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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92/263)

93화

클레어가 작게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막사 안은 너구리굴이 따로 없었다.

안에서 화로를 피운 것도 피운 것이지만, 연잎 궐련을 태운 연기까지 가라앉아 있다. 클레어는 절대 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모두 잠시 나와 주세요. 바람을 쐬지 않으면 몸이 상해요.”

이대로 놔뒀다가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을 판이다.

광부들이 꿈틀꿈틀 움직였다.

제일 먼저 나온 남자가 헤벌쭉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마님.”

“기침은 좀 어때요, 빅터 씨? 감독관이 따뜻한 물을 제때 주던가요?”

“예.”

빅터가 둔중한 태도로 대답하고 다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고맙습니다, 마님.”

“몸이 재산이니까요. 단기간이라도 여관에 묵으면 좋을 텐데요.”

클레어가 막 말했을 때 또 다른 광부가 허리를 굽혔다.

“마님, 어서 오십시오.”

“길버트 씨, 어제 제가 저쪽 창문 환기 좀 잘 부탁드린다고 길버트 씨에게 특별히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약속 안 지켰죠.”

“헤……. 헤헤.”

“도망치면 안 돼요, 길버트 씨. 아, 피터 씨, 상처 좀 봐요.”

“괘, 괜찮습니다.”

피터라고 불린 남자가 재빨리 도망갔다.

클레어는 그를 잡아 달라고 저쪽에 있는 광부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피터는 스무 걸음도 도망가지 못하고 붙들려 왔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피터를 노려보았다.

“신발을 벗으세요.”

“아프지 않습니다.”

“아프지 않은 게 아니라 연잎 궐련 때문에 통증을 못 느끼는 거예요.”

다른 광부들이 피터의 신발을 벗겼다. 그의 발은 어떻게 신발 안에 들어가 있었느냐 싶을 만큼 퉁퉁 부어 있었다.

“붕대도 제때 안 갈았죠? 내가 저녁마다 와야 할까요?”

“아, 아닙니다.”

“누가 뜨거운 물 좀 가져다줘요.”

“제, 제가 직접 할 수 있습니다.”

“피터 씨는 믿을 수가 없으니까. 너무 걱정시키지 마세요.”

클레어가 말했다.

마치 자기가 그 말을 들은 것처럼 광부들이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광부들의 숙소에 사고 좀 났다고 공작 부부가 달려왔다는 것부터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고귀하고 아름다운 공작 부인께서 자신들을 신경 써 주신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고향에서도 특별히 기댈 곳 없이 작은 땅을 부쳐 먹고 살던 농부나 품팔이꾼이었다.

영주님은 있었지만, 모두 저 하늘 위에 사는 사람 같았다. 그것은 고향에서나 이곳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직접 채찍을 휘두르는 마름이나 감독관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것이 귀족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귀족은 외경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경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클레어는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불러 주었다.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도 정확하게 알고 돌봐 주었다.

마치 구름 아래로 흰 손이 내려온 것 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동향이라는 연대감은 아편으로 둔중해진 그들의 뇌리에 유의미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아렌인이라서 도와준다. 그것은 이해하기 쉽고 마음에 와닿는 것이었다.

“마님 추우실 텐데…….”

몇 사람이 감히 먼저 다가갈 수가 없어서 움찔거리면서도 그녀가 궁금해서 거리를 두고 바람을 몸으로 막으며 섰다.

“내가 뭘요?”

“끄아아악!”

클레어는 피터의 발에 기어이 소독약을 부어 비명을 지르게 한 다음 붕대를 감아 주고 일어섰다.

‘다들 너무 호감을 가져 주니까 미안하네…….’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천사처럼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저 육체노동이라고 해서 천시하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을 뿐이다.

아편 중독자라고 생각하면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으나, 정작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해 보자 오히려 자신의 공장에 출장을 나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계를 낮춰서 정보를 들으려는 목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짠했다.

“개빈 씨, 편지 쓸 내용은 생각하셨죠?”

“아, 그게…….”

“더 생각하셔도 돼요. 나는 여기 며칠 더 있을 거고, 그게 아니라도 편지를 대신 써 줄 사람 정도는 불러 줄게요.”

클레어는 고향으로 편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대필해 주겠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과거를 알아낼 작정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점점 꼭 해 주고 싶은 일이 되었다.

대필가를 한 명 고용해 두면 좋을 것이다. 꼭 아렌인만이 아니라 다른 광부들도 대필가가 필요할 때가 있을 테니까.

개빈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붉게 충혈된 눈꼬리가 축축해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만, 저 같은 게 편지를 써도 제 자식들은 반가워하지 않을 겁니다. 빚더미에 눌려서 야반도주한 아비 따위…….”

“그래서 여기까지 오셨잖아요. 빚은 조만간 다 갚으실 수 있을 거예요. 돈을 좀 모은 다음에 돌아가시면 반겨 줄 거예요.”

개빈이 몸을 움찔 떨었다.

개빈만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 여럿이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클레어는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광부는 위험하지만, 그만큼 보수가 좋은 직종이다. 그중에서도 콜베르크 광산의 임금은 다른 데보다 높게 책정된 편이었다.

에리히는 클레어의 안전 수칙을 받아들였고, 운영도 그랬다.

어린애를 고용하고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일을 시켜 죽어 나가게 하는 것보다 숙련공을 키워 사업 전체를 성장시키는 쪽이 낫다는 것에 동의했고, 실제로도 효과를 봤던 것이다.

그러니 빚을 갚지 못할 리가 없다. 가난한 사람이 질 수 있는 빚의 액수도 뻔한 법이다.

“잠깐. 개빈 씨, 지금 얼마 받고 있어요? 빚은 얼마 남았어요?”

개빈은 대장장이 출신으로, 연장을 수리할 수도 있는 고급 인재였다. 적어도 몇천 골드는 받고 있을 것이다.

그걸로도 감당할 수 없는 빚이라면, 터무니없는 고리대일 것이다.

‘아니면, 이자가 돈을 빼먹었거나.’

클레어는 내밀어지는 탕파를 보며 생각했다. 자콥이었다.

“공작 부인, 추우실 텐데 이것을 쓰시지요.”

깨끗한 무명천으로 둘린 것을 보니 신경 써서 따로 만들어 온 모양이었다.

클레어는 빙긋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렇게 너무 예민한 문제를 함부로 질문하시는 게 아닙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클레어는 그 말에서 익숙하고 불쾌한 냄새를 감지했다.

상대가 젊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뉘앙스였다.

그녀의 주위에 모여 있었던 다른 광부들이 모두 시선을 외면하고 흩어졌다.

클레어는 고개를 기울이고 자콥을 바라보았다.

“만일에 개빈 씨가 터무니없는 고리대금에라도 잡혀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자콥 씨는 내가 개빈 씨를 돕는 게 싫은가요?”

“그런 말씀이 아니라…….”

“아니면 뭐죠? 내게 그런 능력이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녀는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자콥이 움찔했다.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일인가. 자선을 하고 싶으면 구빈원에라도 찾아갈 일이지, 왜 거래처 상대로 이러느냔 말이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아니, 예민한 부분이니까 공작 부인께서 가벼운 마음으로 말씀하실 일이 아니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럼 가벼운 마음이 아니면 되겠군요.”

클레어는 그렇게 대꾸했다.

마침 잘되었다. 이렇게 말해 준 덕분에 대놓고 자콥의 계원들과 돈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렌 출신 광부들이 전원 가입되어 있는 그 계는 단순한 친목 조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다 함께 찾아와서 단체로 계약했다고 했지.’

대표인 자콥이 임금을 협상하고, 한꺼번에 지급받아 계의 운영에 소용되는 비용을 제한 후에 계원들에게 나누어 준다.

장부는 매우 단순하여 허점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오히려 믿기지 않았다.

자콥은 회계사가 아니고 상단에서 오래 일한 사람도 아니며, 엑셀은커녕 계산기도 없다. 그런데 수천 줄의 장부를 구멍 없이 작성했다고?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마이어 씨는 아렌 출신 광부들끼리 일종의 길드를 형성한 거라고 생각했다지만, 아무리 봐도 수상해.’

자콥은 단순히 계의 리더가 아니라 주인이었다.

계원들은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았다. 대다수 중독자였고, 그중에는 심각한 수준인 자도 꽤 많았다.

자콥이 연잎 궐련을 생필품처럼 보급하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마약이면 꽤 비쌀 텐데, 장부에 숫자를 기입하지도 않고 계속 나눠 주고 있어.’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자콥과 자콥의 심복 몇 사람만은 정상이었다.

에리히와도 이미 일치된 결론을 냈다.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그자가 광부들을 통제하기 위해 연잎 궐련을 쓰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군.]

[지급되는 급료를 궐련 대금으로 회수하고 있는 건 확실해요. 광산에서 유일한 공급책이니, 계원들이 불만을 품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문제는, 자콥의 윗선이다.

슈나이더 백작 부인이나 스테판 하인즈처럼 목적이 있어서 황후가 클라우제너 영지에 심은 폭탄인지, 아니면 진짜로 우연히 공급 라인을 얻은 소매상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상하다고 무작정 위협해서 심문할 수는 없었다. 만일에 전자라면, 황후와 충돌하게 된다.

오페라 극장 때는 의도치 않게 생긴 일이었지만, 이번에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신중해져야 했다.

그래서 클레어는 빙그레 웃으며 모두가 들으란 듯이 말했다.

“내가 위빙 상단의 주인이라는 건 들어 봤지요?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날 찾아오세요. 버는 돈과 쓰는 돈, 빚 갚는 법에 대해서 상담해 줄게요.”

돈의 움직임은 거의 대부분의 것을 해명해 줄 수 있다. 장부를 직접 볼 수 없어도, 계원들의 재정 상태를 보는 것만으로도 운영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클레어가 하려는 일의 파급효과를 깨달은 자콥의 안색이 검붉은색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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