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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78/263)

79화

성황청 예배당의 천장은 하늘처럼 높아, 궁륭에 새겨진 천사의 조각상을 세심히 살피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묘하게 설계된 천창과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스며드는 수백 가닥의 햇살이 예배당을 신성한 빛으로 가득 채웠다.

꽃향기와 은은한 음악이 바닥에 내리깔렸다. 먼저 온 하객들은 가까이에 앉은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빅토리아 고모님이 오실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베티나 공녀가 방실방실 웃으면서 말했다. 올해 나이 칠순인 빅토리아 대공은 황제의 큰누이로, 북부의 자기 영지에서 혼자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에리히가 결혼을 한다는데 어찌 안 와 볼 수가 있겠니?”

“에리히 공이 많이 늦긴 했죠. 결혼 상대가 아렌 귀족이라고 해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요.”

“에리히는 원칙주의적인 면이 있으니까, 프리드리히 대제께서 로멜-아렌 계승법을 만드신 진정한 의미를 이해한다면 아렌 남작이라고 해서 기피할 것도 없지.”

맨프레드 대공 부부도 한 마디씩 보탰다. 맨프레드 대공은 황제의 바로 손아래 동생이었다.

황후는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황제가 왕림할 수 있었다면,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것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칩거한 지 오래였고, 공개적으로 알리지는 않았으나 병도 깊었다. 심병이라고 했지만, 간간이 그를 만나는 맨프레드 대공이 보기에는 몸의 병도 깊은 듯했다.

리누스 황자는 에른스트 공작령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 하객으로 참석한 황족은 여기 네 사람이 다였다.

베티나가 경쾌하게 말했다.

“아렌 공왕께서도 오실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무어 공작님도 함께 오시겠죠.”

“넌 무어 공작님을 좋아하니까.”

“멋있잖아요. 아, 물론, 제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 빅토리아 고모님이고요.”

“기어이 결혼은 안 하겠단 뜻이로구나.”

“전 저보다 잘난 남자가 아니면 싫어요. 그런데 저보다 확실히 잘났다고 할 수 있는 건 에리히 오빠 정도잖아요? 무어 공작님께 아드님이 계셨다면 모를까.”

에리히의 결혼을 두고는 공평하게 말했지만, 자기 딸은 아렌 귀족과 결혼시키고 싶지 않은 맨프레드 대공이 미묘한 얼굴을 했다. 무어 공작에게는 자식이 없으니 의미 없는 이야기이긴 했다.

그나저나 훌륭한 결혼식이었다. 예배당은 하객들로 가득했으며, 신성하면서도 축복된 분위기가 가득했다.

루이자와 이리스에 얽힌 각종 악소문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고 완벽한 결혼식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인정하게 하는 광경이었다.

물론 흠잡는 이들도 있었다.

“보세요. 저 천한 자들을.”

“클라우제너 같은 가문의 결혼식에 회계사니 포목점주 따위가 앉아 있다니, 기가 막혀서.”

파펜하임 백작 부인을 비롯하여 루이자를 추종하던 귀부인들은 아직도 승복하지 못하고, 부채를 팔랑거리며 험담을 내뱉었다.

하지만 곁을 지나치는 사람만 있어도 목을 움츠리고 입을 다물었다.

한때 그들 무리의 하나였던 슈페 자작 부인이 그녀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적당히들 하세요. 다른 곳도 아니고 예배당에서. 본디부터 모두에게 허락된 공간인데.”

“신께서 노하실까 봐 두렵지도 않으신가 봐요.”

한때 파펜하임 백작 부인 뒤에 서 있던 귀부인 중 하나가 이제는 슈페 자작 부인의 등 뒤에 서서 새실거리며 웃었다.

파펜하임 백작 부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헛기침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슈페 자작 부인이 콧방귀를 뀌며 엉덩이로 그녀를 밀어내고 좋은 자리를 잡았다.

예배당을 구경하느라 여념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우와……. 저희 같은 사람까지 초대해 주시다니, 역시 남작님은 다르세요. 제 평생에 성황청 본당에 입성하다니요. 꿈만 같아요.”

곧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성스러운 향로의 행렬이 들어온다는 신호였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 입을 조용히 다물었다.

젊은 사제가 성표를 들고 제일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하고, 그 뒤를 따르는 주교가 향로를 흔들며 중앙 회랑을 정화했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온 것은 곱게 치장한 어린 성가대원들이었다. 중앙 회랑에 희고 푸른 수국 꽃잎을 뿌리며 예배당 안에 맑은 목소리를 채워 넣었다.

그리고 신랑 신부가 들어섰다.

“어머, 드레스가 훌륭하네. 자태도 우아하고.”

맨프레드 대공비가 감탄사를 흘렸다. 베티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약혼 파티 때도 에리히 오빠와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지금도 예쁘네요. 에리히 오빠가 다른 건 몰라도 얼굴 하나만큼은.”

“베티나.”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잘생긴 건 사실이잖아요. 인성은 몰라도.”

“베티나.”

맨프레드 대공비에 이어 대공도 베티나를 꾸짖듯이 이름을 불렀다.

베티나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칭찬이라고요. 아, 에리히 오빠 칭찬은 아니고요.”

전형적인 미인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시선을 확 휘어잡는 매력이 있었다. 자신의 용모를 정확히 알고 새로운 스타일로 자신을 꾸밀 줄 안다.

“아카데미 시절에 평범한 취급이었다니, 진짜로 이해 안 간다고요.”

“진짜로 평범했으면, 에리히가 시선을 줬을 리가 있느냐?”

빅토리아 대공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베티나 공녀가 그 말도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랑 신부는 중앙 회랑을 천천히 걸어 마침내 성소의 제단 앞에 섰다.

결혼 성사를 집전할 대주교가 두 사람을 하나씩 축복했다.

“오늘 신의 앞에 두 사람이 영혼을 하나로 묶기 위해 섰습니다. 성사 전에 묻겠습니다. 이 결혼에 이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에리히의 얼굴에 살짝 긴장이 스쳤다. 클레어는 그와 시선을 마주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시선이 교차하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입가에 머금어졌다. 에리히의 입꼬리도 슬쩍 올라갔다.

두 사람이 서로 미소 짓는 것을 보고 대주교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이의가 없으면, 이 결혼은 신의 이름으로 맺어질 것입니다. 신께서 사람을 빚으매 하늘을 나는 맹금이나 들과 산을 달리는 짐승과 다르게 서로 의지하며 살도록 만드셨으니, 이 중에서도 오늘부터 앞으로 기쁨이 오든 슬픔이 오든…….”

절차에 따라 대주교가 성사를 집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전의 맨 앞 페이지에 적힌 성혼 선언문을 내밀며 말했다.

“결혼 계약서는 세속의 것이나 이는 신께 영원을 서원하는 일이니 지울 수도 없고, 찢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서명하십시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물론 이혼할 때가 되면 성전 따위는 까맣게 잊히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교회의 원칙 이야기였다.

에리히가 먼저 서명했다. 클레어가 그 곁에 서명했다.

『클레어 델포드.』

그리고 그 옆에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글자를 하나 더 흘려 썼다.

“클레어?”

에리히가 의아하게 그녀를 불렀다. 클레어는 빙긋 미소만 지었다.

그것은 그녀의 전생에 쓰던 서명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알 필요 없는 일이라고 클레어는 생각했다.

“이로써 두 분의 결혼은 성립되었습니다.”

대주교가 선언했다.

에리히가 클레어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뎅……! 뎅……!

성혼을 알리는 종이 힘차게 울렸다.

하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성가대가 부르는 축가 소리가 예배당으로 쏟아지는 빛을 뚫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것이야말로 축복 같았다.

“축하합니다.”

“축하드려요.”

두 사람은 그 속을 걸어 나오며 아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예배당의 한쪽에 앉아 있던 슈나이더 백작은 망연자실한 채 쏟아지는 축하의 말들 속에 앉아 있었다.

모든 게 기쁨으로 넘치고 있는데, 그의 몸만이 바닥으로 꺼지는 듯했다.

‘이, 목소리……. 이 목소리……?’

그는 오늘 참석하기는 했으나 평소 예배당에서 슈나이더 백작가가 앉는 자리가 아니라 맨 끝줄 구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결혼식을 축하하는 게 당연한 도리였으나, 진짜로 아내가 클레어를 해치려 했다면 어떻게 뻔뻔히 얼굴을 내밀겠는가.

그래서 마음으로만 도리를 다하기 위해 남몰래 참석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로 믿을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아내 카탸는 그에게 헌신적인 여자였다. 비록 결혼한 계기는 딸아이를 온전하게 입적하기 위해서였지만, 17년이나 함께 사는 동안 정이 없었을 리 없다.

그는 본래도 정이 많은 성품이었다. 상대가 마음을 주면 그것의 몇 배로 도타운 마음을 돌려주는 사람이라, 결혼 생활은 무척 행복했다.

나이 차이가 나는 결혼이었지만, 단 한순간도 그 결혼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남들이 카탸가 백작 부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유혹했다고 수군대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떠드는 소리라고 여겼다.

그런 아내가 외도를 했다, 결혼 전의 애인을 지금까지도 쭉 만나 왔다는 말을 들었다.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인척들까지 나서서 비난하는데 버티기가 너무 힘들었다.

설마 에리히가 경고했던 것이 사실일까? 설마 진짜로 클레어를 해치려고 했을까? 아무리 이리스를 위한다고 해도 진짜로?

외도 상대가 그 일을 도맡아 했을까? 대체 왜? 그 남자도 이리스를 위해서?

염치없어 이곳에 혼자 앉아 있는 것부터가 의혹이 그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리고 그 균열에 화약을 쏟아붓듯이 도드라진 소프라노의 노랫소리가 그에게 내리꽂혔다.

그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어떻게 모르겠는가?

그가 한때 인생을 다 바쳐 사랑했던 가수의 목소리와 꼭 닮은 이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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