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2/263)

53화

15. 공작 부인의 선택은 다이아몬드

수도에서 가장 큰 신문인 레비 순보에 특종이 떴다.

《공작 부인의 선택은 다이아몬드!》

레비 순보의 편집장은 그 헤드라인을 보고 한숨을 내쉬고는 신문을 책상에 팽개쳤다.

《금세기 최고의 로맨스라고 할 수 있었던 클라우제너 공작의 청혼으로부터 2개월, 마침내 공작 부인의 예물이 결정되었다.》

《공작은 청혼 선물로 7년간 착용해 온 자신의 인장 반지를 약혼녀에게 끼워 주었다. 이는 가문의 모든 권리를 맡긴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지난번 기사로 알려 드린 바와 같이, 지혜로운 델포드 남작은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순수하고 맑으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마음뿐이라며 인장 반지를 돌려주었다. 이에 공작이 택한 보석이 다이아몬드라고 한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그 밑으로는 예물 제작을 맡은 공방에서 유출되었다는 목걸이와 반지 디자인 스케치가 있었다.

“제기럴, 이것도 기사라고.”

편집장은 눈가를 손으로 덮으며 걸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원고 하나를 정서하고 있던 편집자가 킬킬 웃었다.

“뭐가 어때서요? 우리가 커진 게 뭐 정치 경제 기사를 내서 성공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저어기 주간 미스터리처럼 형사사건 쫓아다니면서 재밌는 기사를 쓰던 곳도 아닌데.”

레비 순보는 가십과 스캔들, 상류 계급에 대한 호기심을 먹고 자랐다. 사실 그 무엇보다도 광고의 위력이 컸다.

레비 순보의 애독자들은 진짜 귀족들이 어떤 물건을 사용하는지 알고 싶어 했고, 그와 같은 것, 적어도 비슷한 물건을 사용하고 싶어 했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 다이아몬드 예물은 적절한 기사이긴 했다. 지시가 없었어도 기꺼이 실었을 것이다. 2면이나 3면에.

“아니 말야, 이 시점에서 우리가 뻥 하고 터뜨려야 하는 건 다이아몬드 목걸이 디자인 따위가 아니라 공작 대부인 이야기라고.”

“뭐 어쩌겠어요? 공작 대부인이 휴게실에서 돌아갔든 어쨌든, 클라우제너의 일인데.”

“생각해 봐. 그날로부터 3일 만에 대부인이 영지로 내려갔어. 벨프 후작가도 그렇잖아. 갑자기 가산 딱 정리해 가지고 수도를 떠났다고.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다니까?”

“고부 갈등을 우리 사주님이 순식간에 정리하신 거죠. 음, 대단하셔. 그 클라우제너 공작 대부인을.”

“야!”

“어쨌든 기삿거리는 못 되죠. 우리 오너가 욕을 먹거나, 우리가 오너 대신 욕을 먹거나.”

“하.”

편집장이 한탄했다.

“그러면 이리스 슈나이더는 어때? 그쪽은 진짜로 델포드 남작님 편에서 마음껏 씹어 대도 된다고 본다. 소문 뻔히 알면서 약혼 파티에 간 의도부터가 불순하잖아.”

“음. 그렇긴 한데요.”

“온 사교계와 수도 시민이 다 같이 궁금해할 핫이슈라고. 지금이야말로 우리 순보가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발로 뛰어야 할 순간 아니야?”

“델포드 남작님이 과연 본인 입장이 난처해지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쓰라고 하실까요?”

“어허! 남작님은 피해자야. 난처해지다니! 모두가 남작님 편을 들도록 만들어야지.”

“그러면 공작이 천하의 개쌍놈이 되겠죠. 누가 봐도 양다리 걸친 건데.”

“그걸 어떻게 잘 좀…….”

“아무리 잘 써 봐도 최소 공작이 슈나이더 백작 영애에게 여지를 줬다는 이야기가 되잖아요. 그게 남작님에게 유리할 거 같진 않은데요?”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기에 편집장은 푸슈슉 수그러들었다. 설령 신문 판매고를 훌쩍 점프시킬 수 있는 일이라도, 오너를 건드릴 순 없었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기자가 말했다.

“거 뭐 어렵게 생각하십니까?”

“밖에까지 다 들렸어?”

“예. 간단한 일 아닙니까? 공작님을 안 건드리면서 슈나이더 백작가를 쏘삭거릴 수 있는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좋겠다, 이거잖아요.”

편집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럴 만한 거리가 있나?”

“이리스 슈나이더가 백작의 친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뭐? 완전히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편집장이 자세를 똑바로 하고 기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기자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원래 슈나이더 백작의 애인은 따로 있었잖습니까? 이리스의 친모라고 알려진?”

“그렇지. 아주 기가 막히게 예쁜 금발의 프리마 돈나였지.”

갑자기 은퇴하고 사라져서 다들 백작의 아이를 가졌구나 했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백작의 정부로 사교계에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그녀의 소식이 다시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6년 후의 일이다. 지금의 백작 부인 카탸가 아이를 데리고 백작저에 나타나, 그녀가 병으로 죽었으며, 친구인 자신에게 아이를 아버지에게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슈나이더 백작은 눈물로 아이를 맞이했다. 그것이 이리스다.

“지금의 백작 부인은 영애의 유모로 백작가에 남았다가 백작을 유혹하여 결혼한 거지.”

그때 사정을 잘 모르고 눈을 굴리는 편집자에게 편집장이 흥이 나서 말했다. 현역 시절에 가장 핫했던 스캔들이라 술자리 안줏거리로도 그만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기자가 목소리를 낮추며 화제를 전환했다.

“요즘 오페라 극장에 그녀의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편집장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꽃가마를 앞에 두고 요절한 미모의 프리마 돈나 유령이라니, 재밌는 이야깃거리긴 하다만, 너 지금 그걸 이리스 슈나이더랑 엮어 보겠다는 거냐? 야, 정신 차려. 그냥 가수가 아니라 백작 영애야. 우리 괴담 다루는 가십지 아니야.”

“진짜 있습니다.”

기자가 정색했다.

“스테판이라는 발레리노가 있지 않습니까? 파펜하임 백작의 애인인.”

“어, 어.”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와서 편집장이 놀란 소리를 냈다. 스테판은 최근에 오페라 극장에 영입된 주역 무용수로서, 실력으로나 스캔들로나 아주 핫했으니, 레비 순보의 편집장으로서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스테판이 직접 데려온 하녀가 얼굴이 아주 닮았습니다.”

“유령 소리를 들을 만큼?”

“다들 쉬쉬하지만, 20년 전부터 오페라 극장에서 일하던 중늙은이들은 아주 고개도 들지 않고 다닐 정도죠.”

탕. 편집장이 책상을 두드렸다.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모름지기 특종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

“진실을 캐는 게 바로 신문기자의 역할이 아니겠나? 한번 파 봐. 내가 밀어줄게.”

“예.”

“만에 하나 그게 진짜라면, 슈나이더 백작 부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어. 알지?”

“잘 알죠. 저희가 이런 일 한두 번 합니까?”

기자가 명쾌하게 대답했다.

레비 순보에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들은 루머를 마구잡이로 싣지 않았다. 팩트 체크를 반드시 했고, 이렇게 캐낸 정보를 협박용으로 써서 돈을 뜯어내거나 하지 않았다. 오로지 판매량을 늘리는 데만 집중했다.

상대는 귀족 놈이다. 타고나길 고귀하다는 이유로 대접받으려면, 그만큼 자신의 고귀함을 증명해야 할 것 아닌가. 그만큼 고귀하지 못하다면, 시민들을 즐겁게라도 해 줘야 마땅하다.

썩은 내 풍기면서 푸른 장미처럼 굴면 안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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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십니다.”

광고 기사가 뜬 회차의 레비 순보를 들고 온 클라우제너의 재산 관리인 빌헬름 마이어가 찬사했다.

클레어는 신문을 보고 ‘아!’라고 짧게 말했다. 드디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었다.

“마이어 경은 걱정이 있으셨던 것 같군요.”

“일반적으로 광고의 효과는 일시적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두 분의 결혼식을 화제로 삼아 홍보를 하더라도, 수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위빙 상단을 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여주인께서 다이아몬드 사업을 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이라는 절대적인 법칙을 이겨 낼 수 있을까 회의가 들었던 게 사실이다.

다이아몬드는 직물과는 사정이 다르다. 문직물의 수요가 창출된 것은 가격 하락 때문이지만, 보석은 그런 식으로 가격을 떨어뜨리면 오히려 손해가 된다.

사치품에 저가라는 이미지가 붙으면 치명적이다.

직물은 소모품이라 지속적으로 사라지고, 위빙 상단의 문직물은 사치품에서 생필품으로 내려앉으면서 수요를 확보했다.

그러나 보석은 그럴 수가 없다. 공업용으로 돌린다고 해도 한계는 명확했다.

하지만 광고 기사 끝줄에서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문장을 본 순간 온몸이 떨렸다. 빌헬름은 5년 전 로저 카슨이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광물 자체에 이미지를 붙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상단이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건 오래 못 가니까요. 성공적으로 만들어져도 반발심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거고, 오래 유지해도 결국엔 사람 때문에 끝나게 되어 있죠.”

그에 비해 광물에 붙은 이미지는 문화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번 정착하면 정말로 영원에 가깝다.

이건 검증된 캐치프레이즈다. 무색투명에 순수성을, 단단함에 영원성을 결부시켜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만든다.

‘드비어스가 되어 주마.’

클레어는 은밀하게 웃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쉽다. 이곳에서는 드비어스가 했듯이 낭만적인 유래를 창조하고 미친 듯이 홍보를 때리며 소비자를 심리적으로 조작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결혼에 로맨스가 개입하기 시작한 이 시대 이 순간, 세기의 로맨스를 찍고 있는 공작 부부(예정)가 있었으니까.

다이아몬드는 영원한 결혼 예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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