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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100/263)

101화

루덴도르프 후작가의 응접실에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후작 자신이 나서서 사과할 사람이 아닌 것을 알기에, 헤르만이 대신 말했다.

“죄송합니다, 크로지크 노백작님. 모처럼 여기까지 와 주셨는데, 저희 쪽에 진전이 없어서.”

“아닐세. 뭐, 어차피 처음부터 그리 쉽게 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크로지크 노백작이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루덴도르프 후작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가게른 남작에게 직접 연락을 넣었어도 됐습니다.”

루덴도르프 후작의 안색이 나빠졌다. 크로지크 노백작은 그 얼굴을 보면서도 태연하게 말했다.

“사실 내가 찾던 것은 보석이지, 역청탄은 아니니까요. 잘 모르는 사업에 손대는 건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

“그럼 남작이 정보료로 얼마간 챙겨 주었을 테고, 순리에 따르면 그게 맞지요. 내가 늘그막에 괜한 욕심을 부려 보았습니다.”

크로지크 노백작이 그렇게 말하고 지팡이를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가게른 남작령으로 갈 작정인 듯 보였다.

자존심이 상해서 입을 다물고 있던 루덴도르프 후작이 그제야 노백작을 잡았다.

“남작과 권리관계는 곧 정리할 겁니다. 제일 좋은 객실을 치워 두었으니, 일주일 정도만 천천히 머물며 생각해 보시지요. 헤르만, 백작님을 객실로 모시거라.”

“하지만…….”

“염려 마십시오. 다 제게 생각이 있으니.”

크로지크 노백작은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으나 후작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고 헤르만을 따라나섰다.

두 사람이 나가고 나자 루덴도르프 후작이 테이블에 놓여 있던 물병을 집어 들어 호르스트 앞에 내던졌다.

와장창!

물병이 깨지며 유리 조각과 물이 호르스트의 바지 자락에까지 튀었다.

“어차피 네가 물려받게 될 광산 아니냐. 근데 그것 하나 설득 못 해 와!”

호르스트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물려받게 될 광산이라는 말은 틀렸다.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 가게른 남작은 창백한 얼굴로 끊임없이 기침을 하면서, 안광이 서슬 푸르게 살아 있는 눈으로 호르스트를 노려보았다.

[내게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네가 벌써부터 남작가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인데, 어림없다!]

[그런 게 아닙니다, 외삼촌.]

[그런 게 아니라면서 이걸 제안이라고 하는 거냐? 내 땅에 있는 광산을 개발하겠다고 하면서, 돈 조금 받고 인근 땅에서 아예 손을 떼라?]

[적은 돈이 아닙니다, 외삼촌. 수익의 일부를 분배하는 것이 아닙니까? 잘된다면, 남작가의 수입도 뛰어오를 겁니다.]

[그래서 실패하면? 채산성이 생각보다 떨어져서 일찍 사업을 접으면? 그 산에 광산을 개발하려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산 아랫마을의 농사를 포기해야 해. 그건 우리 가문의 수입원 절반이나 다름없다. 그런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수익이 나면 고작 10%를 나눠?]

가게른 남작이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짓 하지 마라, 호르스트. 나는 이 가문을 네게 물려줄 의무가 없어. 하지만, 그래. 네가 정성을 보인다면 마음을 바꿀 수도 있지.]

[무슨 조건을 원하십니까?]

[절반.]

[불가능합니다, 외삼촌.]

[절반 이하로는 안 해.]

[크로지크 백작가가 끼어 있는 사업입니다.]

[내가 크로지크 백작가와 직접 추진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느냐?]

호르스트는 그 말을 떠올리고 어금니를 물었다.

“아버지, 가게른 남작가에 30%를 주십시오.”

“뭐?”

“영지민의 이주금도 보태고, 어느 정도는 선금도 주어야 합니다.”

루덴도르프 후작은 손이라도 휘두를 기세로 호르스트에게 다가섰다. 호르스트는 용기를 쥐어짜 내어 말했다.

“아니면 외삼촌은 크로지크 백작가와 단독으로 이 일을 추진할 겁니다. 땅은 외삼촌의 것이고, 발견자는 크로지크 백작가입니다. 두 가문이 손을 잡으면 루덴도르프는 끼어들 권한이 없습니다.”

“아니, 이 녀석이!”

“그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아버지.”

그의 말에 루덴도르프 후작은 씩씩거렸다.

“가게른 따위가 감히. 은혜도 모르고!”

“아버지.”

호르스트가 답답한 기분으로 그를 불렀을 때였다.

집사가 쿵쿵 문을 두드렸다.

“말씀 나누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주인님. 역에서 급한 소식이 왔습니다.”

“뭐? 역에서? 무슨 사고라도 났나?”

“아닙니다. 클라우제너의 막시밀리안 자작이 방문했습니다.”

“뭐?”

루덴도르프 후작은 호르스트에게 화내던 것까지 잊고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게 진짠가?”

“예.”

“막시밀리안 자작이 여기에 대체 무슨 일이지?”

그는 클라우제너 공작의 측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집사가 송구한 듯이 말했다.

“여행 준비 중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행 준비!”

최근 광산 이야기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클라우제너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루덴도르프 후작의 머릿속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마구 떠올랐다.

상대가 영지 관리나 재산 관리 쪽 사람이어도 그랬을 텐데, 더군다나 상대는 보안부장인 막시밀리안이다.

그는 단독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물며 여행 준비라니. 그가 누구를 위해서 여행 준비를 하겠는가?

필연적으로 공작일 수밖에 없다. 잘하면, 공작과 직접 사업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 이런 행운이 다 생기는군.”

“아버지.”

“클라우제너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채굴 난도 따위는 아무 문제도 못 되지. 호르스트, 지금 당장 가게른으로 가서 남작에게 30% 준다고 해.”

“예? 아, 아버지, 하지만!”

호르스트는 당황했다.

자신이 30%를 부르기는 했지만, 너무 생각 없는 것 아닌가? 설득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지만, 만일에 진짜로 클라우제너가 이 사업에 끼어든다면, 그쪽에 막대한 이윤을 보장해 줘야 할 것이다.

이렇게 흥분해서 가게른 남작에게 던져 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흥분한 루덴도르프 후작은 호르스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클레어가 루덴도르프에 도착하기 닷새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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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냄새가 나네요.”

항구가 역에서 꽤 거리가 있을 텐데도, 기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차갑고 습기 어린 감각이 물씬 코에 밀려들었다.

클레어가 알고 있는 냄새와는 달랐지만, 몸이 먼저 바다가 가까이에 있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우와. 우……와!”

창문에 달라붙은 엘리엇이 새로운 풍경에 쉬지 않고 감탄했다.

클레어와 빅토리아 대공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엘리엇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군.”

“이렇게 어릴 때 여행이 기억에 남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왕이면 여름 바다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클레어는 잠깐 했다.

그러면 곯아떨어질 때까지 아주 원 없이 놀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겨울 바다는 아무래도 걱정이 된다.

언제 여름을 챙겨 바다에 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차가 서서히 멈추었다.

“엘리엇, 이제 어떻게 인사해야 한다고 했지?”

“어? 어, 어?”

엘리엇이 손가락을 꼬물대며 고민했다.

“클라우, 지에너, 클라우졔너의 엘리엇입니다.”

발음이 이상하게 샜다. 아무래도 길어서 발음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혹은 아예 잘못 알고 있거나.

“한 번 더. 클라우제너.”

“클라우, 제너.”

“잘했어. 이제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대답해야 해.”

“응.”

엘리엇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좀 틀려도 괜찮단다.”

괜히 트집이라도 잡힐까 봐 걱정인 클레어와 달리 빅토리아 대공은 평화롭게 말했다.

“당당하게 있거라. 네가 네 이름을 뭐라고 말하든, 에리히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면 클라우제너의 자랑스러운 후예니까.”

“네.”

엘리엇이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이 그저 해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네 살 반짜리 아이 나름대로의 어떤 결의나 자긍심 같은 것이 느껴져서 클레어는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엄마?”

“아냐, 아무것도.”

에리히도 어릴 때 늘 당연하게 이런 말을 들으면서 자랐으리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졌다.

클레어는 벗어 놓았던 차양 모자를 쓰고, 엘리엇의 손을 잡은 채 기차에서 내렸다.

역사에 막시밀리안이 마중 나와 있었다.

“막스 아저씨!”

엘리엇이 신나서 달려가 팔을 높이 들어 올려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막시밀리안은 엘리엇을 마주 끌어안지는 못했지만, 아주 부드러운 얼굴로 가볍게 어깨를 도닥였다.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도련님?”

“응! 눈싸움!”

“그러셨군요. 바덴에는 눈이 자주 내리죠.”

막시밀리안이 그렇게 말하고, 클레어를 향해서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어서 오십시오. 도착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했어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저택을 사 두었습니다.”

“네?”

클레어는 잠깐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막시밀리안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손을 들어 저 멀리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에 보이는 저 저택입니다. 소박하지만 정갈해서 며칠 머무르시기에는 괜찮을 겁니다. 전경이 무척 좋더군요.”

“원래 갖고 있던 별장이 아니라 새로 샀다고요?”

전혀 핵심을 짚지 못한 대답에 클레어는 다시 물었다. 막시밀리안이 그녀의 반문에 오히려 놀라며 대답했다.

“예. 각하께서 지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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