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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세상 가장 소란한 결혼식 (106/110)


106화. 세상 가장 소란한 결혼식
2022.12.05.



 
도로 갓길, 오토바이 무리에 포위된 채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한 대의 차가 보였다.

그곳으로 걸어가는 도하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한 곳을 향해 고정된 그의 시선 끝에 숨 가빴던 지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1,0;1.0..2,3.5.]

한 여자의 절박함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메시지를 받고선 심장이 쪼개지는 줄만 알았다.

두렵고 막막한 순간에도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더는 무너지는 가슴을 붙잡고 괴로워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애끓는 감정을 힘겹게 누른 채, 그녀가 보내 준 힌트를 붙잡고 달렸다.

메시지가 발신된 낯선 번호의 주인이 제이슨이라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존재감조차 없던 오래된 악연이 불쑥 나타나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제이슨을 알게 된 오래전엔 혼자 몸이었기에 의미 없는 악연에 에너지를 쓰는 것조차 가치 없게 느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생겼기에,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지켜내야 할 사랑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악의 뿌리까지 모조리 뽑아낼 생각이었다.

어떠한 어둠도, 어떤 위험의 그늘도 지안의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남편으로서,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었다.

결의에 찬 까맣고 단단한 눈동자가 눈앞의 모든 것을 녹을 듯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휴대폰 번호를 입수한 이상, 그들의 현재 위치를 찾아내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무사하길. 그녀가 지쳐 포기하기 전에 그 앞에 당도할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예정된 예식 시간이 가까워지자,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미 여러 통의 부재중을 남긴 정순에게서 또다시 전화가 걸려오자, 도하는 고민스러운 듯 마른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정해진 시간에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모두 알게 될 터였다.

외면하는 것보다 정면 돌파하는 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도하는 바싹 마른 입술을 어렵게 떼어 전화를 받았다.


‘네. 할머니.’


-시, 신부! 신부가 사라지다니! 도하야, 사실 아니지? 우리 지안이가 사라지다니! 이거 말도 안 되는 뜬소문이지?

여러 번의 부재중 통화와 그 사이의 공백. 그 시간 동안 정순의 귀에도 무슨 소식이 전해진 게 분명했다.

도하는 잠시 침묵하다가 더는 감출 수 없음을 깨닫고 무겁게 대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서 돌아갈 테니까요.’


-아, 아니!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지안을 제 자식처럼 아끼는 정순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전화상으로도 느껴졌다.

지안도, 정순도 더는 아프지 않고, 상처받지 않도록 반드시 찾아내리라. 꼭 무사히 구해내리라.

그 어느 때보다 심장이 뜨겁고도 무겁게 뛰었다.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휴대폰이 울어댔다.

액정 화면에 승훈의 이름이 뜨자, 도하는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래요. 한 팀장.’


-대표님!

숨이 넘어갈 듯한 승훈의 목소리에서 이미 깊은 걱정이 느껴졌다.


‘한 팀장도…… 들었습니까?’


-……신부대기실에 사모님이 안 계시고, 대표님도 보이지 않아 예식장 담당자를 만나러 갔다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메이크업 숍에서 사모님이 사라지셨다는…….


‘……한 팀장이 들은 그대로입니다.’


-저, 대표님. 이 일을 저만 알게 된 건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번 결혼식이 회사 직원들에게도 공개된 행사였다 보니, 직원들도 많이 모여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

의도와는 다르지만, 처음 계획한 대로 세상 떠들썩한 결혼식이 되고 있음은 확실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떠들썩하고 소란해지길 바랐던 건 절대 아니었는데.

도하는 쓴웃음을 삼키며 생각했다.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오늘 결혼식을 보러온 직원 중에, 사모님께 복지 도움을 받았던 배달근로자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사모님 소식을 듣고는 가만있을 수 없다며, 함께 찾아보겠다며 우기고 있습니다.


‘……!’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었다.


-대표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

지금 이 순간 그녀를 걱정하고 가슴 졸이는 건 정순과 자신뿐이라 생각했다.

가족 아닌 누군가가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도하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신선한 충격이자, 놀라움 그 자체였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주변을 보면,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했던가.

누구보다 진심으로 열정을 다해 주변을 살피고 돌봤던 그녀이기에, 이제 그들이, 그 마음들이 그녀를 도우려 하고 있었다.

서지안…….

여린 듯 강하고, 강한 듯 한없이 여린 그녀의 마음이, 그리고 말간 얼굴이 빠르게 눈앞에 스쳐 갔다.

뭉클해진 가슴 한곳이 한없이 저려 왔다.

긴 침묵을 말없이 기다려주던 한 팀장이 나직이 의견을 피력했다.


‘대표님,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그분들만큼 도로 사정을 잘 알고, 길눈이 밝은 분들도 드물 겁니다. 게다가 납치범이 도주할 경우를 고려했을 때도,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유리한 면이 많을 것 같고요.’

승훈의 말에 도하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쏟았던 진심과 정성이 다시 그녀에게로 돌아오는 길을 가로막을 이유가 없었다.

도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좋습니다. 도움……받도록 하겠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한마음으로 까만 도로 위를 함께 달려온 오토바이 맨들과 경찰 그리고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는 남편.

조금 전의 상황이 한 편의 영화처럼 빠르게 스쳐 가자, 다시 심장이 뜨거워졌다.

그가 제이슨이 몰던 차 앞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별안간 운전석 문이 열렸다.

제이슨은 이 도로 위에 제 편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닫지 못한 듯, 차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미친 듯 달음박질쳤다.

하지만 쓸어버릴 듯 저를 향해 달려오는 오토바이의 위협에 금세 발이 묶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온 경찰들이 제이슨을 제압했다.

도하는 천천히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미친 듯 끓어오르는 온몸의 피가 당장에라도 제이슨을 때려눕혀, 가슴 가득 치민 분노를 조금이라도 풀어내고 싶었다.

굳게 말아 쥔 주먹과 눈빛은 이미 이성의 영역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도하가 바로 앞까지 바짝 다가오자, 제이슨은 빠르게 그의 눈을 보고는 잽싸게 시선을 깔았다.

도하의 눈빛은 오래전 맞닥뜨렸을 때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독살스러운 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숨통을 쥐고 흔들어대며, 피의 복수를 할 것처럼 느껴졌다.

시선을 떨구다가 우연히 본 주먹도 언제라도 날쌔게 날라와 제 고개를 맥없이 꺾어버릴 것 같은 위협감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납치를 계획하고 실행한 무모한 용기는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도하의 등장만으로도 제이슨은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도하는 들끓는 분노로 터질 것 같은 심장을 꾹 움켜쥔 채,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제이슨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잊었나 본데, 죽다 살아난 놈은 죽음 따윈 두렵지 않아. 너 같은 것 하나 죽이는 것도.”

“……!”

“응당 오늘 널 죽여야 마땅한데, 보다시피 네깟 놈 때문에 이 턱시도를 망칠 순 없거든.”

“……!”

“비겁한 삶이나마 이어가고 싶거든, 다신 눈에 띄지 마.”

“…….”

“이게 마지막 경고야.”

한마디 한마디에 칼날이 박힌 듯 날카롭고 매서웠다.

도하는 마지막 말을 뱉는 순간까지도 용서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견딜 수 없었지만, 오늘은 제 손이 아닌 법의 심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말했듯 신랑의 턱시도에 더러운 피를 묻힐 수는 없었으니까. 오늘의 결혼식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제이슨이 경찰차로 연행되는 사이, 도하는 서둘러 지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보조석 차 문을 여는 순간, 그 안에 결박된 채 힘겨운 모습으로 앉아 있는 그녀가 보였다.

도하를 알아본 지안의 눈가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여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눈물이 쏟아지듯 흘러내렸다.


“끄윽…… 끄윽.”

입술이 막힌 그녀가 내는 가슴 아픈 신음에 도하는 마음이 분주해졌다.

입술을 가로막은 테이프를 천천히 떼어내자, 눈물을 가득 먹은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도하 씨!”

가슴을 에는 아픈 목소리. 너무도 간절히 듣고 싶었던 목소리.

그 음성에 겨우 삭이고 삭였던 남자의 슬픔이 거칠게 솟아나 눈가를 붉게 물들였다.

영원히 함께하기로 언약하는 결혼식 날, 서로를 잃은 채 헤맸던 두 사람은 겨우 찾은 서로를 눈앞에서 놓치지 않으려는 듯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망울 속에 갇혀 느리게 흘러갔다.

눈앞에 그녀가 있다는 것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비로소 마음이 놓인 도하는 그녀의 몸을 감아 결박하고 있는 것을 단숨에 걷어낸 뒤 말했다.


“미안. 더 빨리 오지 못해서.”

“……내가 더 미안해요. 데리러 온다는 말, 듣지 않아서.”

도하는 또다시 터져버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이제, 가 볼까?”

“…….”

지안은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무사히 차에서 내리자, 차를 둘러싸고 있던 오토바이 운전자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소리에 놀란 지안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자, 헬멧을 쓴 배달원들이 하나둘 모자를 벗었다.


“어!”

익숙한 얼굴이 하나둘 나타나자 하얗게 상기되었던 얼굴에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도하가 낮게 속삭였다.


“당신이 저분들에게 보낸 위로와 응원이, 다시 당신에게 돌아온 거야.”

“…….”

“당신은 도움도, 위로도, 응원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야. 그런 널 얻게 된 난 지구상 가장 운 좋은 놈이고.”

진지한 듯 장난스러운 그의 이야기에 지안은 비로소 긴장이 풀린 듯 웃었다.

그리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휘청.

오랜 긴장으로 풀려버린 다리가 힘없이 비틀거렸다.

터억.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도하가 몸을 날려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곤 안 되겠다는 듯 단숨에 그녀를 품에 들쳐 안았다.

길고 풍성한 드레스 자락이 공중을 향해 아름답게 휘날려 올라갔다.

도하가 지안을 품에 들어 안자,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소리쳤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한목소리로 외치는 함성.


“키스해!”

“키스해!”

놀란 지안의 눈동자가 코앞에 있는 도하의 눈과 그대로 맞닿았다.

숨 가빴던 레이스의 끝.

영화보다 아름다운 결말을 바라는 이들의 우렁찬 외침은 점점 더 커져갔다.

말없이 그녀를 눈에 담던 도하가 나직이 말했다.


“이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

“서지안은 꽃처럼 예쁘네.”

“……도하 씨.”

지안은 얼굴을 붉히며 커다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도하는 그런 그녀를 눈에 담으며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드레스 입은 서지안 모습은 예쁘게 포장한 꽃다발 같고.”

“……!”

“향기 한번 맡아 봐도 될까.”

그 말을 끝으로 도하의 붉은 입술이 단숨에 그녀의 작은 입술에 붙었다.

십여 대의 오토바이 행렬과 경찰차 그리고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의 신랑 신부가 점령한 도로 위.

그곳을 지나던 자동차들이 서행하며 창문을 열어 그 광경을 휴대폰으로 찍기 시작했다.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세상에 둘도 없이 떠들썩하고 소란한 결혼식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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