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8/263)

99화

빅토리아 대공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작지 않은 사업이었고, 선원이나 선주만이 아니라 항구에서 생활하는 사람 전반, 나아가 배를 타는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그것을 가볍게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나이 들고 고리타분한 사람이라 그런지, 이런 일은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고 보는데.”

주름진 눈매 사이에서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가 클레어를 분해하려는 듯이 샅샅이 살폈다.

그녀는 결혼식에서조차도 이러지 않았다.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은 에리히가 선택하는 것이고, 그가 원해서 행복한 결정을 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영지를 크게 흔들 수 있는 사업을 제안하고, 그보다 더 나아가 제국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려 하는 자라면 문제가 달랐다.

“대공 전하께서는 귀족다운 분이로군요.”

클레어는 미소를 지었다. 모처럼 긍정적으로 그 표현을 썼다.

자신이라면 사명감이라고 했을 것을, 책임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것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에리히다.

권리와 의무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에리히가 의무를 다하는 것은 스스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권리를, 의무를 팽개쳐도 되는 힘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런 마음가짐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 사실을 인정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물론, 여전히 일개인이 타고난 핏줄만으로 토지와 거주민에 대한 책임을 지려 드는 것은 터무니없는 오만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기껏해야 경영 책임이지.’

문득 생각이 헛곳으로 빠지려는데, 빅토리아 대공과 눈이 마주쳐 클레어는 제정신을 차렸다.

“이상적으로는 책임을 갖고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이익이 없으면 사업은 오래 유지될 수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대공 전하의 재력만으로는 성사시킬 수 없는 일입니다.”

“규모를 생각하면 그렇지.”

그러니까 클라우제너가 끼어들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싶어 빅토리아 대공은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제 계획은 이렇습니다. 각 항구의 선주 연합이 상호 보험을 유지한 채로, 빅토리아 대공 전하 밑에 일종의 대연합을 만드는 거예요.”

“한쪽의 사고가 너무 커져서 해당 항구의 상호 보험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다른 연합에서 모아 놓은 보험비로 지원해 줄 수 있겠군. 대신, 시간을 들여서라도 돈을 갚도록 더 위에서 감시하고.”

“네. 항구의 주인이 지켜보고 있다면, 섣불리 선주들이 파산을 선언하거나 선주 연합이 흐지부지 사라지지는 못할 거예요.”

빅토리아 대공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제 그녀에게서 부정적인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황족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있으며, 유력한 항구를 소유한 영주이기도 했다.

제국의 바닷길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으나, 법으로 규제하거나 내각이 나설 만한 일은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꼭 맞았다.

“자네가 말하는 역할을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리고 여전히, 이게 자네의 돈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모르겠어.”

“모인 자금을 클라우제너가 대신 운용하겠습니다.”

클레어가 말했다.

빅토리아 대공이 피로한 듯이 눈가를 한 번 누르고 말했다.

“클라우제너가 지급 보증을 한다면 염려할 게 없겠지. 그 돈으로 뭘 하려고 하는 건가?”

“큰돈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에 상응하는 이익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규모가 커질수록 클라우제너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빅토리아 대공은 그러고도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긍정의 대답을 했다.

“알았네. 시험 삼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클레어는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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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께.

처음으로 경험하는 북부의 겨울은 어떠셨습니까? 바덴은 지열 때문에 비교적 따뜻한 곳이지만, 또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라 염려가 됩니다.

그곳의 하얀 악마 가루 때문에 부인에게 북부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아니, 차가운 공기 속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지극한 기쁨 중 하나이니, 제가 괜한 염려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최근에 부친의 심부름으로 크로지크 백작가에 다녀왔습니다. 노백작은 정정하고, 아주 의욕에 넘치고 계셨습니다.

다이아몬드에 대해 아주 박식한 분이더군요. 클라우제너에서 다이아몬드 사업의 파트너로 크로지크 백작가를 선택한 이유를 마음 깊이 이해했습니다.

아마 이미 백작가 측에서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크로지크 백작가에서 새로운 광산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저희 가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다소나마 저도 그 일을 돕게 될 것 같습니다.』

헤르만 루덴도르프는 편지를 거기까지 쓰고서 다시 한번 쭉 읽어 보았다.

몇 번을 다시 읽어 보아도 흠 잡힐 건 없었다. 굳이 흠을 잡자면, 가깝지도 않은 숙녀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러나 또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면, 상대가 귀부인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편지다.

귀부인을 위로하고 숭배하는 것은 미덕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이다.

조금이라도 면식이 있으면 그것을 핑계 삼아 인연을 이어 가려고 발버둥 치는 이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런 자들에 비하면 자신은 월등히 앞서 나가 있는 셈이었다.

‘딱히 공작과 경쟁하겠다거나 빈틈을 파고들 마음은 없지만.’

신혼부부 상대로 그런 무도한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름답고 명석한 숙녀와 교분을 맺는 기쁨을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상대가 막대한 재력을 지니고 있고, 자신의 뒷배가 되어 줄 귀부인이기까지 한데.

그는 키들거리고 웃으면서 편지지의 나머지 장을 채웠다.

『돌이켜 생각하면 기찻길에서 부인과 만나 짧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이 신의 인도처럼 느껴집니다.

다시 뵐 날까지 오래 걸리지 않길 소망합니다. 청록색 눈동자의 사신에게 죽지 않는 것도요.

헤르만 루덴도르프.』

그가 편지를 압지로 누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형, 나야.”

호르스트였다.

헤르만은 편지지를 접어 봉투에 넣으며 들어오라고 대답했다.

쿵쿵!

호르스트가 발소리를 거칠게 내며 들어왔다. 헤르만은 경멸하는 마음을 숨기고 점잖게 물었다.

“화가 난 것 같군.”

“형, 진짜야? 그 광맥이라는 게, 진짜이긴 한 거냐고.”

“크로지크 백작가에서 그렇다 말하고 있고, 아버지가 다시 부른 탐광자도 그렇다고 했으니 진짜이긴 하지.”

“진짜‘이긴 하다’는 게 무슨 의미야? 별로야?”

“채굴 난도가 꽤 높은 모양이야. 클라우제너 같은 곳이라면 굳이 손대지 않을 거라고 하더라.”

“채산성은 있고?”

“그건 이제부터 계산해 봐야 알 일이지. 너야말로 다녀온 일은 어떻게 되었어? 가게른 남작님께서는 투자할 의사가 있으신 건가?”

호르스트의 안색이 굳어졌다.

가게른 남작가는 부유한 가문이 아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장원에서 나오는 지대로 검소하게 먹고살 정도의 수입밖에 없었다.

자신의 영지 안에 노천 탄광이 있다 해도 투자금 문제로 망설일 텐데, 채굴 난도가 높은 광산에 뛰어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곤궁함 때문에 장녀를 이미 후계자가 있는 루덴도르프 후작의 재취 자리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전화위복이 되어 헤르만이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나고 호르스트가 후계자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호르스트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가난한 외가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는 늘 불편함을 느꼈다.

“외삼촌은 몸이 불편하셔서 이런 일에 참여할 수 없어.”

그게 가게른 남작이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이제 와서는 남작이 진짜 병약한 게 맞긴 한 건지 의문이라고 생각하며, 헤르만은 호르스트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그렇군. 하지만 아버지는 쉽게 포기하지 않으실 텐데. 가게른 남작님이 직접 투자에 참여하실 수 없다면, 채굴권을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것도 나쁘지 않으실 거야.”

“안 그래도 이야기하고 왔어.”

호르스트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물들었다.

헤르만은 합리적인 가격에 팔면 된다고 말했지만, 루덴도르프 후작이 절대 제값을 쳐줄 리 없었다.

안 그래도 가게른 남작 영애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은 것도, 그 아들을 후계자로 삼은 것도 남작가에 은혜를 베푼 거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헤르만이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가게른에서 바쳐야 마땅하지만, 처남의 사정이 어려우니 특별히 값을 쳐준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남작님께서는 받아들이셨나?”

“……그래. 크로지크 쪽과는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하셨지만.”

호르스트가 쥐어 짜내듯이 말했다.

‘사이에 끼어서 힘들겠군. 가게른 남작은 아버지의 처사가 과하다고 생각할 테고, 아버지는 가게른 남작이 건방지다고 생각할 테니.’

조만간에 부친이 가게른 남작가를 통째로 삼키려 들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면 또 호르스트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루덴도르프 후작가의 후계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하지만, 호르스트의 마음은 폭군 같은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기울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면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컸다.

이 같은 호르스트의 어려운 사정을 짐작하고서도 헤르만은 그를 위로하거나 사정을 묻는 대신에 로멜 귀족답게 품위 있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조만간에 노백작과 아버지께서 가게른 남작령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그때 남작님께서도 같이 잘 말씀 나누시면 좋겠지.”

가게른 남작을 배제하고 남작령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는 것에 호르스트가 표정을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어두워졌다.

헤르만은 압지를 구겨 벽난로에 던졌다.

‘아버지에게 복수하게 될 줄로만 알았지,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걸.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께서는 이것까지 모두 알고 가게른 남작령의 광맥을 내민 걸까?’

아니면, 마침 거기에 써먹기 좋은 광맥이 있었던 건가? 혹은, 광맥이 있다는 것 자체가 거짓인가?

크로지크 백작가에서 연락이 갈 거라는 이야기만 들은 헤르만으로서는 그것까지는 알 수가 없다.

아버지가 호르스트보다 자신을 의지하는 범위가 크게 늘어나리라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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