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에리히가 물었다.
[그런데 사서 무엇 하려고? 입막음 같은 건 그냥 한두 마디 하면 돼.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잊을 텐데.]
[대중은 잊어도, 사교계는 잊지 않겠죠.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확실하게 어그로를 끌고 싶어요.]
[분쟁을 끌어?]
클레어가 말한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에리히가 되물었다. 클레어는 삥긋 웃으며 말했다.
[계속해서 신문에서 제 이야기를 내보내게 만들 거예요.]
[흠.]
[맘에 안 들어도 참아요. 일차적으로 시선을 엘리엇에게서 제게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겠죠.]
[……그건 필요한 일이지.]
[두 번째로는, 미리 정보가 흐르는 채널을 확보해 둘 거예요. 어쨌든 신문사의 취재원들은 지금으로서는 정보의 중요성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이니까.]
틀림없이 엘리엇의 뒤를 캐려는 자가 나올 것이다. 누군가가 우연히 뭐라도 알아낼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채널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으면, 그것을 퍼뜨릴 능력이 없게 된다.
신문사는 스캔들을 통제할 수 있으면서, 스캔들이 될 만한 일을 알게 된 자가 가장 먼저 기사를 팔러 올 곳이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에리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알아내서 한몫 잡아 보려고 덤벼드는 자가 적지 않겠지. 누가 무엇을 알게 될지 모르니,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진짜 첩보요원들은 선배가 막아 줘야 해요. 이건 어디까지나 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통제하려는 거니까.]
[알았다.]
에리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로는, 이 결혼에서 중요한 게 엘리엇이 아니라 저라는 것을 못 박아 두려는 거예요. 엘리엇이 엘리사의 아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에게도, 엘리엇이 선배 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물론 멍청한 황색 언론의 스캔들 기사와 광고 폭탄이 진실과 의심을 전부 묻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입이 셋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고 했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 거기에 정보값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의 뇌리에 고정관념으로 박히게 마련이다.
그런 고정관념은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어그로를 자신이 끌어 엘리엇에게 닿을지도 모르는 공격의 시선을 돌린다. 그것만은 에리히가 해 줄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한번 세기의 결혼인 것처럼 해 보자고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드는데, 에리히가 미묘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요?]
[이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너야. 네가 아니라도 엘리엇을 보호하는 것은 내 의무지만, 네 아이가 아니었으면 내 자식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고마워요. 지금 좀 감동했어요.]
[딴 놈의 아이라도 받아들였을 거고. 내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말한 걸 잊은 모양인데, 넌.]
클레어의 혀가 잠깐 굳었다. 가볍게는커녕 선뜻 대답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아까부터 잡혀 있던 손가락 사이에 에리히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깍지를 끼는 것보다 손가락 사이를 애무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듯한 느릿한 움직임이었다.
[네게 내가 특별하다는 걸 아직 인정 못 했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우리가 연애결혼이라는 것에 이미 상호 동의한 줄 알았는데.]
고개를 기울여 들여다보는 눈동자가 선명한 코발트색이었다. 아무튼 이 남자는 이 눈이 문제였다.
클레어는 뺨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진짜 민망했다. 엄숙주의가 지배하고, 정략결혼이 자연스러우며, 배우자는 물론 자녀에게도 애정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로멜의 고위 귀족 주제에 어디에서 이런 걸 배워 온 건가.
[선배가 잘생긴 건 항상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얼굴만 특별한가?]
대답하기 곤란했다.
그리고 에리히도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클레어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입술이 다가와 말을 막은 다음이었다.
마지막 목적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목적 말인데요.]
[뭔진 몰라도 네 마음대로 해.]
[진짜요? 나 다이아몬드 광산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마음대로 가져가. 인장 반지를 줬잖아.]
[아니,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하는 말이기도 해요. 이거 못 받아요.]
에리히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맘에 안 드나?]
[난 부담스러운 거 싫어요. 어차피 이게 있다고 클라우제너를 전부 해 먹을 것도 아니고, 없다고 선배가 나한테 해 줄 걸 안 해 주지도 않을 거잖아요.]
[……그건 그렇지.]
[결혼을 고려했던 적은 없지만…… 결혼반지라면 갖고 싶은 게 있었어요.]
클레어는 에리히의 가슴 위에 고양이처럼 널브러진 채 말했다.
[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완전 하얗고 투명한 걸로.]
[소박하군.]
[클라우제너 기준에는 그렇겠지만요.]
광산주가 오죽하실까. 클레어는 킥킥 웃었다.
[그거보다 더 크면 무겁고 불편할 것 같아요. 항상 끼려면 적당한 게 낫죠. 선배의 인장 반지도 비교적 수수한 편이잖아요.]
클레어는 검지에 걸려 있던 헐렁한 인장 반지를 빼서 에리히의 왼손 새끼에 돌려주었다. 거기에는 반지 자국이 선명했다.
이 인장 반지는 그 자리에 7년간 있었을 것이다. 선대 공작이 죽어 그가 작위를 계승한 것이 7년 전이었으니까.
그녀는 그때 조문하러 가지 못했다. 델포드에 있었기도 했지만, 수도에 있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델포드 남작이라는 이름으로는 클라우제너 공작성의 문을 통과할 수 없으니까.
미묘한 감흥에 잠긴 채 그 반지 자국을 바라보고 있자 에리히가 의아하게 물었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편지를 썼었다. 답장을 준다면, 만나러 갈 작정이었다.
그를 지탱해 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손등을 어루만지며, 그가 잃은 것과 짐 지게 될 것에 대해 위로할 수는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편지는 아마 에리히의 손에 전해지지 않았으리라. 감사의 답장은 비서가 정중하게 써서 보낸 것이었다.
원래는 그 정도로 신분 차이가 있는 사이였다. 클레어는 거기에 굴종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 사실을 깊이 인식했었다.
결국 에리히가 먼저 억지로 벽을 부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끼던 걸 끼세요. 굳이 새로 만들지 말고. 그리고 내 반지는 원하는 모양이 있으니, 그대로 만들어서 가져다주러 와요.]
[그리고 신문사에 몽땅 ‘이 세기의 결혼에 쓰인 반지’라는 기사로 광고를 뿌려서 다이아몬드 사업을 해 보겠다는 거군.]
[좋잖아요. 산업 하나를 수중에 넣을 기회가 있는데, 하지 않을 이유는 없죠. 온 세상의 결혼식을 장악해서 돈을 쓸어 모을 거예요.]
[그래. 그렇게 해.]
에리히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 이유는 느끼지 못했지만, 클레어가 갖고 싶다는 반지를 만들어 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고, 하고 싶다는 사업을 막을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넨호프 호텔의 라운지에 모인 편집장의 수는 대략 50여 명이었다. 클레어는 진짜로 자유로운 신문사들을 전부 사 버린 것이다.
분위기는 몹시 불편했다.
‘델포드 남작이 왜 이렇게 다 불러 모았지?’
저지른 짓이 있으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클라우제너 공작이 청혼을 승낙받기 위해 수작 부린 것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가 직접적으로 기사를 내라고 명령한 적은 없었다.
‘위빙 상단의 주인과 완전히 척질 수는 없어.’
죽죽 오르는 판매고에 너무 흥분해서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든 것도 사실이었다.
슐츠&셔우드 법률 사무소의 젊은 소장이 직접 나서서 뒤집어 놓고 간 것이 고작해야 5일 전이다.
4일 전에는 위빙 상단의 상단주가 보낸 선물이 도착했다. 채용 공고나 상품 기사를 부탁하며 광고비 말고도 선물을 보내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위스키 병에 목화 심지를 꽂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3일 전에는 클라우제너의 재무관이 방문했다.
[지분을 모두 넘기십시오.]
[예?]
[각하께서 귀하의 신문사와 인쇄소를 인수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지금 일하고 있는 직원은 모두 그대로 고용할 겁니다.]
말이 되는 소린가. 갑자기 지분을 모두 넘기라니. 돈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직업은 신분과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고, 소속을 확실하게 하는 수단이었다.
준다는 돈이 인생을 완전히 다시 시작할 정도의 거액이 아닌 다음에야 말이…….
[일괄 1백만 골드에 인수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귀하 개인에게 드리는 겁니다.]
[헉!]
[또한 계속 편집장을 맡길 겁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종신으로 자리가 보장되고, 월급도 나올 겁니다. 클라우제너는 이런 영세업체의 경영에 신경 쓸 여유가 없으니까요.]
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