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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심장이 아파 (56/110)


56화. 심장이 아파
20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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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안 지워지는 거야!”

하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얼룩진 원피스 자락을 집요하게 문질러댔다.

이를 악문 채 신경질적으로 손을 움직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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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세준!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케이원을 몰락시킨다더니 왜 CTM이 철거하는 거냐고!”

쭉 찢어져 올라간 눈꼬리와 이글거리는 눈빛, 으르렁대는 숨소리까지.

세면대 앞 거울 속으로 분노에 잠식된 여자가 짐승처럼 부들거리고 있었다.

물을 묻혀 닦으면 닦을수록 얼룩이 옅어지기는커녕 고루 퍼져 지저분해졌고, 물에 젖은 하얀 천이 살결에 찰싹 달라붙어 속살이 비치기까지 했다.

하체 쪽이 아찔하게 젖은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밖에 나가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하린이 옷을 말리려 치맛자락을 펄럭이던 그때, 그녀를 혼자 비추고 있던 거울 속으로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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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척에 고개를 든 하린은 흰자 위를 드러낸 채 대충 흘겨보다 지안을 알아보곤 놀란 듯 눈을 번쩍 떴다.

지안은 말없이 하린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무언가를 그녀 앞에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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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가리고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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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하늘한 시폰 소재의 스카프를 본 하린의 눈이 순간 커졌다.

답답하고 퀴퀴한 행사장 간이 화장실을 탈출하려면, 당장 필요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안이 건네는 스카프를 받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린은 눈을 한껏 치뜨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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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안 씨, 지금 나 동정하는 거예요? 내가 왜 당신 따위한테 동정받아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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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안은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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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이든 연민이든 일단 받고 보는 게 그 쪽한테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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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지, 지금 당신 나 놀려? 서지안! 너 지금 내 꼴이 우습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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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라고 민하린 씨가 예뻐서 주는 거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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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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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여자로서 수치스러울 것 같아서. 나였다면 누구라도 이렇게 도와주길 바랐을 것 같단 공감으로 건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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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말을 없게 만드는 지안의 말에 하린은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다 제 분을 못 이겨 지안이 내민 손을 거칠게 내쳤다.

툭.

시폰 스카프가 순식간에 매가리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안은 이것 또한 예상했다는 듯 바닥에 떨어진 스카프를 묵묵히 바라보며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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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실수가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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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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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이란 것도 성숙한 사람한테만 통하는 건데, 제가 민하린 씨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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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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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는 알아서 하세요. 줍든지 버리든지.”

지안은 그 말을 남기고 홀연히 화장실을 떠났다.

혼자 남겨진 하린은 허공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포효하듯 거친 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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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저게 진짜!”

젖은 원피스를 말리기 위해 그녀는 옷을 털어보고, 몸을 흔들어 보기도 했지만, 습한 화장실 공기에 더 눅눅해질 뿐이었다.

하린은 고개를 들어 문 쪽을 오랫동안 살피다가 조심스레 바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양탄자처럼 떨어져 있는 시폰 스카프.

허리 아래로 스카프를 둘러 젖은 부위를 가리면, 그래도 지금보단 한결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안이 버리다시피 하고 간 것을 주워 걸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기다려도 마르지 않는 옷자락을 보다 지친 그녀가 천천히 무릎을 굽혀 스카프 쪽으로 다가갔다.

물로 흥건한 바닥은 수많은 사람이 오간 발자국을 만나 구정물이 되어 있었다. 그 위에 떨어진 스카프는 불결 그 자체였다.

다행히 네이비 색상이라 크게 티는 나지 않았다.

엄지와 검지를 뻗어 얍삽하게 스카프를 집어 든 하린은 눈살을 구기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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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줄 때 받을 걸 그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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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승훈이 급히 도하를 부르자, 서류를 보고 있던 도하가 고개를 높이 올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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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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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로저스 위원장님 전화입니다. 대표님이 전화를 안 받으셔서 비상 연락망에 있는 제 번호로 연락을 주셨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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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님이 무슨 일로…….”

도하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승훈의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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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권도하입니다.”

그가 의아함을 감춘 채 차분히 인사말을 건네자, 수화기 너머에서 제법 흥분한 위원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가만히 아서의 이야기를 듣던 도하의 동공에 순간 빛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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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정말입니까?”

통화를 마친 그는 천천히 휴대폰을 귀에서 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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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안, 미국에서도 한 건 했군.’

감추려 할수록 제멋대로 피어오르는 미소에 진 그는 잠시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시야로 지안이 들어왔다.

피가 묻고, 찢어진 옷 대신 승훈이 급히 사 온 보헤미안 스타일의 원피스를 그녀는 거뜬히도 소화해냈다. 그 모습이 마치 소녀처럼 사랑스러웠다.

도하는 조금 전 아서와 나눈 통화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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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대표 회사 직원이 내 손자를 구했다네. 서지안이라는 사원 말이야. 그 아가씨가, 제 옷까지 찢어가며 지혈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노아는…….’

눈으로 보이는 부분도 물론 눈부시지만, 누구보다 내면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무엇을 입든, 걸치든 빛이 났다.

한여름 눈 부신 태양처럼 저를 향해 내리쬔 남자의 뜨거운 시선에, 지안은 흠칫 놀라 빠르게 눈을 돌렸다.

그런 그녀를 도하는 짓궂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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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비서, 잠깐 이리 와 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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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안이 놀란 토끼 눈을 뜨며 천천히 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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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셨습니까?”

그녀가 딱딱하고 사무적인 투로 말하자, 도하는 그 틈을 파고들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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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 병원에 갈 거야.”

‘병원’이라는 말에 지안의 눈이 순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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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요? 어디 몸이 안 좋으세요?”

그녀가 눈썹 사이를 한껏 좁히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도하는 그 얼굴을 오래 보고 싶은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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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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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요?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데요?”

서 비서는 온데간데없고 간병인 서지안이 툭 튀어나와 대답을 재촉했다.

그녀가 저를 온 마음으로 걱정하는 게 느껴져서 도하는 좋으면서도 내심 미안했다. 사실 몸은 멀쩡했다. 굳이 꼽자면 한 곳만 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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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씨, 아니 대표님 어디가 안 좋은지 얘기해 주세요.”

지안이 재차 묻자, 도하는 나직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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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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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심장이요? 심장이 어떤데요? 강 박사님께 한번 연락해 볼까요? 어떻게 아픈지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대표님?”

농담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지안이 연달아 질문을 쏟아내는 탓에 그는 차마 얘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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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자꾸 놀라게 해서, 허락도 없이 감동을 주는 까닭에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하필, 네가 구했다는 아이가 아서 위원장의 손자였다니. 물론 너는 그 아이가 누구의 손자였는지 중요하지 않았을 테지만.’

도하는 호수보다 깊어진 눈 속에 지안을 가득 담고 한동안 그렇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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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준의 호텔 객실 안으로 노 실장이 들어섰다.

위스키를 병째 마시고 있던 세준은 붉어진 눈으로 노 실장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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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게 누구야. 우리 노 실장님 아니신가.”

그의 흔들리는 음성에서부터 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노 실장은 절로 좁아지는 미간을 겨우 돌려놓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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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아직 한국에는 이 일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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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준은 대꾸 없이 술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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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실장도 이리와 앉아요. 오랜만에 나랑 한잔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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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실장은 미동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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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바로 잡으셔야 합니다. 내일 새벽 비행기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돌아가셔서 준비 중이던 새 프로모션 론칭을 앞당기시는 게…….”

탕!

세준은 들고 있던 술병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콸콸.

남아 있던 술이 노 실장의 발아래로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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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마음대로 돌아갑니까! 아직 해외 바이어들과 미팅도 못 했는데, 어디를 돌아가냐고!”

세준의 포악에 노 실장은 질끈 눈을 감았다 뜨며 나직이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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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이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부스 철거가 결정되었을 때, 이미 바이어들에게 따로 연락이 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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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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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를 통하지 않고, 저희 쪽에서 따로 접촉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연결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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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준의 까만 눈동자는 금이 간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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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서 위원장 손자가 쓰러져 있는 걸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한 게…… 권 대표 아내, 서지안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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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라고!”

세준은 놀라다 못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실성한 사람처럼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대자, 노 실장은 그를 진정시키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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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박람회 건은 아쉽지만 이렇게 정리하시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 다음 스텝을 빠르게 밟으셔야 합니다. 재빨리 대중들의 눈을 돌려놓지 않는다면, 이번 일이 알려졌을 시 CTM이 입는 타격은 어마어마할 겁니다. 하루라도 빨리, 무차별적인 이벤트를 쏟아부어 다른 데 눈을 돌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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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세준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빽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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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결정하는 건 나지, 노 실장이 아니야! 누굴 하라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로 아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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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실장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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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못 돌아갑니다! 이대로는 절대, 절대 못 돌아가니까, 가고 싶거든 노 실장 혼자 가세요!”

이성을 잃은 세준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

똑똑.

병실 앞에 도착한 도하가 가볍게 노크했다.

지안은 그보다 한걸음 뒤에 선 채 가만히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도하는 병원 입구에 들어서서야 모든 걸 이실직고했다.

병원에 가자고 했던 이유가 아파서가 아닌, 병문안 때문이라는 걸.

그리고 그녀가 구해줬던 아이가 바로 박람회 위원장인 아서의 손자, 노아라는 것도.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지안은 살짝 배신감이 들 정도로 가슴 한곳이 푹 꺼졌다.

병원에 가야 한다고, 아픈 데가 있다던 그의 말에 얼마나 심장이 놀랐던지.

지안은 더 이상 아픈 그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프다는 말에, 그 짧은 순간 차라리 자신이 대신 아파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단순히 오랫동안 그를 간병해 온 사람으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아니었다. 잘은 몰라도, 세상의 모든 간병인이 환자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진 않을 거였다.

제 안을 장악한 낯선 감정에 대해 그녀가 찬찬히 들춰보고 있던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에서 은발 머리의 노신사가 걸어 나와 두 사람을 맞아주었다.

지안이 그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자, 아서는 그녀보다 더 깊이 허리를 숙여 깍듯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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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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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안이 당황한 듯 눈을 연신 깜빡이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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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천사 같은 분을 옆에 두고 그냥 지나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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