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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그날의 불청객 (104/110)


104화. 그날의 불청객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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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는 중국에서 동진하는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전국이 맑겠습니다. 중부지방 아침 기온은 어제보다 2도 높은…….]

메이크업 숍 귀빈실 한편에 자리한 TV에서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장기 하나 없이 말끔한 얼굴의 지안이 거울에 비친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윽고 작은 입술 사이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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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다행이다.”

며칠 전,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어서 내내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열심히 준비한 야외 결혼식에 ‘비’라는 불청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 싶은 존재였다.

다행히 하늘은 두 사람의 편이었던 걸까.

그동안 온몸으로 맞아온 장대비 같은 세월에 대한 보상처럼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는 소식이었다.

결혼식 당일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해결되자, 지안은 그제야 새신부의 아리따운 미소를 찾았다.

이제 업계 최고 실력자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로 거듭날 시간.

도화지 같이 희고 맑은 얼굴에 은은한 윤기와 분위기 있는 음영, 우아한 색조가 조금씩 채워지자 수줍던 미소에 저절로 자신감이 차올랐다.

동시에 전문가용 헤어드라이어를 든 헤어 담당자가 숨이 죽어 있던 머리칼에 볼륨을 만들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지안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특별한 날이니만큼 그만큼 공을 들이는 시간도 길었다.

지안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거울 속 변해가는 신부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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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더 원하시는 부분 있을까요?”

전문가가 거울 속 지안을 향해 상냥하게 물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던 그녀의 입술 새로 하얀 건치가 절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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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전부 마음에 들어요.”

신부 화장의 위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진한 화장으로 이목구비가 또렷이 살아났지만 그래도 다행히 아직은 도하나 정순이 봐도 거울 속 신부가 지안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만약 여기서 더 욕심을 낸다면, 어쩌면 그것조차 어려울지 모른다.

예뻐지고자 하는 여자의 욕망은 끝이 없지만, 그래도 신랑과 시조모가 알아보지 못하는 신부가 될 순 없었다.

헤어 메이크업을 마치고 드레스를 입을 시간이 되자, 잘게 두근거리던 심장이 거칠게 두방망이질 쳐대기 시작했다.

단순한 드레스가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운명’을 입을 시간이었기에.

신부 화장을 모두 마친 상태에서 다시 만난 드레스는 전에 입어보았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노출 없이도 충분히 관능적이고 절제미와 우아함을 두루 뿜어내는 드레스.

드레스를 만든 장인의 열정과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만나 비로소 절정을 이룬 듯했다.

드레스 착용을 도와준 헬퍼도, 메이크업을 담당한 전문가들도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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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완전 공주님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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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드레스는 처음 봐요. 정말 아름다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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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태껏 본 신부님 중 최고로 아름다우세요.”

과분한 칭찬이 멋쩍은 듯 지안은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듣는 것도 기분 좋았지만, 사실 지금 이 순간 가장 듣고 싶은 목소리가 따로 있었다.

지금 이 모습을, 어여쁜 신부로 거듭난 제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싶은 한 사람이.

그때 협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기 시작했다.

일찍 헤어 메이크업을 마치고 예복을 입으러 테일러 숍에 간 도하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이럴 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이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에서 당기면 저쪽에서 끌려오는 그런.

지안은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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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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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다 되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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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제 막 다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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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도착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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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내려갈게요.”

지안은 헬퍼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 자락을 붙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듯 빠르게 뛰었다.

이제 이곳을 떠나 결혼식장에 도착하면 지난했던 인생의 한 막이 걷히고, 새로운 막이 열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강인한 남자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새로운 인생이.

눈이 부시게 맑고 따스한 날.

모든 것이 완벽할 것 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들뜬 지안의 귓가로 헬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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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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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물론이죠.”

지안이 싱긋 웃으며 대답하자, 헬퍼는 허겁지겁 나왔던 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혼자 남겨진 지안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도로 쪽을 살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우렁찬 배기음 소리와 함께 한 대의 차가 멀리서 나타났다.

풍선과 리본으로 장식된 웨딩 카를 보는 지안의 눈이 설렘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

차창에 비친 모습을 보며 나비넥타이를 고쳐 만지는 도하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지안이 직접 골라 준 예복을 입은 그는 제 모습이 그녀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였다.

부디 멋지게 보여야 할 텐데.

환자의 모습으로 치렀던 첫 번째 결혼식의 초라함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이번만은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완벽한 신랑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 결혼식의 진짜 주인공인 그녀가 더욱 빛날 수 있을 것을 알았다.

식물인간과 결혼했다며 손가락질받았던 그녀의 지난 치욕이 모두 씻길 수 있게, 뭇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신부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자동차가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 가까워지자,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어엿한 신부로 거듭난 서지안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사춘기 소년처럼 뛰는 가슴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한 장면도,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눈과 심장에 담아두리라.

메이크업 숍 앞에 도착한 도하는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앞에 나와 기다리겠다던 지안이 어쩐 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입구를 지나 숍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복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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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이 혼자 가버렸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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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고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나와보니까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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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전화 걸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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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받으셔. 이게 정말 무슨 일이야.”

그냥 지나치기엔 왠지 석연치 않았다.

도하는 두 여자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다가오자, 죽상을 하고 있던 헬퍼가 눈을 크게 뜨며 먼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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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혹시…… 권도하 신랑님?”

헬퍼의 입에서 제 이름이 나오자 도하의 얼굴 위로 불길한 기운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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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방금 이야기하던 신부가…….”

도하가 채 다 묻기도 전에 헬퍼가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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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안 신부님이요! 신랑님 전화받고 앞에 내려와 같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가버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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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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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근데 신랑님은 왜 여기에…… 신랑님이 신부님 데려가신 거 아니었어요?”

도하는 대꾸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길함이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듣고 싶은 목소리 대신 반갑지 않은 ARS 음성이 귓전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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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결혼식장에도 전화를 걸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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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니다. 권도하. 혹시 신부가 도착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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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신부님은 신랑님과 함께 오시는 거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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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확인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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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잠시만요.

호텔 직원이 신부 도착 확인을 하는 짧은 몇 분의 시간이 도하에게는 몇 시간처럼 초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전해져 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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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확인해봤는데, 신부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요?

마지막 기대마저 꺼지자 도하의 음성은 전보다 더 침울하게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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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전화를 끊자 눈앞이 아득해졌다.

사라진 신부, 꺼져 있는 휴대폰, 결혼식장에도 찾을 수 없는 흔적.

결혼 당일, 벌어지기엔 너무도 아뜩한 상황이었다.

어떤 일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였지만, 지안에 관련한 일에선 그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감정에 지배되기보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침착하게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선, 뜨겁게 끓는 피를 차갑게 식혀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생각에 잠겨 침묵하던 그가 전과는 완벽히 달라진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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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건물 CCTV를 확인해야겠습니다!”

건물 관리인의 도움으로 CCTV 모니터 앞에 앉은 도하는 숨죽인 채 화면을 확인했다.

도하의 차가 숍 앞에 도착하기 불과 10분 전 지안의 모습이 화면에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너무도 보고 싶었던 오늘의 주인공, 세상에 하나뿐인 신부의 모습을 흐릿한 흑백의 화면으로 마주하게 되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그는 애써 마음을 가누고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헬퍼의 말대로, 지안과 함께 나와 기다리고 있던 헬퍼가 헐레벌떡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상치 않은 차량 한 대가 나타났다.

화면을 보던 도하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풍선과 리본 등으로 치장한 웨딩 카가 지안이 홀로 기다리고 있는 곳 앞에 멈춰 섰다.

잠시 고민하듯 머뭇거리던 그녀가 차에 올라타기 무섭게, 웨딩 카는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그 앞을 떠났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말을 가슴으로 체감한 건 처음이었다.

간발의 차로 신부를 놓쳐버린 신랑의 마음이란.

도하는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른 체 나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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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바로 전으로 잠깐 돌려주십시오. 차량 번호가 찍힌 것 같으니.”

관리인이 마우스를 클릭해 몇십 초 전으로 돌리자, 출발하는 웨딩 카의 번호판이 비교적 선명하게 잡혔다.

[35 위 1128]

화면을 뚫을 듯 뜨거운 시선으로 번호판을 눈에 담은 그가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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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형사, 접니다. 35 위 1128. 이 번호의 차량에 지금 사람이 납치됐습니다. 당장, 지금 당장 수배해 주십시오!”

통화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조금 전 통화한 결혼식장이나 형사에게 걸려온 전화일 거라 여긴 그는 액정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액정에 뜬 이름은 그가 애타게 찾고 있던 그 이름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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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안…….”

신음하듯 그녀의 이름을 뱉은 도하는 떨리는 손을 통화 버튼 위로 가져갔다.

버튼을 누르는 데까지 걸린 짧은 몇 초의 시간,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게 결혼이라는 큰 이벤트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려는 몰래카메라나 짓궂은 서프라이즈라면.

비록 심장이 깨질뻔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쓴웃음을 삼키며 너그럽게 용서해 줄 텐데.

다그치거나 화내지 않고 그저 더 빨리 데리러 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꼭 안아 줄 텐데.

애틋하고 간절한 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동공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요동치듯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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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를 찾고 싶거든, 10억. 10억을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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