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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44/263)

45화

13. 술잔 속의 음모

루이자는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그럴 때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드레스에 달린 보석들이 출렁거리면서 움직였다.

“마리아? 마리아는 어디 갔어?”

“아까 마님께서 가져오라고 하신 티아라를 찾으러 나갔는데요.”

“그걸 왜 걔가 찾으러 가!”

보석함 열쇠를 맡아 가지고 있는 게 마리아라는 건 생각도 하지 않고 루이자가 더럭 고함을 질렀다.

거사가 치러지는 날이다. 긴장하고 있으니, 익숙한 마리아의 시중이 아닌 게 너무 신경에 거슬렸다.

“하.”

소리를 질러 봤자 자리에 없는 마리아의 귀에 들릴 것도 아니다. 루이자는 씨근덕거리면서 전신 거울을 다시 쳐다보았다.

선대 공작에게 사랑받았던 미모가 루이자에게는 언제나 자랑거리였는데, 오늘따라 아무리 치장해도 왠지 초라해 보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

“띠 가져와. 금으로 된 거!”

“아…….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우셔요, 공작 대부인. 여기서 더하시면 오히려 과해서, 꺅!”

루이자가 부채를 휘두르는 바람에 치장을 도우러 온 의상실 직원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가져오라면 가져와!”

“네! 네! 마님!”

하녀가 허둥지둥 금으로 된 체인을 가져왔다. 안개꽃을 조각한 금 구슬이 달린 체인은 치마에 두르자 반짝반짝 빛을 반사했다.

“노라는?”

“노라요? 아까 잠깐 나가더라고요.”

하녀들이 불편한 기색으로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최근에 노라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원래는 그냥 과묵하고 유능한 옷방 하녀였지만, 요사이에는 이상했다.

툭하면 일을 팽개치고 사라졌고, 몸에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났다. 손발을 떨어 대는 걸 보고 밤마다 술을 마시는 게 아니냐고 수군대는 사람도 많았다.

값비싼 옷감이나 루이자가 잘 찾지 않는 장갑 같은 소품을 빼돌린다는 의혹도 있었다.

안 그래도 벼르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 며칠 사이에 루이자가 그녀를 곁에 두고 자주 찾았다.

루이자의 총애가 부러운 것은 아니었다. 하녀 중에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꼴 보기 싫은 건 꼴 보기 싫은 거였다.

“어딜?”

루이자가 다시 물었다. 거기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무도 몰랐으니까.

“아무도 몰라? 마리아도 없고? 무슨 일을 이렇게 해?”

루이자가 몸종인 니엘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니엘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님. 노라는 워낙 잘 없어지는 애라서요.”

“담배를 피우러 나간 게 아닐까요?”

보통 하녀들은 루이자에게 자기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루이자는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총애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도 하녀들끼리 하는 이야기지, 그녀는 마리아와 니엘 말고는 대부분 이름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옷방 하녀가 담배를 피운다는 말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좀 곤란하네. 니엘, 따끔하게 말 안 하고 뭐 했니?”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니엘은 영혼 없이 말했다. 어차피 내일 되면 루이자는 이 이야기를 잊어버릴 것이다.

마리아가 돌아온 것은 그때의 일이었다.

“왜 이제 와?”

“늦어서 죄송합니다.”

밖에서 얼마나 뛰어왔는지, 숨을 몰아쉬며 마리아가 굽실거렸다.

그리고 루이자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벨프 후작님께서 찾으세요.”

“오라버니가?”

루이자는 하, 하고 한 번 한숨을 내쉬고 일어섰다.

그쪽에도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정말이지, 되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번에 제대로 해치우지 않으면 두 번째 기회는 없을 테니, 자신이 하나하나 전부 챙기는 수밖에.

“니엘, 노라가 오면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

“네, 마님.”

루이자는 마리아만 앞세우고 드레스룸을 빠져나갔다.

그때 벨프 후작은 연회장에 있지 않았다.

두 번째 춤곡이 끝났을 때의 일이다. 중요한 일로 보냈던 심부름꾼이 돌아오지 않아 초조해하던 중에 루이자의 하녀가 그를 불러냈다.

루이자가 보낸 것이라고 생각해서 따라 나왔는데 그 자리에서 클라우제너의 보안요원들에게 붙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내가 누군데! 대체 누가 시킨 짓이야?”

그는 아우성쳤지만, 보안요원 하나가 그의 입에 억지로 손수건을 물렸다.

연회장에서 떨어진 복도로 끌려가는 동안 내다보는 자가 한 명도 없었다. 벨프 후작은 낯익은 공간이 나온 다음에야 자신이 어디로 끌려왔는지 알았다.

공작의 집무실이었다. 에리히가 팔짱을 끼고 창가에 기대어 서 있었다.

“으읍!”

에리히가 흘끗 후작에게 시선을 주었다. 보안요원이 그제야 후작의 입에서 손수건을 빼냈다.

“푸하!”

간신히 숨이 트인 후작이 거칠게 헐떡였다. 에리히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보안요원이 그를 소파에 앉혔다. 벨프 후작은 분노와 경악으로 시뻘게진 채 외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에리히 공! 사람을 속여서 납치라도 하듯이!”

“잠시 기다리십시오. 와야 할 사람이 더 있으니까요.”

오래지 않아 술에 취한 요시아스가 끌려왔다. 거의 인사불성이었기 때문에 보안요원은 그를 후작의 곁에 집어 던지듯 내려놓았다.

루이자가 도착한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그녀는 무척 당황했다. 처음에는 연회장으로 갈 줄 알았는데, 마리아는 그녀를 엉뚱한 복도로 인도했다.

그녀는 단 한순간도 마리아를 의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본채로 들어선 다음에야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쪽에는 대부분 에리히가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방들이 있었다.

접견실처럼 외부인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 자신조차도 용건 없이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인데, 벨프 후작이 여기 있을 리가 없었다.

“너, 어딜 가는 거야? 오라버니가 찾는다며?”

그녀의 고함소리는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을 뿐이다.

마리아는 그 순간에 루이자의 팔짱을 끼었다. 달아나지 못하도록 잡는 것처럼 말이다.

하녀 옷을 입은, 그러나 루이자가 본 적 없는 여자 하나가 더 나타나 마리아의 반대쪽에서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 마치 연행하듯 그녀를 끌어당겨 집무실로 향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

집무실 안으로 밀쳐지듯이 들어오며 루이자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집무실 안에 에리히와 벨프 후작, 요시아스가 있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어지러운 듯이 고개를 한 번 흔들고, 구겨진 소맷자락을 바로잡았다.

“무슨 일이니? 사람을 시켜 불러내서는, 납치라도 하듯이 끌고 오다니?”

루이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집무실 안의 불온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중심적인 탓에, 자신에게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에리히가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분이 오늘 제 약혼녀에게 하려던 짓을 그대로 했을 뿐입니다.”

루이자는 그제야 흠칫 몸을 굳혔다.

“아니, 추문으로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히려고 한 게 아니라 공개적인 장소에서 두 분의 명예를 해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니 완전히 다르긴 하군요.”

루이자는 숨을 훅 들이켰다. 원래도 감정을 숨기는 것에 능숙하지 못한 데다가 임기응변에도 서툴렀으므로 얼굴이 새빨개져 발끈하고 말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어쨌다고?”

에리히의 반보 뒤에 서 있던 보좌관이 편지 네 장을 꺼내서 벨프 후작 앞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벨프 후작이 숨을 들이켰다. 그 편지는 그가 조금 전에 자기 하인들에게 보내라고 지시한 것이다. 수신인은 각각 다른 남자였으며, 클레어의 서명이 되어 있었다.

위조 서명에, 위조 필적이다. 내용은 밀회를 비는 남자에게 주는 답장이었다.

『클라우제너가 가진 힘과 권력 때문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이기적인 남자를 좋다고 하겠어요? 내 마음속에 있는 건 오로지 당신뿐이에요. 파티 날, 후원에서 그걸 증명해 줄게요.』

그 밑에 적힌 문장들에는 다분히 성적인 함의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 어떻게 이걸……?”

벨프 후작이 경악했다. 자신도 필적 위조가를 직접 알아보았고, 위조 편지를 보내는 것도 출처를 숨길 수 있도록 사람의 손을 여럿 거쳤다.

그러니 이 일을 아는 것은 루이자와 자신을 제외하면 계략을 짠 노라와 아들인 요시아스뿐이다.

그런데 대체 어느 틈에 편지를 빼돌렸단 말인가.

“제 집에서 이런 짓을 꾸미고도 성공할 것 같았습니까?”

“짓이라니? 무슨 짓?”

“진정제를 섞은 독주를 먹인 다음 끌고 가서 밀회 현장을 만들고, 손님들에게 목격시킬 작정이셨잖습니까? 바람을 피운 것처럼 보이기만 했으면 다행이지, 실제로 그 이상의 일을 사주할 계획이셨을 거고.”

에리히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기쁨과 즐거움만이 아니라 분노와 슬픔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바로 그가 가장 로멜 귀족다운 이라고 불리는 이유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평정하게 말하고 있어도, 평소와 달랐다. 새파란 눈동자에 그늘이 드리워져, 시선만으로도 싸늘하게 사람을 벨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루이자가 지레 겁을 먹으며 장식 체인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치맛자락을 쥐어뜯었다. 벨프 후작도 황급히 변명했다.

“뭐,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공작님!”

“그렇습니까? 그러면 증인이 잘못 들었겠군요.”

에리히의 말이 끝나자, 마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오늘 하루 종일 허둥거리는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침착하고 아주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루이자가 비명을 질렀다.

“네가…… 네가 날 배신했어?!”

배신이 아닙니다, 어머니. 애초부터 마리아는 제 명령을 받고 어머니를 모셨던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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