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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나한테는 안 통해 (44/110)


44화. 나한테는 안 통해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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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 괜찮다니까요.”

지안은 연신 고개를 돌려, 제 뒤를 밟고 있는 도하를 향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퇴근 시간이라 로비에 보는 눈들도 많은데, 도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보통은 대표가 앞서 걷고, 비서가 뒤따라 걷는 게 자연스러운 그림이었다.

하지만 지금 도하는 그녀의 주변을 호위하듯 사방을 경계하며 걷고 있었다.

지안은 일부러 걸음을 늘어뜨려 그보다 뒤에서 걸으려 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보다 못한 그녀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나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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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 괜찮아요. 최 기사님 차 도착하면 타고 곧장 집으로 갈게요. 저번처럼 다른 곳으로 절대 안 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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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말에도 도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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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잖아. 당신이 제대로 가는 거 봐야 마음 놓고 잔업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모르긴 몰라도 도하의 고집이 그녀보다는 한 수 위였다.

그 고집을 꺾으려다, 제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자 지안은 마지못해 그의 뜻을 따랐다.

로비 앞까지 나온 도하는 최 기사의 차에 그녀가 무사히 탑승하는 것을 보고서야 한시름 놓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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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기사님, 그럼 이 사람 집까지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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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도련님.”

뒷좌석 창문 사이로 지안이 살짝 고개를 내밀며 나직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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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도 식사는 꼭 챙겨 드세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강 박사님도 야근에 관해선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할머님도 많이 걱정하시고요.”

지안의 잔소리에 씩 입꼬리를 올린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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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따 봐.”

도하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자 차가 출발했다.

마치 등원하는 아이를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낸 엄마처럼, 도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같이 퇴근하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지만, 복귀 초반이라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래도 제 손으로 그녀를 차에 태워 보내고 나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도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음을 돌렸다.

***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지안의 시선은 차창 밖을 향하고 있었지만, 머리는 여전히 회사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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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케이원이 미국 딜리버리 박람회에 참가하게 됐어. 당연히 대표인 나도 참석하겠지. 내가 가면, 내 체온계도 당연히 따라가야 하고.’

내 체온계.

제 손을 체온계라며, 확 잡아당겨 이마에 가져다 대던 남자.

원래 그런 남자일까. 관심 가는 여자가 생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하는 남자.

아니면, 저에게만 이러는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갔다. 그에게 묻지 않는 이상 답을 찾지 못할 물음들. 하지만 절대 이런 생각을 그가 알게 할 수는 없다.

제 머릿속에 온종일 한 사람에 관한 생각이 생산되고, 무수히 파생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긴 몰라도, 그는 어떻게 해야 여자의 가슴이 일렁이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남자 같았다.

조금 전만 해도 그랬다.

마치 어린아이를 차에 태워 보내듯 저를 소중하게 대하는 게 느껴져서 지안은 표정 관리가 잘 안 됐다.

사랑을 쏟아부어 키워주신 친할머니도 그렇게는 안 했다. 부모 없는 손녀의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많은 걸 그녀가 스스로 하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지안은 단 한 번도 이런 배웅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실 어릴 땐, 그게 뭐라고 조금 부러운 적도 있었다.

또래 친구들을 학원 차에 태워 보내는 엄마들의 살가운 손길과 애정 어린 눈빛.

어려운 형편에 언감생심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학원 차에 올라타 그런 따듯한 배웅을 한 번쯤은 받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조금 전 어렴풋이 그 기분을 느껴본 것 같았다.

부모도, 할머니도 아닌 한 남자에게서.

창가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지안의 얼굴 위로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얼마 후 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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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도착했습니다.”

살짝 눈을 감고 있던 지안이 천천히 눈을 뜨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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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어요. 최 기사님.”

그녀의 따듯한 목소리에 최 기사가 멋쩍은 듯 미소 지었다.

지안이 차에서 내리자, 최 기사는 차고 쪽으로 차를 돌렸다.

그녀가 대문 쪽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누군가의 실루엣이 천천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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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안 씨?”

누군가의 목소리에 지안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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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지안을 배웅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던 도하를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저만치에서 뛰어오고 있는 승훈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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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팀장?”

승훈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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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저녁 식사 안 하셨으면, 저랑 같이하시겠습니까?”

도하는 지안이 떠나기 전, 식사를 꼭 챙기라고 했던 잔소리를 생각하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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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럽시다.”

회사 근처 한식당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조용한 룸을 안내받아 갔다.

자리에 앉은 승훈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연신 도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진작에 감지한 도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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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십시오.”

물을 마시던 승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레들린 기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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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컥.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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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할 말 있잖습니까. 한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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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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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힐끗힐끗 눈치를 보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도하의 말에 승훈은 민망한 듯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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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입니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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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하는 한 팀장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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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혹시…… 그러니까 혹시…… 연애하십니까?”

뜻밖의 질문에 도하의 눈썹이 높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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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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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그게 그러니까. 조금 전에 로비에서 대표님이 서지안 씨를 배웅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뭐 배웅이야 그냥 할 수도 있지만 대표님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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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표정이…… 왜요?”

도하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승훈의 대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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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비서를 마치 아기 다루듯. 아니 놓치면 깨지는 보석 다루듯 그렇게 보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본 게 맞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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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자신이 그녀를 볼 때 어떤 얼굴인지.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제 표정이, 눈빛이 그런 모습이었다니.

도하가 생각이 깊어진 듯 허공을 보고 있자 승훈이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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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번에 총무과 직원이 대표실로 종이 상자를 들고 왔을 때, 대표님이 그렇게 흥분한 모습은 처음 봤거든요. 뭐, 비서실이 대표실 안으로 이사 온 것도 흔한 일은 아닌 것 같고…….”

승훈의 의심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둘의 관계를 비밀로 하자던 지안의 말이 떠올랐지만, 인내심 강한 한 팀장이 쉽게 의심을 지우지 않으리란 게 분명했다.

도하가 고민하듯 골똘해지자, 승훈이 나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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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어떤 무리에서 비밀이 지켜지기 위해선 뭐가 필요한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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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하는 대답 대신 지그시 승훈의 눈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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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밀을 알고 있는 제삼자. 그 존재가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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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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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비밀을 가진 자와 비밀을 모르는 자, 사이를 오가며 중재할 수 있거든요.”

제법 그럴싸한 논리였다.

그리고 승훈이 이 정도까지 이야기했다는 건 이미 마음에 강한 확신이 있다는 방증이었다.

도하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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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하고 눈치 빠른 부하 직원이 있다는 건 축복이지만, 이럴 땐 참 곤란한 일이군요.”

승훈이 그 어느 때보다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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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대로 본 게 맞습니까.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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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도하의 알쏭달쏭한 대답에 승훈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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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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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냐고 물었죠? 연애는 아닙니다. 결혼이지.”

도하가 대수롭지 않게 뱉은 ‘결혼’이라는 말에 승훈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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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설마 그때 회사에 돌았던 대표님 병상 결혼식 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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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문이 퍼졌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맞을 겁니다. 나, 결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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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혹시 아내분은, 제가 생각하는 그분이 맞을까요?”

도하가 누군가를 떠올린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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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어떻게 저한테 일언반구 안 하실 수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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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원치 않았습니다. 우리 관계가 회사에 알려지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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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승훈은 감탄하면서도 의외라는 듯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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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표님께서 이렇게 아내 바보가 되실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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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바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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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내분을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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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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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이런 말 좀 그렇지만, 대표님 눈에서 하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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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한 팀장도 알아보는데, 한 사람만 못 알아보는 게 아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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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무슨.”

도하는 먼 허공을 보며 깊어진 눈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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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좋아합니다. 그 사람을.”

 

***

몸에 딱 달라붙는 버건디 원피스에 웨이브 진 긴 머리칼을 한쪽만 내린 하린이 도도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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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안의 눈빛에 순간 짙은 경계심이 어렸다.

하린은 고개를 비딱하게 치켜든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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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디 가서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지안은 표정 변화 없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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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쪽과 나눌 얘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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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어요. 오늘 피하면 내일, 모레, 언제든 다시 만나러 올 거고요.”

지안은 잠시 시선을 내려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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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카페로 가시죠.”

두 여자 앞으로 둥근 커피잔이 올려지자마자 지안이 먼저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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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실 말씀, 어서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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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가 좀 없네요. 목도 축이기 전에 용건 먼저 내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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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도 없이 남의 집 앞에 불쑥 나타난 분께서 매너를 논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한마디도 지지 않는 지안의 모습에 하린은 입술 안쪽 살을 질끈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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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세준 대표 약혼녀예요. 어제 우리 세준 씨랑 레스토랑 갔었죠? 도하 씨로 모자라 우리 세준 씨한테 접근하는 저의가 뭐죠?”

지안은 가만히 듣다가 서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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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가 다 바뀌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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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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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말고 약혼자분께 물어보세요. 권도하 씨 여자 친구였던 민하린 씨로 모자라 도하 씨 아내인 저한테까지 접근한 저의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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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 그러니까 우리 세준 씨가 먼저 접근했다는 소릴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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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못 믿으시겠으면, 내일 우리 회사로 오세요. 그날 그쪽 약혼자분이 멋대로 회사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한테 접근하는 장면이 CCTV에 그대로 남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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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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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하실 얘기는 다 하신 거죠?”

지안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하린이 분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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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저 혼자 뭐가 그렇게 당당해! 더러운 범죄자 딸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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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려던 지안이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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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뭐라고 하셨죠?”

날 선 목소리가 차갑게 허공으로 날아갔다.

지안이 반응하자, 하린은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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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원이면 우리나라 재계 서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인데, 그런 곳 며느리 주변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서야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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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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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모르셨구나. 그쪽 아버지, 지금 죄짓고 교도소에 있다던데. 도박, 사기, 절도, 안 지은 죄 찾기가 더 힘들다고. 후유. 피 하나는 제대로 물려받으셨어요. 서지안 씨.”

하린이 시원하게 뱉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지안은 차가운 조소를 지으며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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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뒷조사라도 하셨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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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 하고 배겨요? 도하 씨, 그리고 우리 세준 씨 주변에 날파리가 꼬였는데. 그냥 있을 수 있겠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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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조사하셨다면 아셨을 텐데. 저한테 부모 같은 거 없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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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요?”

지안은 냉기가 흐를 정도로 서늘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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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은 배우자 권도하 씨, 시할머니 황정순 씨. 두 사람뿐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버리고 간 생물학적 부모가 범죄자가 되었건, 대통령이 되었건 나와는 아무 상관 없다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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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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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그 사람들 범죄자예요! 핏덩이 아기를 버려두고 간 것부터 용서받지 못할 죄니까. 나한테 그런 죄 저지른 사람들을, 부모라고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세요! 피해자한테 그러는 거 또 다른 가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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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 내가 가해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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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연좌제. 그런 시대착오적인 거로 저를 협박하려던 거라면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저한테는 안 통해요! 그러니까, 다신 찾아오지 마세요. 또 찾아오면 그땐 경찰 부를 거예요!”

지안은 그 말을 남기고 거칠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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