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24. 폭약 사고
에리히와 클레어는 곧바로 바덴 성을 출발했다. 엘리엇이 실망한 얼굴을 했지만, 아이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사고가 났는데 태연하게 신혼여행을 마저 즐길 수도 없었다.
둘은 잘츠기터에 들렀다가 거기에서부터 콜베르크 광산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평소에는 운행하지 않을 시간이었으나, 에리히는 다소 무리해서라도 기차를 움직이도록 했다.
콜베르크시와 광산을 관리하는 발터 마이어는 공작 내외의 왕림에 황송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수도에 있을 때라면 모를까, 바로 올 수 있는 곳에 있었으니 당연히 내가 와야지.”
에리히가 그렇게 말했다. 발터는 클레어에게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공작 부인. 신혼여행 중이신데.”
“괜찮아요. 사고가 나든 말든 저만 쳐다보고 있는 남자라면 밤중에 몰래 혁명의 붉은 깃발로 찔러 줬을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발터가 눈을 깜박거렸다.
“상황은 어떻지?”
“숙소가 전파되었습니다. 다행히 화재는 크지 않아서 금방 진압되었습니다.”
“사상자는?”
“적습니다. 낮 시간이라 숙소가 거의 비어 있었습니다. 사고를 친 당사자를 제외하고 숙소에 있던 것은, 쉬고 있던 사람 서넛이 전부입니다. 사망은 본인을 포함해 두 명, 경상이 두 명입니다.”
“실종은?”
“점호에 나타나지 않은 자가 셋 있습니다. 이 중 둘은 휴가 기간이었기 때문에 번화가로 내려갔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서 그가 사고 현장으로 안내했다.
숙소는 폭삭 내려앉아 있었다. 클레어는 깜짝 놀랐다.
“광산에서 쓰는 폭약이면 폭탄하고 다르지 않아요? 바위 같은 걸 부수는 데 쓰는 거잖아요?”
지금의 기술 수준이 완전한 안정성을 담보할 만큼은 아니겠지만, 갱이 무너지면 가장 큰 금전적 손해를 보는 것이 광산주인 만큼 개발을 소홀히 했을 리가 없었다.
돈보다 솔직한 것은 없다. 이렇게 숙소를 통으로 전파시키는 폭약을 광산 안에서 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발터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수량이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열 상자 이상입니다.”
에리히의 시선이 발터에게 닿았다. 특별히 꾸중의 말이 함께 하지도 않았으나, 새파란 시선이 얼음장 같아 발터는 두려움으로 고개를 더욱 숙이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제 관리 소홀입니다.”
쓰다 남은 상자 같은 것이 하나쯤 있었던 거라면, 게으름을 부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열 상자라면 틀림없이 일부러 빼돌린 것이다. 확실한 것만 열 상자지, 장부와 창고를 다시 맞춰 보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아마 다른 곳에 은밀히 팔아 치웠을 것이다. 콜베르크 광산에서 사용하는 화약은 클라우제너 소유의 공장에서 오로지 자체 소비용으로만 나오는 것이고, 품질이 아주 좋았다.
“점호에 없었던 그 세 사람, 빨리 찾아. 혹시 모르니 현장 수색도 계속하고.”
“예.”
다행히도 갱 안에서 쓰기 위해 조명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었다. 공작의 명이 떨어지자 가스등과 촛불에 모조리 불을 밝히고, 대기하고 있던 광부들이 무너진 숙소의 자재를 치워 내기 위해 달려들었다.
에리히가 현장 작업을 지휘하고 감독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클레어는 먼저 사무실 쪽으로 안내되었다.
한시가 급한 수색 작업에 외부인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오히려 공작 부인을 힐긋거리느라고 집중하지 않는 사람만 늘어났을 뿐이다.
클레어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델포드 남작님.”
사고 수습으로 바쁜 어른들 대신 발터 마이어의 아들이 그녀를 안내해 주었다. 이제 겨우 열두어 살로 보이는, 밤톨처럼 귀여운 소년이었다.
제 몫을 하겠다고 바짝 긴장하여 끼긱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클레어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마이어 군은 평소에도 아버지의 일을 많이 돕나요?”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작가의 일을 자주자주 눈에 담아 두어야 공부할 때 무엇이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다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하. 맞는 말이죠.”
클레어가 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으나 열다섯 살에는 제 밥벌이할 일을 찾아야 하는 세상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녀의 공장에 있는 장인들도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가르쳤다.
‘가신도 도제식 수업이구나.’
델포드에는 가신이 거의 없었기에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무실은 이곳입니다. 편안히 계시면, 곧 차를 준비해서 오겠습니다, 남작님.”
“고마워요. 흠, 그런데, 마이어 군은 나를 남작님이라고 부르는군요.”
좀 의아해서 물은 것이었다.
클라우제너에서 그녀는 공작 부인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불렀고, 클레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사실 공작 부인의 작위가 남작보다 높다는 것을 고려하면, 남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상대를 격하시키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델포드 안에서나, 혹은 남작님이라는 호칭을 거의 사장님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다시피 한 위빙 상단 관계자가 아니라면, 아마 이제 델포드 남작님이라는 호칭을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 발터의 아들이 그녀를 남작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클라우제너의 가신들 사이에서 이 결혼에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이어는 수줍은 얼굴을 하고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렇게 불리는 걸 옳게 여기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요?”
“예. 아렌 사람들은 모두 남작님을 귀하게 여기고 있으니까요.”
클레어는 흥미를 느끼고 마이어를 바라보았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네? 네, 아.”
마이어가 당황하며 더듬거렸다.
“아렌에서 온 광부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제가 혹 뭔가 실수를 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공작 부인.”
“아니에요. 마이어 군은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아렌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광부들 중에 아렌에서 온 사람이 많은가 봐요.”
“네. 꽤 많습니다. 셋에 하나는 아렌 사람입니다.”
“그렇군요.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마이어는 클레어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클레어는 굳이 설명하지 않고 혼자 생각에 잠겨 들었다.
에리히가 사무실로 들어온 것은 약 두 시간 후였다. 클레어는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문서를 읽고 있다가, 그가 몰고 들어온 먼지와 재 냄새에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됐어요?”
“점호에 없었던 세 사람 중 두 명은 찾았어. 시내로 나갔었다더군. 하나는 찾는 중이고.”
“그나마 다행이네요.”
“나머지는 현장팀장에게 맡길 거야. 사실 내가 남아 있다고 해서 직접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각하께서 와 주지 않으셨다면 사태 수습이 이렇게 빨리 진행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콜베르크 시장과 협력하는 것도 시간이 걸렸을 거고요.”
뒤따라 들어와 있던 발터가 고개를 숙였다. 에리히가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 내게 인사하는 것보다,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확실히 단속하게.”
“예.”
그 말속에는 책임을 따로 묻지 않겠다는 의미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발터는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에리히가 물러가도 좋다고 고갯짓했다. 발터는 이제부터 폭약 반출 문제에 대해 조사해야 했다.
실무자들의 보고가 올라올 때까지 에리히가 직접 할 일은 없었다.
그는 클레어의 손에 들려 있는 문서를 보고 물었다.
“뭘 보고 있어?”
“안전 수칙이요.”
남의 사무실에서 아무 서류나 들출 수는 없고, 그냥 기다리자니 무료하여 집은 게 이것이었다.
이 매뉴얼에 따르면, 폭약을 다루는 것은 전문팀의 역할이었고, 일정 이상의 경험을 쌓지 않으면 폭약에 직접 손댈 수 없었다.
3인 1조로 움직이고, 지적확인환호응답이 도입되었다. 폭약 관리는 팀장의 손으로 직접 이루어졌으며, 사용된 폭약 상자에 날짜와 사용량을 기록하여 반납하게 했다.
매일 반입과 반출을 또 별도로 출납원이 기록했다.
이렇게 되면, 폭약팀은 아무나 쓸 수 없다. 반드시 신원이 확실한 사람만이 팀의 일원이 되어 경험을 쌓은 다음, 숙련된 상태로 실무에 투입된다.
클레어는 놀랐다. 이 방식은 지금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이었다.
단순히 노련한 광부들이 자체적으로 지키는 룰을 성문화한 수준이 아니었다.
안전 수칙이라는 건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완벽한 매뉴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상상만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고가 터진 다음에 보완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확립된다.
오로지 클레어 자신만 빼고.
그녀도 어차피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식 수준의 안전 수칙과 그저 기억에만 남아 있는 재해 대책도 이 시대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 많았다.
그 사실을 클레어는 아카데미에 가서야 깨달았다.
애초부터 경영 수업에 들어갔던 것은 댄스나 승마보다 날로 먹기 쉬울 것 같아서였다. 그녀가 상식이라고 생각한 것이 모두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결과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걸 도입했을 줄은 몰랐어요. 나한테는 탁상공론이다, 사고 실험이다, 그랬잖아요.”
“무의미한 탁상공론이라고 한 적은 없어.”
에리히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실험적이라는 게 쓸모없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지. 네 견해가 무용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
클레어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별것도 아닌 말인데, 에리히가 한 번도 자신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