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최근 루덴도르프 항구에서 접안 중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생각보다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일단, 오가는 배는 크게 늘어난 데 비해 입항과 출항을 유도하는 도선사는 수가 모자랐다.
예전부터 일하던 자들도 종종 작은 사고를 일으켰다. 시설이 증축되면서 조류와 수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계속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의 종류도 다르다.
루덴도르프 항구는 오래된 항구다. 주로 오가던 배는 적당한 규모의 상선이나 어선 정도였다.
전통적인 무역로에서 멀었기 때문에 큰 범선 같은 것이 들어온 적도 좀처럼 없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항구 증축을 위해 물자를 날라 오는 거대한 증기 화물선이 다수 드나들게 되었다.
지금 주로 쓰고 있는 옛 부두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증축으로 다소 큰 규모의 부두도 세우긴 했으나, 물동량의 양적 팽창을 따라잡지 못했다.
부두의 크기와 공사장을 제외한 공간이 대형 화물선에게는 빡빡했다는 뜻이다.
“언젠가 이럴 줄 알았지.”
항구에서 일하는 자들이 천천히 기울어지는 배와 부서진 부두, 무너진 기중기의 모습을 보며 손가락질했다.
“도선사 그놈이 또 취해 있었다며?”
“그놈 쓰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몰라.”
“그놈도 그놈이고, 항해사 놈도 항해사 놈이지만, 저거 먼저 하역해 놨던 짐이라도 빨리 부렸어야지.”
“후작님이 창고 지어 준다, 지어 준다 하면서 버틴 게 벌써 1년 아닌가.”
“큰일 났구만. 저거 바다에 다 가라앉으면, 건져서 써야 하나?”
항구의 일꾼들이 수군댔다.
이제 다 가라앉아 가는 배의 꽁지부리가 바다 위로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루덴도르프 후작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헤르만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원 중 사망자는 두 명, 부상자 스물네 명입니다. 부두에서 하역 작업 중에 물에 빠졌던 자도 몇 명 있는데, 이쪽은 간단히 위로금 몇 푼 주고 돌려보냈습니다.”
“배가 가라앉는데, 고작해야 선원 놈들 꺼내는 것 말고 아무것도 안 했단 말이냐!”
“아버지, 그만하십시오.”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호르스트가 처음으로 헤르만의 역성을 들었다.
헤르만이 습관적으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던 것을 잊고 동생을 바라보았다. 호르스트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물속에서 부서진 배를 어떻게 수리합니까? 할 수 있었다면 선원들이 이미.”
퍽!
루덴도르프 후작이 던진 장갑이 호르스트의 이마를 때리고 떨어졌다.
물론 결투의 의미 같은 것은 아니다. 화가 나서 쥐고 있던 것을 집어 던졌을 뿐이다.
호르스트의 얼굴이 울분으로 벌겋게 물들었다.
“이 아비를 놔두고 지들끼리 쿵짝이 맞아 아주 잘하는 짓이다.”
“제가 제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헤르만이 말했다. 호르스트의 말마따나 대처할 방법도 없었고, 실은 헤르만에게는 그럴 권한도 없었다.
기껏해야 보트를 보내 선원들을 구해 오도록 명령한 게 전부였다.
항구 관리관이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말했다.
“지금은 대책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후작님.”
“그건 자네가 해야지. 자네 책임 아닌가.”
“일부 그렇습니다만…….”
항구 관리관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지금 제일 큰 문제는 저 배가 아닙니다, 후작님. 부두에 쌓여 있던 자재가 죄다 가라앉았습니다.”
“응?”
“바다에 빠진 건 쓸 수 없습니다. 기중기도 부서졌고요. 게다가 이번에 온 배도 건설 자재를 싣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뜻을 깨달은 후작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항구 건설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안 그래도 공사 기간이 계속 길어지던 참이다. 황후가 기꺼워하지 않을 것이다.
“으, 으으음. 하지만 이런 대형 공사에 사고가 아예 없을 수는 없지. 기간이 좀 늘어나긴 하겠지만, 이 정도는 용납될 거다. 자재도 새로 구하면 돼.”
“하긴, 돈만 있으면 될 일이긴 합니다. 바다에 빠진 걸 건져 내는 일도요.”
책임질 일이 없는 헤르만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건지고 나면, 항구에는 못 써도 다른 곳에 팔아 치울 수는 있겠지요. 자금의 일부를 회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헤르만의 말에 후작이 희망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니 당장 쓸 돈만 있으면 된다.
돈만 있으면.
헤르만은 빙그레 웃었다.
그다음에 루덴도르프 후작이 만나야 했던 것은 빅토리아 대공이었다.
사고가 있은 날로부터 사흘째의 일이다.
그녀를 서재의 소파까지 에스코트하면서 후작은 최대한 인내했다.
나이가 들었어도, 영지를 직접 소유한 황족이라도, 여자라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니 신사인 자신이 잘 설명하고 다독여 두어야 했다.
“걱정이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대공 전하에게까지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다니, 죄송합니다.”
“나라의 큰일을 맡아 책임지고 있으니 경도 걱정이 많겠지. 원래 기반 시설 공사라는 게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잘 없지 않은가.”
“예. 정말로 말 안 듣는 놈 천지라.”
빅토리아 대공의 입술이 미묘하게 삐뚤어졌다. 그러나 대놓고 후작을 꾸짖지는 않았다.
그럴 만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루덴도르프 후작은 중년이고, 일문의 가주다. 행동거지와 일 처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자신이 직접 뭐라 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주름진 눈매로 후작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항구에 하역하지 못한 배들의 손해가 막심하다고 들었네.”
“아, 예. 항해사 놈이 제정신이 아니라, 차라리 부두에 정면으로 갖다 박을 것이지, 방향을 꺾는 바람에 지금 부두 절반이 사용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서요.”
“그 배를 인양하기 전까지는 다른 배가 항구까지 들어올 수도 없는 상태라고 들었네.”
“예. 제가 선원은 아닙니다만, 제가 보기에도 물 밑에 가라앉은 배 때문에 다른 배가 들어올 상황이 아닙니다. 도선사 말로는 조류도 평소와 달라져서 여러 가지로 어렵다고 합니다.”
“인양하는 데 오래 걸리나?”
“지금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전문 인력을 빌려 달라고 에른스트에 요청했습니다.”
“그렇군.”
빅토리아 대공이 대답했다.
“오늘까지 밖에서 들어오지 못한 배가 열 척이 넘는다고 들었네.”
“아, 예.”
“그중 어선이 여섯 척이야. 그제 들어온 어선의 생선은 이미 쓸 수 없게 되었을 거고, 오늘 항구에 도착한 건 가까운 다른 항구로 방향을 틀었다지만, 십중팔구 그쪽도 못 쓰게 되겠지.”
“그럴 수도 있겠군요.”
“어선단은 생선을 말리거나 절이는 저장 처리 시설과 인력을 함께 장만해 놓고, 순서대로 돌아가며 쓴다네. 알고 있는가?”
루덴도르프 후작은 모르는 이야기였으나, 아는 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항구로 간다고 해도 그 시설이 운 좋게 비어 있을 가능성은 낮을 걸세.”
“그렇겠지요.”
“경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가?”
“어선단처럼 자잘한 일까지 염려하시는 자애로운 마음 씀씀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결국 빅토리아 대공이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게 아니야. 자네가 맡아 가지고 있던 선주 연합의 보험금을 아직도 내놓지 않았다고 들었네.”
“아.”
후작이 짧게 신음했다.
“그 천한 것들이 감히 대공 전하의 앞에 나섰습니까?”
“경은 그들이 기댈 곳이 없어서 나까지 찾아오게 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네.”
빅토리아 대공이 결국 대놓고 말했다.
“어선의 선원들은 어획량에 따라서 수익금을 분배받는데, 이번처럼 배가 텅 비어 버리면 한 푼도 받을 수 없어. 출항에 들었던 비용은 선주가 어떻게든 감당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보험에서 책임져 줘야 해.”
“대공 전하.”
“이럴 때 선원들의 생활을 제대로 보장해 주기 위해서, 항구를 가진 영주들끼리 협약을 맺어 보험 규모를 크게 늘리자고 한 것일세. 경은 내가 동정심 때문에 이러는 것처럼 보이는가?”
빅토리아 대공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즘에는 안 그래도 배를 타려는 사람이 적어. 선원은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하는 직업이고, 죽더라도 시체도 남기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라네.”
“…….”
“이런 보장이라도 있어야 운영이 가능해. 경은 항구에 관심이 없으니 모르겠지만.”
“대공 전하, 지금 저를 비난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저는 그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후작이 강하게 말했다. 빅토리아 대공은 그 말을 태연하게 받았다.
“그러면 지금 당장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이로군. 일단 선주들에게 보험료는 내가 내주도록 하겠네.”
“대공 전하!”
“협약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경은 이미 서명했으니 문제없겠지. 금고의 빈자리는 나중에 채워 주리라 믿네.”
빅토리아 대공이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루덴도르프 후작은 입술을 파들파들 떨었다.
항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법이다. 사고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루덴도르프에 기항하지 못한 배 대부분이 향한 비스마르항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비스마르 선주 연합의 일원인 윌리엄 쇼어가 옛 친구를 찾아 루덴도르프에 온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의 일이다.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을 뵈려고 합니다.”
집사는 볕에 탄 구릿빛 얼굴의 근육질 남자를 보고 당황했으나, 윌리엄의 차림새와 태도는 흠잡을 곳 없는 신사였으므로 일단 물었다.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프레스콧 자작가의 ‘잠탱이 윌’이라고 말하면 아실 겁니다. 아카데미 시절에 밀러 교수님 밑에서 같이 수학했죠.”
“아아, 그러셨군요.”
집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