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아우구스타는 루덴도르프 후작이 염려하는 문제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다.
물론 후작 부부의 처신 때문에 루덴도르프 가문이 수치를 입은 것에 대해서 노기를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동생에게서 기대를 버린 지가 오래되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 무엇도, 리누스 황자의 실종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 냉정하고 감정 없는 황후조차도 이번 일에는 피로를 내비쳤다.
[에른스트 공작 각하와 공작 부인께서는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보고자는 그렇게 말했고, 아우구스타도 동의했다.
에른스트 공작 부부가 그렇게 대단히 유능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남동생 부부처럼 쓸모없는 자들도 아니다.
아우구스타와 황후가 보기에도 에른스트 공작가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리누스는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구해 냈다면 틀림없이 인근 어딘가에서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문도 없었다.
[바다에 몸을 던진 건 확실한 것 같으니, 이쯤 되면 죽어서 저 멀리 떠밀려 갔다고 봐야겠지.]
[아직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죽지 않고 숨어 계시거나, 어딘가에서 구조된 뒤에 이름과 행적을 숨기셨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리누스가?]
황후가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 애에게 그럴 정도의 능력과 배포가 있었다면, 내가 에른스트로 보냈을 리가 있느냐?]
[황후 폐하…….]
[이제 와 하인리히더러 아이를 잘못 가르쳤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 애가 심약한 건 타고난 것이니.]
[이제 성인이 되셨으니, 전과는 다르실 겁니다.]
[그러길 바랐는데,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것을 보면 별달리 기대가 안 되는군.]
황후는 안경을 벗고 피로한 듯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한탄했다.
[정말이지, 자식 문제는 마음대로 안 되는군. 아이를 셋 정도 낳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실 수 없는 상황이었지 않습니까?]
[이제, 다른 수단을 강구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아우구스타가 호르스트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은 그날 즈음의 일이었다.
호르스트의 편지는 고자질에 가까웠다. 헤르만이 빅토리아 대공,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과의 친분을 내세워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부친은 광산 사업 때문에 그 둘과 친하게 지내려고 헤르만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우구스타는 거기에서 클라우제너의 이름을 보고 눈을 멈췄다.
리누스의 능력으로는 살아서 완벽하게 사라질 수 없다. 그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도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지고 나간 것도 없었다.
하지만 클라우제너가 개입했다면 얘기가 달랐다. 에른스트에서 행방을 찾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된다.
그리고 그럴 만한 이유가 없지도 않았다.
레나테라는 시녀가 역설한 적도 있었다.
[지금까지 클라우제너 공작이 황제의 자리에 관심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들 쪽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끝까지 자기 자식으로 키우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에리히는 제러드와 친한 사이였어.]
황후는 보고서에 시선을 준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꾸했다.
[단순히 양자로 키워 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클라우제너 공작의 작위가 걸린 문제입니다.]
황후가 안경 너머로 레나테에게 슬쩍 시선을 주었다. 아우구스타는 그녀가 보고 있던 보고서가 아렌 공왕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무어 공작에 대한 새로운 보고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도.
[클라우제너는 섣불리 건드릴 수 없어. 쳐내야 할 건 그쪽이 아니지.]
황후가 보고서를 아우구스타에게 휙 넘겼다. 아우구스타도 보고서를 훑어 읽고 상황을 정리했다.
[공왕이 알현 시간을 부활시켰군요. 수도에 있는 아렌 귀족을 모두 접견했고, 그중 다수가 의사를 따로 불렀고…….]
[수도에 없는 귀족에게 연잎 궐련을 끊으라는 편지를 보냈고, 영지 내에서도 금지하라는 권고를 하고 있다지.]
무어 공작은 거기에 더해서 아렌 귀족을 결집시키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건 아편 금지 때문이었지만, 황후는 단순히 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그 일에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이 개입해 있다면, 빨리 처리해야 해. 준비는 다 되었나, 스테판?]
[위빙 상단에는 아직 공작 중입니다. 상단주와 변호사가 꽤 유능합니다. 장부에는 하나도 손대지 못했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숙성까지 시간이 걸릴 거예요, 황후 폐하.]
시녀 레나테가 스테판을 역성들 듯이 나서서 말했다.
황후는 예리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으나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가볍게 함정을 판다고 걸려들지 않는 것은 확실하니, 이번에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알고 있겠지, 스테판?]
[예. 염려 마십시오. 방아쇠를 당기라고 명령하시기 전에는 처리될 겁니다.]
[너의 카나리아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하려무나.]
황후가 그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아우구스타는 무거운 마음으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클레어 델포드를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책임이었다. 오히려 저쪽의 경계심만 높이는 꼴이 되었다.
카탸와 오페라 극장을 잃은 것은 꽤 타격이 컸다. 그쪽을 통해 약을 공급받고 있던 아렌 귀족들이 동요한 것이, 아렌 공왕이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리누스 문제는 더욱 컸다.
황후는 다른 수단을 강구할 때가 되었다고 했지만, 아우구스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황후가 직접 배에 품어 낳은 아들이었다. 비록 그녀에게 다른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게 자식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일단은 클라우제너 공작가부터 확인해 볼 일이었다.
“누님.”
아우구스타는 지친 채로 본채에 아직 남아 있는 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 뒤를 루덴도르프 후작이 졸졸 따랐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그리 불안하니? 쓸모없는 일에 손을 대 놓고, 내가 잘한 일이라고 칭찬해서 안심이라도 시켜 주기를 바라는 거라면 그럴 일은 없다.”
“쓸모없는 일이라니요.”
“가게른 남작령의 광산 말이다.”
“누님, 그 광산은 진짜입니다. 크로지크 백작가가 지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눈이 벌건 상태란 말입니다. 빼앗길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 광산보다 항구가 장기적으로 훨씬 나아. 그리고 항구보다도 황후 폐하의 신뢰가 훨씬 더 중하다. 항구 같은 큰 것을 맡기셨는데, 그 소임조차 다하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는 거니?”
아우구스타는 후작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게다가 네 뒤를 호르스트가 물려받을 거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 가게른 남작령의 상속자 또한 호르스트 아니냐. 내버려 두었다가 호르스트가 상속받은 뒤에 개발해도 돼.”
“그러니까 지금 받아 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역량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지 않니.”
“요즘 같은 시대에 광산 하나 갖고 있지 못한 남자가 어떻게 제대로 행세할 수 있겠습니까?”
“네가 행세하는 것이 가문의 금고를 채우는 것보다 중요하단 말이니?”
“누님.”
“행세는 돈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광산을 가진 자가 행세하는 것은 광산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광산에서 나오는 돈이 있기 때문이야.”
아우구스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게른의 그 작은 광산 밑으로 영지 전체를 뒤덮을 만한 광맥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우리 가문에 그런 행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타는 냉정하게 말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가구를 덮어 두었던 천을 하녀들이 서둘러 치우고 있었다. 연락 없이 온 탓에 청소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지만, 지금은 혼자 쉬고 싶어서 아우구스타는 루덴도르프 후작의 코앞에서 문을 닫았다.
30. 아이가 있는 집
어린아이가 살금살금 소파를 맴도는 발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리누스는 반쯤 졸고 있었다. 완전히 잠 속으로 떨어지려 할 때마다 자박자박 카펫을 밟는 소리, 그러다가 한 번씩 서툴게 콩 소리를 내며 바닥을 세게 밟는 소리가 그의 의식을 파도 타게 만들었다.
“아저씨, 자요?”
리누스는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코끝이 시리고, 벽난로에서 장작 타들어 가는 냄새가 나는데도 꿈에서는 봄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그 바람이 얼굴에 닿는 것은 아니다.
리누스는 꿈속에서 다섯 살이 되어 있었다. 아이가 내는 발소리는, 거기서는 그가 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