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3. 내 아이가 분명해
검토해야 할 서류 열두 장이 앞에 놓였다.
클레어는 미묘한 기분이 되어 자신 앞에 서류를 내려놓은 그레이 셔우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델포드 남작가의 법률 고문이었다. 그리고 전에는 델포드 남작가의 후원을 받는 장학생이었고, 더 어릴 때에는 클레어의 심부름꾼 겸 놀이 상대였다.
클레어에게는 그렇게 기억이 생생한 일은 아니다. 그레이가 그녀 옆에 있었던 것은 일곱 살 이전의 일이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기 전의 일은 원래도 좀 어렴풋했던 데다가 그레이가 오랫동안 옆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클레어가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던 무렵에 어깨너머로 글과 셈을 배우고, 책을 몰래 훔쳐 읽다가 가정교사에게 걸렸다고 했다.
심부름꾼으로 데려온 소작농의 아이가 아주 명민하다는 것을 알게 된 클레어의 아버지는 아이를 교육시켜 보기로 했다.
똑똑한 평민 아이를 가르쳐 가신으로 키우는 것은 원래 흔한 일이었고, 철도가 생기면서 수도에 장학생을 두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기 때문에, 그레이는 그 수혜를 보았다.
그는 제국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클레어는 부모님에게 그를 영지로 불러들이지 말라고 권했다.
[지금은 무슨 일이든 다 수도에서 벌어지잖아요. 우리 영지에 우수한 법률가를 데려와서 뭐 하겠어요?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져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겠죠. 아버지 편지를 대필할 사람은 그보다 서른 배쯤 못해도 상관없잖아요.]
클레어는 정색하고 말했다.
[수도에서 자유롭게 출세하게 놔두세요. 설마 부모님 은혜를 잊겠어요? 그리고 그가 성공하면 할수록 델포드 남작령의 이름도 높아질 텐데요.]
뛰어난 법률가는 누구나 탐내는 존재였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계약이 중요해지고 소송은 크게 늘었다. 법조문은 점점 늘어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 변호사의 조언을 받는 일도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그레이는 클레어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수도에서 승승장구했다. 단순히 공부만 잘한 것이 아니라 인정받을 만큼 유능했다.
클레어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아마 고위 귀족 중에도 그를 거두려는 자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받은 은혜를 땅에 내팽개치면 사람이 아닙니다.]
클레어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그는 망설임 없이 돌아오려고 했었다. 클레어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대로 있어. 부모님도 안 계시니 더욱더 수도에 있는 사람이 필요해. 급하고 큰일이 생겼을 때, 그럴 때 도와줘.]
그레이는 그 말을 따랐다.
그는 이제 수도에서도 알아주는 법률 사무소의 주인이었다. 그에게 자리를 물려준 스승은 에른스트 공작의 후원을 받아 정계에 나섰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델포드 남작가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다른 일도 여러 가지 맡고 있을 테지만, 델포드 남작가의 법률 고문 일을 항상 제일 우선시했다.
‘개 발에 편자를 단 거지.’
클레어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인망이나 명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부를 늘리거나 하는 재주도 없었다.
그러나 돌아가신 후에 모든 것을 물려받고 나서 생각해 보면, 가문의 이름과 작위만 남겨 주신 것은 아니었다.
클레어가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자, 그레이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 이런 결혼에 쓰기에는 아까워서.”
클레어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비단 유능할 뿐만 아니라 얼굴도 제법 근사했다. 공부만 들이팠으니 희멀건 책상물림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마르긴 했으나 키가 크고 늘씬했으며, 자세가 반듯하고 어깨도 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