눈을 떠 저를 응시하고, 차가운 말을 툭툭 내뱉고, 때론 그 말을 자기 유리하게 가지고 놀 줄도 아는 남자.
‘좋아, 그럼 혼인 무효 소송 얘기 같은 건 없던 거로 하지.’
‘……!’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의 요구를 내가 꼭 들어줘야 할 의무는 없잖아?’
‘……권도하 씨.’
‘내가 빨리 회복하길 바라거든, 그래서 어서 벗어나고 싶거든. 여기 있어, 내 옆에.’
이런 남자가 대체 어떻게 예전처럼 편할 수 있을까. 그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던 지안의 두 눈이 전보다 또렷하게 빛났다. 새벽이 가까운 시간이라 세상이 고요한 건 당연한 일이지만, 숨을 내쉬기도, 침을 삼키기도 불편한 고요는 견디기 힘들었다. 24시간 바쁘게 돌아가던 의료 기기가 꺼진 병실 안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적막해졌다. 그만큼 지안의 작은 몸짓, 숨소리까지 적나라하게 방안을 울렸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 동안 그를 익숙한 배경 정도로 여겼던 것은 아닌지.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밤을 보내는데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지안은 침대에 누운 도하의 고개 방향을 확인하곤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혹시 잠에 뒤척이다가 그와 고개가 마주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온통 그를 의식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면 할수록 잠은 더 멀리 달아났다. 몸은 노곤한데,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진다. 어서 그의 숨소리가 새근새근 일정해지길 기다려본다. 전처럼 고요하고 잔잔해지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깊이 잠들길. 하지만 그도 옆 침대에 있는 그녀를 의식하는지 여전히 숨소리가 불규칙했다. 그걸 알아서 지안은 더 불편했다. 상대가 저를 의식한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사람은 누구라도 더 긴장하게 마련이니까. 지안은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려 했다. 권도하와 무관하고, 그를 더 이상 의식하지 않을 그럴 생각을. 하지만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가도 결론은 그가 잠들었는지 확인해야겠단 생각으로 끝이 났다.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잠든 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지안은 그제야 꾹 참고 있던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후우.”
깨어있을 때의 그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고 아이 같은 숨소리가 들려온다. 저 숨소리에 지난 3년을 깜빡 속았다. 지안은 권도하라는 남자가 마냥 순하고 따듯한 사람일 줄 알았다. 이렇게 맑은 숨소리를 가진 사람은 당연히 그럴 거라고 여겼다. 곁에 서기만 해도 찬바람이 쌩 부는 그런 냉혈한일 거라고, 저 숨소리만으로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도하가 잠든 걸 확인하곤 지안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시야가 어두워지자, 비로소 청각이 완전히 눈을 뜬다. 그의 잠든 숨소리가 지안의 귓가를 완전히 장악했다. ASMR처럼 듣기 좋은 소리에 마음에 차분함이 깃든다. 3년을 매일같이 들었던 숨소리. 어쩌면 그 소리에 중독되었는지 모른다. 바람 소리처럼, 계곡물 흐르는 소리처럼, 모든 자연의 소리처럼 그렇게 그의 잠든 숨소리가 삶의 일부로 스며들었는지도. 도하의 숨소리를 가만히 귀에 담던 지안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오래 기다린 만큼 더 깊이 빠져드는 잠이었다.
*** 따듯하다 못해 뜨겁고 따가운 감각에 지안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초여름의 강력한 햇빛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지안은 무언가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 기함했다.
“뭐 하는 거예요!”
마구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 무표정한 도하의 얼굴이 비쳤다. 그는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채 그녀를 비스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나치듯 찰나의 순간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 그렇게 있었던 것 같았다. 몸의 자세와 고개 각도가 제법 안정적인 걸 보면. 놀라 흔들리는 그녀의 동공을 그가 집요하게 따라오며 말한다.
“이런 식이었나?”
낮게 가라앉아 허스키하기까지 한 목소리에 지안은 남아 있던 잠이 비로소 확 깼다.
“……네?”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환자를 돌봤냐고 묻는 거야.”
허점을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남자에게, 돌아온 첫날부터 허점을 보였다. 그의 눈을 피해 먼 데를 보던 지안의 시선이 힘없이 꺾였다.
“……!”
하지만 시선을 피해도 느낄 수 있었다. 초여름의 태양보다 더 뜨겁고 잔인한 눈빛이 저를 녹일 듯 응시하고 있다는 걸. 지안은 잠시 벙쪄 있다가 차분히 입술을 뗐다.
“늦잠 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걸 믿으라고?”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남자. 지난 새벽 그녀를 단잠으로 이끌었던 잔잔한 숨소리의 주인이 눈앞의 남자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안은 목구멍에 꾹 담고 있던 말을 차갑게 뱉었다.
“믿기 싫으면 믿지 마세요. 그런다고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밖으로 나갔다. 닫힌 병실 문에 등을 기댄 채 지안은 무거운 한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멍하니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고작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공기가 다를 수 있다니. 병실 밖은 이렇게 숨쉬기 좋고 편안한 공기가 가득한데, 저 안은 온통 불편한 공기로 숨이 막혔다. 물론 그가 깨어난 이후로 급격히 변했다. 그가 깨어나기 전만 해도 지안은 병실 안의 공기와 온도, 습도 그 모든 것을 사랑했다. 저택에서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이 도하가 잠들어 있는 그곳이었을 정도로. 하지만 그가 깨어났다는 이유로 그 모든 것에, 익숙하고 정든 세계에 균열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안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복도를 지나 거실로 갔다.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정순이 지안을 발견하곤 반갑게 외쳤다.
“지안이 일어났구나.”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럼. 잘 자고말고. 네가 돌아왔다는 생각에 한동안 안 오던 잠이 다시 오더라니까.”
정순은 지안의 손을 잡으며 방실방실 웃었다. 지안도 따라 웃다가 아직 미처 정순에게 말하지 못한 게 떠올라 입술을 꾹 오므렸다. 정순은 지안이 완전히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지안은 도하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만, 딱 그때까지만 여기에 머물 생각이었다. 이 사실을 숨긴 채 정순의 기쁨을 마냥 지켜볼 순 없었다. 지안은 고민 끝에 무거운 입술을 뗐다.
“저기, 할머님…….”
“응. 그래, 지안아.”
“그러니까…… 제가 돌아온 건.”
정순의 깊고 투명한 눈동자 위에 호기심이 내려앉는 게 보였다.
“그래.”
“도하 씨 건강이 완전히…….”
지안이 겨우 말을 떼려는 순간, 복도 끝에서 달려온 메이드가 그녀를 불렀다.
“사모님.”
그 목소리에 지안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죠?”
“도련님께서 찾으십니다.”
“……네?”
“빨리 모셔오라고 하셔서요.”
지안의 눈빛이 엷게 흔들렸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녀가 멈춰 있는 사이, 정순이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하 녀석, 3년을 그렇게 고생시키더니, 깨어나서도 지안이 널 가만두지 않는구나.”
“…….”
“하긴, 이렇게 예쁜 색시가 생겼으니.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겠지. 하하.”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순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지안은 하려던 말이 모두 쏙 들어가 버렸다. 나중에, 조금 천천히 말씀드려도 괜찮겠지. 그 사람이 전부 회복되고 나면, 그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될 거야. 지안은 애써 합리화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를 지나 병실 앞까지 다가간 그녀는 잠시 멈춰 심호흡을 했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상대하려면 얼마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후우. 지안은 제법 비장한 눈빛으로 병실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줄곧 그녀 쪽으로 고정된 하나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안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찾으셨다고요?”
일부러 차갑게 지은 그녀의 표정을 도하는 대꾸 없이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옷을 좀 벗겨 줬음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에 지안의 두 눈이 순간 튀어나올 듯 커졌다.
“……네?”
당황이 가득 서린 눈동자가 제멋대로 흔들리다 그의 서늘한 눈동자에 초점을 맞추고 멈춰 섰다.
“잠을 잘못 잤는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군.”
그러면서 그는 한쪽 어깨와 팔이 불편한 듯 이맛살을 잔뜩 구겼다. 그제야 언젠가 강 박사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회복 과정 중 신체에 일시적으로 부분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던 이야기가. 지안은 얼른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곤 조금 전 불편해 보였던 도하의 팔을 붙잡았다.
“괜찮아요?”
“…….”
“이쪽이 불편하세요? 아니면 여기, 이쪽이에요?”
순식간에 창백해진 얼굴, 한껏 좁아 든 미간, 아래로 끝없이 추락한 입꼬리. 지안의 모습은 누구보다 환자를 걱정하는, 영락없는 간병인의 모습이었다. 도하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며 생각했다. 오늘 아침 그녀가 늦잠을 잔 건 정말 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일 수도 있겠다고. 그때였다.
“아.”
굳게 닫혀 있던 그의 입술 사이로 단말마 같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지안이 아픈 곳을 잘못 누른 것이다.
“어. 미안해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얼굴을 보자 도하는 피식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는 두 손으로 제 팔을 꾹 붙잡고 있는 지안을 향해 말했다.
“거긴 그만 주무르고, 어서 이 옷이나 벗겨 주지 그래?”
지안은 사고 체계가 꼬인 듯 잠시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러다 얼마 후 정신이 돌아온 듯 얼른 그의 몸에서 손을 뗐다. 그제야 깨달았다. 3년을 매일같이 잊지 않고 했던 중요한 일을, 오늘 아침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을. 아침에 일어나면 그가 밤새 입고 잔 환자복을 갈아 입혀주었었다. 밤새 흘린 땀과 분비물로 불편하지 않도록. 그건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는데. 지안은 스스로 용납하기 힘든 낯선 실수에 난감한 듯 멈춰서 있었다. 어쩌면 잊은 게 아니라 무의식이 엄두조차 내지 못한 건 아닐까. 감히 저 커다란 남자의 옷을 벗기다니. 서슬 퍼런 눈빛과 냉기 흐르는 목소리. 그 눈을 보고, 목소리를 들은 이상 그의 몸에 어떤 이유에서도 손을 댈 수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환자는 불편을 호소하고 있고, 간병인은 그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지안은 그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나직이 말했다.
“그럼…… 옷 벗겨 드릴게요.”
그리고 전보다 바짝 그의 곁으로 붙어 팔을 뻗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널따란 품으로 다가와 작은 단추를 하나둘 풀기 시작한다. 지안은 제 손의 떨림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살짝 찡그렸다.
그 순간이었다. 낮고 울림이 큰 목소리가 홀연히 날아와 심장을 툭 때렸다.
“어디까지 봤지?”
“……네?”
놀란 지안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자, 도하는 가벼운 턱짓으로 제 몸을 가리켰다.
"……!"
"어디까지 봤냐고.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