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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148/263)

149화

가족, 그리고 가신 중에서도 대표들만 참석한 장례식은 조용하고 조촐했다. 인척에게조차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그가 약물 남용으로 사망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후작의 명예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당장 영주관을 빼앗길 상황은 아니었다고 해도, 이 나이가 되어 집을 떠난 지 오래된 큰누이가 또다시 일을 해결해 주었다는 것도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후작을 더 오랫동안 알아 온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수였겠지요.”

늙은 푸흐스 경이 구덩이로 내려가는 관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후작님은 자살 같은 것을 할 분이 못 됩니다.”

그는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가 유일하게 큰누이에게 수치심과 미안함을 느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목숨을 끊을 정도의 것일 리 없었다. 

아마도 진짜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약을 쓰다가 그만 사고로 죽었으리라.

후작 부인의 생각은 또 달랐다.

그녀는 호르스트를 잡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아무래도 안 믿어져. 후작님이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면제나 진정제를 쓴 적은 없었어. 그렇다고 명예 때문에 자살할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서 후작 부인이 슬며시 헤르만 쪽을 바라보았다.

상복을 입었어도 헤르만은 변함없이 훤칠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로멜에서 슬픔은 결코 드러내서는 안 될 감정이었기에, 그는 비정하다기보다 더없이 귀족적으로 보였다.

가신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 터였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그와 악수하고 싶어 했다.

후작 부인은 그것을 보며 위협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호르스트는 후작 부인에게 낮게 속삭였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 어머니.”

“하지만.”

“근거 없는 말이에요.”

호르스트는 그 향합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말에 감정적으로나마 동조할 수 없었다.

어쩌면 아우구스타가 그 사실을 제게 알려 준 것은 시험일지도 모른다. 헤르만에게 뒤집어씌워 죄인으로 만들라고 말이다.

그래야 다시 한번 그녀의 손아래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었다. 

이 자리의 정당한 주인은 헤르만이다. 그 생각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장례가 끝났다. 이제 몇 안 되는 참석자와 인사를 나누고 모두 돌려보내야 했다.

“여보.”

그때 코넬리아가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아 왔다. 호르스트는 순간적으로 모든 생각을 잊고 코넬리아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있을게. 당신은 좀 들어가 쉬어.”

“코넬리아.”

“힘들어 보여서.”

“아니, 하지만…….”

그때 헤르만이 다가왔다.

“호르스트.”

“형.”

그가 호르스트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먼저 코넬리아에게 말했다.

“코넬리아, 들어가 쉬는 게 어떻습니까? 너무 오래 서 있었습니다.”

빨리 동의하라고 헤르만이 눈짓했다. 호르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형이랑 의논할 것도 있고, 처리할 것도 있어. 먼저 들어가서 쉬어.”

“그러지 말고 네가 데려다주는 게 좋겠다.”

사실 지금 호르스트 자신에게도 가장 필요한 일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장례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상주로서의 위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헤르만이 그것을 노리고 한 말인지도 몰랐지만, 호르스트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코넬리아를 걱정시킬 정도로 안 좋은 안색을 하고 있다면, 남는다 해도 어차피 좋을 게 없었다.

그는 코넬리아의 어깨를 감싸 안고 묘지에서 나왔다. 헤르만이 따로 불러 둔 마차 한 대가 있었다.

마차에 오르자 코넬리아가 그의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눈이 충혈됐어. 눈가도 까매졌고.”

“꼴이 못나 보이겠군. 형이랑 비교하면 더.”

“왜 그런 말을 해?”

호르스트는 말해 놓고도 스스로 후회했기에 씁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코넬리아의 손을 억지로 떼어 내지는 못했으므로, 표정을 전부 숨기지는 못했다.

“미안해.”

“뭐가?”

“당신이…….”

그는 잠긴 목을 억지로 뚫었다.

“당신이 나와 결혼했을 때는, 루덴도르프 후작가가 훨씬, 훨씬 더…… 명예와 영광을 얻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코넬리아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아버지는 실망하실 것 같긴 한데, 이미 실망 많이 하셨을 거라서.”

“응…….”

“나는 그냥, 더 힘든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고 코넬리아가 좁은 마차 안에서 조심조심 움직여 그의 곁으로 옮겨 앉았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렸다. 호르스트는 의아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우리 아기가 아빠의 포옹이 필요하다는데요.”

호르스트는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코넬리아 얼굴이 빨개졌다.

사실 그녀도 이렇게 말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건 엘리엇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싫으면 관둬!”

그녀가 돌아서려는 찰나, 호르스트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보듬어 안았다.

그것도,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버님 장례식날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한데.”

“…….”

“클라우제너 공작님과 부인께서 아이를 너무 예쁘게 기르셔서, 부럽더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호르스트는 숨을 멈췄다.

“공작 영윤은 만난 적 없지? 볼 때마다 그 생각 들었어. 이렇게 귀여운 아이였으면 좋겠다, 이렇게 키웠으면 좋겠다.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그랬군.”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물론 당신이 동의해 줘야 할 테지만. 호르스트?”

코넬리아가 놀라서 그의 뺨에 다시 손을 댔다.

하지만 오늘 호르스트가 우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었기에, 그녀는 왜 그러느냐고 묻는 대신 그를 안아 주었다.

“괜찮아. 마차에서 좀 천천히 내리지 뭐.”

그녀가 그렇게 말해서 호르스트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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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과 계승 문제를 처리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우구스타가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해도, 후작가의 상황이 좋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아우구스타가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루덴도르프 후작가의 신용은 수직 하락했다.

중지시켜 놓은 가게른 광산의 일도 재개해야 하고, 항구 공사도 어떻게든 정리해야 한다.

증축을 중지하더라도 당장 하고 있었던 부두 건설은 끝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이미 들어온 자재의 대금을 지불하고, 인부와 관리관의 임금도 해결해야 했다. 망가진 부두도 수리해야 한다.

이대로는 장기적으로 수입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것 말고도 자잘한 빚이 많았다. 지금까지는 큰 사업과 투자, 가문에 대한 신용으로 막아 왔지만, 그게 무너지고 후작이 죽자 차용증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선대 후작께서 쓰신 차입금이 조금 있습니다. 액수가 크지 않기에, 잘못하면 새 후작님께서 알지 못하고 놓치실까 두려워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그런 자가 거의 매일 찾아왔다.

그런 식으로 쌓인 차용증의 액수를 모두 합치면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파산이 조용히 진행되었다.

가신들과의 관계에는 조금 더 문제가 있었다. 아우구스타의 후광이 사라지자, 적지 않은 수의 가신들이 낮은 목소리로 이런 의견을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장남은 장남이지.”

“아우구스타 님께서 워낙 강하게 바라셨기도 하고, 또 지금의 후작 부인 소생이기도 해서 그때는 별말 안 했지만…….”

“아무래도 호르스트 경으로는 불안하긴 합니다.”

“지금까지 실패한 사업이 몇 개인지…….”

작위 계승 서류는 처리조차 되지 못한 채 책상 서랍에 놓여 있었다.

헤르만이 서재 문을 두드린 것은 장례식으로부터 열흘 후의 일이었다.

“이야기 좀 하자.”

그의 손에는 몇 장의 편지가 들려 있었다. 그게 사적인 편지가 아니리라는 것은 명백했다.

“이제 아예 형에게 서류를 가져가는 사람도 있나 보지.”

“피곤해 보이는군.”

헤르만이 서재의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호르스트는 피로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그래.”

“코넬리아가 걱정하더군.”

“…….”

호르스트는 가까스로 표정을 다스릴 수 있었다.

헤르만이 자신을 들쑤시려는 의도로 그런 말을 하더라도 이제 상관없었다. 그와 코넬리아에게는 아이가 있었고,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는 책상 한쪽에 놓여 있던 문서 한 장을 들고 헤르만의 건너편으로 왔다.

“형의 용건을 먼저 들을까, 아니면 내가 먼저 말할까?”

“용건이 있다면 먼저 이야기해. 그러고 보니 전에도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지?”

헤르만이 말했다. 후작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잊고 있었지만, 그 직전에 호르스트는 그에게 할 말이 있어 찾아온 것 같았다.

호르스트의 용건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문서를 헤르만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루덴도르프 후작가가 빚을 지고 있는 채권자의 목록이었다.

“이 중 삼분의 이 가까이에게서 연락을 받았어. 기한을 연장하거나 이자를 깎아 주겠다는군. 형의 얼굴을 봐서.”

“그렇군.”

“어떻게 한 거야?”

헤르만이 빙긋 웃었다.

“아는 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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