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5/263)

96화

루덴도르프 후작은 그 편지를 받고 몹시 흥분했다.

클라우제너가 철광과 탄광으로 돈을 쓸어 담기 시작한 뒤로 북방 로멜에는 일종의 골드러시가 일어났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석탄과 철은 오래전부터 쓰이던 자원이라 생산성 높은 광산이 대개 알려져 있었지만, 북방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많이 있다.

기술의 발전은 광산의 채굴량을 늘리고 채굴 난도를 낮추었다. 과학의 발전은 예전에는 잡금속이었던 것을 값비싼 것으로 바꾸기도 했다.

탐광자들은 어딘가에 새로운 특급 광산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산을 헤맸다.

귀족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직접 탐색하지는 않지만, 어디든 먼저 발견하여 개발을 시작하면 금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루덴도르프에는 없었다. 그것이 후작에게는 늘 억울하고 분한 일이었다.

영지의 비옥한 평야가 짜증 났다. 한때는 루덴도르프를 부유한 땅으로 만들어 주었으나, 이제는 아렌에서 들어오는, 질 좋고 값싼 농산물에 밀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농노 놈들 뱃구레나 채워 주는 땅이다.

하지만 탄광이 있었다니. 그것을 심지어 남이 알아내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빌프리트? 네가 데려온 그 탐광자는 가망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진짜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석탄 광맥이 주로 산지를 통해 이어져 있는데, 저희 가문의 영지는 바다에 면한 평야가 아닙니까? 설령 광맥이 영지에 조금 들어와 있더라도, 채굴할 만한 수준은 안 될 거라고 했습니다.”

차남 호르스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했다.

“쯧!”

루덴도르프 후작이 들으라는 듯이 혀를 찼다. 호르스트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 크로지크 노백작이 노망이 나서 이런 편지를 보냈단 말이냐?”

“그런 말씀을 드린 게 아니라…….”

“네가 데려온 탐광자란 놈이 서툰 놈이었거나 사기꾼이었겠지. 크로지크에서는 분명히 한둘이 아니라 탐광자 여럿을 보내서 검증했을 거야.”

크로지크가 클라우제너와 연합하여 다이아몬드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소식이었다.

사람들은 노이 다이아몬드를 매점한 노백작의 선견지명을 우러러보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클라우제너의 선택을 받을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이미 사들인 다이아몬드가 다 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노백작은 그것을 알 만한 사람이었기에, 수입이 들어오는 족족 대규모로 탐광자를 사서 풀었다.

그자들이 호르스트가 불러온 탐광자보다는 믿을 만할 것이다. 크로지크는 가문의 사활을 걸고 이 일에 투자하고 있으니까.

‘크로지크에서 여러 차례 검증했을 거라는 말씀은 보통이라면 맞겠지만, 그렇다고 호르스트가 고용했던 탐광자가 사기꾼이었다는 건 아닌데.’

한쪽 편에 조용히 선 채 장남 헤르만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크로지크를 이렇게 쉽게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크로지크는 로멜의 오래된 백작가로서 품위 있는 가문이었으나, 협상을 하려면 이쪽도 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요즘 같은 세상에, 가문의 이름만 가지고 상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요한 크로지크가 물밑에서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과 연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쳐도, 신중해져야 한다.

하물며 후계자인 호르스트를 고작 그런 문제 때문에 이렇게 대놓고 꾸짖고 비난하다니. 그저 책임지고 다시 검증해 오라고 하면 됐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루덴도르프 후작이 이처럼 격분하는 것은 열등감 때문이었다.

‘공작 부인의 말이 옳아.’

헤르만은 생각했다.

그날 기차에서 만났을 때 클레어는 이렇게 말했다.

[돈을 돈으로만 보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더군요. 클라우제너 공작 대부인께서는 제가 베를 짜서 돈을 버는 일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다이아몬드 광산에 손을 대는 건 참지 못하셨답니다. 그건 남자의 일이라는 거지요.]

자신은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고 클레어가 덧붙였다. 헤르만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녀가 하는 일은 베를 짜는 게 아니다. 대량 생산을 위해 공장을 세우고, 그것을 위한 환경을 조성한다. 헤르만은 아렌의 방직 공단에 가 본 적이 없지만, 화력이든 수력이든 동력원을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것도 클라우제너 공작 대부인과 같은 기준으로 말하자면 ‘남자의 일’이었다. 작은 의상실이나 방적업을 하는 게 아니다.

클레어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주변의 모든 남자들이 광업으로 돈을 벌고 있는데, 본인은 어업을 해야 한다면,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을까요?]

[루덴도르프에 어업 항구가 생기는 것은 그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어업 항구를 만들기에 루덴도르프가 좋은 지리적 위치를 갖고 있기도 하고. 반면, 루덴도르프에 딱히 육성할 만한 다른 산업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산업을 일으키는 것은 영주의 임무입니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어업이 오래된 가업도 아니고, 후작은 그걸로 큰돈을 벌어 본 경험도 없는데요.]

클레어는 헤르만에게 물었다.

[물론 규모 있게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열등감을 미뤄 두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겠지요. 헤르만 경이 생각하기에, 부친께서는 그런 분이신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클레어는 그 사실을 이미 아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긴, 요한 크로지크가 이미 인물평을 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연락을 보냈으리라. 승산이 있다고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루덴도르프 후작은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기다리세요. 조만간 크로지크로부터 연락이 갈 거예요.]

클레어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진짜로 왔다. 이렇게 빨리.

헤르만은 표정을 단속한 채 마음속으로만 음험하게 웃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역할이 중요했다.

“호르스트를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아버지. 그 편지에서도 크로지크 노백작이 꼭 우리 영지에서 광맥을 발견했다고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응? 으응, 그……렇지?”

루덴도르프 후작은 새삼스럽게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확실히 ‘귀가의 영지 가까운 곳’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

그걸 인식하고 보자, 그 밑에 있는 ‘합당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는 말도 예사롭게 읽히지 않았다.

“가게른 남작령인가!”

“아버지!”

호르스트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가게른 남작가는 그의 외가였다. 루덴도르프 평야의 일부를 영지 안에 품었으나 산지와 맞닿아 있어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운 땅도 꽤 있었다.

지금의 가게른 남작은 호르스트의 외삼촌이다. 병약한 사람이었으나, 합당한 영주다. 루덴도르프 후작가가 가게른 남작령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루덴도르프 후작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가게른 남작은 이런 큰 사업을 하기에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니, 호르스트, 네가 책임을 맡아 오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호르스트는 다소 불편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남동생이 병약하다는 이유로 남편이 지나치게 참견하려 들어서 민망해했으니까.

그러나 호르스트 입장에서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중요한 것이 당연했다. 그에게 후작의 작위를 물려줄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였으니까.

루덴도르프 후작은 벌써부터 배가 부른 듯한 얼굴로 만족스럽게 헤르만을 바라보았다.

“크로지크 노백작님께 답신을 쓸 테니, 네가 가지고 가서 전해 드려라.”

“제가 직접, 말입니까?”

“이런 중한 일에 단순한 심부름꾼을 보낼 수 있겠느냐?”

“알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그러시다면.”

헤르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고개를 돌리자 호르스트와 시선이 마주쳤다. 헤르만은 그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러자 호르스트가 루덴도르프 후작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꾹 주먹을 쥐었다.

후작은 아마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가게른 남작령에 남작의 조카인 호르스트를 보내고, 남은 아들 하나를 크로지크 백작가로 심부름 보내는 것뿐이다.

그러나 호르스트가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고 나서 헤르만에게 대외 활동을 맡기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공작 부인은 이것까지 감안하고 가게른 남작령을 표적으로 삼은 건가?’

우연일 수도 있지만, 꼭 그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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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그쳤고, 날씨도 포근해졌다. 하지만 바덴 성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저 멀리 온천에서 솟는 안개 때문인지 바깥은 춥고 안이 더 아늑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클레어는 창가에 의자를 갖다 놓고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엄마한테!”

엘리엇이 기운차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 누가 있는 모양이었다.

클레어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 에리히는 일단 바덴으로 돌아왔다. 엘리엇을 데리러 오기 위해서다.

엘리엇은 아주 크게 토라져 있었다.

[이모 미워! 아저씨도 미워!]

겨우 엄마 아빠가 되었던 것이 다시 이모랑 아저씨로 돌아가 있었다.

[흐아아앙! 나만 버리고 갔어!]

하지만 토라져 달아나는 대신 그 자리에 서서 서럽게 울다가, 클레어가 달려가 안아 주자 죽도록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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