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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흑과 백 (58/110)


58화. 흑과 백
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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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어두운 뒷골목.

모자를 눌러쓴 세준이 백인 남자 둘과 한 명의 흑인으로 이뤄진 무리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현란한 헤어스타일과 눈에 보이는 곳에 가득한 문신, 얼굴에 흉측한 칼자국이 있는 남자들은 세준이 건넨 사진을 유심히 봤다.

세준은 그들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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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남자를 노스 필리로 데려가, 당신들 마음대로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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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대로?”

말 근육이 위협적인 흑인 남자가 조롱하듯 되묻곤, 표정을 싹 바꿔 사늘하게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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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대로 하려면 돈이 꽤 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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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세준을 벽 쪽으로 밀어붙이듯 다가오자, 세준은 바짝 경직된 채 주머니에서 돈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돈 봉투를 확인한 남자는 탐탁지 않은 듯 미간을 잔뜩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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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이 돈으로 우릴 고용하려 한 거야? 우리가 이딴 푼돈에 당신이 짖으란 대로 짖는 개라도 될 줄 알고?”

흑인 남자가 돈 봉투를 바닥에 내팽개치자, 뒤에 있던 백인 남자들이 봉투를 주워 보곤 같잖다는 듯 웃었다.

그러곤 다가와 세준을 향해 발길질해 댔다.

퍽,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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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둔탁한 발길질 몇 번에 무너진 세준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마지막은 흑인 남자가 커다란 주먹을 들어 그의 얼굴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턱!

꺾이듯 돌아간 고개 아래, 시퍼렇게 질린 입술에서 검붉은 피가 터졌다.

세준은 터진 입술을 질끈 문 채 고개를 떨궜다.

흑인 남자는 허리를 숙여 그와 눈높이를 맞춘 후, 아래로 툭 떨어진 세준의 고개를 강제로 치켜들어 무섭게 쏘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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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돈의 열 배를 지금 당장 송금해. 그게 아니면, 우릴 여기까지 겁 없이 불러낸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까.”

그들은 한국에서 종종 연을 맺었던 심부름센터 직원이나, 동네 양아치 수준이 아니었다.

유학 시절 알고 지낸 지인에게 무서운 녀석들로 알아봐달라고 했던 세준은 그제야 자신의 무모함을 후회했다.

눈앞의 사내들은 동네 깡패 수준이 아니고, 갱단의 일원들처럼 한 명, 한 명 풍기는 분위기부터, 눈빛의 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동양인 남자 하나를 혼내주라는 의뢰에 1만 달러를 건넸는데도 성에 차지 않는다며, 10만 달러를 요구하는 남자들.

10만 달러면 한화로 1억이 훨씬 넘는 돈이었다.

세준은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그들이 요구하는 돈이 생각보다 큰 금액이긴 했지만, 도하를 다시 의식 없는 상태로 돌려보낸다고 생각하면, 그 정도 투자쯤은 결코 큰돈이 아니었다. 기회비용을 따졌을 때, 세준에겐 충분히 이득이었다.

도하가 계속 의식 없이 잠들어 있었다면, CTM은 무함마드 회장과의 미팅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받았을 테고, 1억 정도야, 모래사장의 모래알처럼 존재감도 없을 거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세준이 천천히 입술을 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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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송금하라고 하겠습니다.”

세준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얼마간 통화 연결음이 들리다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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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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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실장. 지금 당장 10만 달러를 송금하세요. 계좌는 문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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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대표님,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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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알 것 없고, 지금 당장 송금이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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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돈을 쓰시려는 용도를 확실히 말씀해 주셔야지만 송금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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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실장! 지금 월권하는 거야? 내가 내 돈을 쓰겠다는데 무슨 말이 이렇게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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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지금 송금할 수 있는 돈은, 회사 자금뿐입니다. 대표님이라 해도, 마음대로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은 아니란 말씀입니다. 더군다나 어디에 쓰시는지 용도조차 불분명하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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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 그만하고 당장 부쳐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 해고할 테니까!”

뚝.

빽 소리를 치고 통화를 마친 그는 남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엷은 미소를 지으려다, 찢어진 입술이 쓰라린 듯 눈썹을 찡그렸다.

많이 아프긴 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더 신뢰가 갔다. 저들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들인지, 그렇기에 도하를 처치하기에 얼마나 적임자들인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모자 아래로 감춰진 세준의 두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

박람회장 VIP 미팅룸에서 도하는 무함마드 회장을 독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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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위원장이 강력하게 추천한 회사라 많이 궁금했습니다.”

무함마드의 말에 도하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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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회사를 추천하셨다기보다, 앞으로 전 세계를 장악할 딜리버리 사업의 전망을 높게 평가해주신 것 같습니다.”

의외의 대답에 무함마드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보통 이런 자리에선 어떻게라도 자기 회사를 어필하려고 애를 쓰거나, 굽실거려 투자 계약을 성사하려는 사람들뿐이었다.

하지만 도하에게선 그런 얕은 욕망도, 조급함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동등한 파트너 정도로 여기는 눈빛이었다.

무함마드는 그게 불쾌하기보다 흥미롭게 느껴졌다. 천문학적인 재력을 가진 투자자 앞에서도 쉽게 고개 숙이지 않는 젊은 대표의 기백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무함마드는 살짝 그를 자극해서, 본모습을 좀 더 알아보려는 계산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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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원 그룹의 노크맨이라…… 미안하게도 나는 이번에 처음 듣는 낯선 이름인데.”

도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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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3년 전 처음 출범했지만, 제대로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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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출범했는데, 제대로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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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직후 제가 큰 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3년 만에 겨우 깨어났고요.”

도하의 말에 무함마드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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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3년간 의식이 없었던 사람과 내가 지금 미팅을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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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요.”

도하가 엷게 웃자, 무함마드가 잠시 깊어진 눈으로 그를 보다가 나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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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친도 사고로 5년이라는 시간을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셨지요.”

생각지도 못한 고백에 도하의 눈이 잠시 일렁였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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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심이 크셨겠습니다.”

무함마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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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강한 분이라고 믿었는데, 그런 분이 그렇게 돌아가시는 걸 보고 한동안 인생에 회의를 느꼈죠. 세상에 희망도, 기적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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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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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희망과 기적이 이렇게 내 눈앞에 나타났군요.”

어둡던 무함마드의 얼굴로 이내 화색이 번졌다.

그의 말에 도하도 얼굴색을 밝히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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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든 기적은 아닙니다. 긴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3년간 흘린 눈물과 땀방울이 저를 깨웠더라고요.”

진심이 느껴지는 도하의 말에 무함마드는 감동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직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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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누가 있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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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하는 잠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 듯 미소를 짓다가 가만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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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더라고요. 대단히 예쁘게 생긴.”

도하의 말에 무함마드가 건치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사업 이야기와 돈 이야기로 늘 딱딱하기만 하던 미팅 자리에서 이런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무함마드는 흥미로운 로맨스 소설의 뒷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독자처럼, 계속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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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요? 그래서 깨어나 보니 생긴 아내와 계속 부부가 되기로 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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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우선은요. 아니, 앞으로도 쭉, 그렇게 될 겁니다.”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에게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 도하는 조금 당황했다. 그래도 그 이야기는 처음 만난 두 남자를 제법 친밀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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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권 대표 아내를 한번 만나고 싶군요. 노크맨이라는 브랜드 이름에 영감을 준 멋진 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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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한 이야기들은 모른 척해 주셔야 합니다.”

도하가 신신당부하자, 무함마드는 입술에 자물쇠를 채우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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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정작 일이나 투자 계약에 관한 이야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미팅이 끝나가려던 그때, 무함마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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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투자하는 회사들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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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하가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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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미팅에 나온 그 회사 사람에게 인간적인 호감이 가느냐. 짧은 미팅 시간이지만,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인간적인 교감을 끌어낼 수 있는 회사라면, 소비자들의 마음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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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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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맨은 내 마음도 똑똑 두드렸습니다. 3년간 의식불명이었다가 깨어난 권 대표의 인간승리도, 그 곁을 묵묵히 지킨 아내분의 순수한 희생도. 무엇보다 속도보다 고객의 마음을 두드리는 게 중요하다는 노크맨의 신념 그 자체가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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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하가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이자, 무함마드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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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계약서를 내 회사로 보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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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란 도하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미팅을 마치고 부스로 돌아온 도하는 계약 준비로 다시 바빠졌다.

화기애애했던 미팅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신속히 계약서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승훈을 비롯한 몇 명의 직원들과 계약서를 준비하던 도하가 지안을 떠올렸을 때, 그녀는 많이 피곤한지 저만치서 꾸벅 졸고 있었다.

도하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다가서자, 인기척을 느낀 지안이 스르르 눈을 떴다.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잡는 그녀의 귓가에 도하가 낮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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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서 어쩌지. 많이 늦어질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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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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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먼저 가서 쉬고 있어. 기사 바로 불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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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였다면 기다리겠다고 했겠지만, 지안은 엉망이 된 시차 적응 때문에 쏟아지는 졸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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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그럼 오늘만 먼저 들어가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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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객실 문 꼭 잠그고 있고. 누가 두드려도 절대 열어주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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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

호텔로 돌아온 지안은 씻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한동안 시체처럼 잠들어 있던 그녀가 겨우 눈을 떴을 때,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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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더 늦어지네.”

도하가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않자 슬슬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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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무리하면 몸에 안 좋을 텐데.’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하다가, 중요한 계약 건을 앞둔 그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그만뒀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그녀의 시야에 TV가 들어왔다.

홀로 있는 게 왠지 적적해서 TV라도 켜두는 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TV를 켜자, 다시 한번 이곳이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사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어느 채널을 들려도 흘러나오는 영어와 낯선 프로그램들.

마치 영어 듣기 평가하듯 집중해 들어보다가 머리가 아파지려 하자 얼른 채널을 돌렸다.

한동안 멍하니 채널을 돌리던 지안의 손이 어느 채널 앞에서 순간 멈추어 섰다.

현지 지역 뉴스 프로그램이었다.

화면 하단 아래 ‘코리안’이라는 영어 단어가 들어간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뉴스 화면을 집중하던 동공이 초점을 잃고 마구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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