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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75/263)

76화

일반적으로 진짜 무례한 이야기였다. 방문객이 줄지 않았냐는 것은, 네 영향력과 사회적 지위가 축소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돌려 욕하는 것과도 비슷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클레어는 그런 뜻으로 질문한 것이 아니었고, 무어 공작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음흉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짐짓 놀란 얼굴로 클레어를 빤히 바라보았다.

“공왕 전하께서 외로운 몸이시라는 것을 남작이 그토록 염려하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질문 방식이 너무 직설적이었어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돌려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여쭈었습니다.”

클레어의 얼굴은 아주 심각하고 진지했다.

무어 공작은 그녀가 자신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그녀를 살피듯이, 인간됨을 보고 있는 게 아니다.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반응을 살피고 있다. 무어 공작이 방문객이 줄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다면 그게 ‘사건’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

‘무슨 일이 있구나.’

무어 공작은 무심코 등에 힘을 주었다.

지난 5년 동안 공왕궁은 아주 평화로웠다. 일이 벌어질 만한 거리도, 사람도,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문객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황태자가 죽은 뒤로 공왕은 공왕궁의 문을 닫아걸다시피 했다.

알현을 청하는 사람을 굳이 거절하지는 않았다. 이전과 똑같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아렌인이 있다면 기꺼이 도왔다.

그러나 사적인 교류는 완전히 사라졌다. 특히 자주 드나들던 아렌 귀족들과도 선을 그었다.

사람에게 실망한 탓이다. 공왕은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으나 딸을 황제와 결혼시킨 것부터 후회하고 있었고, 아예 자신이 아렌 왕가의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에까지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황태자를 중심으로 아렌의 영광을 떨치고자 하던 아렌 귀족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황태자가 죽었으니, 공왕이 구심점이 되어 복수하고, 동시에 세력을 결집시키기를 바라던 자들은 모두 실망하여 떨어져 나갔다.

그저 다정한 마음으로 다가온 자들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비탄에 잠긴 노인 곁에 언제까지고 머무를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무어 공작은 그것을 온건하게 말했다.

“공왕 전하께서는 이제 은퇴하여 조용히, 은거하듯 사시는 분이지요. 기껏해야 나만 이런저런 일을 청하기 위해 드나들 뿐입니다. 방문객이 줄어든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공작님께서 공왕 전하를 살펴 드리고, 또 뜻하시는 바를 대행하시는 일도 종종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

무어 공작은 굳이 자신에게도 방문객이 줄어들었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무례한 질문에 굳이 친절한 답변을 해 줄 필요는 없다. 클레어는 아마 이미 조사해 보고 왔을 것이다.

질문한 것은 자신과 공왕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나 확인한 것뿐이리라.

클레어가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각오는 이미 했으나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렌 귀족을 대상으로 의도적으로 마약을 퍼뜨리는 자가 있습니다.”

무어 공작은 감정적 동요를 쉽게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으나 이 말에는 손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손수 빈 잔을 채우려던 것을 잊고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클레어는 맑은 눈을 하고 있었다. 노란빛이라고 생각했던 눈동자에 서린 감정이 붉은색이라, 얼핏 태양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몇 주 전에 제가 납치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공작님도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소문은 들었어요.”

“구체적인 증거까지 알려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략 6, 7년 전부터 오페라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각종 아편제제를 실험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장부에 적힌 지역 영주의 금전 관계와 행동을 추적하여 추론한 내용이었다.

전원을 다 밝혀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운 좋게도 클레어는 그중 여러 사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델포드의 영향력은 클레어 자신이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컸다.

위빙 상단의 공장과 포목점은 아렌 지역의 여러 곳에 진출해 있다. 유력한 귀족은 공단과 화물 운송에 관한 이권으로 위빙 상단과 얽혀 있고, 많은 영지가 원재료 공급처였다.

그리고 귀족에게 이 같은 인맥은 곧바로 정치적 영향력으로 치환되게 마련이다.

이것을 현대의 거래처처럼 생각한 클레어가 판단을 잘못한 것이다. 황후가 염려하던 것을 그녀는 이제야 깨달은 셈이다.

어쨌든 그녀는 여러 통의 편지를 쓰고 심부름꾼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꽤 여러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가문의 수치로 여기고 숨기는 자가 생각보다 적었던 덕분이다.

“수도에 머무르는 아렌 귀족은 대부분 연잎 궐련의 애호자입니다. 수면제와 진정제도 퍼지고 있고요. 자기 영지에 머무르고 있는 이들 중에도 이걸 맛본 사람이 상당합니다.”

“그렇군.”

무어 공작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녀도 이것을 기껏해야 썩 좋지 않은 기호품의 한 종류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클레어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각한 중독자는 대부분 귀족원 출석을 포기했습니다.”

“……?”

“저 같은 사람은 괜찮습니다. 원래부터 관심이 없어서 출석하지 않았던 거니까요. 하지만 소위 ‘아렌 세력’을 형성하려던 귀족들 중 연잎 궐련을 피우다가 중단하면서 출석하지 않게 된 자가 60퍼센트를 넘어갑니다.”

궐련을 중단했다는 것은 더 강도가 강한 약으로 넘어갔다는 의미였다.

클레어는 굳이 명단을 가져오지 않았다. 무어 공작이 알아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다수가 후원하고 있던 하원 의원에게 이전과 전혀 다른 정견을 보냈습니다. 예를 들면, 루덴도르프 후작령에 어업항을 만드는 데 국가 예산을 투입한다는 정책이 특별한 반대 없이 통과되었죠.”

그리고 루덴도르프 후작가는 황후의 수석 시녀 아우구스타의 친정이었다.

무어 공작의 눈빛이 깊어졌다.

확실히 이상했다. 루덴도르프 후작령이 딱히 어업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고, 이름난 항구가 있는 곳도 아니다.

아니, 설령 그곳이 최적의 장소라 해도 국가 재정을 쏟아붓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아렌 귀족들은 반대했을 것이다.

“물밑에서 타협이 있었겠지요. 클라우제너도 늘 그런 식으로 움직일 텐데.”

“일회성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뒤로 딱히 아렌에 대규모로 국가 예산이 투입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반면, 로멜, 특히 황후의 측근 쪽에는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지요.”

이것도 추측이 아니라 그냥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중독자의 의존성은 공작님께서 알고 계시는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전 이게 아렌 귀족을 마약에 중독시킨 다음, 공급을 쥐고 협박하여 만들어 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금단 증상에 빠진 중독자는 약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듣는 법이다.

무어 공작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본인이 위험한 말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겠지요?”

“다행히도, 곧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이 될 몸이라 이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클레어는 살짝 웃었다.

“의존성과 부작용을 실험해 가며 강도 높은 마약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게 단순한 범죄조직이 하는 일일 리 없습니다. 단순히 사교계에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것뿐이라면, 로멜 귀족에게는 연잎 궐련 이상의 약이 공급되지 않고 있는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지요.”

“남작이 모르고 있는 것뿐이 아닐까요?”

“저는 몰라도, 제 약혼자가 모르고 있을 리는 없으니까요.”

클레어는 단호하게 말했다.

무어 공작은 몇 번이나 클레어에게 반박했지만, 사실 진심으로 그녀의 말이 그르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렌 귀족의 방문은 명백하게 줄었고, 정치 세력으로서의 아렌도 흩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황태자의 죽음 뒤에 구심점과 목표를 잃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매사 반대하는 집단 정도는 남아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렇지 않은 것은 비정상이다. 뒤에서 음모가 움직이고 있었다.

무어 공작은 천천히 호흡하며 가슴을 가라앉혔다.

황후가 아렌 귀족의 세력을 없애려고 하고 있다. 그런 것에 일일이 분노하고 슬퍼하기에는 무어 공작은 이미 많이 닳았다.

어차피 생길 일이 생긴 것이다. 아렌은 백 년 동안 버텨 왔지만, 결국에는 로멜에게 흡수될 것이다.

“남작의 뜻이 이해되지 않는군요. 그래서, 내게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저 어린아이에게 짐을 지우고 싶은 게 아니라면.”

무어 공작이 테라스 쪽을 돌아보았다. 엘리엇이 신나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원에 과실수가 몇 개나 있었는데, 공왕이 안아 올려 그것을 딸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다.

클레어도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고는 무어 공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는요, 공작님.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황실의 권력다툼에 끼어드는 꼴이 될까 봐 무척 두려워요.”

“그런가요?”

“하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마약을 퍼뜨려 협박의 수단으로 삼는 자를 용납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클레어는 무심코 주먹을 한번 쥐었다가 폈다.

진짜로 아무런 관련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아렌 출신이어서도, 엘리엇이 타고난 권리를 되찾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도 아니다.

황후가 하는 짓의 해악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약을 뿌리는 것은 쉬우나 거둬들이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돈맛을 본 마약상이 신분을 가려 가며 귀족에게만 팔겠는가?

결과적으로 제국 전역에 뿌리내리게 된다. 클레어는 그렇게 된 후의 결말을 용이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일에 인간으로서 눈감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무어 공작이 천천히 차를 한 잔 더 따라 마셨다. 그러는 동안 거실에 고요함이 감돌았다.

“그래서, 내게 바라는 일이 무엇인가요?”

“아렌 귀족을 결속시키고 황후와 대적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각지의 영주들은 자기 영지 안에서 이 약이 더 퍼지지 않도록 막아야 하고요.”

역공을 하려면 일단 한 번은 적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

“공왕 전하와 무어 공작님을 제외하고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남작은 지나치게 겸손하게 말하는군요. 클라우제너와 위빙 상단의 힘이라면, 황실과 맞서 싸우기 충분할 텐데.”

무어 공작은 테라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공왕 전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몸을 일으키시겠지요.”

“감사합니다.”

클레어가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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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가 마차에서 내려 오페라 극장의 정문 앞에 섰을 때였다.

“슈나이더 백작 영애?”

부르는 소리와 함께 옆에서 뻗어 온 손이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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