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49/263)

50화

노라의 시신에는 흰 천이 덮여 있었다.

클레어는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한참이나 말없이 서 있었다. 부모님의 장례를 치렀으니,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가족과의 이별이라는 슬픔 없이 직면한 시신의 모습은 너무 날것이라, 심장이 써늘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속에 칼날이 섞인 바람 같은 것이 가득 찬 것 같은 고통스러운 감각을 느꼈다.

클레어는 깊게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죽음의 세포가 공기 중에 섞여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나가시지요. 보고는 밖에서 드리겠습니다.”

막시밀리안이 권했다. 클레어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보고해 주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막시밀리안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단정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사망 원인은 자상입니다. 한 뼘 정도 길이의 단검으로 뒤에서 찔렀습니다. 단숨에 절명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고통을 오래 받지 않아서.

저지른 짓이 무엇이든 간에, 이렇게 입막음으로 살해당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옷차림이 흐트러진 걸로 볼 때 아마 뭔가를 수색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입안에 은화가 하나 들어 있었고요. 발견된 곳은 자택에서 두 블럭쯤 떨어진 골목이었습니다.”

“어제 호프만 양의 집에도 화재가 났다면서요?”

“예. 다행히 옆집으로 번지기 전에 진압했습니다. 노라 호프만은 혼자 살았기 때문에, 가족은 따로 없습니다.”

“그러면 증거 인멸을 한 거겠네요.”

시신은 골목에 있었고, 사람 없는 집에 불을 질렀으니까.

아마 노라가 집 안에 뭔가 증거가 될 만한 걸 남겨두었을까 봐 그랬을 것이다.

“대부인은 확실히 아니군요.”

클레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일부러 거실로 찾아가서 태도를 살핀 것도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루이자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에리히가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하고 염려한 것도 아마 진심일 것이다.

막시밀리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부인께서는 거짓말을 능숙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소…… 본분에 어긋나는 방식이기는 해도 클라우제너와 각하를 소중히 하시는 것도 사실이고요.”

“네. 저도 의도하지 않은 사고거나 일이 꼬여서 생긴 일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뿐이에요.”

루이자에게는 제일 먼저 의심을 받았다가 벗어나는 방식으로 용의자에서 빠져나오는 정교한 음모를 꾸밀 능력이 없다.

이렇게 하수인을 단숨에 살해해서 증거를 없앨 결단력도 없다. 무엇보다도, 그럴 의사가 생긴다 해도 대신 일을 처리해 줄 심복이 없었다.

루이자는 자기를 오래 모신 하녀의 이름도 대체로 기억하지 못했다.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으로 10년 이상, 그리고 공작 대부인으로 7년을 살아왔는데도 하녀들의 충성조차 얻지 못했다.

그런데 남몰래 사람을 거두어 두었다가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그럴 능력이 있을 리 없었다.

‘애초부터 대부인은 이렇게 큰일을 꾸미지 못해.’

사람은 악행도 자기 그릇대로 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이자가 자신을 남자와 엮어서 쫓아내려고 한 것은 아주 그럴듯했다.

인명을 귀하게 여기는 도덕심 때문이 아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만 느껴지는 죽음보다 남자와의 밀회로 붙는 추문이 루이자에게는 더 가까운 지옥인 것이다.

벨프 후작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쪽에도 대신 손을 더럽힐 사람을 거둘 능력이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만일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후작은 밤길에 자신을 습격하라고 지시했으리라.

‘누군가가 이 계획을 알고, 거기에 숟가락을 얹은 거야. 내가 그 술을 마셨다면 대부인이 대신 뒤집어써 줄 테니.’

실제로도 지금 증언으로 나오는 건 모두 대부인의 명이었다는 이야기뿐이다.

아마 진범을 알고 있는 것은 노라 호프만뿐일 것이다.

‘이 사람은 그늘에서 암약하는 종류의 사람인 거야.’

대체 누구일까.

에리히가 마신 건 대체 무엇일까? 원래 그것은 자신을 노리고 잔에 섞은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 자리 때문인가?

아니면 위빙 상단 때문에? 혹은, 순수하게 클레어 델포드라는 개인을 노린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엘리엇 때문에?

클레어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쥐었다.

새삼스럽게, 이런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웃 마을을 침략해서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 세상까지는 아니라도, 입막음을 위해 평민 하녀 하나쯤은 손쉽게 살해하는 세상이다.

전생에도 누가 사고사로 위장해서 살해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종종 있었다. 자살당했다는 표현도 있었다.

그러나 끔찍하다고 말하면서도 언제나 남 일이었고,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이었으며, 끝난 과거의 역사였다. 평범한 회사원과는 인연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을 클레어는 실감했다. 엘리사를 데리고 도망칠 때 시작된 일은 끝나지 않았다.

“마저 말해 주세요.”

클레어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의 디테일까지 알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죽음이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상흔을 만들어야 했다.

막시밀리안이 차분하게 말했다.

“범인은 퇴역군인일 겁니다. 정식으로 훈련받은 솜씨인 데다가 망자에 대한 경의를 보였습니다. 신체에 다른 상해는 없고, 입안에 은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클레어는 그의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입안에 은화를 넣는 것은 망자가 온전히 저승의 강을 건너가라고 하는 일이다.

부장품을 넣거나 망자를 위해 기도를 올릴 여유가 없는 전장에서 자주 치르는 약식 장례의 일종이라고 들었다.

살인자가 망자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평가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느껴지지만, 막시밀리안이 하는 말의 의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의 기준이 이 세상의 평균일 것이다.

‘죽어 마땅한 자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죽일 만큼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클레어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사 계획에 대해 듣고 싶어요.”

“일단 가족을 찾고, 이웃들에게 탐문하면서 살인범을 찾을 예정입니다. 노라 호프만과 친했던 고용인들은 이미 심문에 들어갔습니다.”

“경시청에서는 아무 말 않겠어요?”

“양해할 겁니다.”

막시밀리안이 짧게 말했다. 하긴, 클라우제너 공작의 술에 독을 탄 하녀가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경찰이 나서서 보안부를 막을 배짱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알았어요. 뭔가 새로운 게 밝혀지면 알려 주세요.”

“예.”

막시밀리안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클레어는 한심스러운 기분으로 저택으로 돌아왔다.

날씨가 더럽게 맑았다. 그녀는 일부러 정문 앞에서 내려서 정원을 걸어서 가로질렀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햇살이라도 쐬어야, 빙빙 돌다 갈린 뇌세포가 튀어 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남작님!”

막 분수대를 지났는데, 파벨이 미친 듯이 뛰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클레어는 의아하게 고개를 들었다.

“깨어나셨습니다!”

“아!”

누구 이야기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클레어는 치맛자락을 말아 쥐고 황급히 저택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녀가 달려 들어가는 것에 따라 시종들이 문을 모조리 활짝 열어젖혔다. 평소 같으면 유난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클레어는 그것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에리히는 침대에 쿠션을 여러 개 놓고 반쯤 눕듯 기대어 있었다. 클레어는 그것을 보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에리히.”

그녀가 눈에 불을 켰다.

“왜 앉아 있어요?”

“이게 왜 앉아 있는 거야?”

에리히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씨도, 표정도 완전히 정상이었다. 클레어는 안심하면서도 그에게 화를 냈다.

“어제 쓰러졌으면서!”

“잠든 거였지.”

에리히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클레어는 그의 품에 뛰어들고 싶은 기분과 베개로 한 대 때리고 싶은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어젯밤에 큰일 날 뻔했다는 자각은 있는 거예요!?”

“이모, 아픈 사람한테 소리 지르면 안 돼.”

클레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마자 뒤에서 또랑또랑한 아이 목소리가 지적했다.

클레어는 깜짝 놀라 그쪽을 돌아보았다. 엘리엇이 다가와 클레어와 에리히 사이를 가로막고 팔짱을 끼고 섰다. 제가 직접 손을 씻었는지, 걷은 소맷자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저씨 아픈데 화내면 안 돼!”

클레어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리고 에리히를 쳐다보았다.

에리히가 재미있다는 듯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엘리엇이 날 지켜 주기로 약속한 참이라서.”

“아니.”

클레어는 무엇부터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일단 운을 띄웠다. 그리고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누구한테서? 나한테서?”

“아저씨가 걱정했단 말이야. 아픈 건 자긴데 이모가 분명히 화낼 거라구. 내가 아닐 거라고 했는데.”

엘리엇이 당당하게 따졌다.

“근데 진짜 화냈어! 이모가 나빠!”

“아니.”

클레어가 황당한 듯 다시 중얼거렸다.

엘리엇은 이번에는 에리히에게 말했다.

“아저씨도 잘못했다고 말하세요.”

“내가 뭘?”

“아저씨 손 안 씻었죠? 감기 걸리면 이모가 걱정하는데.”

에리히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빨리 잘못했다고 하세요. 이모가 더 화내면 제가 못 막아 줘요.”

이 세상의 누가 에리히 클라우제너에게 이렇게 사과를 요구하겠는가.

주치의부터 비서, 시종, 보안요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웃음이 터질 것 같은데, 공작 앞에서 웃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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